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술관 : 인간의 욕망과 뒤얽힌 역사 속 명화 이야기

부의 미술관 : 인간의 욕망과 뒤얽힌 역사 속 명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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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자본주의를 태동시킨 8가지 욕망의 명화 이야기
마르틴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예술가들의 밥줄을 끊어놓았으며 예술에 치명타를 입혔다. 그러나 종교미술 파괴가 가장 심했던 17세기 대표적인 프로테스탄트 국가 네덜란드에서는 오히려 ‘회화 열풍’이 거세게 불었고 근대 시민 회화가 활짝 꽃을 피웠다. 교회ㆍ왕실 등 부와 권력을 손에 쥔 후원자의 주문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생산 시스템이 ‘기성품 전시 판매’ 방식으로 바뀐 덕분이었다. 그로 인해 미술품의 주요 소비층이 성직자ㆍ왕 등 교회와 세속 권력자에서 ‘일반 시민’으로 바뀌었으며, 그림 소재도 성경 내용이나 신화 이야기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종교개혁이 세계 미술사의 패러다임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셈이었다.

이 책 『부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 지하 금융의 도움이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에서부터 ‘회화가 가진 강력한 프레젠테이션 기능을 간파하고 정치적 선전 도구로 활용한 나폴레옹 이야기’, ‘한때 잡동사니 취급받던 인상주의 회화의 가치를 알아보고 카브리올 레그와 금테 액자를 활용하여 부르는 게 값인 ‘귀하신 몸’으로 둔갑시킨 폴 뒤랑뤼엘의 탁월한 마케팅 전략’ 등 자본주의를 태동시킨 8편의 욕망의 명화 이야기를 다룬다.
저자

니시오카후미히코

1952년생.다마미술대학교교수이자판화가.1992년간행한『별책다카라지마회화읽는법(別冊?島??の?み方)』,『명화수수께끼풀이(名?の謎解き)』로열풍을일으켜대중에게이름을알렸다.다수의미술서와미술프로그램제작?기획에참여했으며,UN지구서밋과아이치만국박람회기획에도참여했다.지은책에『피카소는정말로대단한가?(ピカソは本?に偉いのか?)』,『명화의암호(名?の暗?)』등이있다.

목차

서문_인간의욕망과뒤얽힌명화는어떻게부를창조하고역사를발전시켰나?

제1장_빵집광고로활용된페르메이르그림[우유를따르는여인]

·마르틴루터의종교개혁은왜16세기유럽예술가들의밥줄을끊어놓았나
·‘우상숭배’라는죄목으로교회미술을강하게탄압한네덜란드에서근대시민회화가화려하게꽃피다
·네덜란드미술이종교개혁으로인한‘미술파괴’라는위기를기회로바꾼두가지비결
·미술이교회와왕실의지배체제유지를위한선전도구로활용되던시대
·17세기네덜란드를세계최강미술대국으로만든새로운비즈니스모델,‘기성품전시판매’전략
·레오나르도다빈치와미켈란젤로는왜정물화와풍경화를한점도그리지않았을까?
·가정을돌보는평범한여인이페르메이르그림의당당한주인공이될수있었던이유
·〈우유를따르는여인〉이페르메이르집안의3년치빵값이었다고?
·〈진주귀걸이를한소녀〉의실제모델이페르메이르의연인이었다는주장은사실일까?
·독특한개성과참신한소재로‘작품차별화’에성공하지못하면살아남을수없었던17세기네덜란드화가들
·피카소가끊임없이파격적인기법을탐구하고창조한이유는사진의등장으로화가의밥줄이끊어질지모른다는염려때문이었다는데?!

