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아름다운 인연 (김순남 시집 | 양장본 Hardcover)

내 생에 아름다운 인연 (김순남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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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들꽃 시인’ 김순남이 오랜만에 시집을 냈다. 첫 시집 『돌아오지 않는 外出』(도서출판 답게) 이래, 생애 다섯 번째 상재하는 시집이며, 12년 만에 펴낸 시집이기도 하다. 12년 만이면 과작이다. 12년 동안의 할 말, 쓸 글을 모았으니, 쉽사리 내는 시집은 아닐 터다. 들꽃 시인이라는 표현은 시인이 카메라를 메고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산야의 들꽃을 찍는 유명한(?) 사진작가라서 만이 아니다. 확실히 시인은 들꽃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시인은 들꽃처럼 결코 도드라져 보이지 않으나,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단단함이 들꽃의 생명력을 닮았다. 시인이 들꽃을 찍는 연유를 묻는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이 했던 말이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야 할 사람을 찾아 나선 길이 들녘이고 오름이고 한라산이었어요. 홀로 한라산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면서 마주치는 꽃들이 마치 어린 시절 사금파리에 흙과 꽃 이파리를 담아 놀던 소꿉놀이 친구마냥 반가웠어요. 깊은 계곡, 어두운 그늘 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곱게 피어난 꽃들이 어찌나 곱고 감사한지 사는 게 힘들다고 투정부린 내가 미안하고 부끄러워졌지요, 한라산에서 만난 꽃들이 준 깨우침이었어요. 도감을 들고 다니며 꽃 공부, 식물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제게는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숙제를 푸는 과정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지요. 신용만 선생의 한라산 야생화 사진전을 보고 용기를 내서 꽃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어요. 사진력(歷)은 짧지 않지만 저는 여느 사진작가들과 달라 사진기 조작도 서툴러요. 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리워 야생화를 찾아다니니까요.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하루 산에 다녀오는 것이 더 깊은 깨달음과 배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선지 이번 시집은 164페이지라는 시집으로는 꽤 묵직한 두께에 컬러 들꽃사진들이 시들 사이의 여백을 채우고 있다. 시와 관련이 있는 들꽃 사진들이다. 시와 함께 시각적 호사마저 즐기게 해주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는 모두 60편. 이 가운데 손수 사진 찍은 들꽃의 이름이 곧 시제(詩題)인 시가 절반 가까이 된다. 우연일까, 키 큰 꽃은 거의 없다. 흰빛으로 퇴화한 줄기가 꼭 버섯처럼 보이는 꽃이 대부분이다. ‘땅 짚고 헤엄치는 일도/네게는 필생이어서...엎드려 코를 맞대야 눈 맞추게 되는...세상에서 가장 온전한/대지의 만가‘라고 노래한 좀딱취꽃이 그렇고 ’오 센티미터 숨어있는 꽃자루/기어이 엎드려야...맑고 투명한 속내‘를 보여주는 버먼초가 그렇다. 문학평론가 김동현이 서평에서 썼듯이 ’수직의 맹목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엎드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시인만이 만날 수 있는 ’낮은 세계‘의 향연이다. 그러나 산에 간다고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들꽃도 아니려니와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도, 더욱이 시로 담을 수 없을 터.

“들꽃, 쉽지 않아요. 나리난초만 하더라도 제대로 알기까지 10년이나 걸렸어요. 꽃이 피는 계절, 그 장소에 가야 만날 수 있지요. 작년에 놓친 것을 올해 볼 수도 있고, 올해 놓친 것은 내년에 볼 수도 있겠지요. 한두 번 본 것으로는 다 안다고 할 수 없어요. 꽃이나 사람이나 다르지 않아요.”

