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갈릴레오 재판)

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갈릴레오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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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갈릴레오는 과연 과학을 탄압하는 가톨릭교회와 로마 교황청에 용감히 맞서 싸운 영웅이었을까?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관한 일본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학자인 다나카 이치로 교수가 갈릴레오 재판의 진실을 낱낱이 밝힌 『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니콜라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며 지동설을 주창했다는 죄목으로 로마 교황청의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았고, 무기한 투옥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선고받았다.

이 책은 200년 가까이 로마 교황청의 서고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다가 운명적으로 세상에 공개된 갈릴레오 재판 기록에 근거해 집필된 것으로, 400년 전, 위대한 천문학자·물리학자·수학자이며 독실한 가톨릭교도였던 갈릴레이를 피고인으로 이단 심판을 벌인 그 법정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살펴본다. 당시 종교재판 절차를 재현해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못된 재판이나 누명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자 한다.
저자

다나카이치로

고베시에서태어나고베대학교문학부를졸업했으며,도쿄대학교대학원이과계연구과석사과정을수료했다.「근대유럽의특허제도기원과기술혁신연구-1474년베네치아특허법성립을중심으로」라는긴제목의학술논문으로가나자와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취득했다.전공은과학기술사다.니혼대학교이공학부조교수로일했으며,이후가나자와대학교이학부자연과학연구과교수로도재직했다.2012년에가나자와대학에서정년퇴임했으며,현재명예교수이자가나자와의과대학초빙교수로활동하며집필에전념한다.‘갈릴레오갈릴레이’에관한일본최고전문가로인정받는학자로,『갈릴레오비호자들의그물속에서』를비롯한과학사서적을다수집필하고번역출간했다.

목차

저자서문

1.갈릴레오를사랑했던나폴레옹
2.종교재판
3.은밀하게다가오는위기
4.서막-1616년종교재판
5.『천문대화』
6.재판개시
7.제1차심문-1632년4월12일
8.제2차심문-1632년4월30일
9.제3차심문-1632년5월10일
10.판결
11.“그래도지구는돈다”

주요등장인물
저자후기
주요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누명인가?음모인가?
갈릴레오갈릴레이는과연과학을탄압하는가톨릭교회와
로마교황청에맞서싸운영웅이었을까?


과학과진실을탄압하는가톨릭교회와로마교황청에맞서싸우다감옥에갇혀신음하는‘영웅적과학자’갈릴레오갈릴레이.이는18세기철학자볼테르를비롯한계몽주의자들에의해하나의‘신화’로완성되었으며,나폴레옹도그열렬한신봉자중하나였다.그러나아이러니하게도갈릴레오를사랑했던나폴레옹이로마교황청의바티칸서고와이단심문소에서총3,239상자,책10만2,435권분량의문서를약탈하면서갈릴레오재판에관한중요한문서도함께프랑스로이송되었다.그리고그중상당부분이소실됨으로써갈릴레오를둘러싼진실을밝히는데결정적걸림돌이되었다.나폴레옹이권력을잃고몰락한이후교황청은집요한노력끝에‘갈릴레오재판기록’중일부문서를간신히되찾아오는데…….

400년전,위대한과학자이자독실한가톨릭교도였던갈릴레오갈릴레이를피고인으로이단심판을벌인그법정에서는대체무슨일이있었던걸까?

400년동안베일에감춰져있던‘갈릴레오재판기록’이
오롯이세상에모습을드러내다

근대물리학의기초를닦은물리학자이자아인슈타인·뉴턴과함께인류과학사에뚜렷한발자취를남긴위대한과학자갈릴레오갈릴레이.그는과연과학을탄압하는가톨릭교회와로마교황청에용감히맞서싸운영웅이었을까?또한,그는오늘날평범한초등학생도알정도로유명한“그래도지구는돈다”라는말을실제로했을까?
도서출판사람과나무사이에서갈릴레오갈릴레이에관한일본최고전문가로인정받는학자인다나카이치로교수가‘갈릴레오재판’의진실을낱낱이밝힌책『400년전,그법정에서는무슨일이있었나?』가출간되었다.

