안 느끼한 산문집

안 느끼한 산문집

$13.00
Description
가난한 건 내 탓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까!
첫 월급 96만 7,000원. 보증금 2,000에 68만 원짜리 옥탑방에서 동생, 친구와 셋이 월세를 나눠 내는 현실을 담백한 시트콤처럼 펼쳐낸 『안 느끼한 산문집』.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보증금을 쫓느라 헐떡거려도 밤이 되면 개와 술과 키스로 청춘을 알차게 소모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유머와 눈물이 교차하고 육두문자가 춤을 추지만 한 번도 괜한 ‘시발’은 없다. 닳아빠진 인간의 발악이 아니라 포기를 많이 겪어보지 않은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탄성에 가까운 육두문자 속에서 사뿐히 청춘의 한을 날리고 일터로 나가는 저자는 어떤 느끼한 목표나 희망보다 당장의 행복을 꺼내 쓰고, 사랑하는 이들과 열렬히 행복을 나눈다. 기성세대의 문법을 깨부수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리는 당연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케케묵은 느끼함에서 벗어나게 된다.
수상내역
-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 수상

저자

강이슬

이렇게나못하는운전을,수영을,채식을‘이렇게나열심히하는나’를믿는다.초보들에게따뜻하고다정한미래를지키러온히어로의마음으로,기꺼이초보의시기를지나고있다.[놀라운토요일][SNL코리아][인생술집]등TV프로그램에서근면하게일하는방송작가.제6회카카오브런치북프로젝트에서대상을받아에세이『안느끼한산문집』을출간했고,『새드엔딩은없다』를썼다.

목차

프롤로그
우리가아프거나망하지않기를

1부
보증금,
너에게
청춘을바친다

혼란의여름:성인방송작가
상실의순기능
좌충우돌상경기
보증금,너에게청춘을바친다
아빠없는밤
우리집개스키
막내작가생존기
바람처럼스쳐가는정열과낭만아
Myfatherissohot
소개팅에서대참패하는법
적당히속상한이별
버려진것들의가치
엄마는매일아침사과를갈았다
건성으로하는위로
이불서점
미워하지않고살수는없을까
바보와호구와무녜코데바로

2부
완전한
타인에게만
말할수있는
비밀

이노센트패륜아
이별의오답노트
네가남긴작은발자국들도곧사라질텐데
옥탑방과총알오징어와친구들
두근거림에도연습이필요하다
가난을팔아돈을벌수있다면
서로에게미안해하는여자들
너무값싼숙소는숙소가아니었음을
자정에우리집에서축구볼래요?
바나나우유를가장맛있게먹는방법
황도한캔의무게
프로고백러
제목없음
징그럽게맛있는먹물새우깡
완전한타인에게만말할수있는비밀
행복한식고문
이터널의끝에는뭐가있을까

에필로그
나는존나짱이다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우리는2리터짜리빈페트병여덟개를챙겨1층에있는상가화장실로물을받으러갔다.물을받는동안생각했다.내년에도이짓을해야겠지.
수도가얼면변기물도내려가지않기때문에1층화장실에온김에마렵지않은오줌도미리싸야했다.한겨울에오줌한번싸자고벗어놓은브라와니트와패딩과바지와양말에꾸역꾸역몸을넣고4층에서1층까지내려가는것은죽기보다귀찮은일이기때문이다.몇명의엉덩이가닿았는지모를술집변기에엉덩이를붙였다.엄청나게차가웠다.소름과비참함이등줄기를타고몰려왔다.내집에서오줌도마음놓고쌀수없다니.
뒈지게무거운생수병을이고지고집으로돌아와전기포트에받아온물을데웠다.그물로세수와양치를한다음남은물로발을씻고욕실바닥의비눗물을헹구었다.로션을바르고잠자리에누우니오줌이마려웠다.죽고싶었다.
2년전,지금살고있는보증금2,000만원에월세68만원짜리옥탑으로이사를왔다.100만원도안되는월급을쪼개고쪼개3년간바득바득모은돈800만원과박이회사에서대출받은1,500만원을합쳐마련한집이었다.전에살던보증금300에월세25만원짜리반지하에비하면궁궐같은곳이었다.이사를온날박과나는축배를들었다.비록옥탑이었으나전과비교하자면이곳은심적으로나물리적(?)으로나천국에훨씬가까웠으므로.
반지하집에비하면해도들고평수도넓었으나옥탑은옥탑이었다.여름이면숨이막히게더웠고하수구에서는똥냄새가올라왔다.겨울이면영하5도만되어도수도가얼었고,전기장판과보일러를아무리빡세게틀어도외풍때문에코가시렸다.오래된이빌라는무너져가는중인지우리는한달에한번꼴로바닥중새로꺼진곳을발견했다.노후된수도배관이터져공사한지1년도되지않았는데이번엔보일러배관이터져거실바닥에서송골송골물방울이올라왔다.계단벽에생긴균열도길어지거나벌어지고있었다.이건물의구석구석이목숨을건지고싶으면빨리나가라고비명을지르고있었지만우리는돈이없었다.
태풍이불던날,지진이났던날,강풍이몰아치던날.아무튼그런종류의날이면박과나는두려움에떨며진지하게생존방법을모색했다.
“야,시발.진짜이집무너지면어떡하지?옥상으로나가야되냐?”
“옥상으로나가면백퍼뒈져.옥상도존나게후졌잖아.”
“만약에지진나면나는호랑이챙길게.너는집계약서챙겨.”
이런식의이야기는늘‘돈을열심히벌어서빨리이사가자’로마무리되곤했는데우리가충분히열심히살고있다는것은둘다아는사실이었다.촌에서태어나고자란우리가상경한뒤로최선을다해서한것이있다면바로보증금모으기였다.얼마되지도않는한달월급으로월세내고,부모님용돈드리고,보험및휴대전화등고정비를지출한뒤남은돈으로코딱지만한적금을붓고나서야다음달카드값을당겨치킨집에가기분을좀냈을뿐이다.우리는맹세코무료입장이아닌클럽에는발들인적도없고,사치품도하나없다.나는샤넬가방은고사하고립스틱도없단말이다.
-<보증금,너에게청춘을바친다>중에서

