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 자서전(축소판)

백암 자서전(축소판)

$200.00
Description
한국 근현대 격동기를 살아온 한 국민학교 교장 선생의 일대기다. 일찍이 기록의 중요성을 깊이 인지하고 꾸준히 일기를 써 온 것을 토대로 자서전을 썼다. 백암 선생과 동시대의 이야기인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白巖 自敍傳》도 마찬가지다. 어느 충청남도 국민학교 교장 선생의 삶은 남달랐으니 사뭇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선주문 후제작 도서다. 일일이 손수 책장을 실로 엮는 수제본으로 제작에 다소 시일이 걸리므로 주문하면 보름 정도 뒤에 받아 볼 수 있다. 부담스런 값을 치르고도 기다리는 정성까지 더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책인데다 중간에 취소할 수도 없으니 주문에 신중해야 한다.

널리 알리는 글

이것은 그저 하얀 종이더미에 지나지 않아요. 얼핏 보면 제목도 없고 이름도 없고 아무 것도 없이 하얘요. 네모 반듯하니 벽돌이라고 해도 되고, 종이는 나무로부터 왔으니 목침이라고 해도 되요. 하야니 조금 과장해서 하얀 바위라고 해도 되죠. 옆으로 보면 지층도 있어요. 책은 거만한 존재라서 누구라도 책장을 열지 않는면 절대로 속을 보여 주지 않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것은 책이에요. 책은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이죠.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이고, 그러한 것을 세는 단위이기도 한데요. 모양 상으로 이것은 벽돌책이고, 내용상으로 이것은 자서전이에요. 수집하고 기록하는 데 평생을 바친 백암 선생 일대기예요. 아무나 이름 뒤에 붙이는 선생이 아니고, 진짜 국민학교 교장 선생이었어요. 자고로 일기를 검사하는 선생들께서 일기 쓰는 데 지친 아이들에게 나중에 일기가 얼마나 값진 보물이 되는지 귀띔해 주잖아요. 《백범 일지》니, 《안네의 일기》니 역사를 증언하면서도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책들도 많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것은 일기이고, 덧붙여진 문서들은 그러한 증거예요. 이런저런 시대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도 한몫하는데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따위 험난한 시대를 살아낸 이야기예요. 이런 이야기들은 누구의 것이라도 우리 이야기가 되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조각조각 퍼즐 맞추기 해야 하는 현재 사람들은 지난한 역사라고 하는데요. 이것이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되고 보면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이죠. 우리 이야기니까요. 그런 일이 책이 되고 보면 어찌 잘 일어나진 않아요. 책은 그저 종이더미에 지나지 않죠. 낮잠 잘 때 베고 자면 좋을 게 책이기도 해요. 하물며 이러한 용도까지 있는 게 책이에요. 이것이에요. 궁금하다면 한 번 열어 보세요. 이것은 값이 제법 비싼데요.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요. 종이에 인쇄하고, 그것을 접고, 눌러 두었다가 실로 엮는 일을 한 권씩 손수해요. 친환경적이고 좋은 종이도 쓰죠. 비싼 이유야 여럿이라 말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에요. 이것은 온로프라인 서점나 연장통 스마트스토어에서 주문할 수 있어요. 주문한 뒤 보름 정도 뒤에 받을 수 있어요. 책을 잘 만들자면 시간이 다소 걸려요. 그만큼 값진 책이에요. 그만큼 값어치를 할지는 여러분에게 달렸어요. 시대가 정한 위인전도 아니고, 시대를 바꾼 기밀 문서도 아니고, 시대를 풍미한 사진도 아니지만, 입장에 따라 그런 것이기도 하니까요. 아참, 이것은 작은 책이지만, 더 작은 책도 있어요. 소장하거나 보는 데 유용하고, 값도 보다 저렴하죠. 몹시 아기자기해요.
저자

김성한

백암김성한(金性漢)선생은국민학교교장,양봉인,인삼재배인,간척사업가,영농인,부동산공인중개사,목욕탕과여관운영자등으로한국근현대격동기를살았다.매사에모범이되는삶을살았고,생활의개선을도모하며진취적으로애쓴것이여러모로빛을발하였다.그러한삶을기록한자서전을생전에탈고하였다.이천십이년이월이십칠일에팔십칠세로귀천하였다.

