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작도 끝도 없으며,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선(line)에 대한 인류학 탐구
막다른 곳 너머 ‘더 먼 곳’을 향해 열리는 선의 여정
학제, 문화,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책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선 인류학의 시작
선(line)에 대한 인류학 탐구
막다른 곳 너머 ‘더 먼 곳’을 향해 열리는 선의 여정
학제, 문화,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책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선 인류학의 시작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는 이처럼 일상생활 속, 역사 속, 세계 속 어디든 존재하는 선을 탐구한다. 심오하고 창조적인 관점을 통해 과감하게 사유하는 팀 잉골드는 이 책을 시작으로 ‘선 인류학’을 전개해나간다. 그는 열린 길을 따르며 움직임 속에서 성장해나가는 행로(wayfaring) 방식을 매혹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학문 세계에 몰두하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음악가와 화가, 서예가와 장인,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엮는 매듭이자 또 다른 길을 향해 열리는 고리가 될 것이다. 선을 따라 이어지는, 끝도 시작도 없는 이야기로서의 세계가 펼쳐진다.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Lines)는 영국의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2007년에 출간한 그의 대표작이다. 1948년생인 팀 잉골드는 1970년대부터 연구 활동을 했는데, 2007년 환갑에 이르러 그동안의 연구 주제들과 자신의 화두를 집약해 『라인스』를 출간하면서 마침내 ‘선 인류학’의 시작을 알렸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을 통해 자신이 ‘인류학과 결별하는 것이 아닌가’ 되묻고는 이 시점부터 자신이 비로소 선을 연구하는 사람, 즉 선학자(linealogist)가 되었다고 말한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 이후 『산다는 것』(Being Alive, 2011), 『만들기』(Making, 2013),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The Life of Lines, 2015), 『조응』(Correspondences, 2020) 등을 잇따라 출간하는데, 실제 『라인스』 출간 이후 그의 논의들은 모두 선에 대한 고찰 속에서 펼쳐진다. 『라인스』는 ‘선 인류학’이라는 창조적인 흐름의 시작에 있는 기념적인 책으로서, 삶과 생명에 대한 심오한 관점을 제시하며 역사, 문화, 예술, 기술, 생태, 진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풍부한 고찰을 선보인다.
은유도, 이론의 대상도 아닌, 실제의 ‘선’을 탐구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라인스』에서 탐구하는 선은 은유로 표현된 선이 아니며, 이론을 구성하는 대상으로서의 선도 아니다. 잉골드는 우리 일상 속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실제의 ‘선’을 탐구한다. 그래서 선이라는 낯선 주제는 처음에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것이 정말 인류학의 연구 대상일 수 있을까? 선의 탐구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역사적 시간과 일상생활에 대해 과연 무언가 말해줄 수 있을까?
잉골드는 세계를 동적인 만들기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사람과 사물에 대한 연구 역시 그것들을 독립된 존재로서 파악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고, 그 연구는 그들을 구성하는 선을 따르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또한, 사람들의 삶의 내부에서 여정을 시작해 열린 길을 따르며 관계들 속에서 조응하며 만들어나가는 성장의 실천, 그 자체가 인류학이라 여긴다. 『라인스』에는 선을 따르며 나아가는 행로의 실천이 중요한 삶의 방식으로 제시되는데, 잉골드에게 이것은 인류학 실천이기도 하다. 『라인스』는 이러한 잉골드의 사유와 실천이 만들어낸 하나의 매듭과 같은 작품이다.
