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자리 :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

뒷자리 :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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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록노동자 희정이 쓴 『뒷자리: 어떤 일을 한 뒤의 흔적』이 출간되었다.
싸움의 앞자리가 아닌 뒷자리를 기록한 책이다. 사건의 지난 흔적을 되짚는 기록이자 세상의 뒷자리에서 삶의 뒷자리를 더듬는 기록. 그래서 책 제목이 『뒷자리』이다.
저자 희정이 만난 사람들은 이렇다. 모두들 싸움이 다 끝났다고 선언하고 떠나는 곳에 여전히 남아 문제와 맞서고 있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뒷자리에서도 더욱 그늘진 자리에서 보다 치열하게 싸운 사람들, 목소리는 묵살당하고 꼭 그림자처럼 대우받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1부, 2부, 3부에 담았다.
1부는 ‘여전히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전탑이 세워진 밀양, 무려 50년간 미공군의 폭격 훈련장으로 쓰이다가 반환된 매향리, 월성원전과 거의 닿아 있어 방사능 피폭과 원전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사는 마을인 나아리. 희정은 이곳들을 찾아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싸움 이후’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까지도 그곳에 머물며 과연 무엇을 지키고 이루려 하는지 살펴본다.
2부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숨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지만, 누군가 그들의 존재를 지우고 감추고 잊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약하다’며 지워지고 ‘덜 중요하다’며 감춰지고 ‘사소하다’며 잊힌 이들, 그리고 이들의 싸움. 2000년 롯데호텔 직장 내 성희롱 집단소송 투쟁과 2018년 용화여고 창문에 커다랗게 ‘ME TOO’라고 적으면서 교사의 성희롱과 성폭력을 세상에 알린 학생들의 투쟁을 지금 다시 기록하는 것은 이 싸움들이 여전히 우리 눈앞에 더 드러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싸운 건 아무도 몰라”라고 말하는 114 번호 안내원들의 산재 투쟁도 다시 기록했다. 114 번호 안내원들의 투쟁을 기록한 뒤에는 당연하게도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이들의 투쟁 사이에는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 이야기는 이어져 있다.
3부는 ‘그늘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희정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는 미적지근하게 취급받는 일들이 있다. ‘노년노동’이 그렇고, ‘이주노동’이 그렇고, ‘여자노동’이 그렇다. 중심이 아닌 소위 주변으로 밀려난 생애를 세상은 미적지근하게 취급한다. 그리고 되도록 눈에 띄지 않도록 장막으로 덮어두려 한다. 희정은 그 장막을 들춰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공단의 높은 담벼락 아래에서 일하는 노년 노동자들을 만나고, 변두리 공단의 저임금 인력으로 유배된 고려인들을 만나고, 경영에 반드시 필요한 전문적 업무를 맡으면서도 ‘잡일 노동’ ‘아가씨 노동’으로 함부로 취급당하는 경리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바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차 하청업체의 경리 노동자 출신 강미희가 전하는 말이다. 부당 해고에 맞선 복직 투쟁을 하는 동안 티셔츠에 “경리는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입고 다녔던 강미희의 말.

“설사 승리를 못하더라도, 아무것도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뭐든 다 해봤어요. 저는 제가 기특해요. 잘했어. 기특해. 난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저자

희정

저자:희정

기록노동자.살아가고싸우고견뎌내는일을기록한다.저서로는『삼성이버린또하나의가족』(2011),『노동자,쓰러지다』(2014),『아름다운한생이다』(2016),『퀴어는당신옆에서일하고있다』(2019),『여기,우리,함께』(2020),『두번째글쓰기』(2021),『문제를문제로만드는사람들』(2022),『일할자격』(2023),『베테랑의몸』(2023)이있다.

그리고『밀양을살다』(2014),『섬과섬을잇다』(2014),『기록되지않은노동』(2016),『416단원고약전』(2016),『재난을묻다』(2017),『회사가사라졌다』(2020),『숨을참다』(2022),『마지막일터,쿠팡을해지합니다』(2022),『당신은나를이방인이라부르네』(2023),『캐노피에매달린말들』(2023)을함께썼다.

