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13.80
Description
《달의 조각》 하현 작가의 신작 에세이
의지박약형 인간이자 안전제일주의자의 실패해도 괜찮은 안전한 도전기!
작가 하현이《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이후 일 년 만에 새로운 책으로 독자를 만난다. 집과 도서관, 집 근처의 카페, 지인들과의 작은 모임들… 여유롭고 오롯이 글만 쓰며 지내온 2년 동안의 삶은 작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었다.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계획하며 보냈다. 귀하디귀한 평온한 일상이 조금씩 단조롭게 느껴진 작가는, 신선한 자극이 필요했다. 무언가를 배워볼까 하는 결심이 섰지만, 결과에 따른 타격은 없었으면 하는 안전한 도전이 필요했기에 선뜻 무언가를 내키는 대로 시작할 수는 없었다.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접근성이 뛰어난 학원을 찾다 보니 아무래도 외국어였고 배워 본적 없는 낯선 언어였으면 좋겠다는 조건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스페인어였다. 그다지 멀지 않은 홍대에 학원이 있어서였나,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언어라는 말에 혹해서였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특별해 보여서 였나. 적당한 노력으로 대단한 결과를 이루고 싶은 도둑놈 심보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고 싶은 욕심. 그런 마음이 나를 배움의 길로 인도했다. 배움이란 무릇 숭고해야 한다고, 세상은 지금껏 나를 그렇게 가르쳤지만. 아니, 왜 꼭 그래야 하지?”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됐다. 작가는 2개월간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7개월간 스페인어를 배우고 3개월간 그간 조금씩 써둔 원고를 완성도 있게 만들며 한 해를 보냈으며, 일 년 동안의 이야기는 한 권의 책으로 남았다. 작가는 스페인어와 사회를, 스페인어와 역사를, 스페인어와 개인의 추억을, 스페인어와 우리의 삶을 씨실과 날실을 엮어내듯 글로 써냈다. 이 책에는 스페인어에 관한 이야기 혹은 언어를 배우는 이야기보다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넓고 깊어진 작가의 생각을 담겨 있다. 작가의 생각을 따라 읽다 보면, 불현 듯 스페인어를 혹은 낯선 언어를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더불어 단순히 언어가 아닌 언어 속에 숨어 있는 각자의 삶을, 우리의 삶을 생각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저자

하현

말을아껴그것을기록하는일을좋아합니다.
《달의조각》《이것이나의다정입니다》를썼습니다.

목차

cero.프롤로그
:어쩌다보니스페인어였습니다.

uno.내이름은루시
:여러종류의자아를적당한비율로배합하는일.

dos.거울앞에서혀내밀기
:안되는건빠르게포기하세요.

tres.lachica,unachica
:정관사적삶,부정관사적삶.

cuatro.주스는델몬트,냉장고는디오스
:아는만큼보이는생활속스페인어.

cinco.성을가진명사들
:기본형이될수없는사람.

seis.없는말을만드는마음
:하나의목적어를위한동사.

siete.Medianaranja
:오렌지반쪽,나의소울메이트.

ocho.ser동사와ester동사
:본질과상태,존재를구성하는것들.

nueve.에어포트라인이즈딥블루
:힘센언어로말하는사람의마음.

diez.Mybodymychoice
:걷고싶은거리,살고싶은거리.

once.Micasaestucasa
:내집은어디에.

doce.동사변화,암기지옥입성기
:서로다른예민함과섬세함을가진언어들.

trece.PM7:30,AM11:00
:하루치에너지를남김없이소진하고나면.

catorce.질문있습니다
:모르는걸모른다고말할용기.

quince.감사합니다,맛있게드세요
:가장유창한한마디.

diecise’is.Losd?asdelasemana
:월요일부터일요일까지.

diecisiete.중급반이야기
:누군가의절실함앞에서한없이작아지는순간.

dieciocho.?engohambre!
:손에든허기를식탁에내려놓고.

diecinueve.나베르와한들레
:내일을바꾸는가장쉬운방법.

veinte.당신과당신들
:세계의확장,새로운개념을배우는일.

veintiuno.노력의동기
:젤리와푸딩사이,한없이말랑한나의자존심.

veintido’s.컨닝의역사
:폭력으로얼룩진교실.

veintitre’s.해야만하는것들
:개인의의무와공공의의무.

veinticuatro.반역자의마음
:흥많은나라의조용한개인주의자.

veinticinco.다시돌아오는말
:재귀동사,돌고돌아다시안쪽을향해.

veintise’is.한낮의휴식,시에스타
:알고보면꽤근사한거리.

veintisiete.일단멈춤,여름방학
:포기가간절할땐브레이크를.

veintiocho.여름방학일기,하나
:그러니까그건노력밖의영역.

