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케이크 워싱턴 슈거하이

컵케이크 워싱턴 슈거하이

$17.00
Description
어느 이과형 인간의 사적이고 지적인 워싱턴 D.C. 탐사기
인생 계획에 결코 ‘외국 살기’ 따윈 없었던 어느 이과형 인간의 미국 워싱턴 D.C. 체류기. 평소 스스로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자세를 삶에 내재화하고 있는 자”라 여기던 저자는 배우자의 이직으로 인해 걱정과 두려움을 한가득 안고 타국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방인이라는 위치는 그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각도의 세상을 보여준다. 이렇듯 여행자의 시선과 생활인의 감각으로 도시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 사이를 소요하는 이야기는 한 개인의 작지만 커다란 변화의 순간들을 빼곡하게 담고 있다. 소설가 한정현의 표현처럼 “인생이란 긴 여행이고 그 예측 불가함이 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모르는 것이라면, 이 책은 삶에 관한 아주 매력적인 여행기”이다.

개즈비터번박물관, 스미소니언캐슬, 스미소니언자연사박물관, 링컨기념관 등 ‘박물관의 도시’라 일컬어지는 워싱턴 D.C.의 명소들과 이를 둘러싼 흥미로운 뒷이야기, 그리고 그것들을 읽어내는 저자의 깊이 있는 사유는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저자

임지한

서울대학교를졸업한뒤같은대학원에서석사와박사과정을마쳤다.공학과과학학을전공했으며지금은그와관련한공공기관에서일하고있다.인생계획에없던미국워싱턴생활을통해보고듣고느낀것들과일어난변화들에대해서쓰고싶었다.이야기가담긴글과영상,음악을좋아한다.기록하지않으면흘러갈것들을붙잡으려고쓴다.

목차

프롤로그낙상
1부컵케이크
스트레인저
사월은벚꽃
한낮의드라이브
워싱턴컵케이크
스테이크는왜남자가구울까
좌회전신호등
천하제일요리대회
만약에

2부워싱턴
어느과학자의유언-스미소니언캐슬
초상화갤러리에서부르는노래스미소니언국립초상화박물관
알아요,선물은늘어렵죠스미소니언국립동물원
나도스파이가될수있을까국제스파이박물관
어른아이국립여성예술가미술관
근거없는믿음스미소니언국립항공우주박물관
좋은게좋은사람스미소니언자연사박물관
별명의탄생스미소니언아메리카인디언박물관

3부슈거하이
달콤살벌조지타운
메모리얼벤치
이름부르기
독립기념일불꽃놀이
라테의발견
깜깜한밤
추수감사절저녁식사
페리스의바퀴
승리보다소중한것

에필로그오즈의나라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추천사

미국워싱턴여행에서컵케이크를맛본이야기일까.각각의의미를지닌컵케이크,워싱턴,슈거하이세단어의나열만으로책내용을유추하기란쉽지않았다.인생이란긴여행이고그예측불가함이나를어떻게바꿔놓을지모르는것이라면,이책은삶에관한아주매력적인여행기가분명하다.아내의선택을지지하며떠나온워싱턴에서의2년.저자는안정된직장과무람없는친구들이없는낯선곳에서자신만의방식으로일상의루틴을만들어나간다.도시의역사와문화,사람을경유하며조금씩변화하는그의이야기는그자체로‘이게바로워싱턴(의)컵케이크(에서느낄수있는)슈거하이일까?’하는기분좋은물음을남긴다.
_한정현(소설가)

책속에서

그럼에도워싱턴을선택했다.더나은미래가열릴수도있다고기대했을까.결국나의가치관,꿈,직관,희망,욕심등모든마음들이하나로뭉쳐내린판단이었다.적어도미국의대자연과넘치는문화시설을한껏즐기며잊지못할추억이라도많이만들면되지않겠냐고자위했다.그렇게2020년2월워싱턴D.C.행비행기에몸을실었다.당연히그땐미처알지못했다.도착하자마자잔뜩겁에질려응급실에누워있게될줄이야._「프롤로그-낙상」