목차


들어가며

1부.여전히남은사람들

1.송전탑이세워져도마을의시간은가고
밀양을기억한다는것은
2023년.남어진과의대화
2.평화란“아침까지푹잘수있는것”
미공군폭격장반환이후,매향리를가다
2023년.전만규와의대화
3.방사능피폭위험지대에들어오셨습니다
월성원전최인접마을에가다
2023년.황분희와의대화

2부.우리싸움은누가기억하지?

1.우리가구호를외쳤잖아요
롯데호텔파업과성희롱집단소송사건
20년후.스쿨미투끝나지않는이야기
2.통증에도위계가있어
114한국통신안내원들의근골격계투쟁
20년후.10명중7명이나가는곳에서

3부.들리지않아도목소리는존재한다

1.봄이올까요
공단에숨겨진노년노동자의꿈
2.뿌리내리는이들을만나다
고려인마을에서만난사람들
3.가장늦게잘리는자,경리
아가씨노동의실체를보다

참고도서및참고자료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후회없이살고싶다.이말이얼마나오만한것인지살면서깨닫는다.후회없이사는일은불가능에가깝기에,우리는후회를예감하며한발을내딛고자신이감당할만한후회를삼키며살아간다.어떤일을겪어낸이들에게서내가본의지와끈기같은것,그러니까저력이라불렀던것은숱한후회를감수하면서도발을내딛는사람들의마음이자,후회를뒤로감춘채내주는품이었을것이다.

그것은사건의뒷자리에서도여전하다.어떤흔적을뒤적여도,아무리오래된사건과만나도,여전히움직이는이들을만나게된다.나도마찬가지다.그들이움직였기에나또한아주천천히몸을틀수있었다.

공단담벼락안에가두어도“우리에게봄이올까요?”묻는이들이있다.머나먼여정끝에낯선땅에와서도지치지않고도시로가고싶다는이가있다.건전지처럼갈아끼워지면서도자신들의일이귀하게대우받는날이올때그자리에있고싶다고하는이가있다.사람들이모르는싸움을했지만“우리그때정말잘싸웠지?”라고신명나게말하는이가있다.나는그저지나간일의흔적을좇으려했을뿐인데,이들은그곳에서도크고작은것을감수할준비를하고있었다.
그런이들을책에담았다.이것은사건이지나간후,그뒷자리에서내가하는일이다.
---p.9~10

나는누군가악을쓰며싸우는소리를느지막이듣는사람이다.귀밝은이들이앞서달려간곳을더디게따라가면,그곳에는무언가를막아내기위해인생의많은부분을감내하는사람들이있다.그제야나도자리를잡고기록을한다.그러는사이싸움이끝나,이들이입버릇처럼말하던‘일상으로돌아가는일’이이뤄지기도한다.이들은‘이겨서예전처럼돌아가고싶다’고했지만,돌아가는길목에늘승리가있는건아니다.

이긴다…그것이과연이뤄질수있는일인지모르겠다.일단싸움이시작되고나면‘이긴다’는행위는요구를관철시키는것만으로는설명할수없어진다.온전히외쳐지는요구도없거니와온갖상흔과감정이쌓이는까닭에승리의의미는굴곡지거나그속을채우는내용이달라진다.누구든싸움판으로첫발을디딜때는많은다짐과결심,(희망과단념을동시에품는)계산과예측을하지만막상그안으로들어가면처음예상한것이무엇이든그마음만으로는버틸수없게된다.

그런데도사람들이싸우는걸보면분명무언가있다.나는그무언가를좇는사람이지만,때로싸움이지나고난자리를생각한다.싸움이끝났다고말하는자리에여전히남은사람들을떠올린다.
---p.15~16

송전탑이완공된지3년이지나기사하나를보았다.3년이면기억이잊힐만한시간이다.사건이잠잠해질시간이다.그런데기사의제목은이랬다.〈지금이제일힘들다〉
---p.19