듣고 보니 낮게 엎드려서 자세히 들여다보기, 해마다 다시 들여다보기, 늘 새롭게 들여다보기는 들꽃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닌 게 분명하다. 시인은 들꽃을 들여다보듯 사람을 들여다보고, 들꽃을 알아가듯 사람을 알아가는 게다. 그러니 시인과 나눈 사람인연은 그의 들꽃 사진이나 마찬가지로 순정(純正)할 게다.
사람을 보듯이 꽃을 보는 시인이니 꽃을 사람 보듯 할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2010년에 시집 『그대가 부르지 않아도 나는 그대에게로 간다』를 엮으면서 시인은 이미 “꽃보다 향기로운 사람을 꽃의 이름으로 새겨 시집으로 묶는다.”라고 시인의 말에 이미 썼다.
그의 시집 제목인 내에 아름다운 인연은 낮게 엎드려야만 보이는 들꽃과 같은 인연들이리라.

낮은 눈의 시선으로 포착한 그의 들꽃들과 땅의 이야기들. 김순남의 시편들은 그 낮은 눈의 시선으로 4.3을 끌어안고, 강정을 기억하고, 수많은 패배 속에서도 끝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민중의 힘을, 끼리끼리 내어주고 기대는 세상의 이치를 포착하고 있다. 아름다운 들꽃과 함께, 들꽃을 통해.
저자

김순남

약력
1953년7월28일생
한국작가회의,제주작가회의회원,정방문학동인(현)
1993년『문학세계』12월호신인문학상당선등단
1983년1995년『월간제주』객원기자.문화사업부장역임
1979년~1981년‘제주샘터회’결성초대회장.회지「샘물」발행
1990년~1995년‘開求信’결성초대회장역임
1999년~2005년제주도정신문편집위원
1999년‘한라산지킴이’문화예술분과위원장
2003년한라산국립공원‘한라산연구소’자문위원
2011년~2018년‘제주섬문화한라산학교’교장.‘야생화이야기’반강사(전)

전시
2017년2월돌문화공원기획초대김순남의들꽃사진전〈탐라신화〉전(오백장군갤러리)
2021년2월〈탐나는봄〉(사진전,제주도립미술관).

저서
첫시집『돌아오지않는外出』(도서출판답게).
『남몰래피는꽃』(도서출판답게)
『누가저시리게푸른바다를깨트릴까』(도서출판각)
『그대가부르지않아도나는그대에게로간다』(도서출판각)
공동시집『섬은,바다의향기로깬다』(각출판사)
산문집『섬,바다의꽃잎』(도서출판답게)
시화집『들녘에지다』(을지사)

목차

1부

갯무밥
겨울딸기
나도수정초
버먼초
손바닥난초
양하
좀딱취
질경이
나리난초
마주송이풀
노란제비꽃
한라천마
한라천마2
대설주의보


[중략]


