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2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2

$16.00
Description
“책을 자신만의 은신처로 삼고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책의 진정한 주인인 당신들에게 인사처럼 또는 우리만의 신호처럼
이 책을 보내고 싶다.”
이 책은 대전에 사는 50대 사람 김정선이 세계 문학 작품들을 읽으며 쓴 기록이다. 앞서 출간한 1권에서 1백 권(작품 수로는 70편)을 읽고 쓴 데 이어 이번 2권에서는 64권(47편)을 읽고 썼다. 이번 책에서 김정선의 말투는 좀 더 편안하다. 그로 인해 그의 감상도 더 자유롭고 풍성해졌다. 물론 마음이 단단히 뭉친 날의 기록도 있다. 그런 날에도 그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썼다. 성실하게.

이것은 일종의 독서일기이다. 전문가인 양 이렇게 읽어라 저렇게 읽어라 하는 부분은 없다. 소설 속 인용문을 뽑고, 간단한 일상과 마음 상태를 적고, 읽은 책의 줄거리를 꼼꼼하게 적었다. 마지막에는 짤막한 감상평. 이 간소한 형식이 내내 반복된다.

기본적으로, 김정선은 해석하고 규정하는 권위에 반발한다. 반평생 이상 규칙을 엄중히 지키는 임무를 가진 교정 교열자로 산 그는, 그것도 세계 문학 교정 교열 일을 가장 오래한 그는, 규칙과 규정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권위라는 것이 따져볼수록 허술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김정선은 외부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 안의 목소리, 내면의 안내자를 따르고자 한다. 이 책에서 김정선이 알베르 카뮈를 평가하는 대목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존 해석들에 대한 김정선의 설득력 있는 의심을 읽는 일은 무척 유익하고 또한 재미있다.

김정선이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세계 문학을 읽기 시작한 때가 2020년 6월. 김정선은 지금도 그가 은신처로 여기는 공간에서 세계 문학을 읽고 소감을 기록하고 있다. 두 해가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무척 성실하게 문학을 읽고 감상을 쓰면서 김정선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

독자마다 저마다의 대답을 찾겠지만 그중의 하나를 꼽아보자면, 김정선이 찾는 것은 소통이 아닐까 싶다. 책과 자신과의 소통. 자신과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와의 소통. 독자와 자신이 소개하는 책과의 소통. 이렇게 관계를 확장하다 보면 이 세상 모든 곳이 어떤 차원에서는 우리 모두의 은신처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의 책읽기는 이 세상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누구든 숭고하게 또한 평등하게 머물 수 있는 성소(聖所)로 만들려는 묵묵한 순례 같기도 하다.

표지에는 김정선과 함께 사는 ‘연필이’(연필선인장)와 편집자 최진규와 함께 사는 ‘고다’(고양이)를 나란히 그려 넣었다.

저자

김정선

교정지와처음인연을맺은이십대후반부터27년간남의글을손보는일을하며지냈다.일하는틈틈이부업으로우리말지식과이야기를버무린문장다듬기안내서『내문장이그렇게이상한가요?』와한국어동사의활용을정리한책『동사의맛』을비롯해『소설의첫문장』,『나는왜이렇게우울한것일까』,『오후네시의풍경』등의책을내고강연을다닌다.

목차

들어가며:책의주인들에게전하는인사

2021,봄

곤경에빠진서술자:『이방인』,알베르카뮈
흔해빠진특별함:『구토』,장폴사르트르
살인을생각하고행하는것사이에놓인,건널수없는심연:『죄와벌』상·하,표도르도스토옙스키
무지한독자의변명:『나사의회전』,헨리제임스
모호함을유지할것:『데이지밀러』,헨리제임스
패배한삶과패배하지않은이야기:『플로스강의물방앗간』1·2,조지엘리엇
아버지의목소리:『레미제라블』1~5,빅토르위고
놀라운인생,놀라운소설:『사일러스마너』,조지엘리엇
완고한지성:『반도덕주의자』,앙드레지드
문학의배신:『지상의양식』,앙드레지드
괴테가구원한괴테:『파우스트』,요한볼프강폰괴테/『파우스투스박사외』,크리스토퍼말로/『파우스트박사』1·2,토마스만
하늘의정치,땅의종교:「지옥」,「연옥」,「천국」,『신곡』,단테알리기에리
은신처가된교양:『나는고양이로소이다』,나쓰메소세키
외톨이선언:『도련님』,나쓰메소세키

2021,여름

대체소설이야인생론이야?:『달과6펜스』,서머싯몸
유럽백인남성을위한자기계발서:『인간의굴레에서』1·2,서머싯몸
‘인생의소설’:『예브게니오네긴』,알렉산드르푸시킨
긍정의힘을키우랬지,누가환상을품으랬어?:『대위의딸』,알렉산드르푸시킨
거리두기가답이다!:『아버지와아들』,이반투르게네프
환상의집:「인형의집」,『인형의집』,헨리크입센
유령의집:「유령」,『인형의집』,헨리크입센
삶의풍경:「갈매기」,『체호프희곡선』,안톤파블로비치체호프
다른것이없지는않다:「바냐삼촌」,『체호프희곡선』,안톤파블로비치체호프
그럼에도불구하고살아가야한다:「세자매」,『체호프희곡선』,안톤파블로비치체호프
노을지다:「벚나무동산」,『체호프희곡선』,안톤파블로비치체호프
빛나는조연,돈압본디오!:『약혼자들』1·2,알레산드로만치니
1인칭시점의유혹:『전염병연대기』,대니얼디포
풍경에는중심이없다:『천변풍경』,박태원