국가는소박한삶들로부터승리했다.밀양은국책사업의지를천명하는장이됐다.산업의기반인전기가전국토에깔려야한다고했다.산업발전앞에다소의희생은불가피하다고했다.‘불가피한’희생에서비롯하는저항은돈으로메웠다.비용은적을수록좋았다.정당한보상과민주적합의에는큰비용이든다.선로를변경하는일에도,다른대안을찾는일에도돈이든다.그래서하지않았다.지역민들이입은정신적·신체적피해는조사되지않았다.피해는몇푼의보상금으로영구은폐됐다.덕분에우리의전기는밝고저렴했다.
---p.28

“포탄이하루몇개떨어지는지아세요?적게는400개많게는700개.진짜실탄이떨어졌으면몇번만에섬이다폭발했을텐데.훈련용이라그나마남아있는거예요.옆에섬하나를완전히없애고,2000년에폭격이멈춰농섬은살아남은거예요.”
마을주민이들려준이야기.전투기와공격용헬기가매향리인근을저공비행하다인근섬들(농섬,웃섬,구비섬등)을목표물로삼아폭격을가한다.폭격장의면적은700만평.평일이면아침부터밤늦도록총성과포탄떨어지는굉음이이어졌다.
---p.49

나아리주민황분희씨는“여긴모든게오염된거라.사람마저도.”하며자신의가슴께를가리켰다.하지만한수원의말은다르다.
“우리손녀가학교갔다와서그러는거라.‘반친구가그러는데원자력은절대사고안난다고해요’내가‘그래,그친구가어디사는친구냐’하고물으니까.한수원사택에사는친구라고.그러면그럴수있다.다음에그친구하고이야기할기회가있으면‘후쿠시마는?일본사고는어떻게일어났냐’하고물어봐라그랬어요.”
---p.76

“요즘산란기야?왜이렇게들임신을해.”?
모임원이임신한여성직원들을가리켜한말이라고했다.가해자의인성뿐아니라일터가임신부노동자를어떤시선으로보는지보여주는대목이다.하지만‘농담’이라했다.농담으로하는소리이니당시에는아무런‘문제’가되지않았다.이말이문제로인식된것은한참뒤였다.롯데호텔파업이없었다면,평생오지않을순간이었다.
---p.108~109

아무리입을막아도말하는여성들이있고,아무리내보내려해도나가지않는여성들이있었다.1990년대후반당시어느직장이건,임신해도그만두지않던선배를원망하다가본인이임신을하면저선배가‘눈칫밥’먹으며버텨준덕에자신도다닐수있음을깨달았다.그렇게하나둘이남아여럿이되면,임신부에관한매뉴얼이나사내규칙이변경됐다.
“그때는몰랐는데.우리가대단한일을한거였어요.임신하고도회사를계속다니고그런것이,나중에보니.”
---p.118

교육부의변명이겠지만,학교장들이야당연하고교직원들도전수조사를불편해한다는이야기를들었다.교사를‘잠재적가해자’취급한다는이유도있었다.내가롯데호텔사건에서용화여고미투사건을떠올린것은,단지무언가를써서붙인다는행위때문이아니었다.롯데호텔에서‘재계약은없다’며엄포를놓던관리자와“생활기록부를쥔채로미래를망쳐주겠다고엄포를놓던”교사의모습이닮았기때문이다.모든교사가가해자라는말이아니라,교사가지닌위력이존재한다는말이다.
---p.136

성폭력사건에는가하는사람과당하는사람만있지않다.‘모르고싶은’사람들이있다.20년전으로돌아가면,롯데호텔에도가해자그룹이섬처럼따로있던것이아니다.직장내성희롱은일상적으로이뤄졌고,그일상을모른척하던이들이있었다.이들중에는정말‘모르는’사람도있었을텐데,눈을돌리지않으면모르고사는것이가능하다.그렇게기수가탄말처럼앞만바라보고가는생활이이어진다.
---p.137

