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서울 사대문안과 성저십리의 옛 서울은 조선시대 500년, 일제 35년, 대한민국 70년의 역사가 깊이 새겨진 곳이다. 그 공간 가운데 어떤 곳의 역사는 완전히 잊혔고, 어떤 곳은 아직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 공간들은 과연 우리 역사에서 무엇이었는지, 또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현재의 정치, 사회, 문화 이슈와 연결해 살펴본다.
이 책은 옛 서울의 공간을 네 부분으로 나눠 살펴본다. 서촌 북쪽, 서촌 남쪽과 창의문 밖, 서울 북쪽, 서울 남쪽과 용산이다. 1부 서촌 북쪽은 왕가와 사대부, 대통령의 공간이다. 이곳엔 준수방, 장동(장의동), 수성동, 청풍계, 옥류동 등이 있다. 준수방과 수성동은 태종과 세종, 문종, 세조, 안평, 효령 등이 살고 활동했던 곳이다. 장동과 청풍계는 장동 김씨를 비롯한 사대부와 대통령의 공간이었고, 옥류동은 사대부와 중인이 어울린 공간이었다.
2부 서촌 남쪽과 창의문 밖은 서촌 북쪽보다 더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필운대처럼 사대부와 중인이 함께 산 곳도 있었고, 인경궁처럼 왕의 공간이었다가 평민의 공간으로 극적으로 바뀐 곳도 있었다. 창의궁과 월성위궁은 여전히 왕가의 공간이었고, 인왕산과 백석동천은 사대부의 공간이었다. 석파정은 사대부에서 왕가로 주인공이 바뀌었다.
3부 서울 북쪽은 압도적으로 왕가와 사대부의 투쟁과 협력의 공간이었다. 한양과 육조거리 등은 왕과 사대부가 함께 만들었으며, 경복궁과 창덕궁, 송현동엔 왕가와 사대부 사이의 권력 투쟁이 새겨져있다. 의정부와 사헌부는 왕과 사대부의 협력 정치의 공간이었다. 반면, 선원전과 경희궁은 오롯이 왕의 공간이었다.
4부 서울 남쪽과 용산은 좀더 복잡하다. 광통교처럼 왕가 내부의 투쟁이 서린 곳도 있고, 건천동처럼 사대부의 비주류 영웅들이 태어난 곳도 있었다. 청계천과 약현은 사대부와 중인, 평민이 어울렸던 곳이었고, 용산은 외세와 권력자의 공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일제에 의한 지명의 왜곡 역사를 살폈다.
이 책은 지은이가 새로 밝힌 내용이나,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했다. 예를 들어 준수방 잠저(장의동 본궁)에선 태종과 세종이 살았을 뿐 아니라 문종과 세조도 태어났다는 점, 필운대의 원래 주인은 권율이 아니라 그 아버지 권철이었다는 점을 새로 밝혔다. 또 통의동 백송은 김정희의 집이 아니라 영조의 집 안에 있었다는 점, 〈인왕제색도〉 속 집은 정선의 집으로 추정된다는 점, 백석동천(백사실)의 역대 주인은 최소 3명이었다는 점 등을 새로 소개했다.
특히 이 책에선 서촌의 전통적인 지명이 ‘장동’이라는 점을 여러 기록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이방원이 자신의 집을 ‘장의동 본궁’이라고 불렀고, 서촌을 대표하는 사대부 집안이 김상헌의 후손인 ‘장동 김씨’이며, 영조는 자신의 집 창의궁이 ‘장의동’에 있다고 썼고, 김정희도 자신의 집이 ‘장동’에 있다고 썼다. 정선은 서촌의 8개 멋진 풍경을 〈‘장동’팔경첩〉으로 그렸다. 세검정에 있던 ‘장의사’와 한양도성 북문 ‘창의문’, 영조의 잠저 ‘창의궁’은 ‘장동(장의동)’이란 지명과 친족 관계에 있다.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촌 역사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중층적이고, 동시대적으로도 다양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통인동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의 집이 있던 곳이지만, 조선 시대 대부분 기간엔 내시부와 사포서, 내섬시 등 왕실의 기관이 있었고, 현재는 주택과 통인시장, 참여연대, 청와대 경찰경호대 등이 있는 곳이다.
