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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
〈구술채록ㆍ정리필진〉(글쓴이,게재순)허영선제주4ㆍ3연구소소장.시인,5ㆍ18기념재단이사,제주대강사로있다.시집《뿌리의노래》,《해녀들》,저서《제주4ㆍ3을묻는너에게》,《당신은설워할봄이라도있었겠지만》,구술집《그늘속의4ㆍ3》(공저),《빌레못굴그캄캄한어둠속에서》(정리),《만벵듸의눈물》(정리),《4ㆍ3과여성,그살아낸날들의기억》(공저)등여럿있다.양성자제주4ㆍ3연구소이사.4ㆍ3범국민위원회이사,재경4ㆍ3청년유족회고문,제주4ㆍ3연구소창립초기실무를맡아구술채록활동을하며4ㆍ3진실규명을위해활동해왔다.구술집《이제사말햄수다1》(공저),《4ㆍ3과여성,그살아낸날들의기억》(공저)이있다.허호준한겨레신문선임기자.제주대학교대학원에서4ㆍ3연구로정치학석ㆍ박사학위를받았다.저서《그리스와제주,비극의역사와그후》,번역서《20세기의대량학살과제노사이드》(공역),《현대사회와제노사이드》(공역),구술집《무덤에서살아나온4ㆍ3수형인들》(공저),《빼앗긴시대빼앗긴시절-제주도민중들의이야기》(공저),《4ㆍ3과여성,그살아낸날들의기억》(공저)등이있다.조정희제주4ㆍ3평화재단기념사업팀장,제주대학교사회학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제주4ㆍ3연구소,제주4ㆍ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활동했다.《제주4ㆍ3사건추가진상조사보고서1》집필에참여했고,구술집《4ㆍ3과여성,그살아낸날들의기억》(공저)이있다.
책을펴내며정봉영·아버지의‘빨간줄’,여군에들어가서지웠지김을생·한밤중들린뱃고동소리에아버지는영영양농옥·나를살린건항아리씨앗돈송순자·그험한세상살다보니무서운것없었어임춘화·시커먼감자떡비누가고구마로보였어고영자·열여덟등짝에옹기지고집집마다팔러다녔어
“살아야했기에삶을이겨야했다.”제주4·3연구소가4·3제73주년을앞둬4·3시기를살아낸여성들의구술집〈4·3과여성2,그세월도이기고살았어〉(도서출판각)를펴냈다.지난해4·3여성생활사를처음으로기획,주목을끌었던〈4·3과여성,그살아낸날들의기록〉에이은두번째다.집필은허영선,양성자,허호준,조정희가참여하였다.4·3속에서여성들은이중삼중의고통을당했으나거기에머물지않고주체적인삶의시간을살았고,오늘을일궈낸빛나는존재들이다.이책은10대소녀시절4·3의참혹한현장을목격하거나겪었던6인의여성들이어떻게그삶을뚫고나갔는지를날것으로보여준다.무엇보다자신들이직접겪었던4·3과당시의삶,이후의생활사에초점을맞추고있다.이들의삶을따라가다보면4·3이남긴트라우마,고통을이겨낸삶의시간들속에그들의정신사를추출해볼수있다.삶과죽음의경계에서살아남은여성들은가장의부재,가족의부재속에자신들이삶의주체로나서그공간을감당하였다.살아내는것이최우선이었기에작은배움의기회마저멀었던그들.시국탓이었다고하면서도70여년동안묻어두었던내면을드러내고있다.“빨갱이”,“폭도”누명을벗기위해여자도군인을가야했다는한여인의삶에서는또하나의4·3여성사를읽을수있다.허영선제주4·3연구소장은“죽을것같은세월을버티고견뎌낸제주4·3의여성들은삶이란이런것이다를말없이보여준존재들이었다.삶의주인으로당당하게혹한을이겨내고살아낸당당하고위대한한인간의모습을보았다.”고말했다.정봉영(1934년생)은일본오사카에서출생해해방직후가족과함께고향으로귀향.마을이장이던아버지를1950년예비검속으로잃었다.