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모든 것이 예술, 모든 인간은 예술가
오늘날 예술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 세기 전에는 도저히 예술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것도 예술의 지위을 누린다. 돌무더기, 죽은 동물의 사체, 책 더미도 예술작품이 되며, 심지어 물질적 대상이 지속하지 않는 퍼포먼스, 물질에서 해방된 인간의 개념에 기초한 활동도 예술의 이름을 얻는다. 예술 작품을 포함한 예술활동 전체가 신체기관의 쾌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선입견도 오늘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불쾌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예술의 부분으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모든 것이 예술이다’ 또는 ‘모든 인간은 예술가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아방가르드의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예술지형을 증언하고 있다.
오늘날 예술의 지형을 가장 정직하게 설명하는 것은 ‘예술다원주의’일 것이다. 예술다원주의는 ‘이것이 예술이다’는 배타적 예술의 정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이른바 ‘예술의 종말’ 선언에서 정당성을 찾는다.
그러나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여 예술의 영토를 넓힌 예술다원주의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예술에서 다원주의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상대주의 딜레마의 늪에 빠진 것이다. 아도르노가 지적하듯이 오늘날 예술에 대한 논의가 넘쳐나지만 ‘예술에서 자명한 것이 없다’는 사실만이 자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예술의 생리적 조건
예술다원주의가 표방하는 ‘확장된 예술 정신’을 옹호하면서도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할 길은 없을까?
이 책은 예술의 발원지로 돌아가 이 문제에 도전한다. 예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어원은 아이스테시스, 즉 감각이다. 감각에서 유래하는 정서 혹은 감응을 조직하는 것이 예술활동이다. 춤과 노래가 시원적 예술양식이라는 것 역시 감각과 예술의 관계를 말해준다. 예술과 감각, 삶의 동근원성에 대해서는 예술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동의한다. 인간이 자신의 감흥을 조직하고 형상화하는 일체의 것을 예술로 본다는 점에서 예술다원주의는 예술, 감각, 삶의 동근원성을 옹호한다.
예술의 생리적 조건에 주목하고 자신의 예술철학을 펼친 대표적인 철학자로 니체, 듀이, 들뢰즈가 있다. 이들은 활동 시기, 철학의 배경, 철학의 목표에서 서로 다르지만, 예술을 감각과 그것의 발원지인 신체로 소급한 점에서는 일치한다. 니체의 도취, 듀이의 경험, 들뢰즈의 감각은 예술과 생리학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세 철학자는 모두 창작행위와 예술작품, 감상행위를 구분하는 근대적 태도를 거부한다. 예술의 기원이 감각에서 비롯되었다면, 감각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여 조형하는 인간의 행위는 모두 예술의 지위를 가져야 마땅하다. 동시에 이들은 인간의 예술적 행위와 그 결과물을 평가하는 기준도 존재한다고 본다. ‘힘에의 의지’, ‘하나의 경험’ 그리고 ‘구성된 감각’이 바로 그것이다.
니체, 듀이, 들뢰즈는 감각적 힘을 발휘하여 세계를 조형하는 일체의 행위를 예술로 본다는 점에서 예술다원주의의 확장된 예술관을 옹호한다. 동시에 이들의 이론은 예술다원주의가 봉착한 상대주의의 문제를 해소할 기준도 제시한다. 따라서 세 철학자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진 복잡한 예술지형을 이해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즉 세 철학자의 이론은 현대미술, 현대음악, 현대무용, 매체예술까지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된다.
오늘날 예술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 세기 전에는 도저히 예술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것도 예술의 지위을 누린다. 돌무더기, 죽은 동물의 사체, 책 더미도 예술작품이 되며, 심지어 물질적 대상이 지속하지 않는 퍼포먼스, 물질에서 해방된 인간의 개념에 기초한 활동도 예술의 이름을 얻는다. 예술 작품을 포함한 예술활동 전체가 신체기관의 쾌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선입견도 오늘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불쾌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예술의 부분으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모든 것이 예술이다’ 또는 ‘모든 인간은 예술가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아방가르드의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예술지형을 증언하고 있다.
오늘날 예술의 지형을 가장 정직하게 설명하는 것은 ‘예술다원주의’일 것이다. 예술다원주의는 ‘이것이 예술이다’는 배타적 예술의 정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이른바 ‘예술의 종말’ 선언에서 정당성을 찾는다.
그러나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여 예술의 영토를 넓힌 예술다원주의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예술에서 다원주의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상대주의 딜레마의 늪에 빠진 것이다. 아도르노가 지적하듯이 오늘날 예술에 대한 논의가 넘쳐나지만 ‘예술에서 자명한 것이 없다’는 사실만이 자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예술의 생리적 조건
예술다원주의가 표방하는 ‘확장된 예술 정신’을 옹호하면서도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시할 길은 없을까?
이 책은 예술의 발원지로 돌아가 이 문제에 도전한다. 예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어원은 아이스테시스, 즉 감각이다. 감각에서 유래하는 정서 혹은 감응을 조직하는 것이 예술활동이다. 춤과 노래가 시원적 예술양식이라는 것 역시 감각과 예술의 관계를 말해준다. 예술과 감각, 삶의 동근원성에 대해서는 예술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동의한다. 인간이 자신의 감흥을 조직하고 형상화하는 일체의 것을 예술로 본다는 점에서 예술다원주의는 예술, 감각, 삶의 동근원성을 옹호한다.
예술의 생리적 조건에 주목하고 자신의 예술철학을 펼친 대표적인 철학자로 니체, 듀이, 들뢰즈가 있다. 이들은 활동 시기, 철학의 배경, 철학의 목표에서 서로 다르지만, 예술을 감각과 그것의 발원지인 신체로 소급한 점에서는 일치한다. 니체의 도취, 듀이의 경험, 들뢰즈의 감각은 예술과 생리학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세 철학자는 모두 창작행위와 예술작품, 감상행위를 구분하는 근대적 태도를 거부한다. 예술의 기원이 감각에서 비롯되었다면, 감각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여 조형하는 인간의 행위는 모두 예술의 지위를 가져야 마땅하다. 동시에 이들은 인간의 예술적 행위와 그 결과물을 평가하는 기준도 존재한다고 본다. ‘힘에의 의지’, ‘하나의 경험’ 그리고 ‘구성된 감각’이 바로 그것이다.
니체, 듀이, 들뢰즈는 감각적 힘을 발휘하여 세계를 조형하는 일체의 행위를 예술로 본다는 점에서 예술다원주의의 확장된 예술관을 옹호한다. 동시에 이들의 이론은 예술다원주의가 봉착한 상대주의의 문제를 해소할 기준도 제시한다. 따라서 세 철학자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 앞에 펼쳐진 복잡한 예술지형을 이해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즉 세 철학자의 이론은 현대미술, 현대음악, 현대무용, 매체예술까지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된다.
감각의 부활 : 예술생리학과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 (양장)
$2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