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 리:플레이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 리: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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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오진은 지금 대학로가 주목하는 젊은 극작가 중 한 명으로, 2009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데뷔한 이래 극작과 연출은 물론 번역, 각색, 드라마트루기 등 여러 포지션을 넘나들며 당대의 중요한 담론들을 무대 위에 올려왔다. 특히 정형화되지 않은 여성 캐릭터, 갈등의 핵심을 관통하는 짧고 감각적인 대사, 빠르고 인상적인 장면 전환 등 이오진 희곡이 지닌 고유한 매력은 평단과 관객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연극평론가 엄현희는 그의 최근작인 〈콜타임〉에 대해 “가장 인상적인 것은 힘을 완전히 빼고 말하는 듯한 작가이자 연출가의 태도”라고 평했다.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는 극작가 이오진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작 다섯 편을 묶은 첫 단독 희곡집이다. 표제작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를 비롯해 「콜타임」, 「오십팔키로」, 「바람직한 청소년」, 「가족오락관」 등을 실었다. 그중 「오십팔키로」는 2016년 혜화동1번지 동인 기획초청공연 [세월호] 참가작으로 단 5회 공연되었지만, 과거의 상처를 보내주는 방법에 관한 담담하면서도 여운이 긴 이야기는 막이 내리고도 많은 사람 사이에 회자되었다.

페미니즘, 퀴어, 청소년 등 다양한 동시대적 목소리를 담고 있는 희곡집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는 우리 연극의 오늘과 내일을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지형도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아직까지 희곡이 낯선 독자들에게는 문학으로서 희곡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

이오진

희곡「가족오락관」으로제7회대산대학문학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이후극작가로또연출가로동시대의목소리를담은다양한공연에참여했다.희곡집『연애사』『우리는적당히가까워』(공저)『여자는울지않는다』(공저)등을펴냈으며,2023년제14회두산연강예술상을받았다.현재극단‘호랑이기운’에서활동하고있다.

목차

서문

콜타임
청년부에미친혜인이
오십팔키로
바람직한청소년
가족오락관

리뷰|호랑이기운이솟아나고김병운(소설가)

출판사 서평

작가의말
기록을남기는것은두려운일이다.연극은극장에서관객을만나완성되고마치아무일도없었던것인양빈무대로돌아가지만,희곡은그렇지가않다.희곡이문학이라면쓰이고읽히는건당연한일일진대두려운마음이드는것은어쩔수없다.극작가로글을쓰다가2018년연극계미투가있었고,그이후로는연출로도활동하면서내자리에서할수있는것을하려고했다.계속내속도가느리다고느꼈고실제적인변화를만들기보다는과거에수렴하며타협하고있는것은아닌지자꾸자책하게되었다.그럼에도불구하고이희곡들이다양한독자를만나어떤의미가될수있으면좋겠다.이책을읽어주는분들이라면번잡스러운이야기들안에서저마다의작은용기를발견할것이라믿는다.
_서문에서

추천사
이오진의인물들은서로가서로의용기가되어준다.이러지도못하고저러지도못한채로발만동동구르다가도기어이한발을내딛게만들고,여기도아니고저기도아니어서혼란하고불안한나날을어떻게든견디게만든다.서로를결코혼자내버려두는법이없기에,서로에게손을내밀지않는건애초에생각조차해본적이없기에서로의세계에포섭되고휘말린다.이오진의인물들이보여준각양각색의용기는내게도그렇게스며들었던것같다.그리고아주결정적인순간에,내게이런용기가있는줄도모른채로낙망하던순간에호랑이기운처럼갑자기솟아났던것같다.하루는세상무서울게없는것처럼자신만만해졌다가도또하루는작은점처럼한없이움츠러들때,세상으로부터사랑받으려하기보다는미움받지않으려애쓰는자신을발견할때이오진이우리마음속에심어놓은용기는조금씩자라났을테니까.
_김병운(소설가)

책속에서

범순 단이가실패하는여성같아요?
은호 그냥딸이잖아요,딸.어머니,딸,과부,할머니,성녀,창녀,클럽녀,술집작부,김여사,청소아주머니,유혹녀,무슨녀,무슨녀,무슨년…….
범순 ……저기요.
은호 예?
범순 그때여성들은그럴수밖에없는시대적배경이있죠.돌아가신이진오선생님이그런가난한시대에가난하게억압받다가는민초들이야기를작품에서하시는거고.성별이고나이고상관없이……그런거를쓸수밖에없는시대인거잖아요.
은호 그렇지않아요.

사이

범순 …….
은호 다들그런것만쓴게아니라,그렇게쓴것만남은거잖아요.
범순 …….
은호 누군가는그당시에도분명히자기가원하는걸썼을거예요.시대의분위기나‘문학이라면자고로이래야한다’하는것들에억지로맞추려고안하고.하지만그사람들이쓴건잘쓴문학이아니라고,혹은중요한사람이쓴게아니라고여겨지니까기록에안남고.그니까저희는지금도이런거하는거잖아요.누군가버리고남겨놓은것만하는거예요.

사이

범순 똑똑하네요,은호씨는.

