챍속으로
“저는작은출판사에서책만들어요.”상대방이이업계를모를경우,그다음대화는보통이렇게흘러간다.“우아!그럼뭐하시는거예요?책디자인하세요?”“아뇨,저는편집자예요.”“아,그러면글을쓰시나요?”“아뇨,디자인은디자이너가하고,글은작가가써요.저는글이책이될때까지의모든과정을돕고있어요.”“아….”대화가이쯤진행되면상대방은곧입을닫는다.‘어차피들어도잘모르겠군.’하는떨떠름한표정이다.어쩌면내가잘난체를한다고느낄지도모른다.하지만나로선최선을다해설명했다.실은나도편집자가어떤일을하는지명쾌하게정리하기가어렵다.(아마우리엄마도잘모를거다.)_「뭐하는분이세요?」
당시내가입사지원서에기재한연봉은아마업계최저가,‘사장님이미쳤어요!다시오지않을파격세일가’가아니었나싶다.혹시금액을높게쓰면면접기회조차없을까봐겁이나서였다.그리고면접날대표는‘1600~1800’이라고써둔내입사지원서위에손가락을올리며말했다.“요건못주고,요걸로해야되겠는데?”1800은못주니까1600으로하자는말이었다.이렇게까지대놓고말하다니!치사하고야속하다는생각이아주살짝스쳤다.하지만나는졸업과동시에여러군데에넣은이력서중가장먼저연락이온이회사가너무고맙고소중했다._「불행의값어치」
편집자인나는책을만드는데필요한모든이와소통한다.대표와저자사이에필요한소통도내몫이고,저자와독자사이에도내가있고,마케터와디자이너사이나디자이너와인쇄소실장사이에도내가끼어있다.자기들이알아서소통하게하면편할것같지만,그것도곤란하다.시시각각변하는모든사항에대해한사람이알고있어야더큰사고를막을수있기때문이다.그리고이많은사람들사이에서도나는을이다.모든것을조정하고,조율하고,부탁하고,받아내고,보내주는사람이기때문이다.그래서이따금씩나의하루는빌고또빌다가끝나기도한다.여기서도죄송,저기서도죄송….디자이너가잘못했더라도,인쇄소가잘못했더라도책임편집자는나라서내가싹싹빌어야한다._「난늘을이야,맨날을이야」
무엇보다가장마음에드는변화는글을쓰는사람이되었다는것.평생남의글을만지던내가마침내내글을썼다.리뷰도,보도자료도,기획안도,제안서도아닌나의이야기.심지어그것이책으로나오고,누군가가읽어준다는것이이렇게황홀한일인줄전에는미처몰랐다.내이야기를쓰면서오롯이나자신에게집중하던그순간들은,그어느때보다큰만족감과치유를선물했다._「멈추지않았더니비로소보이는것들」
그래,아무래도책을쓰기전으로는돌아갈수없을것같다.그렇다고편집자를그만두고독립출판작가로전향하겠다는건아니다.나는출판사에서여러작가들과함께그들의반짝반짝빛나는이야기를꺼내는일을아주좋아한다.(그렇다고힘들지않다는건또아니다.)다만,내글을쓰고내책을만드는소소하고도은밀한즐거움이일상의고단함을달래주고삶을더단단하게만들어준다는것을믿고있다.오늘,마음이공허하고외롭다면책상앞에앉아자기만의글을써보길.당신은곧사랑받게될것이다.최초의독자인당신자신으로부터._「이제돌아갈수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