노인은방에서나오며그곳에묵었던유명한사람들에대해말해주었는데,그중한사람은미국독립전쟁에독립군으로참전한프랑스정치인이자군인이었던라파예트였고,다른한사람이바로‘스트레인저Stranger’였다.“스트레인저요?”나는놀라서되물었다.그러자그는기다렸다는듯이‘낯선여인’에대한이야기를시작했다.그의이야기는마치당시에여인을목격했던사람의것처럼구체적이고막힘이없었다.어디까지가사실이고어디까지가꾸며낸말인지전혀구별하지못한채,한편의오디오북을듣는것처럼그의말에한참동안귀를기울였다._「스트레인저」

고기를굽고있는선배옆에서와인을홀짝거리며물었다.혼자사는거지낼만하냐고,여전히결혼생각은없냐고.멀쩡한직장도있고이렇게좋은집도있는데옆에누가있으면고기도구워주고편하지않겠냐는,시시한질문이었다.선배는우리엄마랑똑같은소리를한다고나를놀리며대답했다.네말대로이렇게집도있고차도있고혼자다할수있다보니남자가꼭있어야하는지모르겠더라.지금이편해.틀린말이없으니맞장구를칠수밖에없었다.하긴,그렇긴하네요,둘이살면가끔피곤할때도있죠.선배는검붉게익은작은고기한조각을내앞에놓아주며말을이었다.그리고무엇보다,소고기는내가구운게제일맛있던데?재빨리고기를입에넣었다.여전히최고의맛이다.스테이크굽는데남녀가어디있으랴.역시고기는잘굽는사람이구워야제맛이다._「스테이크는왜남자가구울까」

지금은얼굴도,이름도기억나지않는여자아이와의대화가왜밥딜런초상화포스터앞에서떠올랐을까.‘아이러브뉴욕(I♥NY)’로고디자인으로유명한밀턴글레이저가그린밥딜런의머리카락은한없이화려했고,검은색실루엣으로만표현한밥딜런의옆모습과대비되어흡사어둠속에서반짝이는사이키조명처럼형용할수없이강렬했다.달콤한솜사탕을먹은것같기도했고,아이셔사탕을깨문것같기도했다.포스터를보고있자니머릿속뇌세포들이하나하나오색빛깔로물이들어흐물흐물,말랑말랑해지는기분이었다.혹시그소녀가나에게말을걸었던순간이런기분이었을까.그친구에게인사도하지않고서둘러집으로가는길에나혼자설레었을까?그때내가좋아하는가수를말하고너는어떤음악을좋아하는지물어봤다면뭐가달라졌을까?두남녀가마주보고대화를하기위해얼마나많은용기가필요할까?아무것도모르던시절의아무이야기다.나는여전히아무것도모르지만바람만은답을알고있겠지._「초상화갤러리에서부르는노래스미소니언국립초상화박물관」

우주를꿈꾸던사람들이품었을믿음을상상하며나의불안을한겹더걷어냈다.그들은나보다더말도안되는미래를그리며불확실한길을걸었을것이다.그들은보이지않는보상과증거를붙잡고어쩌면훨씬더많이불안했을지도모른다.남들의기대와격려,걱정과비난도모두견뎌야했을것이다.그럼에도그들은결국계속앞으로나아갔고결국원하는곳에도착했다.나도그럴수있겠지.나의꿈은기껏해야지구에서일어날수있는일이니까.그들처럼지구를벗어날정도로환상적인미래를꿈꾸는게아니니까.여기에서멈추지만않는다면뭐든할수있겠지.카운트다운이끝나고하늘로솟구치는아폴로11호영상을보면서나역시나만의달을향해날아오르는날이올거라고스스로를다독였다._「근거없는믿음-스미소니언국립항공우주박물관」

“박물관에사냥감을전시해도괜찮다고생각하세요?”나는갑작스러운질문에당황했다.이질문을어떻게받아야할까,소신을밝히고서명을거부해야하나.이친구와여기에서논쟁할필요는없을것같은데.그래도이름을쓰기가영내키지않아결국솔직하게말했다.“지금설치된전시품을없앨필요는없는것같아요.저는오늘이코끼리를볼수있어서좋았거든요.”“아,네.그렇게생각할수도있죠.좋은게좋은거니까요Alliswellthatendswell.”“네?뭐라고요?”나는그의마지막말을알아듣지못해되물었지만그는다시한번고맙다는인사를하고설문지를가져갔다.나중에서야그말이셰익스피어희곡의제목이자‘좋은게좋다’는뜻의관용구라는것을깨달았다.나를비꼬는말이었나싶어뒤늦게기분이좋지않았다._「좋은게좋은사람-스미소니언자연사박물관」