제2장_천재중의천재다빈치가경제적으로궁핍할수밖에없었던이유

·다빈치의[최후의만찬]이[모나리자]와달리유네스코지정세계문화유산으로등록된이유
·예술가후원자의다섯가지유형
·인류예술사최고의천재다빈치가요즘취업준비생처럼자기소개서를썼다고?
·[최후의만찬]제작이늦어진다는이유로불만을제기한수도원장을유다의모델로그리려했던다빈치
·미켈란젤로의대작[천지창조]를다빈치가그리면4,000년이걸린다?
·불후의명작으로남은[최후의만찬]이당대에는실패한회화로간주될수밖에없었던이유
·다빈치는왜자신의만년방랑길의소중한길동무[모나리자]를캔버스가아닌목판에그렸을까?
·미모의제자살라이와다빈치유언장의풀리지않는수수께끼
·다빈치의3년치연봉에달하는거액을받고프랑스왕실에팔린〈모나리자〉
·움직일수없는그림을움직이게할수있어야돈도움직인다?

제3장_렘브란트는왜자기그림을모사하는‘가짜그림’을양산했나

·17세기네덜란드에서는왜다른나라에는없는‘집단초상화’가경쟁적으로그려졌을까?
·16~17세기네덜란드에빵집,푸줏간보다화가수가훨씬많았다는데?
·렘브란트가거액의돈을투자한아윌렌부르흐공방이모작과위조로돈을버는‘가짜그림생산공장’이었다?
·자신의공방에서자신의작품을모작한상품을양산한렘브란트
·신인화가였던렘브란트가외과의사조합의집단초상화의뢰를받은데에아윌렌부르흐의정치적영향력이한몫했다는의혹은사실일까?
·렘브란트의최고성공작으로손꼽히는〈야경〉은어떻게탄생했나
·골프회원권보다저렴했던‘더치페이’그림값
·‘경제적성공’이가장큰미덕으로여겨졌던17세기네덜란드에서경제적으로파산한렘브란트
·만년에불운이끊이지않았던대화가의일생
·렘브란트는왜‘렘브란트풍’그림을양산했을까?
·오늘날선풍적인기를끄는휴대전화자화상사진‘셀피’의원류를17세기네덜란드자화상,특히렘브란트자화상에서찾는이유

제4장_메디치가문지하금융의도움이없었다면르네상스도없었다?

·메디치은행을유럽최고은행으로키운뛰어난경영자코시모데메디치가교회와예술후원에그토록열성적이었던숨은이유
·기독교는왜그토록강력하게이자를금지했나
·예술후원에만몰두하며가문의재산을축내고메디치은행을경영위기상황으로내몰았던‘위대한로렌초’
·‘이자를이자로보이지않게하는공작’,환전으로막대한부를얻은메디치가문
·‘복식부기’가다른때다른나라아닌12세기이탈리아에서개발된이유
·지하금융의바람막이가되어주었던메디치가문의기상천외한외환트릭
·메디치가의금융업은왜로마교황청과교회지도자들의눈밖에나기시작했을까?
·로마교황청을구워삶아‘교황청의금고지기’가된메디치가문
·‘위대한로렌초’를야박하게평가한마키아벨리가로렌초의조부코시모의정치적수완과경영자로서의재능을칭찬한이유
·당대에그림물감값보다도저렴했던보티첼리의그림값

제5장_‘신의길드’와‘왕의아카데미’가날카롭게대립하던시대

·17세기프랑스왕실미술에학문적권위를부여함으로써촉매제역할을한프랑스아카데미
·루이14세는왜프랑스아카데미에대한전폭적인지원을아끼지않았을까?
·교황의신성함을드러내는도구로사용되던미술품이왕권의권위를홍보하는수단으로활용되다
·‘일하는사람’인노동자가아닌‘일을시키는사람’인스승의불이익을방지하기위한조합,길드
·미켈란젤로가어렵게교황의허가를얻어석공길드를탈퇴한까닭
·원조길드는왜왕립아카데미에서맞아들인길드탈퇴화공과의밥그릇싸움에서밀려났나
·‘신의길드’와‘왕의아카데미’가날카롭게대립하던시대
·다빈치의해부도가책으로만들어져대중에공개되었다면‘해부학의아버지’로자리매김했을것이라는데?
·길드측지도자에게강의를의무화하는꼼수로길드를괴롭히고길들이려한왕립아카데미

