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주택지 (인구 폭증시대 경성의 주택지 개발)

경성의 주택지 (인구 폭증시대 경성의 주택지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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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나라 주택지 개발의 기원을 추적한 『경성의 주택지』. 저자는 집을 지으려는 사람과 지어주는 사람에 의해 주택 공급이 이루어지던 조선 시대와 달리 개발업자에 의한 주택지 개발이 이루어지게 된 원인을 ‘인구 폭증’ 때문으로 본다. 조선 시대 500여 년 내내 10만에서 20만 내외로 유지되던 한양의 인구가 불과 30여 년 만에 100만에 육박하게 되면서 일제강점기 경성은 엄청난 주택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 개발자나 개발회사들이 앞다투어 대규모 필지를 사들이고 택지로 개발해 사람들에게 비싸게 분양했다.
저자

이경아

서울대학교건축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석사및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특별시한옥문화과한옥정책연구팀장을거쳐현재한국전통문화대학교전통건축학과부교수로재직중이다.
《일제강점기문화주택개념의수용과전개》로박사학위를받았으며,한국의근대건축및도시변화에지속적인관심을가지고연구하고있다.저서로는《한국건축답사수첩》(2006,동녘,공저),《한국건축개념사전》(2013,동녘,공저),《은뢰,조선신궁에서바라본식민지조선의풍경》(2015,소명출판,공저),《후암동-두텁바위가품은역사,문화주택에담긴삶》(2016,서울역사박물관,공저)등이있다.2017년에는정세권의가회동한옥단지개발에관한논문으로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수여하는과학기술우수논문상을수상했다.

목차

08책을펴내며

013우리나라의대표한옥단지,가회동과건축왕정세권
우리나라의대표한옥단지,가회동|건축왕이자민족운동가,정세권|정세권은왜한옥에주목했나|정세권의브랜드주택,건양주택|20세기한옥박물관,가회동31번지와33번지|
중당식주택과중정식주택의결합실험|ㄷ자표준형주택실험|다양한형태의주택실험|가회동사람들|가회동한옥단지의가치

041그동안알려지지않았던북촌의서양식주택
북촌은한옥마을이아니다|조선인상류층우종관과문화주택|서양식이층집,문화주택에대한환상과열기|우종관이지은두동의서양식주택|서양식주택을향하여|일본식중복도형평면|그래도온돌은못버려|조선인상류층의‘삼중생활’

067서울의중심,인사동일대의변화와박길룡의조선주택개량운동
서울의중심,인사동일대|일제강점기인사들의주택개량에대한고민|박길룡과과학운동|조선주택조사와문제점인식|조선가옥건축연구회의설치와주택개량운동|문화주택비판|중정식배치냐,집중형배치냐|부엌의개량|온돌의개량|변소를비롯한기타개량|
박길룡조선주택개량의종합안|박길룡조선주택개량안의실제,민병옥가옥과각심재

105다이너마이트로만든삼청동주택지와김종량의하이브리드실험주택
신성하고도수려한동네,삼청동|다이너마이트로만든주택지,갈등과대립|건축가이자정치가,언론인김종량|초기실험작,혜화동주택|김종량의대표작,삼청동의하이브리드주택

125이상적건강주택지,후암동
조선인의가회동vs.일본인의후암동|건강한주택지를찾아서|조선인의후암동에서일본인의삼판통으로|농사짓던땅이경성최고가의고급주택지로|후암동주택지개발의시작,조선은행사택지|경성의3대주택지,학강주택지|그외주택지개발|후암동의문화주택|
서양식주택으로보이도록|일본식주택계획의관성|일본인의온돌수용|
오카베집또는적산가옥의변화

161한양도성의훼철과고급교외주택지개발,장충동
조선의수도한양의경계,한양도성의운명|조선시대의미개발지,남소동|국가제사시설장충단이공원으로|요정과유곽의등장|교외주택지개발|주택지개발의동진을알린첫주택지,소화원주택지|국유림해제및불하와함께탄생한주택지,남산장전고대주택지|국책회사에의한고급주택지조성,장충단주택지|최신고급주택의각축장|해방후고급주택지장충동의위상

189그들의전원주택지,신당동
전원주택지의탄생|전원,전원도시,전원주택의개념|전원도시개념의유입|
국책회사에의한전원주택지개발|모델하우스전시와분양팸플릿,주택도집발간|
전원주택지탄생의명과암|남산주회도로부설과한남동개발

