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판 붙자

다시 한판 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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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시집에는 “인생의 시계추 오후 일곱 시가 막”(「다시 금강에서」) 지난 그 미지의 누군가가 다시 금강을 찾아 열두 살의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까지의 한 생이 다 들어 있다. 유소년기가 없는 성인은 없을 것이나, 유소년기가 풍요로운 성인은 없을 수도 있다. 강병철은 물론 풍요로움 쪽에 거주했지만, 그것이 물질적으로 유복하고 문화적으로 충족된 삶이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충남 서산을 중심으로 시에 등장하는 지명들을 통해 시인의 고향이 주는 정서적 부요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천수만과 금강(「다시 금강에서」), 갈마리(「갈마리 가는 길」), 적돌만(「해루질」), 안면도(「적돌만에서」), 한머리(「김현송 여사의 이력」·「다시 한 판 붙자」), 마량포구(「마량포구」), 당재골(「천장에 꽂힌 화투」), 광천(「광천 새우젓」), 춘장대(「춘장대 포장마차」) 등이 그곳이다. 여전히 여자에게 가혹하였고(「생강나무」·「봉선화」·「복자야」·「구십삼 세」·「달맞이꽃」·「유월 장마」·「언덕길 꽃다지」), 학생의 인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으며(「가슴둘레 검사」·「옷 벗던 소년은 지금」), 키우던 개를 식용으로 팔거나(「타이거 파는 날」·「안녕, 타이거」) 흑염소를 쇠망치로 때려잡아(「흑염소를 잡으며」) 소년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더 크게는 이 모든 것을 포용한 바다마을이 소년을 성장시켜 ‘남의 이야기’에도 애정을 담아 ‘자기 이야기’로 만드는 시인이 되게 하였다.
저자

강병철

시인
시인은현재간척지가된서해안의바닷가에서태어났으며열세살부터서울유학생활을시작했다.시집으로『유년일기』『하이에나는썩은고기를찾는다』『꽃이눈물이다』『호모중딩사피엔스』『사랑해요바보몽땅』등을발간하고소설집『비늘눈』『엄마의장롱』『초뻬이는죽었다』『나팔꽃』그리고성장소설로『닭니』『꽃피는부지깽이』『토메이토와포테이토』산문집으로『선생님울지마세요』『쓰뭉선생의좌충우돌기』『선생님이먼저때렸는데요』『우리들의일그러진성적표』『작가의객석』『어머니의밥상』등을발간했다.
교육산문집『넌,아름다운나비야』『난,너의바람이고싶어』『괜찮다,괜찮다,괜찮다』등을편집했으며2001~10년까지청소년잡지『미루』의발행인을역임했다.
지금은36년국어교사생활을정년퇴임한이후폭풍집필중이다.

목차

1부가슴둘레검사
민들레/대통령후보벽보가/첫사랑/생강나무/가슴둘레검사/시집가던날그리고/돼지파는옆에서/돼지돌림병/다시한판붙자/해루질/타이거파는날/안녕,타이거/흑염소를잡으며/봉선화/복자야/차마그뚱딴지꽃/얼레리꼴레리/천장에꽂힌화투/돌아온외팔이/뛸거여말거여/적돌만에서/갈마리가는길/달맞이꽃/쥐잡기/유월장마/동백꽃/옷벗던소년은지금
2부아부지꿈
김현송여사의이력/구십삼세/엄마의밥상/수유리재활병원/빈센트제2병동에서/국립재활원/어머니의한가위/광천새우젓/아부지꿈/야스다의훈장/철둑길대결
3부취한스승과취한제자
언덕길꽃다지/이별의청량리역/할머니무덤가에서/병아리떼뿅뿅뿅/비워야사는거지요/담배피우는여자/열아홉,나일강의소년누쿠/‘글을낳는집’고양이/취한스승과취한제자/스승김종철/대전역오후세시/조치원역해장국집에서/코로나입춘/철도원
4부소년공에게
동지여,설국의새해에/나목/각서/열반/사랑을위하여,둘/춘장대포장마차/마량포구에서/초로를위로하며/다시금강에서/소리넷/그소년은지금/저무는우금치에서서/다시살아나는우금티/코로나초가을/나싱개/목공이세요/간지름나무/벼이삭단풍/라떼는말이야/소년공에게/버스는떠나야하는데/산수유/공납금날아갔다

출판사 서평

[해설/이영숙문학평론가]