제6장_미술의‘프레젠테이션기능’을영리하게활용한인물,나폴레옹

·히틀러를거쳐현대광고기법으로이어진나폴레옹의이미지전략
·나폴레옹을숭배하던베토벤이그의황제즉위소식을듣고자신이악보에적어놓은헌사를찢어버린이유
·나폴레옹은왜자신에게황제의관을씌워주려는교황의손에서왕관을낚아채듯받아직접머리에얹었을까?
·‘상징이미지조작’의끝판왕,[알프스를넘는나폴레옹]
·성스러운정면얼굴,기념비적인옆얼굴,자연인으로서의비스듬한얼굴
·다비드는왜황제나폴레옹을그린두그림[나폴레옹1세대관식]과[알프스를넘는나폴레옹]의각도를다르게설정했을까?
·국민행복을위해분투하는나폴레옹의이미지를효과적으로홍보하는데성공한다비드의그림[튀일리궁서재의나폴레옹]
·나폴레옹의야만적인유물약탈에의해세계적인미술관으로자리잡은루브르미술관
·미술을총동원한나폴레옹의효과적인이미지전략을무용지물로만든‘포도주세부활정책’

제7장_폴뒤랑뤼엘은어떻게‘잡동사니’취급받던인상주의회화에가치를불어넣었나

·폴뒤랑뤼엘이인상주의회화의가치를높이기위해사용한두가지비밀무기,‘카브리올레그’와‘금테액자’
·폴뒤랑뤼엘은왜루이15세시대의궁정양식을인상주의회화의가치를높이기위한도구로채택했을까?
·폴뒤랑뤼엘이‘작은미술관’처럼꾸민자기집을대중에공개한숨은이유
·인상주의화가들은왜폴뒤랑뤼엘의마케팅전략을노골적으로비난하며반대했을까?
·고객의불안감을잠재우는최고의진정제,‘금테액자’
·귀족취미와거리가먼사람들에게‘귀족기분’을느끼게함으로써판촉효과를극대화하는마법같은마케팅전략
·‘전세계의돈줄’미국인부호들의‘귀족콤플렉스’를절묘하게공략하여인상주의회화를최고가상품으로둔갑시킨폴뒤랑뤼엘
·파리미술품가격을치솟게만든미국인수집상들의사재기열풍
·인상주의거품시대의막을열어젖힌‘미국가격’

제8장_‘비평을통한브랜드화’가예술의가치를좌우하던시대

·비평가의펜대가움직이는대로판매가가널뛰던19세기프랑스미술시장
·‘인플루언서마케팅’의지평을새롭게연인물,델핀드지라르댕
·미술상폴뒤랑뤼엘이직접잡지를발간한이유
·“이제비평은비평가를먹여살릴뿐이다”
·소설『작품』을통해‘비평가의밥벌이처세술’을신랄하게파헤친작가,에밀졸라
·폴뒤랑뤼엘은왜내로라하는문화예술계인사들에게아낌없이비용을쏟아부었나
·‘대중의상품지식부족’이19세기유럽에서비평가의가치와영향력을극대화시킨가장큰이유였다?
·기성제품판매전략에서‘비평을통한브랜드화’가필수요소일수밖에없는까닭
·폴뒤랑뤼엘은‘인상주의의발견자’인가,‘인상주의의발명자’혹은‘날조자’인가?

후기_인간의욕망은미술사와세계사를움직이는원동력이다

출판사 서평

인간의욕망과뒤얽힌명화는어떻게
부를창조하고역사를발전시켰나?

‘명화가시대마다시스템과패러다임을바꾸며변화를추동하고역사를발전시킨다’라고말하면과장이라고생각하는독자가있을지모르겠다.그러나이는분명한사실이다.이책『부의미술관』에서독자는8개장마다,그리고페이지페이지마다인간의욕망과뒤얽힌명화가어떻게부를창조하고역사를발전시켜왔는지를깨닫고는무릎을치게될것이다.