1633년,갈릴레오갈릴레이는니콜라코페르니쿠스를지지하며지동설을주창했다는죄목으로로마교황청의종교재판에회부되어재판을받았다.그리고역사적인재판에서갈릴레오는‘무기한투옥’이라는무거운형벌을선고받았다.이튿날바로감형되기는했지만,이상하리만치엄격하고가혹한이판결을두고오늘날까지논란이끊이지않고있다.어떤이는‘명백히잘못된재판’이라규정했고,또어떤이는‘갈릴레오가누명을썼다’고주장했다.그리고또다른어떤이는‘로마교황청과갈릴레오둘다잘못이없다’는양시론까지폈다.진실은과연무엇일까?
오늘날갈릴레오재판에대한수많은주장과억측이난무하고음모론까지종종제기되는이유는무엇일까?흥미롭게도,18세기계몽주의자들과프랑스황제나폴레옹보나파르트의영향이컸다.이점에대한저자의논지를간략히살펴보자.
1798년,나폴레옹보나파르트가이끄는프랑스군이로마를침공했다.나폴레옹은교황비오6세를권좌에서끌어내리고로마공화국수립을선포했다.그리고10여년뒤인1810년에그는로마교황청에보관돼있던대다수문서를약탈하여프랑스로가져갔다.
당시나폴레옹이약탈한문서의양은총3,239상자,책으로는10만2,435권에달했다.그방대한문서들중에는‘갈릴레오재판기록’도포함돼있었는데,나폴레옹은다른어떤문서들보다그것을중요하게여겼다고한다.나폴레옹은왜갈릴레오재판기록을약탈했을까?저자에따르면,“나폴레옹은갈릴레오재판기록을책으로엮어출간하려고했다”고한다.그는과학진보를가로막고진리를왜곡한가톨릭교회의무지몽매함과비합리성을만천하에알리기위한도구로갈릴레오재판기록을활용할속셈이었다.
나폴레옹보나파르트가이런생각을품은데는당대의사회분위기가커다란영향을미쳤다.나폴레옹이프랑스황제의자리에올라전유럽을제패한18세기후반부터19세기전반프랑스는계몽주의의전성기를맞이하고있었다.계몽주의자들은당시프랑스를지배하던귀족과성직자들을거세게비난했다.그들은또마땅히과학적합리주의에따라국가를운영해야하며,신학역시과학의합리성에서벗어날수없다고주장했다.구체제를대표하는가톨릭과성직자들에대항하고자했던계몽주의자들에게갈릴레오는새로운시대정신을대표하는상징적인물로받아들여졌다.정복자나폴레옹의마음에도계몽주의정신이살아숨쉬고있었다.그런터라,그는이탈리아반도침략과이집트원정시당대의프랑스를대표하는과학자들을거느리고갔다.
이런맥락에서,계몽주의를신봉하는나폴레옹에게갈릴레오가겪어야했던모진수난과수모를백일하에드러내는것은가톨릭교회의추잡함과치부를만천하에공개하는정의로운일이었다.다시말해,나폴레옹의갈릴레오사랑에는당대의프랑스지식인사회가공유하는과학적합리주의에대한신봉과구체제계급에대한반감과증오가고스란히반영되어있었다.
그러나나폴레옹의계획은수많은장애물에막혀의도대로실행되지못했을뿐아니라그가실각하고엘바섬에유배당하게되면서귀중한갈릴레오재판기록중상당수가소실되어진실을정확히알기가더어려워졌다.아무튼,로마교황청의집요한노력과프랑스정부의협조에힘입어일부문서나마반환된뒤서고에보관되어대중에공개되지않았다.
그렇게갈릴레오재판기록은200년가까이로마교황청의서고깊숙한곳에서잠자고있다가운명적으로세상에공개되었다.1979년11월10일,당시로마교황이던요한바오로2세의「갈릴레오갈릴레이의위대함을만인이알게하라」라는제목의강론이결정적인역할을했다.바티칸궁전에서열린아인슈타인탄생100주년축전도중있었던강론이었다.이강론을계기로이듬해인1980년에갈릴레오사건조사위원회가조직되었고,10년이남는길고긴조사끝에1992년10월31일보고서가제출되었다.
‘갈릴레오재판기록’의진실이마침내베일을벗고세상에모습을드러내는순간이었다.이책『400년전,그법정에서는무슨일이있었나?』는그기록에근거해집필되었다.400년전,위대한천문학자·물리학자·수학자이며독실한가톨릭교도였던갈릴레이를피고인으로이단심판을벌인그법정에서는대체무슨일이있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