5부

그리움
조천대섬에서
문항봉할머니
변비
화단의잡초
훈규야
살단보난상아져라

서평'땅꽃'의눈으로세상을보다

출판사 서평

‘땅꽃’의눈으로세상을보다_김동현문학평론가

1.수직의맹목이놓쳐버린것들

엎드려야보이는것이있다.허리를굽혀서도아니고무릎을꿇어서도아니다.중력에순응하듯온몸을땅으로향하고,두다리와두팔을흙속에파묻듯,그렇게엎드려야비로소보이는것이있다.직립과부복(仆伏)사이,낙차야1미터남짓할터이지만크지않은그차이가불현듯한세상으로다가올때가있다.그것은수직의고독에서내려와수평의연대로향하는순간이자,높이를잃은자만이얻을수있는사유의시작이다.흙길을마다하지않는엎드림의시간들속에서우리의눈은수직의관성이놓쳐버린세계와마주한다.
그것은갇혀있던시간의안주를끝내는순간이다.높이를포기한자만이만날수있는낯선세계들이다.숲에서헤매어본사람은안다.출구는결국대지에있다.땅의무늬를읽을수있어야‘나’의공간이‘그대’의공간으로나아갈수있다.폐허의자아에서생성의타자로건너가는일은그렇게낙차를기꺼이감수해야하는일인지도모른다.우리는그동안우리의눈을너무쉽게믿어왔다.우리가보는것이세상의전부가아니다.우리는결국우리의눈높이에서세상을바라보는존재다.
생각해보면우리는얼마나많은것들을놓치고살아왔던가.높이를지향하는삶이란결국수직의맹목이다.수평의가능성을생각하지않는외통수다.막다른길로향하는파국이다.지금우리는부박한삶의혼돈속에서우리가잃어버린시선이무엇이었는지되돌아보아야한다.속도가아니라멈춤의사유,즉자적인맹목의높이에서내려와수평의사유로스스로를낮추는일.그것이오늘을반성하는시작이다.
우리는오늘우리의오랜믿음을회의해야한다.어제보다오늘이,오늘보다내일이나아지리라는진보적전망마저의심해야한다.그것은세계가단일한시간으로흐르는기계가아님을,우리의삶이이질적시간들로오히려충만해지는하나의과정임을각성하는순간이다.서로다른시간들을단일한리듬으로획일화하는것을진보라고불러왔다는지적1)은그래서문제적이다.같으면서다른,무한한차이를생산하는삶의가능성이란,스스로를폐허에서꽃을피우는존재로만드는,하나의생산이다.
곳곳이폐허다.권위주의가권위를박탈하고,속도가사유를삭제하는시대다.‘숏츠’로불리는콘텐츠의무한알고리즘이오늘을지배한다.자본주의의‘시각적플렉스’앞에서기꺼이벌거숭이가되는오늘이다.‘문학은쓸모없음으로우리를억압하지않는다’는평론가김현의오랜지적마저박제되어버리는세상속에서과연우리는어디로가고있는것일까.
김수영이노래했듯절망이절망을반성하지않는시대다.무지가수치가아니라,오히려하나의확증이되어버리는시대,성찰을모르는악무한의시대,문학은,시는무엇을노래해야하는가.전망부재의오늘앞에서우리는,우리의절망을알고리즘의제단에바쳐야하는가.그럼에도시가하나의버팀이고견딤이어야한다면우리는지금무엇을바라보아야하는가.칠흑같은어둠속에서차라리눈을감아버리는좌절이우리의선택이아니라고한다면우리의걸음은어디로향해야하는가.

2.낮은땅의읊조림

김순남의시편들은엎드림을지향한다.수직의맹목에서벗어나기위해기꺼이엎드리는수고를마다하지않는다.그것은“기꺼이엎드려야보여주는”(‘버먼초’중)세계를만나기위한과정이다.“맑고투명한속내”는수직의시선이포착하지못한세계이자,수직의시간으로는만날수없는낯선시간이다.그낯섦앞에서김순남은이전과다른시선을획득한다.
그것은“나라는이름이/너라는이름앞에서/궁극의길을묻”는(‘양하’중)는질문으로이어진다.김순남이생각하는‘궁극’이란“나”라는존재가“너”라는존재를온전히사유하는것이다.‘나’만이강조되는세상속에서낯선타자를품는일은쉽지않다.하나의존재가다른존재의세계로넘어가기위해서는‘나’라는세계의불완전성을인정해야하기때문이다.‘나’의불확정성과불완전성을감각해야만우리는낯선타자의세계로스며들수있다.스며든다는것은엎드림의과정을통해얻어지는마주침이전제되어야만한다.수직의시선이인간의맹목이라면수평의부복은자연의시선이다.
우리네시사적(詩史的)전통이자연을노래하지않은것은아니었다.하지만김순남의시편들은우리시사가보여준시선과얼마간다른지점을보여준다.그것은자연을낭만적대상으로환원하지않는자각이다.김순남은자연을정복의대상으로보지도않지만,그렇다고자연을조화로운질서를지닌낭만적공간으로단정하지도않는다.오히려김순남은자연을무수히다른존재가뒤섞인오염된공간으로바라본다.그가바라보는오염은순수의훼손이거나질적변질이아니다.조화가아니어도상관이없다.인간의시선에서사유하는조화란결국인간존재를전제로발화되는것이라는사실을김순남은여러시편들에서반복적으로말하고있다.
“엎드려코를맞대야눈맞추게되는/셋이면서하나인/하나이면서셋인꽃/세상에서가장온전한/대지의만가라네”(‘좀딱취’중)라는구절은우리가인식하는세계가하나의질서로환원되지않음을잘보여준다.“셋이면서”,“하나”인,“하나”이면서“셋”인꽃의모습은과학적질서로수렴되지않는자연의모습을있는그대로보여준다.그것은수직의시선이미처발견하지못하는오염의가능성을자각하는순간이다.그렇기에김순남은낯선타자를만나기위해자신도미처깨닫지못한“땟자국을”발견한다.

