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

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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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가회동 두 집

분명 최욱은 평범한 집을 짓지 않았다. 사실 최욱이 온전하게 새로 손을 댄 곳은 한옥과 양옥 사이에 설치한 중정 그리고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한 지하 공간 정도였다. 그런데 집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회동 두 집의 핵심은 두 개의 중정과 둘 사이의 연결 통로다. 하나는 하늘로 열린 중정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층 끝에서 양옥의 1층으로 연결되는 개방형 계단실이다.
_50쪽에서

2021년 한옥과 양옥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1930년대 집장수가 지은 한옥과 1960년대 부잣집의 요소를 잘 간직하고 있는 양옥이 위·아래에서 공존하고 있다. 두 집의 공간을 엮은이는 건축가 최욱.
“건축가는 한옥이 도시와 만나는 방법을 제시했고, 중정으로 한옥과 양옥을 만나게 했으며, 양옥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했다”(35쪽)는 지은이 안창모의 말처럼 건축가는 두 집을 가로막고 있던 옹벽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중정을 만들었으며 지하층 공간의 경계마다 단을 만들어 한 단 한 단 오르다보면 어느새 양옥의 1층에 이르게 했다. “사라졌던 원지형의 구릉을 설화수의 공간을 경험하며 오른 것”(50쪽)이다. 두 집은 얼핏보면 북촌에서 볼 수 있는 여느 한옥과 양옥의 모습이다. 하지만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간의 매력에 이끌려 구석구석 살피고 만져보게 된다.
《가회동 두 집, 북촌의 100년을 말하다》는 가회동의 ‘잘 지은 두 집’을 이야기한다. 골격만 겨우 유지한 채 여기저기 잘리고 덧붙여진 채 다소 초라한 모습으로 북촌로변에 남아 있던 한옥. 한옥 뒤 외부와 단절된 채 우뚝 솟아 있는 양옥. 저자는 이 두 집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변화과정을 이야기한다. 건축가의 손길이 닿기 이 전 두 집의 모습, 두 집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게 됐는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 두 집은 북촌과 어떻게 관계 맺고 북촌에서 어떤 의미인지 등 두 집의 이모저모를 분석한다. 조경가 정영선이 적재적소에 옮겨 심거나 새로 심은 나무와 꽃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건축주의 의지 또한 가회동 두 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이다.

건축가 최욱은 한옥과 양옥을 하나로 엮으며, 장소를 달리하고 레벨을 달리하며 이동하는 거리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거리를 걷는 동안 의미있는 장소마다 각기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최욱은 이것을 ‘일보일경(一步一景)이라고 했다.
_44쪽에서

저자 안창모는 건축가 최욱이 두 집에 손을 대기 이전부터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하며 집의 변모 과정을 살피고 기록했다. 책에 사용한 사진은 대부분 저자가 직접 촬영했다. “글이 아닌 이미지로 화두를 던진 후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5쪽)면서 책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니 직접 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만져보고 느껴볼 것을 제안한다.
저자

안창모

서울대학교건축학과를졸업한후동대학원에서근현대건축을공부했다.“한국전쟁을전후한한국건축의성격변화”로석사학위를,“건축가박동진에관한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1990년에건축사면허를취득했다.미국컬럼비아대학교·일본도쿄대학교
객원연구원,건축역사학회부회장,대통령소속국가건축정책위원회위원,문화재청문화재위원을지냈다.황금사자상을수상한2014년베니스건축비엔날레한국관의공동큐레이터였다.현재경기대학교건축학과에서한국근대건축의역사와이론을연구하며역사문화환경보존프로그램을운영하고있다.
(사)근대도시건축연구와실천을위한모임회장,(재)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인천광역시문화재위원이며국가상징거리조성계획,역사문화도심관리기본계획등역사도시서울과근대건축유산의보존과활용에관한연구에참여하고있다.
《한국현대건축50년》(1996),《서울건축사》(1999,공저),《북한문화,둘이면서하나인문화》(2008,공저),《건축가김정수》(2008,공저),《덕수궁:시대와운명을안고제국의중심에서다》(2009),《ArchitecturalandCulturalGuidePyongyang》(2012,독일어·영어,공저),《21세기북한의예술》(2020,공저),《기술과사회로읽는
도시건축사》(2022)등의저서가있다.2021년한국건축역사학회학술상을수상했다.

목차

책을내면서


땅:북촌

북촌,사라지는회색빛도시풍경이안타까운곳
한양도성과북촌
북촌로,북촌에남은전쟁의흔적
가회동,1962vs.2022
지도에새겨진이름
북촌,권문세가의땅에서자란개화의씨
가회동79번지,설화수의한옥과오설록의양옥땅의주인들


집:한옥vs.양옥

리노베이션전과후
북촌로,석축또는옹벽
최욱의집짓기,집터확인하기
한옥,도로를향하고,옹벽,해체되다∥양옥,옹벽위하얀양옥
최욱의집짓기,일보일경
일보일경,안과밖을넘나들다∥대지의건축화∥원지형산책
최욱의집짓기,병치의미학
한옥의진화∥더이상‘이리오너라’는없다∥담장을대신한소나무한그루∥옹벽을대신한중정그리고매화나무∥옹벽,역사로남다∥중정,양옥과한옥의공존∥중정,설화수에빛을들이다∥설화살롱∥양옥,1960년대부잣집∥그들만의마당,모두의마당이되다∥설화정원,겨울을벗어난정원∥오설록의양옥,현관∥테라스정원,안과밖을소통시키다∥테라스정원,층과층을소통시키다∥남산,모든이의풍경이되다∥계단실,빛을품다∥차실,빛과풍경을품다∥바설록이품은자개장
북촌4경,오설록에서눈에담을수있는풍경
남(南),사라지는남산풍경∥동(東),원서동의다가구·다세대주택이만든스카이라인∥서(西),굴뚝이있는풍경∥북(北),꽃병의배경이된북촌의백악풍경
책에서만볼수있는곳
하이퍼아트토마손,담장에남은삶의흔적∥피뢰침∥골목에서마주치는설화수·오설록∥설화수·오설록옆골목풍경
오감으로즐기는집
재료,오감을깨운다∥바닥과높이그리고속도∥벽체와재료∥빛을품는재료,흙∥빛과조명∥자개장의추억

