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왕후장상을 지냈고 말년에는 수행자가 되는 패턴의 전생을 나는 반복해서 살아왔다. 지금까지 21년 동안 삼공재를 운영해 오면서 전생의 내 처자나 부하, 막료, 제자였던 수행자들이 수백 명은 더 찾아왔다. 수련 중에 나는 이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던 전생의 장면들을 숱하게 보았다.
그런데 내가 전생에 그들과 같이 숨쉬던 공간은 한반도의 산하가 아니라 강폭이 한강의 수십 배나 되는 황하나 양자강 같은 대륙의 강이요, 산세 또한 한반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도 웅장했고, 물소가 논밭을 갈고 수달, 담비, 사슴, 원숭이들이 뛰노는 중원 대륙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나의 전생은 중국인이란 말인가 하고 한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옷이나 분위기는 중국적인 것이 아닌, 한국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원래 대륙에 있던 나라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분명히 그렇게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었다.
그러다가 2009년 늦가을, 경주 관광을 계기로 선덕여왕릉에 의문을 품으면서부터 여러 책들을 섭렵하다가 이중재, 오재성, 정용석, 이병화 같은 분들의 한국사에 관한 저서들을 읽게 되었다. 이들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은 이병화 저 〈대륙에서 8600년 반도에서 600년〉이라는 저서 속에 종합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 저서에 따르면 우리 민족 국가들이 8600년 동안 중원 대륙의 중동부 및 남부 지역의 한반도 10배 이상 되는 핵심 지역을 다스리다가, 이씨조선 초기에 새로 일어나는 명나라의 압박을 받아 한반도로 도읍을 옮겼다는 것이었다.
만주사관보다는 크게 진일보한 대륙사관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한단고기〉,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이십오사 등 권위 있는 기초 자료들을 이용하였으므로 신뢰가 갔다.
그러나 이조 초기에 한반도로 도읍을 옮긴 우리 민족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나 전거를 인용하지 않았으므로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왕조 초기까지라도 우리 조상들이 대륙의 핵심 지역을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만도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요 흥분을 자아내는, 경천동지할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전생에 그들과 같이 숨쉬던 공간은 한반도의 산하가 아니라 강폭이 한강의 수십 배나 되는 황하나 양자강 같은 대륙의 강이요, 산세 또한 한반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도 웅장했고, 물소가 논밭을 갈고 수달, 담비, 사슴, 원숭이들이 뛰노는 중원 대륙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나의 전생은 중국인이란 말인가 하고 한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옷이나 분위기는 중국적인 것이 아닌, 한국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원래 대륙에 있던 나라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분명히 그렇게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었다.
그러다가 2009년 늦가을, 경주 관광을 계기로 선덕여왕릉에 의문을 품으면서부터 여러 책들을 섭렵하다가 이중재, 오재성, 정용석, 이병화 같은 분들의 한국사에 관한 저서들을 읽게 되었다. 이들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은 이병화 저 〈대륙에서 8600년 반도에서 600년〉이라는 저서 속에 종합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 저서에 따르면 우리 민족 국가들이 8600년 동안 중원 대륙의 중동부 및 남부 지역의 한반도 10배 이상 되는 핵심 지역을 다스리다가, 이씨조선 초기에 새로 일어나는 명나라의 압박을 받아 한반도로 도읍을 옮겼다는 것이었다.
만주사관보다는 크게 진일보한 대륙사관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한단고기〉,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이십오사 등 권위 있는 기초 자료들을 이용하였으므로 신뢰가 갔다.
그러나 이조 초기에 한반도로 도읍을 옮긴 우리 민족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나 전거를 인용하지 않았으므로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왕조 초기까지라도 우리 조상들이 대륙의 핵심 지역을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만도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요 흥분을 자아내는, 경천동지할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사 진실 찾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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