이책의저자는후기에서‘인간의욕망은어떻게회화(명화)에투영되어왔고,미술사를드라마틱하게바꾸어왔으며,세계사의흐름에심대한영향을미쳐왔는가?’라는화두를던지며“이책을집필하는내내내머릿속을맴돈단하나의키워드는바로‘욕망’이었다”라고이야기한다.그맥락에서이책의핵심콘셉트를한구절로제시한다면‘세계사를움직이는욕망의명화,명화를움직이는욕망의세계사이야기’정도가되지않을까.한마디로말해이책은‘르네상스와종교개혁이후인간의욕망과뒤얽힌명화가부를창조하고역사를발전시키며자본주의를태동시킨이야기’라고할수있다.좀더구체적으로이책은14~16세기이후600여년간유럽의이탈리아와프랑스,그리고네덜란드를중심으로전개된미술사와문화사의중심부를관통하는8편의이야기를소개한다.

이들이야기속에는흥미진진하면서도지적호기심을자극하는내용이가득한데,일테면이런것이다.‘[우유를따르는여인]이페르메이르집안의3년치빵값으로팔려빵집광고로활용됐다는데?’,‘레오나르도다빈치와미켈란젤로는왜정물화와풍경화를한점도그리지않았을까?’,‘렘브란트는왜자기그림을모사하는‘가짜그림’을적극적으로양산했을까?’,‘미켈란젤로의대작[천지창조]를다빈치가그리면4,000년이걸린다?’,‘다빈치의작품[최후의만찬]이[모나리자]와달리유네스코지정세계문화유산으로등록된이유는‘부동산’이기때문이다?’,‘메디치가문지하금융의도움이없었다면르네상스도없었다?’,‘자크루이다비드는왜황제나폴레옹을그린두그림[나폴레옹1세대관식],[알프스를넘는나폴레옹]의각도를다르게설정했을까?’,‘피카소가끊임없이파격적인기법을탐구하고창조한이유가사진의등장으로화가의밥줄이끊어질지모른다는염려때문이었다고?’,‘기성제품판매전략에서‘비평을통한브랜드화’가필수요소일수밖에없는까닭은?’등이다.이책을읽는독자는미술세계사에관한지적호기심과통찰력이라는두마리토끼를모두잡을수있을것이다.

1.마르틴루터가시작한종교개혁의여파로당대예술과예술가가치명타를
입은17세기네덜란드에서오히려근대시민회화가화려하게꽃핀이유는?

16세기종교개혁으로유럽미술사는미증유의위기를맞이했다.프로테스탄트가성경의가르침에따라우상숭배를엄격히금지했으며,그연장선에서교회를장식하는회화와조각등을무차별적으로파괴했기때문이다.그결과그때까지미술계의큰손이자든든한후원자였던로마교황청과가톨릭교회에서들어오던주문이딱끊겼고,예술가들은글자그대로‘밥줄이끊기는’절체절명의위기에맞닥뜨렸다.

그러나놀랍게도종교미술파괴가가장심했던17세기대표적인프로테스탄트국가네덜란드에서는오히려‘회화열풍’이거세게불었고근대시민회화가활짝꽃을피웠다.실제로17세기한세기동안이나라에서만600만점에달하는엄청난양의회화가그려졌으니과연‘열풍’이라할만했다.어떻게그런기적과도같은일이가능했을까?그림의소비자가교회?왕실등성직자와세속권력자에서‘일반시민’으로바뀌었으며,그림소재도성경내용이나신화이야기에서‘평범한사람들의일상적인모습’으로바뀌었기때문이다.오늘날회화의대명사가된‘정물과’와‘풍경화’는바로이시기네덜란드의평범한시민이주도하는회화시장에서독립장르로탄생했다.17세기네덜란드화가요하네스페르메이르가그린[우유를따르는여인]과[진주귀걸이를한소녀]는그러한변화의흐름을오롯이담아낸대표적인작품이라고할수있다.