인류학자 마크 에버트는 『라인스』를 평가하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라인스』를 읽고 나면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처럼 우리가 매일 같이 수행하는 활동의 의미조차도 전적으로 새롭게 지각하게 된다. 나아가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을 따라 나아간다”는 말로 표현되는,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방식에 눈을 뜨게 된다. 세계 속의 선을 알아차리고 따르는 경험은 ‘산다는 것’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이에 잉골드는 주저함 없이 강조한다. “정말로 선은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행로의 구불구불한 선처럼
끝과 시작이 이어지는 여섯 장의 이야기
1장 언어·음악·표기법
1장에서 잉골드는 자신이 어떤 이유로 선을 연구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며 논의를 시작한다. 사실상 선과는 무관하게도, 처음 잉골드를 사로잡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말과 노래를 구별하게 됐는가”라는 질문. 과거에는 음악이 무엇보다도 ‘가사의 울려 퍼짐’이었고, 언어란 ‘말소리’로 이해되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에는 음악에서 가사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고, 언어란 이제 말소리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일종의 ‘의미 체계’가 되었다고 잉골드는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변화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음악은 말이 없게 되고, 언어는 침묵하게 됐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언어의 침묵’이 발생한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잉골드는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이행하던 시기의 변화들을 조사한다. 이때 잉골드는 언어의 침묵이 ‘쓰기’가 이해되는 방식의 변화, 즉 쓰기가 손으로 하는 기입으로 이해되다가 어느 시점부터 말의 언어구성 기술로 바뀌어 이해되기 시작한 변화와 관련 있음에 주목한다.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쓰기의 역사’를 살피는 과정에서는, 쓰기의 역사란 보다 폭넓게는 ‘표기법의 역사’에 포함된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리고 표기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을 때, 표기법은 다름 아니라 선으로 구성됨을 깨닫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잉골드는 선의 생산과 의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2장 자취·실·표면
2장에서는 선과 선이 그려지는 표면의 관계를 살펴본다. 선의 탐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선이 새겨지는 표면과의 관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의 역사를 살피려면 선과 표면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를 살펴야 한다. 때문에 2장에서는 표면이 탐구 대상이 된다. 잉골드는 표면 탐구에 앞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선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선의 주요한 두 가지 분류를 제시한다. 바로 ‘실’과 ‘자취’다. 실과 자취는 표면을 만들기도 하고 표면을 없애기도 하면서 움직임과 성장의 선을 만들어나간다.
3장 위로·가로질러·따라서
3장에서는 선과 표면의 관계가 변형된 결과들을 살펴본다. 3장에는 비판적 논의가 포함된다. 무엇에 대한 비판일까. ‘위로’의 움직임과 ‘가로질러’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잉골드는 먼저 ‘산책’과 ‘조립체’ 사이의 구별을 사례로 제시한다. 산책은 몸짓의 자취인 반면 조립체는 점대점연결장치로 만든 인공물이다. 점대점연결장치 방식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형시키고, 환경을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점거하는 곳으로 지각하게 한다. 잉골드가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존재들이 땅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이라 생각하는 방식은 바로 ‘따르는’ 움직임의 방식이며, 잉골드는 이를 행로(wayfaring)라고 표현한다. 3장에서 잉골드는 교점을 직선으로 잇는 연결망 방식과 운송의 방식을 비판하면서, 그물망이라는 얽힘의 구역에서 선을 따르며 살아가는 존재 방식을 이야기한다. 잉골드에 따르면, 존재들은 움직임과 성장이 통합된 행로의 방식을 실천함으로써 세계에 거주한다.
4장 계보의 선
4장에서 살펴보는 것은 ‘계보의 선’이다. 계보의 선이라는 주제에서 즉각 떠오르는 사례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도식, 즉 생명 진화를 묘사한 계보도이다. 잉골드는 찰스 다윈이 이 도식을 그리면서 ‘선을 따라가는 삶’이 아닌 ‘각각의 점 안에 있는 삶’을 그렸다고 말한다. 계보도를 구성하는 ‘점선’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점선이 자명하게 드러내는 바, 이 계보의 선은 생명선도 아니고 인간에 대한 줄거리조차 아니다. 잉골드는 이처럼 선의 관점을 통해 역사 속에서 ‘진화’ 개념이 어떻게 다뤄져왔는지를 검토한다.