아버지의부재와어머니의고문후유증으로,막내동생은굶어죽었다.6남매의맏이였던그는소녀가장의삶을살아야했다.가난보다힘들었던폭도가족’이라는누명.아버지의‘빨간줄’을벗기위해19살에여군에지원했다.“나는아무것도몰랐지만,아버지‘빨간줄’때문에이미우리가족은‘폭도’가족이돼버린거야.나는폭도가족이라는소리도듣기싫고.‘내가군인으로가서빨갱이누명을벗어야지!’그생각뿐이었어.”김을생(1936년생)은제주읍영평리가고향으로4·3당시열네살.집에불이붙고마을이초토화된현장을자신도겪어야했으며,와중에농사짓던아버지와어머니의참혹한고문을마주해야했다.이후아버지는대구형무소에서행방불명됐다.4·3피난처에서의생활상을생생하게기억하고있는그는가장아닌가장이되어남동생을보살펴야했다.2021년아버지에대한4·3행방불명인재심재판을신청,결국무죄판결을받아냈다.“가시나물서고지는멀지않거든.긴소나무들을비어서지고오다보면억새에걸려서왼쪽으로오른쪽으로몸이이리저리돌아가면서왔어.어떤날은장작해오면누가보면창피할까봐집뒤로돌아가서팰정도였지.집뒤에는큰큰한토종복숭아나무세개가있고,아무도못봤거든.시집가기전까지장작해다말려서팔았어.”양농옥(1931년생)은제주시정실마을에서살다가9살에부모가일하는일본으로건너가16살에귀향.4·3시기아버지언니형부조카를잃었다.아버지가남긴항아리에감춘돈을밑천삼아소녀가장으로여동생둘과삶을꾸렸다.60년대말제주를떠나성남개발단지천막생할을하며노점야채상을시작으로하숙,공장하청일등을하며자식4명을공부시켰다.“살면서뭐가제일부러웠냐면나는남이‘너잘못했어’그런말듣는게소원이었어.그렇게부럽더라고.사람들마다잘한다잘한다하는말,그게싫었어.부모같으면잘못한거잘못했다고할텐데….”송순자(1938년생)는4·3당시용강리에서살았고,큰아버지,아버지가행방불명되고삼촌등친인척여럿이희생되는아픔을겪었다.6남매가흩어져삶을살았고,어머니는만삭의몸으로성담쌓기에동원됐으며,어머니와함께가족의삶을위해닥치는대로일을했다.피난과굶주림에대한세밀한기억을풀어놓고있다.스스로새끼꼬아팔기,양복점기술자등온갖일을하며생활을꾸려나갔다.“부잣집사람들이쌀항아리에막대기를놔두면쥐가그걸타고들어가는거라.그럴때면옆집어른이그쥐를잡아줬어.식탈이난동생한테는그쥐가약이었어.배가차츰차츰가라앉는거라.4·3때문에먹을거없고피난다닐때제일생각나는게이쥐먹은거야.”임춘화(1947년생)는대정출생으로4·3당시행방불명된아버지와어머니의재가로인해어린시절친척집에맡겨졌다.자신의이름대신“양옥이사촌누이”라고불리며“감자떡비누가고구마로보이는”애달픈삶을살아야했다.2021년‘징역7년,목포형무소’수형인명부기록으로만남아있던아버지의군법회의재심재판에서무죄판결을받았다.“엄마도나도먹고사는일이이렇게도힘들수있을까요?우리외할머니말씀처럼시국을잘못만난탓이겠죠.아버지를잃은것도…어머니와헤어진것도…우리남편이보안대에끌려간것도…모두다시국탓이겠죠.”고영자(1941년생)는해방전어려서일본에서가족과함께귀향.4·3을만나7살에아버지를잃었다.70여년동안아버지의유해를찾지못해애태우던그는지난2020년제주국제공항에서발굴된유해가운데유전자감식을통해아버지와상봉했다.아버지의부재로9살부터생활전선에뛰어들어평생노동속에서살아야했다.열네살에모슬포신영물에서부추,갈치장사,열여덟살에등짐지고동네여인들과옹기장사에나서기도했다.“열여덟살나니까할망들하고옹기장살다닌거라.난옹기지고다니고할망들은다니면서팔고.사람하나만보이면꼭짐하나를팔고나왔어.일못하는사람은써주지않아.일을잘해야해.무조건일만잘하면살수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