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담이(아니)야 - 리플레이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 리플레이

$17.00
Description
故 이은용 작가의 희곡집으로, 그가 세상에 남긴 다섯 편의 희곡을 한데 묶었다. 그중 표제작인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이 2020년에 초연해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특히 그해 한국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제57회 동아연극상 4개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2021년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까지 받으며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물음을 던진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매일의 죽음’ ‘월경’ ‘이인실’ ‘변신 혹은 메타몰포시스’ ‘유언장 혹은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그리고 여동생이 문을 두드렸다’ 등 총 여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장막희곡이다. 각각의 작품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타자화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삶이라는 하나의 큰 그림으로 완성된다. 다른 네 편의 수록 희곡 역시 배제되거나 주변화된 존재들을 극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 작업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그들의 목소리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와 겹치고 포개지고 쌓이면서 더욱 크고 강렬하게 발화된다.

이 책은 작가 이은용의 처음이자 마지막 희곡집이 될 것이다. 비록 그는 삶의 무대에서 너무 빨리 퇴장했지만, 동료 극작가 장영의 리뷰처럼 그의 목소리만은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은 이들의 무대 위에 오래도록 남아 “누군가의 삶의 궤도를 조금씩 수정해놓”을 수 있기를, 그래서 “죽지 않고, 계속 고치는 삶을” 살게 하기를 바란다.
선정 및 수상내역
2020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등 4개 부문 수상
2021년 백상예술대상 ‘백상연극상’

저자

이은용

극작가.1992년9월에태어났다.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극작과를졸업했으며,2019년희곡「그리고여동생이문을두드렸다」가연극원신작희곡페스티벌에당선되면서본격적인작품활동을시작했다.연극<우리는농담이(아니)야>로제57회동아연극상작품상과백상예술대상‘백상연극상’을받았다.2021년2월에세상을떠났다.

목차

서문|암언아티스트앤트렌스젠더극작가고연옥

우리는농담이(아니)야
세상의첫생일
우리는그것을찾아서
엄마,엄마
가을손님

리뷰|지상의언어를다르게만드는마법문학평론가오혜진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고대그리스에테이레시아스라는사람이살았다.소년시절그는숲길을지나다교미하는뱀들을보고무심코지팡이로때렸다.그자리에서그는소녀로변해그몸으로몇년을살았다.그러던어느날길을지나다다시그뱀들이교미하는것을보았다.그는다시뱀들을때렸고다시남자로돌아갔다.

이이야기에서주목해야할것은결국테이레시아스는남자로돌아가길택했다는점이다.2020년현재,트랜스젠더가존재하느냐아니냐정의하기앞서이지점을이해해야한다.누군가는이육신으로―정신으로존재하기를선택했다.누군가는선택지가있을때그것을택해야만한다.그리고그선택은언제나경계의교묘한사이로이어진다.이분법적사회가인간을여성과남성으로갈라놓는다면,그경계에는문이있다.우리는그문을계속두드린다.

이희곡은그문과두드림에관한이야기이다.

책속에서

(실제공간과순서와는상관없이)수하물검사대를지나는박진희,가방을차례대로올려놓고두팔을들고검색대를지난다.진희가검색대앞에서는순간부터직원들사이에묘한혼란이맴돈다.진희가검색대를통과하자직원2와직원3이서로눈을마주친다.아주짧고묘한시선이오간다.

진희(방백)지금저들은나를두고일대의고민에빠져있다.국경을넘는트랜스젠더들에게발생하는흔한일이다.
직원2실례합니다.당신은여자,아니면남자?
진희암트랜스젠더.피메일투메일.
직원2아,오케이.그럼여자와남자중어느쪽이바디체크하는게편해요?
진희딱히상관은없어요.편한쪽으로.

직원2와직원3이다시눈을마주하고뭔가대화한다.

진희(방백)그들은차별주의자가되지않기위해노력하고있다.혹은나에게불편을주지않기위해최대한으로애쓰고있다.여자검사관이몸을만진다.침착하게,사무적으로.결국나의성별과육체는침착하게사무적으로나대하는것이다.국경을넘기위해서는,월경하기위해서는겨우이것이끝이다.그리고월경은농담이맞으니웃어도된다.웃어라.(직원을보며)에브리씽오케이?
직원3오케이,굿럭.
진희오케이,땡큐.