5장 그리기·쓰기·캘리그래피
5장에서는 다시 ‘쓰기’ 주제로 돌아간다. 잉골드는 그리기와 쓰기에서의 몸짓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쓰기가 본래 의미대로 기입의 실천으로 이해되는 한 그리기와 쓰기 사이에 엄밀한 구분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리기와 쓰기를 다른 것으로 이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고찰하면서 잉골드는 (앞서 논의한 말과 노래의 분리를 포함한) 이 ‘현대적인 분리’를 추동하는 이분법, 즉 기술과 예술 사이의 이분법을 지적한다.
6장 선이 직선이 되는 법
6장에서는 ‘선의 으스스한 유령’, 즉 직선을 고찰한다. 선이 반드시 곧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어떻게, 우리의 인식 속에서 선은 반드시 직선이어야만 하는 것이 되었을까. 잉골드는 직선이 근대성의 도상이 되었다고 말하며, 직선의 역사적인 근원을 쫓는다. 잉골드는 직선을 수수께끼라고 표현한다. 직선은 표면을 지배하지만 그 무엇도 연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종류의 움직임이나 몸짓도 체현하지 않는다. 더불어 근대성의 확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에 처하면 한때 점과 점을 잇던 직선은 조각나버린다.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
책의 말미에는 『라인스』와 선 인류학의 맥락과 의미를 상세히 해설하는 역자 후기를 실었다. 이 ‘초대장’ 같은 글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별히 내가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성장’에 대한 것이다. 개발주의와 자본주의로 점철된 세계에서 ‘성장’의 의미는 고도의 테크노사이언스와 자본화, 규모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이러한 파국적인 상황에 저항하는 많은 이들은 ‘탈성장(degrowth)’이라는 탈출구를 추구하곤 한다. 그 개념은 나름대로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남기지만 나는 잉골드의 시도가 훨씬 더 대담하다고 생각한다. 잉골드는 우리의 ‘성장’이 무엇인지 다시금 사유하고, 결정론적인 성장이 결코 성장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성장의 욕구와 욕망을 긍정하며 재전유하면서 우리는 삶과 세계를 다시 직조하는 내파의 가능성도 확인하게 된다. […] 선은 오직 다시금 찾아지고 따라가질 때 새로운 세계를 열게 만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선을 통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그 ‘새로운’ 길은 ‘따라가는 것’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어 있는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는 세계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현대의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 행로의 여정은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다.”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 그리기, 쓰기의 공통점은?
모두 선을 따른다는 점이다
『라인스』(Lines)는 영국의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2007년에 출간한 그의 대표작이다. 1948년생인 팀 잉골드는 1970년대부터 연구 활동을 했는데, 2007년 환갑에 이르러 그동안의 연구 주제들과 자신의 화두를 집약해 『라인스』를 출간하면서 마침내 ‘선 인류학’의 시작을 알렸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을 통해 자신이 ‘인류학과 결별하는 것이 아닌가’ 되묻고는 이 시점부터 자신이 비로소 선을 연구하는 사람, 즉 선학자(linealogist)가 되었다고 말한다.
잉골드는 『라인스』 출간 이후 『산다는 것』(Being Alive, 2011), 『만들기』(Making, 2013),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The Life of Lines, 2015), 『조응』(Correspondences, 2020) 등을 잇따라 출간하는데, 실제 『라인스』 출간 이후 그의 논의들은 모두 선에 대한 고찰 속에서 펼쳐진다. 『라인스』는 ‘선 인류학’이라는 창조적인 흐름의 시작에 있는 기념적인 책으로서, 삶과 생명에 대한 심오한 관점을 제시하며 역사, 문화, 예술, 기술, 생태, 진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풍부한 고찰을 선보인다.
은유도, 이론의 대상도 아닌, 실제의 ‘선’을 탐구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
『라인스』에서 탐구하는 선은 은유로 표현된 선이 아니며, 이론을 구성하는 대상으로서의 선도 아니다. 잉골드는 우리 일상 속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실제의 ‘선’을 탐구한다. 그래서 선이라는 낯선 주제는 처음에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것이 정말 인류학의 연구 대상일 수 있을까? 선의 탐구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역사적 시간과 일상생활에 대해 과연 무언가 말해줄 수 있을까?