조지타운을향한자그마한변심의형태가워싱턴에서지내는나의삶과같다는생각이들었다.육아휴직을하고미국에서의새로운삶을꿈꾸는나의마음은얼마나달콤했었던가.실제로흩날리는벚꽃을맞으며포토맥강변을달리고스미소니언박물관을무료로관람하며넘치는여유를만끽하던봄은정말인생의꿀같은시간이었다.하지만예상치못한코로나로모든계획이어그러지면서이전과다른스트레스가생기기시작했다.달콤하기만한삶은존재할수없다는당연한진리를몸소느꼈던시간들이었다.
하지만스트레스를견디고매일을버티다보니삶속에숨겨진보석같은순간이조금씩눈에들어왔다.아내가좋아하는농담과장난을알게되고,다섯살배기딸과깔깔대며웃고즐길수있는방법을발견했다.헬스장에가지않고도건강을유지할수있게되었고혼자만의시간을의미있게보낼수있는취미도찾았다.이렇게글을쓸수있게된것도새로운일상이준선물중하나이지않은가.덕분에누구에게도없는나만의이야기가만들어지고있다._「달콤살벌조지타운」

포토맥강을파타오메크라고부르든포토와맥이라고부르든우리가그단어가가리키는강이무엇인지알고있다면별로문제될것이없다.이름은특별한의미가있는것이아니라그냥세상에있는무언가와짝지어진라벨같은거니까네옆에비슷한이름의사람이있어서헷갈리는것만아니라면이름을잘못발음하는정도로스트레스받을필요없다는말이었다.심지어더이상파타오메크부족이강가에살고있지않더라도여전히포토맥이라고부르는걸생각해보라고.철학적이다.넌교육이아니라철학을전공해도되겠어.나는그에게감상을전했다.철학적이라고?뭐가?그는웃는듯마는듯알수없는표정을지었다.순간그의눈이반짝거리는것같았다._「이름부르기」

동굴을벗어나며생각했다.나는왜완벽이라는말을좇아살고있는가.무엇이든완벽한것이좋은것이라는믿음이있다.완벽한학생,완벽한연인,완벽한부모.전문가들의충고에도불구하고이런개념에대한집착을버리는일이쉽지않았다.완벽한상태란도달하기힘든상태일뿐분명누구에게나보다우월한상태일거라고믿었다.매일밤완벽한어둠을바라는마음도이런믿음에서기인했을것이다.그런내게동굴속어둠은깜깜한밤에대한환상을깨트렸다.완벽한밤이완벽한잠을이끌지못할수도있다는사실을깨달았다.어쩌면나는애초부터절대적어둠속에서는편히잠들수없는사람이지않았을까.깊은잠을방해했던건빛자체가아닌빛없는어둠을찾으려는나의마음이었을것이다.이곳은땅속동굴이아니니까어차피내가살고있는세상에완벽한어둠이란존재하지않는다.한없이두꺼운커튼을치고꼼꼼하게스티커를붙여도빛은분명어디에선가새어들어올거다.하지만그래도괜찮다.그빛알갱이덕분에잠이깨더라도꿈을꾸고있는딸의얼굴을볼수있으니까.그럼된거다.이정도면충분히깜깜한밤이다._「깜깜한밤」

놀이기구에서인생이보인다는건이제내가더이상아이가아니라는것이겠지.어쩌면인생이란대관람차를타는것이아닐까.혼자든둘이든각자의공간에몸을실은채하늘높이올라가지만시간이흐르고나면결국아무데도가지못하고탔던자리에서내려야만한다.우리가저높은곳에있었어,하고꼭대기만추억할뿐.누군가인생은돌고도는회전목마라고말하지만아무리생각해봐도대관람차가더어울린다._「페리스의바퀴」

집house을집home으로만드는것은무엇인가.자신의침대,가족사진,좋아하는음식으로채워진냉장고,갓지은음식냄새,익숙하고오래된물건나는이런것만으로는부족했다.내게집은유형의제한된공간그이상이었다.추억이쌓일만한시간이필요했고애정을나눌수있는이웃이필요했다.내게집은눈으로는보이지않는시간들과다른사람들과의관계가함께채워져있는장소라는사실을깨달았다.“나의집이란장소가아닌사람들”이었다._「에필로그오즈의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