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심재휘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심재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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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측의농간 | 시 003]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은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등의 시집을 통해 우수어린 눈빛으로 잿빛 일상을 추억과 회한이 뒤엉킨 상처의 풍경으로 담담히 기록해왔던 심재휘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이천 년대 들어 한국 시단에 팽배해지기 시작했던 전위에의 욕망들 틈에서도 묵묵히 전통의 길을 고수한 시인들은 있었다. 최측의농간은 조심스럽게 한 시인의 이름을 그 쓸쓸한 좌표의 한 구석에서 꺼내 올리려 한다. 이 시인은 새로운 것들에 관해 과격하거나 새롭게 쓰기보다 익숙한 것들에 관해 조심스럽거나 낯설게 쓴다. 심재휘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을 통해 우리는 이제 좀처럼 보기 힘들어진 어떤 작풍(作風)의 빛나는 면모를 볼 수 있다. 그 작풍은, 이국의 바람이 뿜어내는 세계시민이라는 환상적 프레임과 국지성의 보편화라는 이름의 조작된 전술이 아니라, 제 몸으로 맞서거나 밀려야 했던 바람에 대해 말하는 일과 닮아 있다.
저자

심재휘

저자심재휘는
강원강릉출생.
1997년《작가세계》를통해등단했으며시집으로『적당히쓸쓸하게바람부는』,『그늘』,『중국인맹인안마사』가있다.

목차

시인의말5

제1부바람의경치
남쪽마을을지나며13
동굴속의산책14
오늘,16
편지,여관,그리고한평생18
현관,그리고벗어놓은신발20
11월의숲22
봄꽃나무한그루24
겨울의질척거리는밤거리26
안개,여관,물소리28
북쪽벽에못을박고30
공룡발자국화석32
폴라로이드34
기울어있는36
VirtualReality37
뱅뱅사거리38
맛있는밥40
바람의경치_낯선마을의달42
망치가망치를만드는정오44
섣달그믐날의동물원45
저녁엔추억만남는다?46
내소사(來蘇寺)풍경소리48
바람의경치_경포호49
바람의경치50

제2부폭설
폭설55
어둠은어떻게오나56
다시목련을꿈꾸며57
잠실의어두운거리58
사월60
여름날저녁61
두눈감았다다시뜨면62
씀바귀64
지상의가을65
아!사바나의빗소리66
봄날68
환자들69
새들에게새벽을묻는다70
어떤임종(臨終)72
경계경보가해제되었습니다74
우리외할머니네집75
강을거슬러올라가면모래톱마을이있다76
나는도끼를메고숲속으로들어간다78

제3부쓸쓸한향기
쓸쓸한향기81
에스컬레이터82
가시論84
나무계단에관한오래전이야기86
자작나무흰몸88
천산천지(天山天池)90
아름다운저녁91
외할머니의오이꼭지92
우산을쓰다94
붉은지붕의하늘96
고독한배경97
대관령깃발98
첫사랑100
군불102
新귀촉도_서역의밤기차104
봄밤107
오래된한옥109
척도110
봄날은간다111

출판사 서평

불속에서휘어지는맹세와적당히쓸쓸하게부는바람
[최측의농간|시003]『적당히쓸쓸하게바람부는』
『적당히쓸쓸하게바람부는』,심재휘시집,2017,최측의농간

황사주의보가내렸다비는오지않았다
사람들은아이들의피를발라문틈을메우고
촘촘한우주의적막을주문처럼외워야했다
한때의사랑이혁명이세상의모든맹세들이
분진으로떠돌았다
「사월」부분.

혁명과투쟁의시대가막을내리고,맑스?레닌전집같은책들이헐값에헌책방으로고물상으로처박혀들어가던시절이있었다.최측의농간에서는“한때의사랑이혁명이세상의모든맹세들이/분진으로떠돌았”을그시절에등단하여“바람의출구”를찾아비틀거렸던한시인을소개하고자한다.이때의그는“외할머니”와“여관”,“편지”,“바람”이불어오는방향과속도같은것들에의지하곤했으며그로부터벗어나고싶어무수한편지를쓰고,서역에까지당도하였다가,“황사들은환도(還都)할곳의봄하늘을읽으며/이막막함에누워사막이었던”것임을,바람과같이불어오고불어가는것일뿐이라는걸?편지를태우거나고쳐쓰며-아프게받아들였던사람이기도하다.

