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여인숙

금성여인숙

$20.00
Description
무너진 자리에서 비로소 떠오르는 존재들을 향한 뜨거운 헌사
금성-수성-화성으로 연결되는 ‘사라지는 곳과 여성’ 3부작


“관념에 머물지 않고 삶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발로 쓰며’ 던지는 물음들은 덤덤한 듯 뜨겁고, 유연하여 단단하다.”
제19회 차범석희곡상 수상 희곡집. “우리 사회의 그늘진 자리를 들여다보고 잊힌 목소리에 귀 기울여온” 극작가 구두리의 첫 창작집으로, 「금성여인숙」 「수성다방」 「화성골 소녀」 등 여성을 중심에 두고 사라지는 장소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라지는 곳과 여성’ 3부작이 실려 있다. 2008년 창단 이래 연극적 미학과 사회적 가치를 연극 무대에 담아내고 있는 극단 미인의 첫 희곡집이기도 하다.

세 편의 수록작 모두 구두리 작가가 직접 현장을 찾아 그곳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탐구해 얻은 결과물이다. 표제작인 「금성여인숙」은 강원도 인제의 50년 된 여인숙을 배경으로 저마다 다른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코로나19를 통과하며 겪는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는 서울 을지로의 한 다방을 배경으로 한 「수성다방」은 1970년대부터 대한민국 산업을 이끌어온 을지로, 청계천이라는 공간과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조명한다. 「화성골 소녀」는 성매매 집결지인 ‘화성골’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 박소영과 수녀의 신분을 숨긴 채 쉼터의 상담사로서 그와 마주하는 이레네를 통해 종교와 신념, 연민과 판단의 경계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희곡이다.

“장소가 사라질 때, 그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는 희곡집 『금성여인숙』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다. 리뷰를 쓴 극작가 신효진의 말처럼, 구두리 작가는 “철거 통보가 내려진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의 진동이 골목마다 번지는 을지로의 다방, 팬데믹으로 고립된 산골 여인숙까지” 다양한 공간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지워진 역사를 무대 위”에 다시 세운다. 금성-수성-화성으로 이어지는 3부작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장소의 소멸이 얼마나 비가시적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비추며 그곳의 역사성을 바로 지금 여기”로 소환하는 것이다.
제19회 차범석희곡상 수상
저자

구두리,극단미인

저자:구두리
거제바다를보며자랐다.초등학생때연극을처음보았고,고교시절부터연출가를꿈꿨다.2007년에첫희곡「어쩌자고서로만나알게되었는가」를썼다.이후다양한글쓰기를이어가다가2023년부터‘구두리’라는필명으로활동하고있다.어두운객석에앉아무대를바라보며빈공간을무엇으로채울지상상할때가가장행복하다.그동안희곡「거의인간」「아들에게」,영화시나리오「목화솜피는날」등을썼다.

저자:극단미인
‘아름다운’혹은‘아름답고자하는’사람들이모여만든연극집단.2008년창단이래지금까지창작극을중심으로꾸준히활동을이어오고있다.연극적미학과사회적가치를담아여성과노동,정치등을대전제로한이야기들을만들어냈다.최근에는빠르게발전하는과학기술을반영하여무대에서다양한연구와실험을시도하며동시대성을찾아가는중이다.대표작으로<어디가세요복구씨><아버지들><말뫼의눈물><공장><거의인간><당신의손><아들에게>등이있다.

목차

서문

금성여인숙
수성다방
화성골소녀

리뷰|기억으로몸이되는장소들신효진(극작가)

출판사 서평

제19회차범석희곡상심사평중에서

3부작에서구두리는사라져가는장소들-지방소도시의여인숙,을지로의오래된다방,성매매집결지-을찾아가거기배인삶의역사와장소성(placeness)을탐구한다.관념에머물지않고삶한가운데로뚜벅뚜벅걸어들어가‘발로쓰며’던지는물음들은덤덤한듯뜨겁고,유연하여단단하다.

리뷰중에서

결국세작품을관통하는질문은동일하다.“장소가사라질때,그곳의사람들은어떻게기억되는가.어떻게기억할것인가.”장소는인물들의삶을지탱해온물리적조건이자정체성의일부가된다.따라서공간의소멸을통해드러나는것은결국‘삶의층위’다.가장먼저밀려나는존재는대개사회적약자이며,특히이희곡집에서는여성들이다.강부민,박복자,박소영과같은여성들은자신의노동으로공간을유지해왔음에도,철거와재개발앞에서는가장취약한위치에놓인다.그러나그들은결코피해자나보호받아야할존재에머무르지않는다.직접공간을운영하고,생계를꾸리고,관계를이어가고,공동체를만들어확장된몸으로서장소를점유한다.그들의노동은보이지않는경우가많지만,사실공간의역사를유지해온핵심적동력이었다.구두리의희곡들은이‘지워진역사’를무대위로다시올려놓는다.세작품은한국사회에서장소의소멸이얼마나빠르게그리고얼마나비가시적으로이루어지는가를비추며그곳의역사성을바로지금여기극장으로소환하는것이다._신효진(극작가)