잉골드는 세계를 동적인 만들기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사람과 사물에 대한 연구 역시 그것들을 독립된 존재로서 파악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되고, 그 연구는 그들을 구성하는 선을 따르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또한, 사람들의 삶의 내부에서 여정을 시작해 열린 길을 따르며 관계들 속에서 조응하며 만들어나가는 성장의 실천, 그 자체가 인류학이라 여긴다. 『라인스』에는 선을 따르며 나아가는 행로의 실천이 중요한 삶의 방식으로 제시되는데, 잉골드에게 이것은 인류학 실천이기도 하다. 『라인스』는 이러한 잉골드의 사유와 실천이 만들어낸 하나의 매듭과 같은 작품이다.
인류학자 마크 에버트는 『라인스』를 평가하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세상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라인스』를 읽고 나면 걷기, 관찰하기, 이야기하기처럼 우리가 매일 같이 수행하는 활동의 의미조차도 전적으로 새롭게 지각하게 된다. 나아가 “생명은 점에 가둬지지 않는다. 생명은 선을 따라 나아간다”는 말로 표현되는,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방식에 눈을 뜨게 된다. 세계 속의 선을 알아차리고 따르는 경험은 ‘산다는 것’에 대한 관점을 바꾼다. 이에 잉골드는 주저함 없이 강조한다. “정말로 선은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다”고.
행로의 구불구불한 선처럼
끝과 시작이 이어지는 여섯 장의 이야기
1장 언어·음악·표기법
1장에서 잉골드는 자신이 어떤 이유로 선을 연구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며 논의를 시작한다. 사실상 선과는 무관하게도, 처음 잉골드를 사로잡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말과 노래를 구별하게 됐는가”라는 질문. 과거에는 음악이 무엇보다도 ‘가사의 울려 퍼짐’이었고, 언어란 ‘말소리’로 이해되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에는 음악에서 가사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고, 언어란 이제 말소리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일종의 ‘의미 체계’가 되었다고 잉골드는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변화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음악은 말이 없게 되고, 언어는 침묵하게 됐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언어의 침묵’이 발생한 이유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잉골드는 구술문화가 문자문화로 이행하던 시기의 변화들을 조사한다. 이때 잉골드는 언어의 침묵이 ‘쓰기’가 이해되는 방식의 변화, 즉 쓰기가 손으로 하는 기입으로 이해되다가 어느 시점부터 말의 언어구성 기술로 바뀌어 이해되기 시작한 변화와 관련 있음에 주목한다. 이 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쓰기의 역사’를 살피는 과정에서는, 쓰기의 역사란 보다 폭넓게는 ‘표기법의 역사’에 포함된다는 점을 확인한다. 그리고 표기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을 때, 표기법은 다름 아니라 선으로 구성됨을 깨닫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잉골드는 선의 생산과 의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2장 자취·실·표면
2장에서는 선과 선이 그려지는 표면의 관계를 살펴본다. 선의 탐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선이 새겨지는 표면과의 관계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의 역사를 살피려면 선과 표면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를 살펴야 한다. 때문에 2장에서는 표면이 탐구 대상이 된다. 잉골드는 표면 탐구에 앞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선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선의 주요한 두 가지 분류를 제시한다. 바로 ‘실’과 ‘자취’다. 실과 자취는 표면을 만들기도 하고 표면을 없애기도 하면서 움직임과 성장의 선을 만들어나간다.
