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은 빌릴 수도 있지 (구광본 소설)

복은 빌릴 수도 있지 (구광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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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 시리즈 소개│
다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를 단지 다시 한다면 때늦은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움을 담아내었다면?
한참이나 앞서가는 놀라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 전 5권은 우리 옛이야기를 둘러앉아 말로 하던 원래 모습과 그 정신을 살려 복원한다. 전통시대의 단순 소박한 옛이야기를 사건 전개의 개연성과 구체성을 강화하며 현대적으로 계승한다. 옛이야기를 소설화하는 이 같은 작업의 저변에는 전통시대 이야기의 힘과 공동체의 정신을 오늘에 맞게 되살리고자 하는 일이다.

소설이 발흥하여 융성하는 사이 옛이야기와 그 판이 쇠퇴한 것은 문화사의 거대한 흐름이다. 입말투(구어체)로 구연할 수 있는 형식을 창출하며, 때로는 옛이야기가 구연되는 상황과 옛이야기가 실제 삶 가운데 살아 있던 당시의 세상을 함께 재현하는 이 작업은 그렇다면 무슨 의미를 가질까?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이자 들을 수 있는 텍스트이기도 한, 즉 일종의 구연 대본을 지향하는 듯한 이 작업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문자문화의 등장과 함께 쇠퇴한 구술문화를 되살리면서, 오래된 이야기와 그 이야기판의 놀라운 힘을 동시에 되찾아오는 일이다.

태곳적 세상의 모습을 그린 신화적 옛이야기의 1권부터 무시무시하거나 기이한, 유쾌하거나 통쾌한 이야기들을 모은 2권, 민중의 좌절하지 않는 낙관적 삶과 기상천외의 발상을 담은 3권, 지하 세상 괴물 퇴치 모험담인 4권(경장편), 그리고 아기장수의 비극과 민중의 염원을 새긴 5권(경장편)까지. 작가는 모든 세대에게 충분히 의미 깊고 흥미로우리라 기대한다. 무명의 이야기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찾아 담아낸 삶의 깊은 지혜와도 가슴 벅차게 만날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우리 옛이야기의 복원과 계승.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는 이를 통해 문자문화로서의 문학을 넘어선 새로운 문학을 예감하게 한다. 다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를 단지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움을 담아, 한참이나 앞서가는 이야기라는 주장을 이제 찬찬히 검토할 때다.
저자

구광본

저자 구광본
1986년 등단해 그동안 『미궁』 『맘모스 편의점』 등의 소설집을 펴냈다. 오늘의 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소설 신인상),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협성대 문창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복은 빌릴 수도 있지』는 우리 옛이야기 소설화 작업인 전 5권의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집이다. 학자의 설화도 어린아이의 전래동화도 아닌, 전통시대 민중이 사랑한 이야기인 민담을 중심으로 한바탕 이야기의 카니발이 펼쳐진다. 작가는 머슴이나 나무꾼이나 주먹만 한 아이나 집 쫓겨난 셋째 딸 같은 일반 민중의 기상천외한 발상과 소망충족의 이야기들을 모은 『복은 빌릴 수도 있지』에서 ‘나이 불문 청춘’인 모든 독자에게 위안과 희망 그리고 통쾌함을 선사하고자 노력을 쏟았다. 시리즈 출간에 즈음해 구술문화의 현대적 계승을 실감 있게 전달할 오디오 퍼포먼스도 준비했다.

목차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 5

벙어리 이야기꾼 11
어흥! 37
복은 빌릴 수도 있지 65
흰 눈썹 휘날리며 109
도깨비 놀기 좋은 날 163
주먹이냐 반쪽이냐 191
내 복에 살지요 217
다시는 활을 쏘지 않으리 247
불어라, 회오리 277
우리 가문의 복덩이 303
씨름이 끝난 뒤 337

작가노트: 옛이야기 다시 만나기 365

출판사 서평

전통시대 민중의 기상천외한 발상과 소망충족의 이야기들!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는 예전 사랑방이나 정자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전하던 단순 소박한 옛이야기들을 입말투(구어체) 현대소설로 재창조하였다. 고독한 존재인 작가가 또 다른 고독한 존재인 미지의 독자를 향하여 자판을 두드려 보내는 모스부호 같은 소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과 이야기 듣는 사람이 함께 소통하는 이야기판까지 꾸며냈다.

『복은 빌릴 수도 있지』는 우리 옛이야기 소설화 작업인 전 5권의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집이다. 학자의 설화도 어린아이의 전래동화도 아닌, 전통시대 민중이 사랑한 이야기인 민담을 중심으로 한바탕 이야기의 카니발이 펼쳐진다. 작가는 머슴이나 나무꾼이나 주먹만 한 아이나 집 쫓겨난 셋째 딸 같은 일반 민중의 기상천외한 발상과 소망충족의 이야기들을 모은 『복은 빌릴 수도 있지』에서 ‘나이 불문 청춘’인 모든 독자에게 위안과 희망 그리고 통쾌함을 선사하고자 노력을 쏟았다.