2.프랑스황제나폴레옹은어떻게미술의‘프레젠테이션기능’을간파하고
정치적도구로영리하게활용했나

나폴레옹보나파르트는미술이가진‘프레젠테이션기능’을간파하고정치적도구로영리하게활용한대표적인인물이다.그의프레젠테이션능력은건축,회화,조각,인테리어,보석,패션등여러영역을넘나들었다.그는고대유물에서발굴한것으로보이는고전적인기념메달을만들고신문보도를통제하는등광범위하고도정교한미디어관리와홍보전략으로자신의영웅적이미지를대대적으로선전했다.제2차세계대전당시아돌프히틀러가이끄는나치스독일은군복에서건축까지고대로마제국을철저히모방해카리스마넘치는디자인으로통일함으로써대중의시선을사로잡았다.히틀러는나폴레옹의전략을계승했으며,현대의광고기법은이러한나폴레옹의이미지전략을원형으로확립되었다,그밖에나폴레옹의이미지전략은미국대통령관저인백악관에도영향을미쳤는데,백악관이고대신전콘셉트로지어진연유를여기에서찾을수있다.또한미국의수도워싱턴중심부에우뚝서있는기념탑이미국사와관련없는이집트의오벨리스크를본뜬데에도나폴레옹에서시작된근대의고대제국부활움직임을계승하고자하는의지가반영되어있다.

나폴레옹은그림을어떻게정치적선전도구로교묘히활용했을까?먼저,루이14세의초상화와나란히역사교과서등에자주등장해우리에게친숙한그림[알프스를넘는나폴레옹]을살펴보자.이그림은단순한허구를넘어‘상징이미지조작의끝판왕’이라불러도지나치지않다는것이저자의주장이다.

몇가지이유를짚어보자.첫째,이그림의가장큰허구는나폴레옹이탄백마다.화가자크루이다비드는나폴레옹의애마를모델로백마를그렸으나알프스를넘을때실제로그가탄말은당나귀와말의교배종으로추위에강한노새였다.나폴레옹사후에그려진다른작품에서는그러한사실을반영해험한길에강한노새를타는모습으로묘사되었고,그의용모도실제모습을반영하여왜소하고땅딸막한체형으로그려졌다.그와달리다비드의[알프스를넘는나폴레옹]은외모를이상화해나폴레옹을키가훤칠한미남자로그렸다.다비드는여기서그치지않고이그림의화면아래바위에‘보나파르트’라는나폴레옹의성을적어넣었다.이는험준한알프스를넘어가서로마군을격퇴한고대카르타고명장한니발과서유럽전역을아우르는프랑크왕국을세운샤를마뉴대제라는전설적영웅들과함께‘알프스를넘어유럽을지배하는나폴레옹의이름을바위에새김으로써‘전설적영웅’이미지를각인시키고자하는의도였다.이작품은철저하게계획되어만들어진근대황제의공식이미지로몇점의모사화를제작해나폴레옹의영웅적이미지를유포하는홍보물역할을해왔다.이그림은오늘날여러나라의교과서에실리면서영웅나폴레옹의이미지를대중의뇌리에각인시키는역할도했다.

영웅을넘어선초인나폴레옹이미지홍보에크게기여한그림에[자파의페스트환자를위문하는나폴레옹]이있다.이탈리아원정이후나폴레옹의종군화가로동행했던앙투안장그로의작품인데,그가발휘한이미지전략효과는탁월했다.화가는오늘날홍보대행사의전문가가기자들에게뿌리는보도자료에서나볼수있을듯한예술의경지에도달한교묘한솜씨를이그림에서구현했다.이작품은모든사람이두려워하는페스트라는역병에도아랑곳하지않고환자의살결을쓰다듬으며위로하는나폴레옹의모습을담고있다.이는화가가황제나폴레옹에게불사의이미지를부여하기위해사용한장치이자콘셉트였다.화가는이그림의효과를극대화하기위해종교회화의전통을충실히따랐다.즉,예수그리스도가병자를기적으로치유하는장면을그린회화의구도와공식을그대로계승함으로써불세출의영웅이자황제인나폴레옹에게기적을일으키는‘구세주’의이미지를만들어주고자한것이다.