너를만나기위해
서어나무잎이누운숲길을지나
내를건너는것은
살면서저도모르게낀땟자국을
닦는일이다

누가뭐래도너는
혹한의고통을견뎌내고
고난을건너서완성된
순진무구한사랑이다
(…)

그러므로삶은
강하게얻는게아니라
부드럽고따스할때
뿌리가되는것이다

-‘노란제비꽃’중

나의시선을버려야비로소보인다.그때보이는것은이전과다를수밖에없다.그것은“순진무구”로오염된또하나의‘사랑’을만나는일이자,‘뿌리’의존재로살아가야하는삶의가능성을자각하는일이다.그가말하는뿌리란단순한비유가아니다.인간이대지에붙박혀살아야한다는단순한깨달음도아니다.그것은수직의맹목으로단단해진삶을스스로포기해야한다는각성이자,타자와기꺼이오염됨으로써충만하고따스해지는또다른세계가있음을알아가는순간이다.
이러한자각은자칫낭만적감성으로그칠수있지만,김순남은끝까지그러한태도를거부한다.“세상에독초는없”음을“어떤풀도순하지않은것없”음을(‘천남성’중)노래하는태도는그의시편들이순수성을옹호하지않음을잘보여준다.그렇기에김순남은“다시일어설/뿌리의힘을믿는다”고(‘질경이’중)고백할수있다.
기꺼이엎드려야다시일어설수있다.엎드린이후에얻는직립의시선은이전과는다른감각일수밖에없다.“기대지않고사는삶”은없고,“끼리끼리내어주고기대며”,“생의절정”으로(‘야고’중)향해가는연대가가능해지는것도바로이때문이다.그것은오염을기꺼이감수하면서얻어지는하나의가능이다.

3.폐허를가능으로바꾸는오염의상상력

남방계어느먼마을에서
떨어져나왔는지
다만나의뿌리는
서귀포야산볕바른언덕이
북방한계선이었을뿐

엉겅퀴마타리등골나물우북한띠밭에서
뒤꿈치를치켜세워도2센티
아침해그림자를지우는정오면
꽃잎을닫고밤은길었다

무수한소멸을지나
모지오름풀밭에뜬노란별수선
크고순한소들의눈망울과노루와꿩알
설레고떨리는시인의가슴을품었지

연두빛자자한오월의꽃문앞에
트랙터거대한바퀴로흙먼지를일으키더니
몇날며칠벼락같이똥물은퍼부어지고
부지불식사라지고지워진건초더미아래서
다시마주할시원을위해나는
깊은땅에엎드려
노란꽃물의시를쓴다