3장 위로·가로질러·따라서
3장에서는 선과 표면의 관계가 변형된 결과들을 살펴본다. 3장에는 비판적 논의가 포함된다. 무엇에 대한 비판일까. ‘위로’의 움직임과 ‘가로질러’의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잉골드는 먼저 ‘산책’과 ‘조립체’ 사이의 구별을 사례로 제시한다. 산책은 몸짓의 자취인 반면 조립체는 점대점연결장치로 만든 인공물이다. 점대점연결장치 방식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형시키고, 환경을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점거하는 곳으로 지각하게 한다. 잉골드가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존재들이 땅에 거주하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이라 생각하는 방식은 바로 ‘따르는’ 움직임의 방식이며, 잉골드는 이를 행로(wayfaring)라고 표현한다. 3장에서 잉골드는 교점을 직선으로 잇는 연결망 방식과 운송의 방식을 비판하면서, 그물망이라는 얽힘의 구역에서 선을 따르며 살아가는 존재 방식을 이야기한다. 잉골드에 따르면, 존재들은 움직임과 성장이 통합된 행로의 방식을 실천함으로써 세계에 거주한다.
4장 계보의 선
4장에서 살펴보는 것은 ‘계보의 선’이다. 계보의 선이라는 주제에서 즉각 떠오르는 사례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도식, 즉 생명 진화를 묘사한 계보도이다. 잉골드는 찰스 다윈이 이 도식을 그리면서 ‘선을 따라가는 삶’이 아닌 ‘각각의 점 안에 있는 삶’을 그렸다고 말한다. 계보도를 구성하는 ‘점선’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점선이 자명하게 드러내는 바, 이 계보의 선은 생명선도 아니고 인간에 대한 줄거리조차 아니다. 잉골드는 이처럼 선의 관점을 통해 역사 속에서 ‘진화’ 개념이 어떻게 다뤄져왔는지를 검토한다.
5장 그리기·쓰기·캘리그래피
5장에서는 다시 ‘쓰기’ 주제로 돌아간다. 잉골드는 그리기와 쓰기에서의 몸짓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쓰기가 본래 의미대로 기입의 실천으로 이해되는 한 그리기와 쓰기 사이에 엄밀한 구분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리기와 쓰기를 다른 것으로 이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고찰하면서 잉골드는 (앞서 논의한 말과 노래의 분리를 포함한) 이 ‘현대적인 분리’를 추동하는 이분법, 즉 기술과 예술 사이의 이분법을 지적한다.
6장 선이 직선이 되는 법
6장에서는 ‘선의 으스스한 유령’, 즉 직선을 고찰한다. 선이 반드시 곧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어떻게, 우리의 인식 속에서 선은 반드시 직선이어야만 하는 것이 되었을까. 잉골드는 직선이 근대성의 도상이 되었다고 말하며, 직선의 역사적인 근원을 쫓는다. 잉골드는 직선을 수수께끼라고 표현한다. 직선은 표면을 지배하지만 그 무엇도 연결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종류의 움직임이나 몸짓도 체현하지 않는다. 더불어 근대성의 확실성이 의심받는 상황에 처하면 한때 점과 점을 잇던 직선은 조각나버린다.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
책의 말미에는 『라인스』와 선 인류학의 맥락과 의미를 상세히 해설하는 역자 후기를 실었다. 이 ‘초대장’ 같은 글에서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별히 내가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성장’에 대한 것이다. 개발주의와 자본주의로 점철된 세계에서 ‘성장’의 의미는 고도의 테크노사이언스와 자본화, 규모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이러한 파국적인 상황에 저항하는 많은 이들은 ‘탈성장(degrowth)’이라는 탈출구를 추구하곤 한다. 그 개념은 나름대로 매우 유용한 시사점을 남기지만 나는 잉골드의 시도가 훨씬 더 대담하다고 생각한다. 잉골드는 우리의 ‘성장’이 무엇인지 다시금 사유하고, 결정론적인 성장이 결코 성장이 아니었음을 밝힌다. 성장의 욕구와 욕망을 긍정하며 재전유하면서 우리는 삶과 세계를 다시 직조하는 내파의 가능성도 확인하게 된다. […] 선은 오직 다시금 찾아지고 따라가질 때 새로운 세계를 열게 만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선을 통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그 ‘새로운’ 길은 ‘따라가는 것’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어 있는 공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들로 가득 차 있는 세계 속에서 다시금 세계를 엮어나가는 몸짓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도는 세계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현대의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 행로의 여정은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다.”
라인스 : 선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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