그는주인공나폴레옹뿐아니라배경인물도허투루배치하지않고나폴레옹을돋보이게하는장치로치밀하게활용했다.예를들면나폴레옹뒤에서있는사관이그런효과적인장치중하나인데,그는악취를견디지못하겠다는듯자기코를감싸쥔모습으로그려졌다.말하자면그는그림을보는사람에게야전병원에서풍겨나오는끔찍한냄새와참상을적나라하게전달하는인물이다.그리고또다른사관은나폴레옹이환자를만지지못하도록제지하는듯한자세로그려져페스트전염력에대한대중의공포를환기시킨다.이러한구도와묘사는세속의규범을초월하는나폴레옹의위풍당당한모습을강조하기위한연출이다.

화가는화면속나폴레옹을‘옆얼굴’로보여준다.그는왜이구도를선택했을까?이는초인적영웅나폴레옹의면모를부각시키기위해서였던것으로보인다.다시말해화가는그림을통해나폴레옹에게영원한생명의이미지를부여하기위해이구도를선택한것으로볼수있다.

3.폴뒤랑뤼엘은어떻게잡동사니취급받던인상주의회화를부르는게값인
‘귀하신몸’으로둔갑시켰나?

오늘날한점에몇백억원을호가하는르누아르,모네등인상주의화가들의작품이한때잡동사니취급을받고천덕꾸러기신세였다고말하면놀라는독자가많을것이다.한때허접쓰레기취급받던인상주의회화는어떻게그토록드라마틱하게그야말로부르는게값인‘귀하신몸’이되었을까?여기에는19세기프랑스파리를주름잡던천재미술상폴뒤랑뤼엘의피나는마케팅전략이숨어있다.

폴뒤랑뤼엘이본격적으로판매에착수하던시점에인상주의작품은사람들의이해를넘어선전위예술로푸대접받았다.당시프랑스유력일간지《피가로》는인상주의그림을고양이가앞발로괴발개발그린낙서라고빈정댈정도였다.혹자는고양이가피아노건반위를걸을때나는귀에거슬리는소리같다고혹평하기도했다.인상주의그림의시장가치는형편없었고공짜로주면불쏘시개로나쓸까돈을내고사갈사람이거의없을정도로인기없는회화였다.게다가붓자국이선명하게보이는인상주의그림은회화의기본도모르는어설픈초보예술가들이끄적인낙서나다름없다는평가를받고미술상의창고에처박혀먼지를뒤집어쓴악성재고신세를면치못했다.그런연유로그림이도무지팔리지않아먹고살길이막막해진모네는자살을진지하게생각할정도였고,고흐는평생불우하게살다가권총으로생을마감했다.

천재미술상폴뒤랑뤼엘은마치무대마술사가지팡이를휘둘러모자속에서살아있는토끼를꺼내듯인상주의화가들을황금알을낳는거위로변신시켰다.그는과연어떤마케팅전략을사용하여한때천덕꾸러기신세였던인상주의그림을부르는게값인명품으로둔갑시켰을까?그가사용한마케팅기법은한껏고급스러운분위기를연출한매장에화려한소도구를적절히배치해상품을돋보이게만들어고객의넋을빼놓은다음웃으며청구서를들이미는방식이었다.흥미롭게도이런상황에서고객은분위기에취해가격표에높은금액이붙어있을수록지갑을활짝연다.고객의욕망과허영심을자극하는이런심리전략은오늘날마케팅분야의기본이된기법이다.좀더구체적으로,일테면이런식이다.고객이매장에들어설때부터그를마치유명인라도되는듯정중하게모신다.유명인사기분을맛본고객은자기도모르게우쭐해지고이성이마비된다.그렇게황홀함에취한고객의눈앞에명품으로포장한상품을내미는것이다.