또 서촌은 동시대에도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살았다. 이것은 사대부 일색이었던 북촌과 구별되는 점이다. 조선 중기 이후 서촌의 북부엔 장동 김씨 등 사대부가 대대로 살았고, 서촌 남부엔 광해군의 궁궐 인경궁이 들어섰다가 철거되면서 군인과 평민들이 대거 들어가 살았다. 사대부와 중인의 공동 거주 구역이 현재의 수성동과 옥류동 일대다. 한편, 경복궁과 붙어있는 서촌의 동부는 여전히 왕실 지역으로 창의궁과 월성위궁, 육상궁, 사재감과 같은 왕가의 사저와 사당, 기관들이 자리 잡았다.
저자는 역사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은 본질적으로 아무 뜻이 없다고 말한다. 거꾸로 후대의 우리가 역사에 뜻을 심는 것이고, 역사에서 가르침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역사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이야기’라고 한다. 역사가 만들어준 풍부한 이야기들을 잘 가꿔나가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좋은 태도라는 것이다. 이 책도 서촌과 서울의 풍부한 이야기를 우리 시대에 가꿔나가려는 작은 노력일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서울엔 깊은 역사가 있고 많은 이야기가 있다. 서울은 더할 것 없이 극적이고 푸짐한 이야기의 보물창고다. 그런 점에서 이젠 서울이라는 보물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다른 지역에서, 다른 계급에게서 빼앗아온 그 보물들을 그 지역과 그 계급에 돌려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서촌과 서울이라는 공간에 쌓인 역사를 돌아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아있다. 저자는 구체적 공간이 없는 역사는 허공에 떠 있는 연기와 같고, 그냥 책 속의, 글자 속의 역사일 뿐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구체적 공간과 만날 때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들고 서촌과 서울의 공간들을 찾아가 역사의 존재를 한번 느껴보면 어떨까?
이 책은 옛 서울의 공간을 네 부분으로 나눠 살펴본다. 서촌 북쪽, 서촌 남쪽과 창의문 밖, 서울 북쪽, 서울 남쪽과 용산이다. 1부 서촌 북쪽은 왕가와 사대부, 대통령의 공간이다. 이곳엔 준수방, 장동(장의동), 수성동, 청풍계, 옥류동 등이 있다. 준수방과 수성동은 태종과 세종, 문종, 세조, 안평, 효령 등이 살고 활동했던 곳이다. 장동과 청풍계는 장동 김씨를 비롯한 사대부와 대통령의 공간이었고, 옥류동은 사대부와 중인이 어울린 공간이었다.
2부 서촌 남쪽과 창의문 밖은 서촌 북쪽보다 더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필운대처럼 사대부와 중인이 함께 산 곳도 있었고, 인경궁처럼 왕의 공간이었다가 평민의 공간으로 극적으로 바뀐 곳도 있었다. 창의궁과 월성위궁은 여전히 왕가의 공간이었고, 인왕산과 백석동천은 사대부의 공간이었다. 석파정은 사대부에서 왕가로 주인공이 바뀌었다.
3부 서울 북쪽은 압도적으로 왕가와 사대부의 투쟁과 협력의 공간이었다. 한양과 육조거리 등은 왕과 사대부가 함께 만들었으며, 경복궁과 창덕궁, 송현동엔 왕가와 사대부 사이의 권력 투쟁이 새겨져있다. 의정부와 사헌부는 왕과 사대부의 협력 정치의 공간이었다. 반면, 선원전과 경희궁은 오롯이 왕의 공간이었다.