223경성의학교촌과조선인의문화촌,동숭동과혜화동
서울의오래된학교촌,그리고조선인의문화촌|조선시대최고의국립교육기관성균관의소재지|백동수도원으로부터시작된천주교타운의형성|경성제국대학의건립과그영향|
관립학교에서개발한관사지|경성제국대학교수들의문화주택지,약수대|
조선인들의문화촌형성과실험적인주택

249한양도성밖첫한옥신도시,돈암지구
의외의한옥단지|조선시가지계획령의공포와경성의토지구획정리사업|경성의첫토지구획정리지구,돈암|한양도성밖첫한옥신도시의탄생|돈암지구한옥단지의개발자들|돈암지구내주목할만한한옥:2층한옥,연립한옥,돈암장|돈암지구에대한기억

275한강너머의이상향,흑석동그리고토지투기의확산
노량진과동작진의사이,흑석리|한강철교와한강인도교,한강신사의건립|장수촌이자별장주택지를지향한명수대주택지|계획의변경,학원도시의조성|병참기지정책에따라서쪽으로번지는토지투기열풍

299최신주거문화의전시장,충정로
‘최초’라는수식어가많이붙는,한양도성의서쪽|경성의또다른3대주택지,금화장|
서북쪽으로퍼져나가는주택지개발|수직으로적층된새로운주택,아파트|
일제강점기경성의아파트|최고(最古)의철근콘크리트조아파트,충정아파트|
철근콘크리트를사용한고급주택,죽첨장또는경교장

341관에서개발한주택지,관사단지와영단주택지
관사와관사단지|일본인들의북진과관사단지조성|궁궐내관사단지개발|관사의건축적특징|조선주택영단의설립과영단주택의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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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100여년전에시작된우리나라의주택지개발열풍
“…그덕에5년전쯤재건축들어가는대치동아파트를장만할수있었다.내이름으로등기했다.13억원인가했는데,재건축끝난지금은23억~24억원대로10억원가량올랐다.”(“증여세없는증여?다방법이있죠”,《한겨레21》제1287호,2019년11월18일)
최근이슈화되고있는2030주거문제에관한기사중일부이다.새정부가들어설때마다가장먼저발표하는정책중하나가집값안정화와주거공간개선방안이다.지금현재만의이야기는아니다.우리나라주택지개발의기원을추적한《경성의주택지:인구폭증시대경성의주택지개발》에서도여러사례를접할수있다.
“도쿠가와요리사다는장래토지가격이상승할만한곳을찾았는데,하세가와군부사령관에게의뢰하여찾은땅이바로이일대토지와부산의토지였고이것을30만원에매입했다.이땅을1926년마스다다이키치가130만원에매입했다고하니….”(306쪽)
현재충정로3가3번지일대인당시3대주택지로꼽히던‘금화장주택지’이야기이다.시세차익을노린모양새가상당히비슷하지않은가.
우리나라에서는언제부터이런개발열풍이불었을까.현재모습과크게다르지않은주택과주택지에대한열망과좌절을어떻게봐야할까.《경성의주택지:인구폭증시대경성의주택지개발》은이런호기심에서출발한다.
저자는집을지으려는사람과지어주는사람에의해주택공급이이루어지던조선시대와달리개발업자에의한주택지개발이이루어지게된원인을‘인구폭증’때문으로본다.조선시대500여년내내10만에서20만내외로유지되던한양의인구가불과30여년만에100만에육박하게되면서일제강점기경성은엄청난주택난에시달리게된다.이때개발자나개발회사들이앞다투어대규모필지를사들이고택지로개발해사람들에게비싸게분양했다.