늦가을이되어서야조계사농성은마무리되고,114노동자들은일터로복귀했다.산재대상자들을향한퇴사종용을멈추고,개인이원할시타부서로재배치한다는약속을회사로부터받았다.아무도신경쓰지않던골병이었으나,이들은싸움끝에성과를만들어냈다.자신들의싸움을누가알려나하지만,그투쟁을뚜렷이기억하는이들이있다.바로그녀들자신이다.“우리정말잘싸웠다”라는말이,그시절을증명했다.
하지만농성을마무리하고일터로돌아갔을때,이들을기다린것은익숙하고도새로운위기였다.그들의노동을‘잉여’취급하는일터는바뀌지않았다.
---p.156

기록을보니,관리자가야간근무조회시간에여성직원들에게“참아보자!참아보자!”라는구호를외치게도했다.그때는드러내면안되고,참아넘겨야하는일로여겨제대로대응하지못했다고아쉬워했다.그로부터십여년후그가일했던일터인KT114는첫멘트로“사랑합니다,고객님”을말하게했다.그게진상과성희롱고객이흘러들어오는입구가되었고,몇년후에는콜센터로전화를하면수화기너머에서이런멘트가흘러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에고객응대근로자보호조치가시행되고있습니다.폭언,성희롱시관련법령에따라처벌받을수있습니다.”
---p.177

“내가없으면회사가일을못합니다.작년에고무호스를끼우다가산재가났는데.한달회사를못갔어요.내없을때회사에서는이사람도넣어보고저사람도넣어보고.못해요.고무모형이10개20개가아니고,1,000개가넘어요.그만큼다양하게있다는겁니다.저도다몰라도800개정도는아는데.며칠와서일하는사람이그걸다기억할수가없어요.내가없으면안된단말이에요.회사도알고는있는데,그래도….”
회사는알고있지만,그래도인정하지않는다.저렴하기에사용하는노동력이다.그노동을인정하는순간저렴하게사용할수없어진다.
---p.192~193

남편을따라광주고려인마을에온이는안산으로가서일하고싶다고했다.“여기를떠나고싶어요?”라고묻자일자리이야기를한다.“여기는일이없어요.”생산직일자리만만연한이곳이마음에들지않는다.시댁이야기도슬쩍한다.가족이많은것이갑갑하다고했다.한국인들로부터고려인은가족이소중하다는이야기만들어온터라,그렇게감정을털어놓는이가반가우면서도반가운기색이드러날까봐조심스러웠다.한국에처음와선안산고려인식당에서홀서빙을보았다고했다.그때를그리워한다.지역을떠나고도시로가고싶은욕망이한국지역사회여성들의서울이주욕망과겹쳐보여,나는진지하게그이야기를듣는다.이주라는조건속에서도저마다의결대로뿌리를내린다.이들이한민족이라이땅에뿌리는내려야하는것은아닐테다.어디서누구로단한순간을살아도뿌리를땅에박아야하는것이삶일뿐이다.
---p.217~218

‘여직원’‘아줌마’이들은인터뷰내내자신을이렇게불렀다.자신의직업을이렇게말하기도했다.‘아가씨자리’.아가씨자리에서일하는아줌마라.다른명칭도나왔다.
“제일싫어하는말인데,우리는잡부였어요.오만잡일다하는.”
이들의직업은,경리다.명함한장이없다.명함이있다해도새길직책이없다.사람들은사무실로전화해서이렇게말하곤한다.
“아가씨,남자바꿔.”
---p.219

신자유주의운명의수레바퀴는잔혹도하다.수레바퀴의가속을저지하는방법을애써볼수밖에없다.그것은“너랑나랑다똑같은”사람이라는늙은노동자의말일수도있겠다.“빗길에미끄러지며일하는주차관리요원”을돌아보는마음일수도있겠다.차이를두어일하는사람을쪼개고나누려는,결국은버려지는속도만다른소모품으로만들려는기업에대응하는길에무엇이따로있을까.나뉘지않으려고애쓰는일.소모품이아니라우리로살려고애쓰는일.
법의편리와기업의필요에의해나뉘고쪼개진자신들의자리를되찾기위해싸우는‘그녀’들의싸움을응원했다.아니응원한다.
“설사승리못하더라도,아무것도못했다고생각하지않아요.우리는뭐든다해봤어요.저는제가기특해요.잘했어.기특해.난내가너무자랑스러워.”(강미희)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