출판사 서평

북촌,권문세가의땅에서자란개화의씨

북촌은청계천위,법궁인경복궁과이궁인창덕궁사이,좋은위치에자리한동네다.따뜻한햇볕이드는곳이니주거지로최적이었는데,사대부의직장상사라고할수있는임금의공간인궁궐과사대부의직장인육조가인접한직주근접의장소이기도했던까닭에권문세가의집이많았다.1910년대까지만해도북촌에는큰필지를가진대갓집이많았다.
_14쪽에서

‘뜨는동네’.북촌을소개하는어떤글에서북촌을이렇게표현했다.글쓴이는북촌에왜유명브랜드들이상점을내고사람들의발길이끊이지않는지이야기하는데“남산타워,창덕궁,원서공원등북촌풍경이하나의콘텐츠가된다”고한다.
북촌하면많은사람이검은기와지붕을올린한옥을떠올린다.‘북촌=한옥마을’과같은공식이라도있는것처럼.그런데자세히보면한옥만큼꽤큰규모의양옥도많다.고층아파트가없을뿐이지한옥,양옥,다세대·다가구주택등우리나라주택양식전시장과같다.
《가회동두집,북촌의100년을말하다》의저자안창모는“권문세가의땅이었지만개화의씨가자라던곳”이라고말한다.항상새로움이시작되던곳이라는것이다.신흥사대부가살던곳이었으며조선말갑신정변의주역김옥균과홍영식이살았고개화사상가박규수의집도있었다.이들이살던터에는학교가지어지고최초의서양식의료기관인제중원이문을열기도했다.
그런가하면윤택영,민대식,이재완,한창수,송병준,이기용,박제순,한상룡등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살던곳이기도하다.이들의이름은조선총독부에서발행한지도곳곳에서발견할수있다.
이책의대상지인가회동두집이있던가회동79번지일대는천도교4대교주인박인호와3대교주인손병희소유의땅이었다.“조선말권문세가와종친의거주지였던북촌에동학을이은천도교가뿌리내렸음을보여주는장”(28쪽)이었다.

1915년과1921년조선총독부에서제작한지형도에서확인되는이름은대부분종친이거나조선말과대한제국그리고일제강점기에고위관료를지낸인물로해방후친일반민족행위자로판정된사람들이다.
_23쪽에서

북촌은권문세가의땅이었지만,개화의씨가자라던곳이기도했다.경복궁과창덕궁양궐사이에있는북촌은우리역사에서항상새로움이시작되던곳이었다.조선을연신흥사대부가살던곳이고,조선말갑신정변의주역인김옥균이살았고,박규수와홍영식도살았다.갑신정변의실패로외국으로망명한김옥균집터에는관립한성중학교가설립되어인재양성의터가되었다.홍영식의집안은갑신정변후멸문지화를당했고집터는최초의서양식의료기관인제중원으로사용되다가지금은헌법재판소의일부가되었다.
_26쪽에서

북촌에는전쟁의흔적도남아있다.북촌로.1941년아시아태평양전쟁당시일제는공습으로부터도시를보호하기위해소개도로(疏開道路)를계획한다.기존길은넓히고큰땅사이에큰길을새로만들어공습으로인한화재가인접지역으로번지는것을막는다는것으로폭20~50미터에이르는도로이다.당시일제는경복궁과창덕궁사이를정확히둘로나눈곳에기존도로를폭20미터로확장하는계획을세웠는데다행히일본이패전하면서도로확장은진행되지않았다.아이러니하게도북촌살리기운동이한창이던시절에일제시기에그은도로계획선을따라왕복4차선도로가만들어졌는데바로북촌로이다.
도로가확장되면서집이철거되고땅이잘려나갔다.그래서북촌로의서쪽에는북촌에서는좀처럼볼수없는축대위에얹힌한옥이줄지어있게되었다.또한북촌의한옥보존운동이성과를거두면서북촌을찾는사람들이많아지고그들을상대로한크고작은상점이많아졌는데마당을향해열린한옥을도로를향해열고대문간을없애게되었다.

전시체제에그어졌던소개도로선은경제개발기를거치며도시계획도로선으로바뀌었다.해방후50년가까운세월동안집행되지않았던소개도로에기초한북촌로확장이1988년의서울올림픽도끝나고북촌살리기운동이한창이던시절에느닷없이시행되면서북촌로는왕복4차선이되었고오늘의북촌풍경을만들었다.
_17쪽에서

《가회동두집,북촌의100년을말하다》는가회동의잘지은두집의변화과정과함께두집이자리한북촌,가회동의변화와의미를이야기한다.저자는“물리적으로보존된북촌을‘바라보는대상’을넘어북촌안에서북촌이담고있는우리의삶과미학을즐기고내것으로만드는새로운방법을제안했다”(219쪽)며가회동두집의의미를이야기를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