이상적인주택지
책의표지이미지를보자.1932년에서1936년사이에개발된신정대주택지(현후암동358번지일대)의분양공고전단지그림이다.아랫부분에크게표기되어있는“이상적건강지(理想的健康地)”글자가먼저눈에보인다.전체그림의가운데에는곧게뻗은도로와격자형으로잘구획된땅이있다.도로에는자동차도있다.자동차도다닐수있는넓고곧게잘포장한길이라는것을강조하기위한장치로보인다.격자형으로구획된땅에는학교와같은생활편의시설과함께다양한모양의집이여기저기놓여있다.집사이에는나무를심어전원생활의이미지를강조하고있다.전원의이미지는배경에넓게표시되어있는남산의녹지로연결된다.등산로입구에는‘신정대약수온천예정지’표기와함께온천시설도표시되어있다.
1920년대무렵부터경성에는많은주택지가개발되었다.다이너마아트로돌산을해체하고주택지로만든삼청동,이상적건강주택지로인기있었던후임동,한양도성을훼철하고만든교외주택지인장충동,당시대표적전원주택지였던신당동,경성의학교촌으로교수와의사가많이거주했던동숭동,한강너머이상향으로그려지던흑석동,아파트를비롯한최신주택이즐비했던충정로등.대부분먼곳을조망할수있고공기가맑은높은지대,주변에녹지가있는곳,교육·의료·문화시설과같은생활편의시설을갖추고버스나전차가연결되는교통의요지로당시경성에서인기있던주택가가있던동네들이다.개발자들은주택지에별도의브랜드를붙이고신문이나잡지에광고하고분양팸플릿을배포하는가하면기자설명회도열어이상적인주택지로선전했고사람들은열광했다고한다.
그중에서경성의3대주택지로꼽히던곳이있었는데,1925년,1927년,1928년3차례에걸쳐삼판통(현재후암동일대)에개발된학강주택지,1927년장충동일대에개발된소화원주택지,1928년,1930년,1934년3차례에걸쳐죽첨정(현충정로일대)에개발된금화장주택지이다.
주택지로개발된땅은논,밭,산,공동묘지나빈민주거지가대부분으로터를일구고살던원주민들은쫓겨날수밖에없었는데그과정에대립과충돌이끊이지않았다고한다.이런모습은지금도여전히벌어지고있는일이다.

소화원주택지가각광받은이유는생활편의시설보다는조용하고공기가좋은‘교외’라는이미지였다.비록한양도성내지역이긴하지만일제강점기사람들의인식속에장충단인근이교외라는생각이있었다.
_174쪽에서

금화장주택지올라가는언덕바로앞에는죽첨정이정목전차역이있었으며인근에는서대문소학교와미동보통교,죽첨보통교와같은교육시설,적십자병원과같은의료시설,동양극장과같은문화시설등등생활편의시설이주택지주변에두루구비되어있었다.이렇듯시대의유행을타고나타난신규주택지금화장은당시사람들에게최적의주택지로인식되면서경성의3대주택지중하나로자리매김하게된다.
_306쪽에서

조선인건축가들의주택개량에대한다양한실험

당시의일반적인한옥을‘중정식(中庭式)’이라한다면,정세권은‘중당식(中堂式)’이라는평면형식을만들었다.중당식은흩어져있던실을가운데로모으고외부공간을사방에둬서기존한옥의단점을극복하고자한평면형식이다.
_23쪽에서

안방과연결되는부분에벽장을둔다거나찬마루밑을저장고로쓰는것,나쁜공기를빼낼수있는흡기통과식기나식료품세척을위한싱크대를설치하는등의내용이다.
_93쪽에서

길가에면한부분에는서양식으로보이는2층의오카베주택을배치하고안쪽에1층의한옥을배치했다는공통점이있다.실의구성이나외부공간을분리하는등혜화동주택의H자형주택과유사한점도많지만길가에면한날개채하나를오카베주택으로변화시켰다는점에서는큰차이를보인다.
_121쪽에서

이책에서는당시우리건축가들의주택개량에대한다양한실험과시도도엿볼수있다.‘건축왕’으로알려진정세권의한옥개량실험,조선재래주택의평면형식개량,주방과온돌,변소등의개량을꾸준히제시한박길룡의주택개량운동,한일절충또는한양절충식H자형주택을제시한김종량의하이브리드주택등조선인건축가들의재래주택개량의지를읽을수있다.
저자는20세기전반기주택지는우리나라의건축·도시사에서다양한의미가있다고말한다.
20세기전반우리주거문화의급격한변화를살필수있고,주택지가개발되면서경성의경계또한점점확대되고주택이집단적으로형성되면서이전한양의모습과는크게다른도시경관이만들어지고있었음을이야기한다.
이책은주택지개발주체의개발배경과개발로인한원주민과갈등,변화에대응하기위한해법을모색했던건축가들의다양한실험과시공업체의노력,유행을따라실험적으로자신의집을지어봤던건축주들의소감을생생하게담고있다.

임금이기거하던궁궐일부나왕족의주택지가관사지나사택지로개발되고,양반들이거주했던대규모주택지가소규모한옥밀집지역으로바뀌는가하면,500여년간서울의물리적경계였던도성이허물어지고,금산정책으로지켰던국유지와삼림이훼손되며문화주택지가들어서는등조선시대에는상상할수조차없었던일들이일어났다.그야말로이전시대가철저히부정되면서,도시의성격과모습이완전히바뀌게된것이다.
_10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