2021,가을/겨울

새로운이야기는가능한가?:『내이름은빨강』1·2,오르한파묵
‘대체난내인생으로뭘한거지?’:『등대로』,버지니아울프
전체주의를비판하는전체주의방식?:『동물농장』,조지오웰
나는지금미래사회에살고있다:『1984』,조지오웰
소설과시차적응:『멋진신세계』,올더스헉슬리
이토록무서운소설이라니:『작은아씨들』1·2,루이자메이올컷
“그리고그는아무말도하지않았네”:『그리고아무말도하지않았다』,하인리히뵐
잃어버린게삶이아니라명예라고?:『카타리나블룸의잃어버린명예』,하인리히뵐
밑도끝도없는:『타임퀘이크』,『마더나이트』,『제5도살장』,커트보니것
덜사는삶:『소멸』,토마스베른하르트
엄마잃은이야기들:『포』,존쿳시/『로빈슨크루소』,대니얼디포/『방드르디,태평양의끝』,미셸투르니에
사랑과싸움:『헤이케이야기』1·2/『겐지이야기』1~10,무라사키시키부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경남창원시엔‘화이트래빗’이라는북바(Bookbar)가있다.말그대로술과책을함께파는곳이다.『세계문학전집을읽고있습니다』1권북토크때문에갔었다.기차를타고마산역에내려버스로이동한뒤에도골목을한참걸어들어가서야겨우찾을수있었다.그도그럴것이‘북바’가있을만한골목이아니었다.이런곳에?하며고개를여러번갸우뚱거렸더랬다.어디선가“계란이오,계란!”하고쥐어짜는목소리를앞세우고계란을잔뜩실은트럭이나타날것만같은그런골목이었다.

미닫이철문을열고들어서니,술병보다도더많은책들이진열되어있는게특이하달뿐그냥좁고어둑신한바였다.내가술을좋아하는주당이었다면‘천국이따로없군!’하고감탄했겠지만,술을못마시니뭐랄까,아늑한아지트같았달까.상호그대로토끼들이오종종모이는토끼굴같은아지트.
주인장이사회를보는가운데일고여덟분정도가모인단출한북토크였기에특별히인상깊을이유도없는데,왜2권서문에이런글을끄적이고있는지모르겠다.내가저자로참여한이른바‘각잡힌’북토크라기보다비슷한독서취향을가진사람들이바다가가까운동네한골목에자리한아지트에모여책이야기를자유롭게나눈것같아서였으리라.정말오랜만이었다.아지트에모여자유롭게책이야기며사는이야기를나눠본게.그런게고팠던가보다.

장소가남달랐다고특별한기분을느낀건아닐테다.그런감각엔무딘편이니까.굳이꼽자면바의주인장께서미리메일로보내준질문지에서부터뭔가남다른냄새를맡았기때문이라고해야겠다.내책을애정을가지고꼼꼼히읽지않고는물을수없는질문들로빼곡했으니까.그뿐인가.참여한분들도하나같이책을흥미롭게읽은티가팍팍났다.『세계문학전집을읽고있습니다』는물론그전에낸『나는왜이렇게우울한것일까』에다『오후네시의풍경』속한꼭지인「오늘은우는날」이야기까지나왔을땐,속으로‘이사람들정체가뭐지?’하고중얼거렸을정도다.
몇년전충주의한서점에서북토크할때만났던중년여성한분이떠오른다.비록북토크관련책이야기는아니었지만,글쓰기책을내주어서고맙다는인사를질문대신받은적이있다.도심과떨어진외곽에사는사람으로서다양한문화혜택을받지못해안타까웠는데,내가낸글쓰기책을구해딸과함께공부하고있노라며고맙다는인사를하기위해먼거리를달려왔노라고말하고는어색한표정으로다시자리에앉던그분의모습을한동안잊지못했다.이런저런책을내고도가족에게조차알리지못할정도로큰의미를부여하지못할만큼멘탈이엉망이던시절이었다.그때처음으로아내가책을냈구나,하고깨달으면서후회나민망함보다보람을더느낀기억이난다.

책의주인이있다면그건아마도창원과충주에서만난분들같은숨은독자들이리라.왜냐하면저자나작가는물론책을만드는출판인들도결국거기서시작했을테니까.책을자신만의은신처로삼고내밀한대화를나누는사람들.그경험을공유했던사람으로서아직만나보지못했지만자신만의은신처에내책들을꽂아놓은분들에게고마움을전하면서이책을바치고싶다.책을통해교양과풍부한지식을얻고자하는독자에겐많이부족한책이지만,책을자신만의은신처로삼는독자에겐나만의은신처를선보이는기회가되지않을까싶다.

1권과달리2권은다룬책의양도적고쓰는과정도힘들었다.여름이지나면서는원고를오래묵혀두어야할정도로꽤오랫동안읽지도쓰지도못했다.결국맨뒤의네편은예전에쓴글을붙일수밖에없었다.그렇게모두47편,64권을읽고쓴기록을2권으로묶었다.하지만나만의은신처를고스란히드러냈다는면에선1권과견주어전혀부족하지않다고자신한다.받아준다면,부끄럽지만책의진정한주인인당신들에게,인사처럼또는우리만의신호처럼,이책을보내고싶다.

-5~7쪽,「들어가며:책의주인들에게전하는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