「콜타임」에서

예수 (자신없이)안헤어지면안될까.
혜인 …….
예수 기도해봤는데…….
혜인 …….
예수 때가아니라고하셨어.
혜인 …….
예수 …….
혜인 (힘없이,체념에닿은듯)때가아니라고하셨어?
예수 응.
혜인 예수야.

예수,말없이혜인이를본다.

혜인 넌가끔하나님을이용해.난그렇게느껴.

「청년부에미친혜인이」에서
성우 얼마지?
연경 33만원인가그래.미친거아니냐,33만원.나한달용돈5만원이야.
성우 야,제주도는비행기만해도20만원이야.
연경 아니?우리사촌언니가제주도갔는데비행기로왕복4만9천원에갔다왔다그랬는데?
성우 구라까지말라그래.
연경 아닌데?사촌언니구라아닌데?
성우 그런거없거든?
연경 아니거든?있거든?여튼엄마한테존나미안했어.비싸서.
성우 어.엄마가돈주면서손벌벌떨린다고,왜제주도까지가냐그랬어.경주나가지,씨발애들을제주도까지보낸다고.
연경 니네엄마욕해?
성우 어.욕맨날해.입에걸레물었어.

사이

연경 너제주도가봤어?
성우 아니.
연경 처음가는거야?
성우 어.
연경 난가봤어.중1여름방학때엄마랑오빠랑갔었어.
성우 좋겠네.
연경 너제주흑돼지먹어봤어?
성우 아니.
연경 장난아니야.존맛.
성우 흑돼지제주에서만파는거아니야.마트가면다팔아.
연경 제주도에서먹는거랑같냐?
성우 그래도안산에도제주흑돼지파는데있어.나그런데서많이먹어봤는데?
연경 나그리고회도먹었어.바다보면서.
성우 좋겠네.
연경 어,진짜.개꿀이었어.
성우 근데배타면더싼거아니냐?
연경 몰라,올때는비행기타잖아.
성우 비행기타는거였어?
연경 몰랐냐?
성우 아,맞다.

사이

성우 그래도우리엄마착해.

「오십팔키로」에서


이레 내가써줄까?
현신 뭐?
이레 니반성문…….나잘쓸수있는데.
현신 뭔개소리야.니가왜내걸써?
이레 어차피……학교에서좋아하게쓰면되는거잖아.너,이번에잘안되면퇴학당하는거아니야?벌점도엄청쌓였다고…….동생이랑너랑세트로……대박이네.
현신닥쳐라.

사이

현신 글씨체는?
이레 내가불러줄게.니가받아적어.

사이
현신은도무지이레의의중을모르겠다.

현신 너왜이러냐?

사이

이레 너,졸업하고싶어?
현신 아씨발,최꼬추부터시작해서…….
이레 (말끊으며)대학갈거야?
현신 왜?
이레 대답해봐,갈거야?대학?
현신 갈거야.
이레 왜?
현신 대학은나와야먹고살수있으니까.
이레 어디갈건데?이름도모르는지잡대?돈만내면가는데?
현신 닥쳐.
이레 그럼잘먹고잘살수있을것같아?빵셔틀이나하는한심한애랑종일거울만보는못생긴애랑놀다인생쭉말아먹으려고?
현신 셋셀때까지닥쳐라.아님너이빨털린다.하나.
이레 난너처럼막사는애들보면되게신기했었어.뭐믿는데가있어서그런진모르겠지만.난돈도빽도없어서공부열심히해서좋은대학가고좋은회사취직해서.
현신 둘.
이레 (멈추지않고)잘먹고잘살생각이거든.너랑니동생까지학교에서짤리면니네한테는절대오지않을미래겠…….
현신 셋.

현신,이레를때려바닥에넘어뜨리고얼굴을발로밟는다.

이레 (현신에게밟힌채)나좀도와줘.

「바람직한청소년」에서

명진 없어져야해.
주정 뭐?
명진 아빤죽었고,우리도이꼴났는데그사람이잘사는건법이아니야.그건뭔가인륜적으로문제가있지않아요,엄마?아니,억울하잖아.
주정 미쳤구나.
명진 나하루에스티커4800개붙여요,엄마.우리조완품대비불량률0.002퍼센트다?내가11년째스티커붙인아줌마보다더빨리붙여.어제도,눈깔빠지게일하고있는데,그수염안깎는부장이오더니,내머리를쓰다듬으면서그러는거야.‘명진이,일잘하네?’그런데,엄마,웃긴게뭐냐면.내가,내가너무기쁜거예요.마음이.얼마나기뻤으면,그토록기뻐하는나를죽여버리고싶더라니까?이젠내기쁨이,고작스티커잘붙였다고변태부장이머리쓰다듬어주는데서오는거야.누가날이렇게별거아닌인간으로만들었어?대체누가…….

참담한모자.
긴사이

주정 나얼마전에마트에서우연히그사람봤다.마누라랑장보러나왔나보더라.둘이같이내옆으로지나가는데,나도모르게몸을돌렸어.나볼까봐.제일싼우유고르는나볼까봐…….숨어야하는건,내가아닌데.

사이

주정 만약에,만약에그사람이없어지게된다면…….너,그사람없어지면······.
명진 나잘살수있을거같아요.엄마,나기쁠거예요.
주정 우리그럼,좀편해질까?
「가족오락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