96만7,000원.
막내작가시절피,땀,눈물을사무실에뿌려가며주말도없이일해벌어낸월급이었다.통장에96만7,000원이찍히자마자월세30만원,휴대전화요금8만원,이런저런보험료10만원,주택청약예금5만원이빠져나간다.40만원정도의잔액을보고땅이꺼져라한숨을쉰뒤20만원을비상금통장에송금한다.비상금을모아놔야방송이쉬는기획기간을살아낼
수있다.석달마다돌아오는기획기간동안들어오는월급은겨우40만원.말그대로비상사태다.
빈깡통이요란하다고,초라하기짝이없는통장에난리법석으로출금내역이찍히고나면잔액은20만원.비참해서눈이질끈감긴다.애써눈을떠남은20만원으로다가올한달을살
아볼궁리를한다.
우선밥값.나는거의매일출근하므로30일치의점심값이필요했다.건강을포기하고편의점음식으로한끼를해결한다고하면한달에필요한밥값은약10만원.에라이.점심값을제하고나면겨우10만원남는다.시발.욕을안할수가없다.
과장이아니고100원단위를아껴가며살아야했다.가만히있어도혀가나올듯더운여름은물론칼바람에볼이썰릴것같은겨울에도나는40분씩걸어서출퇴근했다.버스카드를찍을때나는‘삐빅’소리,그돈먹는소리가사람잡는찜통더위나칼바람보다훨씬무서웠다.나는없는중에도어쨌든살아내야했으므로세트장에남아버려질운명인소품과도시락들을매주챙겼다.남들눈에는쓰레기더미인현장이내눈에는노다지였다.
어느가을새벽,소품이었던2킬로그램짜리잡곡일곱봉지를욕심껏이고지고끌며집으로걸어가는데서러워서눈물이났다.그래도엉엉울면서끌고온곡식들로따뜻한잡곡밥을지어먹을때는행복해서웃었다.
새벽까지야근하던날,우리가시간대비버는돈을동기들과따져보았다.최저시급의반에도못미쳤다.그초라한금액을똥싸는시간도아껴가며최선을다해벌고있다니…….목사님딸인동기가을이생활비를충당하려면노래방도우미아르바이트라도뛰어야하는거아니냐고말했다.우리는그냥웃었다.그날새벽,야간할증이붙은택시비가무서워서캄캄한거리를한시간이나걸어서퇴근했다.유난히많은노래방이눈에띄었다.(중략)
제작진이나스태프앞에서한없이야박한방송국돈은엄한곳에서줄줄샜다.어느날에는방송에말하는앵무새가필요했다.“안녕하세요”였던가,“반갑습니다”였던가,아무튼다섯마디남짓할줄아는앵무새를두시간정도섭외했고그날앵무새는80만원을벌어갔다.그사실을안뒤로나와동기들의목표는‘앵무새만큼벌자’가되었다.앵무새이고싶었다.나는30일을밤낮없이일해도96만7,000원을버는데앵무새는시급이40만원이라니.우리엄마아빠가나대신새를낳았더라면……아,그래.이건아니다.이렇게생각하면너무속상하다.
-<막내작가생존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