종교나 고대 왕권과 관련 깊은 신화가 민족적 단위에서 수용된다면 전설은 역사성(시대성)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지역적 단위에서 수용된다. 이와 달리 민담은 세계적으로 분포하는데, 민담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환상과 상상력은 곧 민중의 소망을 바탕으로 한다. 타고난 복이 없더라도 복 누리며 살 길을 마련하거나, 호랑이에게 죽을 위기를 장가도 못 가고 새경도 못 받는 제 처지 벗어날 계기로 삼거나, 죽으려다 신기한 물건 얻어 세상과의 불화와 자신의 불운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민중의 소망이 만들어낸 이야기인 것이다. 『벙어리 이야기꾼』을 시작으로 『복은 빌릴 수도 있지』의 모든 이야기는 한편 독자들에게 우리 인생 자체와 또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통찰도 감동 깊게 전해준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채널 개설!

구술로 전해지던 옛이야기의 전통을 복원하고, 함께 소통하는 이야기판의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는 출간에 즈음하여 네이버의 오디오콘텐츠 플랫폼인 오디오클립에 채널(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76)을 개설하였다. 문자문화와 구술문화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이야기판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이다.

'다시 만나는 옛이야기'는 구연동화나 기존 소설의 단순 낭독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야기판을 펼친다. 오디오 퍼포먼스로도 만나볼 수 있다.

[책속으로 추가]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우마.”
호랑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은 것만 아니라, 그 순간 사람 말을 할 수도 있었던 거지. 둘 다 깜짝 놀랐어. 머슴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어.
“딱 하나 도와주실 일이 있습니다. 주인 영감이 그동안 새경을 한 푼도 계산해주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그냥 넘길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간 장가도 못 갈 처지라니까요.”
“머슴살이가 쉽지 않다던데 새경까지 안 줘?”
“말도 마십시오, 제 처지. 형님은 그동안 새끼도 봤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아직 장가도 못 갔다니까요. 새경을 받지를 못 하니 나아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형님이 좀 도와주십시오. 주인집 부근까지 와 있다가 제가 신호를 보내면 뒷숲에서 어흥! 하고 한번 크게 울어나 주십시오. 아니면, 담장 너머 마당으로 한번 그 모습만 보여주셔도 좋겠습니다요.”
호랑이야 이미 감동해 아우를 도울 생각이었지. 그러니 청을 안 들어줄 리 없었지.
-[어흥] p. 58-59

차복이의 볼로는 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통곡이 솟구쳐 오르는 순간 차복이는 몸을 돌려 옥황상제의 옷자락을 붙잡으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 그리고는 울면서 사정하기 시작했어.
“상제님, 제발 제 소청을 좀 들어주십시오. 석숭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사옵니다만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니 저 복, 저 복주머니를 좀 빌려준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석숭의 복을 빌려 쓰게 해 주십시오. 석숭이 태어나면 반드시 돌려주겠습니다. 나무 한 짐밖에 제 복이 없다는 걸 알게 되니 더 살아갈 힘마저 나지 않습니다. 저처럼 배운 것 없고 가난한 각시의 목숨까지 앗아가지는 마옵소서. 저희 부부 세끼 밥 먹기도 빠듯하지만, 아직 누구의 것을 훔치지도 않았습니다. 누구의 것을 훔쳐와 그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단 말씀이옵니다. 부디 얼마 동안이라도 저 주머니를 빌려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디!”
터무니없는 청이었지. 들어주리라 생각하고 한 청도 아니었어. 통곡을 참다 보니 나오게 된 소리일 뿐이었어. 그런데 그 뜻밖의 청을 듣고 있는 옥황상제의 표정이 난감해지는 거야. 한동안의 무거운 침묵 뒤 상제의 입이 열렸어.
“듣고 보니 그도 그렇긴 하구나. 한동안 빌려주는 것이야 무슨 상관이겠느냐. 내 그리 하마.”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차복이보다 먼저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은 것은 신하였지. 지상의 인간이 하늘에 올라온 것만도 경악할 일인데 복주머니를 빌려준다니 어찌하시려는 것이냐고 막아 나섰지. 차복이는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는 고개를 거듭 조아렸어.
“고맙습니다, 상제님.”
“하지만 때가 되면 복을 돌려주어야 해. 석숭이 일곱 살 되는 해를 넘기면 안 된다.”
이때서야 차복이는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어.
“명심하겠습니다.”
-[복은 빌릴 수도 있지] p. 81-82