진희,걸어서검사대를통과하면팻말이보인다.‘독일’.
---「우리는농담이(아니)야-월경」중에서

주인공내팔다리가새로워요.내몸통도,내목과쇄골도,내광대뼈와눈썹도모두신기해요.그리고나는자라나는사람이니까내몸도끊임없이변하죠.다만이번에는내가예상하고기대하는방식대로입니다.네,나는백팔십까지키가클거예요.그럴듯한청년으로자라날거예요.아니,먼저그럴듯한소년으로살거예요.나무처럼늘씬하고키가큰소년이될거예요.운동장에서가장오랫동안뛰어다니고싶어요.아니,이미그러고있어요.내가공을잡지는못해도나는긴다리로가장오래달리는사람입니다.내손은단단하고딱딱하고,그손에연필을쥐여주든공을쥐여주든무엇을쥐여주든당신들은기대한것이상을보게될겁니다.왜냐고요?왜냐면나는변신을겪은존재니까요.나는스물여덟살하고도열여섯을사는사람이니까요.나는소년이니까요.
---「우리는농담이(아니)야-변신혹은메타몰포시스」중에서

아성열여섯살때를기억하나요?우린대부분그나이를잊어버려요.때로우린그시절을필사적으로잊어버리려고노력하죠.기억하고싶지않은것들이너무나많아요.열여섯의나,내이름은이아성입니다.머리카락은헝클어져있고,뺨에는여드름이범벅인데다가하나도예쁘지않아요.교복치마사이로살찐허벅지가스쳐서빨갛게달아오릅니다.저기내책상위에식판이엎어져있네요.모두가나를비웃어요.겉멋이잔뜩든병신이라고.나는그때바지를입고싶었습니다.(문성과같이)나는그때방한림이되고싶었어요.
---「우리는농담이(아니)야-그리고여동생이문을두드렸다」중에서

준영,종이를꺼내읽는다.

준영며칠전꿈에서나는옛날애인을만났다.꿈속의나는열여덟살때,그러니까내가아직조그만여자애였을때어른이었던그를만나몇년간사귀었다.시간이몇년더지나서나는훌쩍키가컸고잘생긴청년이되어서,예전에그사람과그사람의친구들을만나놀던가게앞을지나가던중이었다.옆에있던친구가그사람이야기를했다.“아직이곳에있을텐데,들어가볼래?”나는싫다고말하려고했는데이미친구는문을연뒤였다.가게에는정말로그사람이있었다.친구가가게주인과이야기하는사이나는그사람옆에앉았다.“잘생겨졌네,내가그때생각했던것그대로다.”그는어깨를으쓱하며말했다.몇마디주고받다가나는옛날이떠올라서,그생각에물었다.“너는게이잖아,그때왜나랑만났어?”“그때너는네가소년이라고이야기했으니까.”나는그말에내가그를만나기싫다고생각했던게부끄러워졌다.내가열여덟여자애일때도그는내안의청년을보았고나를늘소년이라고불러주었다.“나랑잘래?”나는헤어지기전에스쳐가는말처럼물었다.그는웃으며답했다.“싫어.너는이제나보다키가크잖아.”
희수이글마음에들어.진짜있었던일이니?
준영조금은진짜,조금은픽션.이건엄마안보여주고혼자서썼지.
희수내가어린소녀였을때의주인공이청년이되는건무슨의미야?
준영성전환.트랜스젠더.
희수마법적이네.마술적인가?나살면서성전환자는처음만나봐.
준영엄마는두번충격을받았지.우리딸이남자애가되겠다고하다니하고한번.그리고얘가남자를만난다니하고안도했다가그남자를형이라고부른다는걸알고까무러치게두번놀랐지.
---「엄마,엄마」중에서

유령괜찮아요?
사람나는괜찮아질거예요.그래서오늘친구가왔으면했는데,무슨이야기를하고싶었는지물어보려고.
유령어쩌면별거아닌사소한일이었을지도몰라요.심각한이야기였을지도모르고.하지만어느쪽이든친구분과다시대화하기는힘들지도모르는데.
사람왜요?
유령그거야,친구분이어디계신지모르니까요.
사람당신유령이잖아요.그런건서로다알고있는줄알았는데.
유령사실,나는다른사람들이어떻게애도하는지궁금해서남들의제사상을떠돌고있는유령이에요.오늘도다른사람들이궁금해서슬쩍찾아왔어요.
사람양키캔들의냄새가좋아서온게아니라요?
유령한여름밤의꿈,냄새가좋아서왔을지도몰라요.어쩌면사십구재가지나고도지상에남아있고싶어서,아직무언가를더보고싶어서,설거지를미처다못해서,대학교졸업을못해서.
사람아직그리워하는사람이있어서,보고싶어하는사람들이많아서,애도하는방법을모르는사람들이있어서,누군가가당신을부르고있어서.그런건아닐까요?
유령내친구들도아직나를보고싶어할까요?
---「가을손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