veintiueve.여름방학일기,둘
:개를물어뜯는개.

treinta.여름방학일기,셋
:달리와로르카,그들이사는세상.

treintayuno.여름방학일기,넷
:개학전야.

treintaydos.주말반이야기
:어쩌다보니세번째반.

treintaytres.나는다른걸생각해
:이토록현실적인대화.

treintaycuatro.과거와과거와과거
:지나치게바른문장.

treintaycinco.mueladejuicio
:판단의어금니.

treintayseis.프리랜서생활백서
:조직밖의사람이업무시간을보장받는법.

treintaysiete.엄마라는이름
:우리동네카페의끔찍한선곡센스.

treintayocho.당신의언어가나에게오기까지
:번역과정에서사라지는것들.

treintaynueve.루시를반납하며
:마지막수업에는가지못했습니다.

cuarenta.에필로그
:미안하지만열린결말입니다

출판사 서평

▶내이름은루시.나는기본형이될수없다.여교사(profesora),여비서(secretaria),여학생(alumna)은될수있을지몰라도교사(profesor),비서(secretario),학생(alumno)은될수없는것이다.익숙한전개에씁쓸함을느낀다.작가가되고싶다는나를굳이‘여류작가’로지칭하던어떤사람들을떠올려본다.차별의역사는너무깊고견고하다.동아시아의작은나라에서도,저기멀리유럽과남미에서도.

▶어떤모양일까.너무좋아해서없는말을만드는마음은.하나의목적어를위한애칭같은동사,귀여운말놀이.그런말몇개쯤손에쥐고있으면이험난한세상과그럭저럭싸워볼수있을것같다.사는게조금은덜막막할것같다.

▶수업시작전잠시바람을쐬던바로그걷고싶은거리.그곳에서나는생경한공포를느꼈다.목소리를내는여성으로존재했기에.그것은여전히지탄의대상이기에.그날의걷고싶은거리에서우리는간절히살고싶었다.끝까지살아남아사람으로살고싶었다.

▶고된회사생활을마치고뭔가를배우러학원에온것자체가대단한거였다.야근때문에수업을놓치면주말에보강을들어서라도진도를맞추는사람들이었다.그들의하루를구체적으로상상해본적도없으면서희미한자아를꺼내놓았다느니,생기가없다느니…마음대로판단하고분석했던게부끄러웠다.
살아본적없는삶을멋대로재단하는건얼마나오만한가.반의반도알지못하는사람을내눈에보이는대로단정짓는건얼마나건방진가.스페인어보다먼저그걸배웠어야했다.비행기로열네시간이걸리는나라의언어를배우는것보다어려운일은지금여기서사람이되는거였다.다시생각해보면미용실에다녀온걸알아봐준사람도있었는데.조용한눈인사도충분히다정했는데.

▶스페인어수업시간에는질문이두렵지않다.모르는게당연하니까.이제막말을배우기시작한아이처럼우리에겐모든단어가낯설고신기하니까.바보같은질문을하면좀어떤가.어차피우리는이시간만끝나면다시남이되는걸.삶에깊숙이들어와있지않은사람들앞에서는창피한모습을보여도별타격이없다.
스페인어를배우며질문할용기를조금씩되찾고있다.타인의시선을두려워하지않고모르는걸모른다고말할수있는이시간이,궁금한걸마음껏질문할수있는이관계가나를얼마나성장시키는지.스페인어를배우기전까지는그걸미처몰랐다.

▶내세계에존재하지않았던개념을완벽하게이해하는일은애초에불가능하지않을까.하여그냥받아들이는것이다.저멀리스페인이라는나라에는그런것도있구나,생각하면서.“내친구루이스는어제영화를보셨습니다.”아이들의것처럼깜찍하지는못한실수를하며낯선규칙을배워가는중이다.세계는이렇게확장된다.

▶내게로다시돌아오는말.어렵고복잡하고때로는이해할수없어도재귀동사는꼭필요하다.바깥쪽을향했던마음이돌고돌아다시안쪽을향하는일이그러하듯이.그래야만스스로할수있는일들이있다.실은아주많다.스페인어의재귀동사처럼.

▶별다른감흥을느끼지못했던로르카의시를스페인어로읽었다면달랐을까.그의언어가나의언어로번역되는동안에도어떤것들이사라졌을까.언젠가스페인어권젊은작가들의소설을원서로읽게되는날을상상해본다.언어의국경을자유롭게넘나들며그들의문장을날것그대로흡수하는날을.소름이돋을정도로멋진책의마지막페이지를쓰다듬으며이렇게말할지도모를일이다.
역시스페인어를배우길잘했어.이작가의언어를이해한다는건정말로행운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