4부 서울 남쪽과 용산은 좀더 복잡하다. 광통교처럼 왕가 내부의 투쟁이 서린 곳도 있고, 건천동처럼 사대부의 비주류 영웅들이 태어난 곳도 있었다. 청계천과 약현은 사대부와 중인, 평민이 어울렸던 곳이었고, 용산은 외세와 권력자의 공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일제에 의한 지명의 왜곡 역사를 살폈다.
이 책은 지은이가 새로 밝힌 내용이나,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했다. 예를 들어 준수방 잠저(장의동 본궁)에선 태종과 세종이 살았을 뿐 아니라 문종과 세조도 태어났다는 점, 필운대의 원래 주인은 권율이 아니라 그 아버지 권철이었다는 점을 새로 밝혔다. 또 통의동 백송은 김정희의 집이 아니라 영조의 집 안에 있었다는 점, 〈인왕제색도〉 속 집은 정선의 집으로 추정된다는 점, 백석동천(백사실)의 역대 주인은 최소 3명이었다는 점 등을 새로 소개했다.
특히 이 책에선 서촌의 전통적인 지명이 ‘장동’이라는 점을 여러 기록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이방원이 자신의 집을 ‘장의동 본궁’이라고 불렀고, 서촌을 대표하는 사대부 집안이 김상헌의 후손인 ‘장동 김씨’이며, 영조는 자신의 집 창의궁이 ‘장의동’에 있다고 썼고, 김정희도 자신의 집이 ‘장동’에 있다고 썼다. 정선은 서촌의 8개 멋진 풍경을 〈‘장동’팔경첩〉으로 그렸다. 세검정에 있던 ‘장의사’와 한양도성 북문 ‘창의문’, 영조의 잠저 ‘창의궁’은 ‘장동(장의동)’이란 지명과 친족 관계에 있다.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촌 역사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중층적이고, 동시대적으로도 다양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통인동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의 집이 있던 곳이지만, 조선 시대 대부분 기간엔 내시부와 사포서, 내섬시 등 왕실의 기관이 있었고, 현재는 주택과 통인시장, 참여연대, 청와대 경찰경호대 등이 있는 곳이다.
또 서촌은 동시대에도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살았다. 이것은 사대부 일색이었던 북촌과 구별되는 점이다. 조선 중기 이후 서촌의 북부엔 장동 김씨 등 사대부가 대대로 살았고, 서촌 남부엔 광해군의 궁궐 인경궁이 들어섰다가 철거되면서 군인과 평민들이 대거 들어가 살았다. 사대부와 중인의 공동 거주 구역이 현재의 수성동과 옥류동 일대다. 한편, 경복궁과 붙어있는 서촌의 동부는 여전히 왕실 지역으로 창의궁과 월성위궁, 육상궁, 사재감과 같은 왕가의 사저와 사당, 기관들이 자리 잡았다.
저자는 역사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은 본질적으로 아무 뜻이 없다고 말한다. 거꾸로 후대의 우리가 역사에 뜻을 심는 것이고, 역사에서 가르침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역사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이야기’라고 한다. 역사가 만들어준 풍부한 이야기들을 잘 가꿔나가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좋은 태도라는 것이다. 이 책도 서촌과 서울의 풍부한 이야기를 우리 시대에 가꿔나가려는 작은 노력일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서울엔 깊은 역사가 있고 많은 이야기가 있다. 서울은 더할 것 없이 극적이고 푸짐한 이야기의 보물창고다. 그런 점에서 이젠 서울이라는 보물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다른 지역에서, 다른 계급에게서 빼앗아온 그 보물들을 그 지역과 그 계급에 돌려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서촌과 서울이라는 공간에 쌓인 역사를 돌아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아있다. 저자는 구체적 공간이 없는 역사는 허공에 떠 있는 연기와 같고, 그냥 책 속의, 글자 속의 역사일 뿐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구체적 공간과 만날 때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들고 서촌과 서울의 공간들을 찾아가 역사의 존재를 한번 느껴보면 어떨까?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 : 역사 속 공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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