설령상품이과거인상주의그림처럼고객의이해수준을넘어서더라도이런식의연출은상품을유서깊은명품으로보이게하는마법같은효과를발휘한다.또한고객을왕처럼모시는전략은그가그전략에어울리는신분이라고믿게만드는효과를발휘한다.돈을아끼려는쩨쩨한모습을보이고싶어하지않는고객은체면이구겨지지않게하기위해서라도가격을따지지않고상품을구매하게된다.이마케팅전략은최고의‘분위기연출’과질높은‘서비스’라는두가지기법이만나잘어우러지면서놀라운시너지효과를낸다.말하자면상품을본고객이처음에는고개를갸웃거리다가도얼떨결에‘그걸로주세요’라고말하게하는마술같은마케팅기법이다.

19세기파리의미술상폴뒤랑뤼엘은대중심리를조종하는마케팅전략의선구자였다.그는마케팅효과를극대화하기위한도구로화려한루이15세시대궁정양식을대표하는‘카브리올레그’와‘금테액자’를선택했다.그는왜프랑스혁명으로루이16세국왕과마리앙투아네트왕비가단두대의이슬로사라지고왕실문화가몰락하고근대시민문화가자리잡기시작한시점에하필루이15세시대의화려한궁정문화를상징하는‘카브리올레그’와‘금테액자’를전혀어울리지않는인상주의회화마케팅에과감히도입했을까?폴뒤랑뤼엘은‘시대착오적인발상’이라고거세게비난하며불쾌감을감추지못하는인상주의화가들의반대를무릅쓰고‘카브리올레그’와‘금테액자’를밀어붙였는데,그것은그가철저하게그림을구매하는고객의관점에서바라보았기때문이다.고객이보기에인상주의그림은출처를알수없는희한한상품이었다.그러므로가격에합당한가치가있는지조차알수없는상황에덜컥사들였다가가격폭락사태라도벌어지면큰일이다.

폴뒤랑뤼엘은이러한고객의불안감을잠재우고작품이가격에합당한고급품이며값을지불한후에도가격이내려갈걱정이없음을홍보하지않으면앞으로도계속인상주의그림을팔기어려울것으로판단했다.그런맥락에서금테액자는고객의불안감을잠재우는최고의‘진정제’였다.왜냐하면왕조양식약자에넣은작품에는은연중왕실화가의명품과도같은품격이부여되기때문이다.왕과귀족이소장해온명품의품격이느껴지는황금후광을둘러주는장치가바로‘금테액자’였다.

폴뒤랑뤼엘의탁월한마케팅전략에힘입어잡동사니신세에서벗어나차츰명품으로인정받기시작한인상주의회화를그야말로부르는게값인‘귀하신몸’으로변신시킨또하나의강력한티핑포인트가있었다.그것은바로인상주의화가들이활약하던19세기에영국의뒤를이어세계최강대국으로부상하기시작한미국에서많은대부호가출현하고,그들이전세계의도시를다니며명품을사들이기시작한흐름과폴뒤랑뤼엘의‘인상주의회화명품만들기’전략이절묘하게맞아떨어진덕분이었다.

19세기당시미국은아메리칸드림을꿈꾸는유능한인재가전세계에서부나비처럼몰려드는나라였다.또한이나라는경제적활력이넘쳐나는기회의땅이기도했다.그러나전통과격식등문화자산의결실로볼수있는귀족제도자체가없다는사실은이나라의신흥부유층사람들에게는도저히채울수없는허무함의원천이되었다.그런맥락에서미국의부유층은자신의허영심과허무함을채워줄수단으로미술품수집에열을올렸고,그것이폴뒤랑뤼엘의‘인상주의회화명품만들기’전력과요철처럼맞아떨어진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