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고려의 속국이었다 : 정사(正史)로만 입증한 고려 제국사

일본은 고려의 속국이었다 : 정사(正史)로만 입증한 고려 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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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의 서지학적 지향점은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의 구상을 원용한 천하사관 삼분지계이다.
첫째, 『일본서기』 등 일본 사료를 텍스트로 삼는 셀프 축소ㆍ은폐ㆍ왜곡의 친일식민주류 강단사관이다.
둘째, 일본 극우 조작 유포 위서 『환단고기』 류를 기반으로 셀프 역사 희화화, 판타지 소설화로 귀결한 재야 사이비 민족사관이다.
셋째, 『고려사』, 『금사』 등 한중 정사(正史)와 브리태니커 영문백과사전 세계 공인 정사(正文)만을 근거로 문무대왕, 고려 태조, 세종대왕, 정약용, 신채호, 정인보의 맥을 잇는 강효백의 대한민족 정통사관이다.
저자

강효백

저자:강효백
경희대학교법과대학을졸업하고대만사범대학에서수학한후국립대만정치대학에서법학박사학위를받았다.베이징대학과중국인민대학등에서강의했으며주대만대표부와상하이총영사관을거쳐주중국대사관외교관을12년간역임했다.상하이임시정부에관한기사를『인민일보』(人民日報)에대서특필하게했으며한국인최초로기고문을싣기도했다.지금은경희대학교법무대학원교수(법학전문대학원겸임교수)로있다.저서로는『꽃은다함께피지않는다』,『야간열차,나래시조동인집』『협객의나라중국』,『동양스승서양제자』,『창제법률과창조의결혼』,『차이니즈나이트1·2』등31권을저술하고논문50여편과칼럼500여편을썼다.제1회,제3회,제6회공무원문예대전시와저술부문에서장관상과국무총리상을받았다.

목차

1.태조왕건황제,함께새롭게‘함여유신’을선포하다
2.고려는황제국스모킹건20
3.호남차별근거로날조악용된훈요십조의진실
4.천안(天安)은황제국가의도시이름
5.고려는삼한+발해4한통일제국
6.고려시대만주는우리땅
7.동만주는고려의직간접통치지역
8.금(金)의고려에대한무한존경보은20선―근거:『금사(金史)』
9.일본등30여개국수장에게조공받은고려제국
10.일본은고려제국의속국이었다
11.정약용이옳았다!철리국의위치
12.강감찬을‘강한찬’으로바로모셔라
13.세종의최대역점사업,한글창제보다『고려사』편찬
14.일제가10리를4㎞로축소조작한까닭
15.윤관이산성을쌓은공험진은흑룡강성학북진
16.왜곡조작의끝판왕,일본의왜구와원구
17.이성계는두번압록강을건너고구려옛땅을수복했다
18.응답하라!1023년고려제국
19.新아방강역고고려제국
20.남녀평등과휴머니즘의유토피아고려제국―형벌제도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사고전서』속의송대의저명학자곽약허의『도화견문지』(1080년)‘고려국(高麗國)’편에는“왜국은일본국이다.본래이름인왜를부끄러워했는데,동쪽끝에서스스로일본이라부른다.지금고려에신하로서속하고있다(倭國乃日本國也,本名倭,其名,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今則臣屬高麗也)”로기록해일본을고려의속국으로명시하고있다.일본은고려를대국으로,고려군주를황제로모셨다.고려제국의군주들은황제의전용어인조서,성지,칙령을사용했다.

‘조서(詔書)’는황제의명의로작성되는공문서이다.조서를넷으로세분하면황제가중앙정부에하달하는명령을‘조(詔)’,일반백성에게하달하는명령을‘칙(勅)’,법제를고치거나상벌을내리는‘제(制)’황제가제후를봉하는명령을‘책(策)’이라하였다.이런황제의명령들은통틀어서‘성지(聖旨)’또는‘칙령(勅命)’이라고했다.『사고전서』속의송대의저명학자곽약허의『도화견문지(1080년)