-‘노란별수선’전문

땅에기꺼이엎드려김순남은“남방계어느먼마을”에서온연약한뜰꽃을만난다.아무리곧추세워도“2센티”인존재.평소같으면그냥무시해도될만한들꽃.직립의시선으로는결코만날수없는존재앞에서그는“설레고떨리는”가슴으로타자와하나가된다.그것은‘나’라는존재가주체가되어대상을품는독단과독선이아니다.‘너’라는존재가온전히품어주고스며들어야가능한합일이다.“트랙터거대한바퀴”가“흙먼지를일으키”고,“몇날며칠벼락같이똥물은퍼부어지”더라도다시꽃이필것임을그는믿는다.오염된땅에서비로소생명을얻는존재를그는“다시마주할시원”이라고말한다.그리고그는스스로꽃이되어“노란꽃물의시를쓴다”.들뢰즈식으로말하자면이‘-되기’의순간은그자체로무한한생성을가능하게하는순간이다.폐허를하나의가능으로바꾸는오염의상상력이다.
‘나’는‘너’가되고,‘너’는‘내’가된다.그렇게‘나’라는존재가‘너’라는존재로스며들고,오염을감수하면서김순남은무수히많은존재의시간들을경험한다.이러한경험들은단지자연으로환원되는감각에머물지않는다.오히려과거의시간을오늘의시간으로자각하고,보이지않는것들을보게만드는힘이다.

바람한줌들지않고
햇살한모금내리지않는곶자왈에
키크고무성한잎들이
네게는캄캄한밤일수밖에없었다

숨비소리땅속에콱콱눌러박고
애면글면포자낭엽만들어
무성에도자손일으켜살만해가는데

이무슨사나운광풍이란말인가
도틀굴목시물굴반못벵디굴억물에
피토하는주검의바다를건너며
이땅의시원으로살고싶었다

작다고깔보지마라
있어도그만없어도그만인잡풀대기가아니다

내가곧주인이요역사요평화다

-‘제주고사리삼’전문

“무성에도자손일으켜살만”한‘제주고사리삼’을보면서그는이렇게말한다.“작다고깔보지마라”라고.“있어도그만없어도그만인잡풀대기가아니”라고.인간의생존은결국유성생식의한계를반복하는것이다.‘나’라는존재의유사성을끊임없이산출하는동어반복의삶.하지만모든생성이유성으로만가능한것은아니다.무성의존재도끊임없이생명을창출할수있다.삶의경로는하나가아니다.우리의삶이란이질적이고,낯선,불완전한순간들로가득한시간들과마주하는일이다.그것은세계가단일한시간으로규정되지않음에대한자각이다.우리네삶자체가수많은다름을만들어내는과정이라는자각이무성의삶을또다른생성으로만들어간다.그렇기에김순남은제주고사리삼을보면서“도틀굴목시물굴반못벵디굴억물에”서“피토하는주검의바다를”를상기한다.제주4·3을아는이라면그것이1948년11월무렵조천읍선흘일대에서벌어졌던대학살의비극임을쉽게알수있다.1948년10월초토화작전이시작된이후중산간일대를중심으로수많은대학살이벌어졌다.4·3당시학살의80~90%가그기간에집중되었다.선흘리주민들은그무차별한학살의대상이었다.제주고사리삼이그시절죽어간수많은죽음으로변모하는순간,제주고사리삼은다른존재의시간으로옮아간다.그것을그는“주인이요역사요평화”라는말로표현하고있다.죽음이죽음으로종결되는것이아니라“주인”이자,“역사”로,“평화”라로바꿔말하고있는이대목은김순남이기꺼이땅에엎드려획득한시선이무엇을바라보고있는지를상징적으로보여준다.

4.상리공생(相利共生)의이야기

김순남은땅에깃든이야기의힘을믿는다.직립의시선을버리고부복의시선으로세계를바라보는그의시편들이식물로서의야생화만말하지않는이유가여기에있다.진창을기꺼이감수하면서,엎드려온몸이흙으로뒤덮이더라도그는끝내엎드림의태도를포기하지않는다.그것은무릇세계를이루고있는존재들이상리공생(相利共生)으로충만하다는사실을말하기위한시적버팀이다.불현듯나타난세계를인간의시선으로해석하지않겠다는의지이다.서로다르지만함께살아야하는다종다기한세계의왁자지껄.그것은다성(多聲)의수다이자,동시에말하되그무엇도타자의언어를억압하지않는공존이다.복수(複數)의미래를만들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