아닌 게 아니라, 그는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지.
호랑이에게 물려 죽지 않았으나 다시 살 길이 열렸다고 확신하고 있지는 못 했어.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게 되면, 살아 돌아오게 된 그 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도 하는 법이잖아. 그런데 그에게는 아직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소리네. 사실 그는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헤아리기가 어려웠어.
여하튼 정신 나간 사람처럼 휘적휘적 돌아가는데, 돌아가자면 장터를 지나가게 되는데, 장터에서 그는 드디어 호랑이눈썹을 제 오른쪽 눈 위에 가져가보았어. 호랑이눈썹을 제 눈썹 위에 겹쳐놓았더니만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지 뭐겠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장터의 사람들이 사람 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짐승 꼴을 하고 있는 거야. 사람들이 하나같이 개니 돼지니 하는 짐승들로 바뀌어 보이더라 이거야. 흠칫 놀라 호랑이눈썹을 제 눈썹에서 떼어놓았더니 소니 말이니 하는 짐승이 순식간에 사람으로 바뀌잖겠어?
몇 번을 되풀이했는데 마찬가지야.
호랑이눈썹을 떼나 붙이나 마찬가지로 사람인 사람은 그때 그가 장터에서 본 바로는 서넛밖에 되지 않았어.
산중 호랑이가 준 눈썹은 사람과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을 구별해주는 신기한 물건이었던 것이지. 신기한 물건인 것은 틀림없었지. 그런데 어디에 요긴하게 쓰일지는 알 수 없었지.
알 수 없었지만 제집으로 간 그는 문을 밀고 들어가기 전에 호랑이눈썹을 찾아 손끝으로 쥐었지.
아무 기척이 없어서 그냥 들어가려 했어. 그때 부엌에서 마른 솔가지가 뚝 부러지는 소리가 나. 부엌으로 향하며 호랑이눈썹을 제 눈 위에 갖다 대었더니, 마침 문이 열리고 성질이 뻗친 아내 얼굴이 보이는가 싶더니, 암탉 한 마리가 꼬꼬댁거리고 있지 뭐야.
그의 아내는 암탉이었지.
-[흰 눈썹 휘날리며] p.135-137

옛날 옛적에 혼인을 하고 십 년도 더 된 부부가 있었습니다. 혼인하고 십 년이 다 되었는데, 좀체 아이가 생기지를 않았지요.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부인은 남편과 함께 산신령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새벽마다 물을 한 사발 떠놓고 더 늦기 전에 아이 하나라도 점지해 달라고 기도했지요. 한동안 함께 기도하던 남편이 슬그머니 빠지고 부인 혼자서 기도를 계속하던 어느 날 밤 꿈에 수염 허연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며칠 뒤 텃밭에 오이 세 개가 유난히 크게 나올 것이다. 그걸 먹으면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한눈에 구분될 만큼 큼지막한 오이 세 개가 며칠 뒤 정말 그 집 텃밭에 있었습니다. 부인은 꿈에 나타난 노인이 산신령님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두 손을 모았지요.
그리고 그 오이 세 개를 먹는데, 워낙 큰 오이라 쉬어가며 먹는데, 산밭에 나갔다 돌아온 남편이 목마르다기에 우물물을 떠주려는데, 그 잠깐 사이에 남편이 남은 마지막 오이를 덥석 베어 먹지 뭡니까. 부인이 놀라 우물물을 쏟고 달려갔는데, 이미 반절은 남편 입속에 들어갔지요. 부인이 꿈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남편은 오이를 우물우물 씹어 먹었지요. 다 듣고선, 남은 반 토막 오이를 내밀어요.
그 일 뒤 오래잖아서 부인한테 태기가 있었어요.
오이 반쪽 못 먹은 건 다 잊을 만큼 배가 불러왔지요. 배가 왜 남다르게 부르나 싶었는데, 삼형제를 낳게 되었답니다. 삼형제를 낳았는데, 첫째도 둘째도 멀쩡한데, 셋째가, 이게, 이게 반쪽인 겁니다. 눈도 하나요, 귀도 하나. 팔도 하나요, 다리도 하나. 입이랑 코는 반쪽씩. 그래 반쪽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주먹이가 주먹만 해서 주먹이가 되었듯 반쪽이는 모든 게 반쪽밖에 없어서 반쪽이가 되었지요.
-[주먹이냐 반쪽이냐] p. 202-203

어느 시골에 총각 하나가 있었습니다. 서른 넘도록 장가 못 간 총각이었지요. 하루는 이 총각이 새끼를 꼬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서울구경을 가보겠다면서 말입니다. 그동안 받은 새경으로 얼마간 모은 돈으로 멋들어진 활을 하나 구하는 거예요. 머슴 살던 총각이 난데없이 활 장만하곤 서울구경을 간다니 우습지요. 동리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웃어요. 그래도 이 총각 당당히 서울로 떠났습니다. 부지런히 서울로 가던 이 총각이 어느 길가에서 쉬다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나무 아래에 꿩 두 마리가 떨어져 있는 걸 봤습니다. 총각은 얼른 그놈들 주워서 화살에 척 끼웠습니다. 그리고 또 갔지요.
마침내 서울에 왔지요. 왔는데, 아이들이 따라붙는 겁니다. 화살에 꿩 두 마리가 꿰인 게 신통하게 보였나 봅니다. 와, 대단한 명궁이라고, 화살 하나로 꿩 두 마리를 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