조서는황제국에서만사용되었으며,제후국에선교서(敎書)와어명(御命)으로불렸다.황제국고려(918~1274년)는당연히황제의명령,조서(조·칙·제·책포함)와성지를사용하였다.원나라간섭기이후와조선시대에는조서를쓰지못하고교서라고했다.조서의명칭을회복한건고종황제가대한제국을선포한1897년10월12일이후의일이다.
·태조가조서(詔書)를내리고신하들이사례하다.
─『고려사』세가제1권918년(태조원년)918년6월16일(음)
·고종이조서를내려말하기를,“농사가바야흐로바쁜시기에큰가뭄이들어서해를끼치고있는데,이는진실로형정이잘못된탓이므로짐은매우두려워하노라.”라고하였다.
─『고려사』세가제231242년(고종29년)9월2일(음)
16세기초까지일본은고려와조선군주에게황제에게올리는표문을바쳤다.
신하가황제에게올리는공문을‘표문(表文)’이라하고제후나태자에게올리는글을‘전문(箋文)’이라고했다.황제국고려는당연히‘표문’을썼다.그런데고려가제후국의격식을쓴원나라간섭기이후와조선시대전반기16세기초까지일본과유구국(琉球國,지금의오키나와현)는고려와조선군주에게신하가황제에게바치는공문인표문을올렸다.(16세기말임진왜란이전까지일본은조선을상국(上國)또는대국(大國)으로부르며칭신(稱臣)했고,신하가황제에게바치는공문형식의표문을올렸다.)
·무릇표문을올리는경우성상폐하를칭하게하고전문을올리는경우에는태자전하를칭하도록할것이며,제왕(諸王)은영공(令公)이라할것이며,중서령과상서령은태사령공(太師令公)이라할것이며,양부(兩府)의집정관은태위(太尉)라고할것이다.
─『고려사』제84권지38형법1공첩상통식외관예의상정소
·유구국중산왕이칭신하는표문을올리다.
김윤후등이유구국으로부터돌아왔는데,중산왕(中山王)찰도(察度)가또그신하옥지(玉之)등을보내서신하를칭하는표문을올리고포로로잡힌우리나라사람37명을돌려보내며이어방물(조공)을바쳤다.
─『고려사』세가제45권1390년(공양왕2년)8월28일(음)
·일본의국승현교가칭신하며표문을바치다.

일본의국승(國僧)현교(玄敎)가승려도본(道本)등40여인을보내어와서방물을바치며칭신하며표문을올려말하기를,“하늘과땅은높으면서넓기때문에만물을덮어주고실어주며,해와달은밝고높이비추기때문에만방을환하게해줍니다.공자와맹자는인의에근본을두고있기때문에모든풍속을가르치고배양할수있으니,이셋과같은것들은고금에그공을나란히할만한것이드뭅니다.가만히듣건대고려국왕전하는덕이천지를뒤덮고밝기가일월보다뛰어나며도가공맹을초월한다고하였습니다.예로부터지금까지사방의오랑캐국가들과초목과금수가패연히그큰은택을입었으니,전하와그공을나란히할만한자는아직까지없었습니다.그러므로상서가감응하여서기린과봉황이길상을바치고,교외풀숲에서조화롭게울고있습니다.엎드려생각건대현교는멀리태양아래일본오랑캐땅에거하여지극히노둔하여볼만한것이없습니다.다만멀리서화봉이천추만세만만세(千秋萬歲萬萬歲)를아뢰는듯이하여예의상조금이나마잘못으로부터면할수있기를바랍니다.”라고하였다.

도본등이말하기를,“중국에서일찍이일본이칭신하지않았기때문에꾸짖었는데,우리나라에서대답하기를,‘천하란것은천하의천하인데어찌한사람의천하겠는가.’라고하며,끝내칭신하지않았습니다.이제대국(大國,고려)에칭신하는것은상국에대한의(義)를사모해서입니다.”라고하였다.
─『고려사』46권1391년(공양왕3년)10월21일(음)갑술(甲戌)20

일본은고려말까지오늘날의대사격인국승을파견하며자국(일본오랑캐땅,日下夷地)은중국에도칭신하지않고중국을대국이라부르지않았다.그러나고려군주에대해서는‘만세만세만만세’로황제의예로경칭하며자국을고려의신하나라로자칭칭신하고고려를대국(大國)으로사대하여온사실(史實)과사실(事實)을대외국호고려공화국(대내국호대한민국)을대표하는정사(正史)『고려사』에명기하고있다.문화재청을비롯한관계당국은세계문화사상전무후무한자기역사말소,자기선조모독집단패륜죄행을더이상자행하지말라.한국사최고성군세종대왕이총편집장,조선최고의엘리트집단집현전학사들이편집위원을맡아32년간심혈을기울여집필한기전체정사『고려사』를하루빨리국보로승격시킬것을재삼촉구한다.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