책속에서

이지숙 엄마는정말여기밀어버리고싶어?
강부민 모르겠어.
이지숙 아까프란체스카랑그시인인가하는사람이랑통화하던데내듣기에는말이야.여기를그사람들한테맡겨보면어때?
강부민 징그러워.사람들이기억하는거.
이지숙 예술가들이다르게기억하게도와준다잖아.꼭밀어야해?나는좋기만하구먼.
강부민 여가좋아?남자들한테맞고돈뜯기고.도망치다잡혀오고했던여가?
이지숙 그럴때도있었지만마담되고서부터는좋았지.우리신랑만날수있었던곳도여기고.
강부민 나는여끔찍해.아버지월북하시고하루라도편한날이있었게?
이지숙 뭔소리야?도박빚에여자랑눈맞아서날라버렸다더니!
강부민 월북보다야그게낫지.참말로힘들었어.썩을놈의연좌제인지뭔지.뭐하나되는게있었어야지.얼마나원망을했는지몰라.그런데희한해.여기서50년넘게여인숙하면서이런사람저런사람오고가는데속으로는아버지가한번은오시겠지그생각을하는거야.아버지오시면곱게가실수있겠나?여남한땅인데.그래서눈에불을켜고지켰지.밤이고낮이고.우리를보러한번은오실거다.그런미련한믿음으로여길지켰는데이제는그만놓고싶어서.아버지좋아하시는배추전도이제그만부치게.너무바보같단말이야.그오랜세월을.멍청한가봐,나는.그세월이면음식솜씨라도좀늘어야하는데나는정말소질이없어.
「금성여인숙」에서

장용금 노점상밀려도우리는건재하잖여.지금이기회라니께.니가게차리고니장사혀.너덜사장이거래처도몇군데넘겨준다고했담서.그런사장잘없다.
이회중 그런데인수하려니까권리금이…….
장용금 그거비싸다고생각하면내장사는절대못해.
이회중 우리는안전하겠죠?
장용금 여기이안에까지는못건드려.여기가얼마나그물망맹키로촘촘헌디.우리가호락호락허이가만히있것냐?
이회중 매일방송에서저렇게떠들어대니까불안해지네요.
장용금 재개발소리는일제강점기때부터나왔당게.근데어뜨케됐어.여그살던사람들어디보낼데가마땅찮았거덩.지금도봐.이많은기술자들을다어디로보낼데나있간디.불가능해.청계천복원허먼상인들도안정될거고.다들돌아와그자리서일그대로한당게.긍게우리는우리만잘허먼되는거여.
박복자 (멀리서혼잣말처럼)답답한소리들한다,정말.
이회중 정말그럴까요?
장용금 청계기술이거는우리나라경제기반여.손을어뜨케대겄냐.인수하고니장사혀.내가도와주께.
이회중 아이고,형님이계시면야저야…….
박복자 우리도다밀려난다고.이바보들아!우리도,저노점상처럼!
「수성다방」에서

황진수 이것도다엄연한일이지요.걔들생활인이에요.아니애들이지좋아들어와서일하는걸우리가지금가둬놓고감시하고뭐그런줄아세요?옛날처럼그런장사아니에요.소개쟁이선불금갚고우리빚정리하면언제든지자유롭게자기가고싶은데로가는그런자영업이다이말씀이에요.
클라라 그것만갚으면되는구조였다면금방다나갔겠죠.누가남아있을까요?방값에,화장품값에,약값에시작도전에언니들빚얹히고지각하면벌금에,하루쉬면50만원기본으로얹히고.무슨수로그빚을갚나요?일을하면할수록빚이쌓여가는구조잖아요.
황진수 우리수녀님공부많이하셨네.근데너무나대지마세요,수녀님.그옷입고계신다고그게방패가되는게아니거든요.
클라라 신성한교회에서감히수녀에게협박을하다니.제정신입니까?
황진수 여기가교회예요?쉼터사무실이지.
클라라 하느님을모시는사람이있고기도할수있으면어디든교회지요.
황진수 아이고.예,수녀님.신성하고성스러우시고고결하시지요.
클라라 점잖게말씀을하시든지.빈정대실거면그만나가주세요.저도더는못듣고있겠습니다.
황진수 생각해보니그렇네.뭐달라.안그래요?
클라라 무슨말씀이세요?
황진수 아니수녀님,우습잖아요.저기일하는애들하고수녀님하고무슨차이라고.다같은여자로태어나서말이에요.남자받드는건똑같은데안그렇습니까?
클라라 뭐……이런…….
황진수 막말로그렇잖아요.사람들의자유로운상거래를수녀님이뭔데,시장이뭐라고.여기없애겠다고큰소리친인간치고성공한인간단한명도없었습니다.다들그렇게이목만좀끌다가사라졌지.
클라라 이제부터는아니죠.아니고말고요.사람을돈으로사고팔다니지금이어느시대입니까?절대안됩니다.모든이에게똑같은평화를주신하느님입니다!우리는그분의자녀들이고요.
황진수 어느시대든다를까요?성매매가없었던때가있었을까?왜눈가리고아웅하십니까.세상만들어진역사이래,언제든어디서든일어나는성범죄의발생을줄이고자,우리누이들을성폭력으로부터보호하기위한우리의,스스로희생하며노력한우리언니들의공로를어찌이리몰라주십니까?
클라라 뭐,보호요?언니들착취하면서잇속만채우는파렴치한들이어디서.
황진수 파렴치한이라니!우리도엄연히이땅의시민입니다.납세의의무꼬박꼬박이행하면서성실히살고있다고요!
「화성골소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