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연필 : 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칠 때 - 아무튼 시리즈 34

아무튼, 연필 : 연필이 연필이기를 그칠 때 - 아무튼 시리즈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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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공들여 깎은 연필처럼 우아하고 예리하게 빛나는 이야기
아무튼 시리즈 서른네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연필’이다. 비영리단체 발간 매체의 에디터와 기자로 오래 활동하며, 자기 서사 쓰기와 여성적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해온 김지승 작가의 첫 산문집으로, 연필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마치 공들여 깎은 연필심처럼 우아하면서도 예리한 사유로 풀어냈다.
1부 ‘연필’은 오랫동안 읽고 쓰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 연필이 남긴 무수히 많은 점선과 실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쓰고 지우고 그 흔적 위에 다시 힘주어 눌러쓴 생의 기록들이 연필 경도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채롭게 펼쳐진다. 2부 ‘연필들’에서는 버지니아 울프, 도로시 파커, 조이스 캐롤 오츠 등 그 이름만으로도 빛나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삶이 연필을 매개로 새롭게 조명된다. 책 마지막에는 ‘나에게 맞는 연필 고르기’ ‘선호 경도 테스트’ 등 연필 덕후만이 알려줄 수 있는 정보들을 부록으로 실어 위대한 연필의 세계로의 입문을 돕는다.
저자

김지승

읽고쓰고연결한다.『100세수업』『아무튼,연필』『짐승일기』를썼다.

목차

프롤로그

1부연필
연필의지리학
검색창에연필을입력하세요
다이아몬드와같은이름
P.P.P.
『아무튼,코끼리』가될뻔한
마녀의빗자루
그래파이트타투
스페인프리힐리아나의실비아씨
연필장례식

2부연필들
버지니아울프의연필
다와다요코의연필
최윤의연필
밀레나예젠스카의연필
도로시파커의연필
조이스캐롤오츠의연필
조앤디디온의연필
넬리블라이의연필
루이자메이올컷의연필

부록-슬기로운연필생활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영화〈82년생김지영〉에서김지영은왜아버지가남동생에게선물한만년필을갖고싶어했을까.그런욕망에도긴역사가있다.연필과만년필,임시적존재에서영구적존재로의욕망은새로운게아니다.툭하면지워지고대리되고삭제되는존재들에게중첩되는상처,그러니까그영화는그런비가시적존재들에게몸을빌려주고상처에대해말하게하는이야기였다._「검색창에연필을입력하세요」

사람이잘부서지는존재이고,의아할만큼연약한존재라는사실은‘안다’고말하기보다‘모를수가없다’고해야한다.삶이환기시키는건그런거다.우리는그냥알기보다대체로모를수가없는경험으로자란다.상담가가내려놓은연필끝이뭉툭해져있었다.흑연은잘부서졌다.사람이그런것처럼흑연도강하지않았다.나는다행히흑연은아니었지만공교롭게사람이었다.부서지고무너지고더약해질수있는존재가나이기도하다는걸모를수가없어서모른척하고산것일지도._「다이아몬드와같은이름」

발단은연필커뮤니티에잊을만하면한번씩돌아오는“이점나만있나요?”타임이었다.나는그렇게많은사람들이그점을가지고있다는게놀라웠다.고양이처럼나만없네또.의학적으로는‘외상성문신’,정확히는흑연같은이물질이상처속에침착되어점처럼보이는거였다.그점이있는사람은적지않았는데정작그것을부르는합의된단어가없었다.연필에찔리는게한국사람뿐이겠나싶어영어권표현을찾다가발견한게그래파이트타투(GraphiteTattoo).‘흑연문신’이라고번역하면어감이달라지는그이름이마음에들어서나는앞으로그래파이트타투라고부르기로했다._「그래파이트타투」

연필의나무가연필을구성할때는심을단단하게고정하고외부충격으로부터심을보호할수있어야해요.하지만연필에서깎여나갈때나무는칼날과결을맞춰부드럽게움직이고저항이덜해야합니다.언뜻모순처럼느껴지는이이상적조건을한나무에구현하기위한노력이몇세기에걸쳐이어졌지요.그들덕분에나는강하면서결이고운또는,단단하게사라지는무언가가세상에있다는걸압니다.늙음과사라짐이쇠약함의결과가아니라는것도압니다.당신의손을보면서우리는이런이야기를나눌수도있지않았을까요?_「스페인프리힐리아나의실비아씨」

‘연필을아낀다’를연필쓰는사람의언어로번역하면‘연필을즐겁게자주쓴다’이다.손가락한마디정도의몽당연필이되기까지이세상에서의소멸을돕는방식으로의아낌이다.연필들은천천히사라진다.그들을아끼는사람들의손에서._「연필장례식」

버지니아울프의에세이「거리출몰하기:런던모험」은“연필한자루를향한열정을느껴본사람은아무도없을”거라는확신으로시작한다.글의첫문장부터‘저기,이의있습니다!’하기도쉽지않은데울프의에세이가딱그랬다.1927년이라면,특히여성사이에서라면저확신은수월하게공감을얻었겠지만지금저문장을내가아는몇몇연필커뮤니티에던져놓으면순식간에고양이앞의츄르가될것이다._「버지니아울프의연필」

연애는끝났고,어떤언어들은마음처럼하릴없이부서졌다.내가나를견디며살아가듯부서진언어들도나비나물고기가되어세계를견디고있다.춤을추면서.그것들을두손으로그러모아조심조심종이위에놓아주면시가될지도._「다와다요코의연필」

나는그냥알수있었다.쓰고기록하는여성들에게연필은그랬다.군사독재정권치하에서수감된여기자들이자신만이할수있는기록을이어가고중요한정보를신문사로유출할수있었던건어떤교도관이몰래넣어준몽당연필덕분이었다는회고록속연필들도마찬가지였다.그때의몽당연필은영화〈라이프오브파이〉에서파이가표류하며마지막의마지막까지쓰다가남은것과같이손가락한마디도안되는길이였다고했다._「최윤의연필」

손의압력으로부서진연필심이종이섬유질사이에한번자국을남기면압력과부서짐이더해지지않았던상태로돌아갈수없다.지우고다시쓴다는건흐려진자국위에덮어쓴다는말이고,덮어쓰면서세계를여러번다시진행시킨다는의미다.한번은어둠뒤에서,한번은어둠과나란히,그러다가어둠을따돌리고.한편의여성서사가완성되는과정이그럴거라고상상한다.처음에는연필로,지우고다시흔적위에연필로,지우고더진하게연필로._「조이스캐롤오츠의연필」

조앤이남편을잃고쓴『상실』속그표정을조앤이쓰던연필과같은시대의나무,흑연으로만들어진몽골482를손에쥐고내가짓고있다.궁금하다.조앤도그런표정으로서있는자기가여럿나오는꿈을꾼적있을까.내가상실전후의나‘들’을어떻게봉합해야하는지난감한채로간혹꾸는꿈은조앤의글을지형삼아진행되곤했다.사랑하는이를상실한사람들이꾸는꿈은어딘가닮았다.내꿈에서먼저떠나는사람은늘나였다._「조앤디디온의연필」

파버드로잉연필의탄생과소멸그중간쯤이될1868년소설속에이미가원하던연필을내가가지고있다는것.먼시공간에서빌려온듯한연필한자루의용도는간단하고아름다웠다.우리는그리고그리워할수있었다.쓰고쓰라릴수도있었다.갖고싶은연필을포기한다는건그모든순간의가능성을포기한다는말일텐데.왜아직시간여행이불가능한걸까.1868년에이미손에이연필좀요!_「루이자메이올컷의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