밤에편지를쓰지않은지가오래되었다
보고싶은사람들이겉봉에서낡아갔다
회귀선아래로내려간태양처럼
따뜻한상징은돌아오지않았다
내내거친눈이내렸다
「폭설」부분.

이천년대들어한국시단을잠식하기시작했던전위에의욕망들틈에서도묵묵히전통의길을고수한시인들은있었다.심재휘시인의첫번째시집을통해우리는이제좀처럼보기힘들어진어떤작풍(作風)의빛나는면모를볼수있다.그작풍은,이국의바람이뿜어내는세계시민이라는환상적프레임과국지성의보편화라는이름의조작된전술이아니라,제몸으로맞서거나밀려야했던바람에대해말하는일과닮아있다.

어제는꽃잎이지고
오늘은비가온다고쓴다
현관에쌓인꽃잎들의오랜가뭄처럼
바싹마른나의안부에서도
이제는빗방울냄새가나느냐고
추신한다
『우산을쓰다』부분.

내가걸어온시장의저녁이나
편지들의재가뒹구는여관의뒷마당을기억할것이다그러나
나를향해있는것들중에만질수있는것은불꽃밖에없다
「편지,여관,그리고한평생」부분.

그러므로불어오는바람에맞서나아가려는사람들의옆,혹은뒤에는위태로운그들의몸짓을바라보며바람을제대로보려는의지를지닌사람도없지않았노라고말할수있다.‘바람’이라는명사안에이미‘불어옴’의의미가포함된것이어서맞서지않고는느낄도리가없다고해도그렇다.“적당히쓸쓸”했다는말은그러므로적당히감상적으로관조했다는손쉬운타협이아닌,자신이바라본,감당할수있었던만큼의바람을정확하게이야기하고자했던?그러다가마침내실패하고말았던-한시인의겸허한시작(詩作)-생에대한-에의태도를보여준다.

어쩌면내가기운것처럼보인것은
사람들이바람을제대로못본탓일게다
아니저바람속에뚫린구멍속으로
매일조금씩흘려넣는나의영혼으로인하여
나는또알수없는곳으로조금은
기울어있는것이다
「기울어있는」부분.

젖은눈으로바라보면마르고생경해보이는풍경들도안개가득한시의풍경이된다.끓어오르는욕망들의넘실거림사이에,젖어따끔거리는진행형의아픔들이있다고시인은말한다.눈내리고비오는가운데끝내그가놓지못한것.불속에서휘어지는맹세와적당히쓸쓸하게부는바람사이에는겉봉에서부터낡아가는사람들이있다고그가말한다.

오후에는돌아온편지들을태우는일이많아졌다

내몸에서흘러나간맹세들도불속에서는휘어진다
「편지,여관,그리고한평생」부분.

등받이없는회전의자에앉아문틈을엿보면
올라오는계단과내려오는계단이만나
내시야를이루는한평의오늘이있었다
그곳은어두운사진의세계였고사람들은
그곳에서몸을돌려다시오르거나내려갔을것이다
「나무계단에관한오래전이야기」부분.

어떤시집은서점의구석에서오랜시간을두리번거리고나서야,그러고서도오래쳐다보는인내심을감당하고나서야만날수있다.그는새로운것들에관해과격하거나새롭게쓰기보다익숙한것들에관해조심스럽거나낯설게쓰는시인이었으므로,그의첫번째시집은오해받을기회조차보장받기어려웠을것이다.
후일담을읊조리는제스처로,얕은‘낭만’을깊은‘우수’로바꿔치기하는눈속임으로,교묘히말하는방법을그라고모르지않았을것이다.이시집곳곳에는그러므로,스스로를속이지않으려했던시인의한숨이웅성거린다.어두운사진의세계에서,오르거나내리는사람들의뒷모습을한평의오늘로바라보았던,기울어걷는한시인의한숨이,여기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