시인이‘겅중겅중’뛰듯이웃고있다.문청시절부터흠모했으나여러번의인연에도불구하고낯가림이심해선뜻다가가지못했던‘스승김종철’이한말씀을주셨기때문이다.그것도“망자가된윤시인의상갓집,스승께서새빨개진중년의눈동자에호오호불어주기”까지하면서말이다.
“강선생의시는자기이야기야”.
‘스승’은강병철의존재를익히알고있을뿐아니라그의시의패턴을정확히꿰뚫고있었다.자기이야기를시로쓰는일을자전적시쓰기라고할수있을것이다.
나고자라현재까지경험한이야기가시적대상이되다보니,자기이야기속에는‘자기’가직간접적으로겪은남의이야기가더많이자리하게되기도한다.
따라서‘스승김종철’이말한‘자기이야기’란강병철이순간을미학적관점으로접근하는객관적서정보다는시간의흐름속에서자신과연계되는주관적서사에더치중했다는의미를포괄한다.이미지중심이냐,인과관계로엮인에피소드중심이냐가그기준이된다.
자전적시쓰기는할말이많을때선택하는형식이다.그러나일제강점기와한국전쟁기와독재체제기를모조리겪은세대가흔히자기이야기를책으로쓰면몇권이넘을거라고자탄하는것과는달리기구한이야기자체가문학이되지는않는다.
유의미한가치가있는어떤이야기만이문학의범주에들수있다.한국전쟁직후태어나빈곤과독재,5·18이라는전대미문의폭력과광기,신자유주의라는미증유를고루경험하고근래일선에서물러난시인에게유의미한가치란무엇일까.
강병철이시집에서보여주듯순진무구했던유년기와이웃의아픔을머금은개인사,사건과사고를내포한사회사,역사적진실이라는시대성같은것이아닐까.
이야기를이끌어가는주체로서교사출신의시인은문어체보다는구어체를선택하였고,지역의정체성이드러나는사투리와당대의언어를구사하였으므로,시집은가공하지
않은원색의정황과인물들이본모습대로의존재성을내뿜는장소가되었다.
이야기는시간성을갖는다.좀신비로운대목인데,시인은필생의업을이미열두살에예감했다.“수평선너머안면도어디쯤에서(〈시인의말〉에의하면,‘격렬비열도’-필자)소년의백사장하염없이바라볼미지의누군가를떠올렸던”것이다.
이시집에는“인생의시계추오후일곱시가막”(「다시금강에서」)지난그미지의누군가가다시금강을찾아열두살의자기자신과마주하기까지의한생이다들어있다.
유소년기가없는성인은없을것이나,유소년기가풍요로운성인은없을수도있다.강병철은물론풍요로움쪽에거주했지만,그것이물질적으로유복하고문화적으로충족된삶이었던것은물론아니다.
다만충남서산을중심으로시에등장하는지명들을통해시인의고향이주는정서적부요를짐작할수있을뿐이다.천수만과금강(「다시금강에서」),갈마리(「갈마리가는길」),적돌만(「해루질」),안면도(「적돌만에서」),한머리(「김현송여사의이력」·「다시한판붙자」),마량포구(「마량포구」),당재골(「천장에꽂힌화투」),광천(「광천새우젓」),춘장대(「춘장대포장마차」)등이그곳이다.여전히여자에게가혹하였고(「생강나무」·「봉선화」·「복자야」·「구십삼세」·「달맞이꽃」·「유월장마」·「언덕길꽃다지」),학생의인권에대한개념자체가없던시절이었으며(「가슴둘레검사」·「옷벗던소년은지금」),키우던개를식용으로팔거나(「타이거파는날」·「안녕,타이거」)흑염소를쇠망치로때려잡아(「흑염소를잡으며」)소년의마음에상처를입히는일들이발생하기도했지만,더크게는이모든것을포용한바다마을이소년을성장시켜‘남의이야기’에도애정을담아‘자기이야기’로만드는시인이되게하였다.
강병철은자신의어머니를포함해여성이겪은부당한생의차별과질곡을그려내면서도직접적으로인습이나제도를비판하지않는다.시적대상을선악으로가르지않으며,누구의편을들지도않는다.
재활병원에있는입원중인어머니를찾았을때‘흑룡강출신’의‘간병인’이자신을‘정년퇴임교사’가아니라‘농부’로인식할때“가슴이화초처럼밝아지는”성정그대로지식인연하지도않는다.
그러나시밖에서시안에드러난진실에개입하지않는가치중립적인입장을견지하고있음에도시인이어떤인물에더마음이얹히는지를약간이나마추정할수있는여지를주는것은사실이다.다른시도마찬가지이지만,표제작이기도한이시에서강병철시의그러한특징을구별해내는일은퍽흥미롭다.
세명의등장인물은나름의전형성을가지고있다.태생적으로우월한신체조건(‘딱벌어진어깨’)에,일정한사회적신분(‘육군중사출신’)을보유한‘꿩잡이동석씨’는자신의캐릭터를즐기는자임을‘병상에서도벗지않는’‘검은라이방’으로입증한다.
그는누구에게별피해를준것도아닌데단지“밸이꼴린다”는이유로부지불식간에‘종달씨’에게‘낭심’을걷어차이고“읍내에입원”을하게된외지인이다.
‘종달씨’가뒷배를부탁한‘논두렁주먹선배강씨할아버지’는왕년에주먹을휘두르던인물인지어떤지는잘드러나지않지만,여전히건강하고뚝심도있는현지농부다.
‘노름꾼종달씨’는객기는충만하나힘과뚝심은부족하여‘박카스한통들고’‘병문안’을갔다가“열흘뒤에다시붙자”는‘동석씨’의‘선전포고’에전전긍긍하는인물이다.
“새벽마다평행봉에매달린채근육만드는중”이지만,근육이단기간에생기는게아니므로“닷새남은기간을따지는것”도부질없는노릇인것만같다.
이셋중에누가가장선하고누가가장악한가.시인은다만관망할뿐이다.
그러나“리턴매치이제닷새남았다”는‘종달씨’의다짐을통해여전히선수권을가진자는‘동석씨’이고,‘종달씨’자신은힘과기량이부족한도전자에불과하다는사실이밝혀진다.
따라서“다시한판붙자”는결기의주체는‘동석씨’가아니라‘종달씨’다.이쯤에서돌이켜보면‘동석씨’는힘이있다고거들먹거리는자를,‘종달씨’는그에저항하는자를,‘강씨할아버지는’저항에동참하는자를가리키는듯하다.
시인도“새벽마다평행봉에매달리는”‘종달씨’에무언의응원을보탠것은아닐까.
‘검은라이방’이묘하게옛독재자와겹쳐지면서새로운시읽기가시작되는지점도이시의미덕중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