목차

경성에서수학하다-19
희망하던교원이되다-67
한국전쟁을겪다-93
양봉과인삼농사를하다-115
교장이되다-167
노후를보내다-249

한평생듣고읽고써온인간다운생활지표들-327
백암(白巖)김성한(金性漢)가계-355
문서들-385
찾아보기-563

출판사 서평

《白巖自敍傳》을엮으며고하다

나의외할아버지백암김성한(金性漢)선생은매사에부지런하였다.교장선생이자,양봉인이자,충청권인삼재배선구자이자,간척사업가이자,영농인이자,부동산공인중개사이자,목욕탕과여관운영자이기도하였다.한때는수력발전사업을도모하기도하였다.끊임없이발전적인무엇을추구하여서외롭다거나심심하다거나하는것따위는알지못하였다.붓글씨에도조예가깊어서문방사우도가까이하였다.간단하게만들거나수리하는데도능하여서연장통도가까이하였다.창작에대한열정도커서무엇이든갈고닦았다.다재다능한것뿐만아니라배짱과기백도든든하여서어디서든무엇이든물러서는일이없었다.뚱뚱하지만당당하고다부진풍모는앞장서는사람으로서부족함이없었다.따르기만하면모든것이다이루어질것만같았다.

백암선생한테서는학교냄새가났다.그냄새는과학실험실의이름모를약품과기구냄새이기도하고,아이들의꿈과희망이배인책냄새이기도하고,반질반질하게윤이나는마루며책걸상냄새이기도하고,후끈한햇볕이콘크리트에스며드는냄새이기도하였다.국민학생이던나는그냄새를몹시좋아하였다.백암선생이교장선생인것이자랑스러웠다.방학때면혼자서라도백암선생을찾아가사택에서함께지내곤하였다.때때로선생은장래희망을묻곤했는데,서슴없이국무총리라고답하였다.대부분아이들이대통령을꿈꾸던때였는데박정희대통령처럼암살당하고싶지않다는것이이유였다.

백암선생이교직을퇴임한뒤로부동산공인중개사자격을득하여홍성광천통에서한반도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를운영할때였다.어느새고등학생이된나와함께집으로가는길에사무소옆에있던김좌진장군동상앞에서한참을머물렀다.홍성역앞삼거리에있는그동상은손가락을앞세워진군하도록지휘하는역동적인형상으로크기도제법커서위용이대단하였다.선생은김좌진장군을각별하게존경하였다.장군의아들김두한의원과돌림자가같은것도이유였다.장군의무용담을이야기할때마다뿌듯해하였다.김좌진장군이가리키는방향으로십여분정도가면외갓집이었다.집에서는보글보글끓는찌개,구운생선,구운김따위가소박하게차려진밥상이기다리고있었다.백암선생부인이자나의외할머니인박남금여사는살림꾼으로선생과닮은데가많았다.뚱뚱해서둔하였지만뚝딱밥상을차려내었다.선생은식사에진지하였다.대개한시간정도식사하는데,음식을씹을때마다귀밑에서똑똑소리가나서장단을맞추었다.흰밥을한술떠서숟가락밑에김을붙이거나,입안에서오물오물생선가시를발라내거나하는잘먹는방법들을배우기도하였다.잘먹고잘사는것이세상에서가장중요한일이라는것을몸소알려주었다.

철이들면서국무총리가되겠다는꿈은잊어버렸지만,백암선생처럼살고싶다는마음은변하지않았다.매사에모범이되는삶이었다.평소기록의중요성을깊이인지하고이모저모를기록하는데게을리하지않았다.어린나이에홀로상경하여푸른꿈을키웠고,일가를이루고살면서도이런저런사업에직접뛰어들어생활의개선을도모하였다.온전히진취적인삶이었다.일제강점기와한국전쟁을거치면서폐허가된국토를되살리는일이대대적으로벌어지던때였으며,배고픔과가난에서벗어나려고애쓰던때였다.새마을운동이다경제개발이다해서마을을살리고나아가국가를살려야하던때여서백암선생의진취적인도전은빛을발하였다.이자서전은그런일들을세세하게또한사실대로기록하고있다.

누구라도그일대기는나름대로특별하고가치가있기마련이다.격동의세월을지나온이야기를스스로기록한자서전은더욱그러하다.그러한삶이여럿이고,비슷비슷하고,보편적이라고주목하지않을수도있겠으나,긴밀하게보면퍼즐의한조각처럼긴요한가치를알게된다.그런일을가능하게하는것이책이다.시대가정한유명인사도아니고위인도아닌이의일대기는대체로가족을통해구전되다가사라지고만다.그러나기록하여책으로엮으면입장은달라진다.긴밀하게볼수있는기회가생기는것이다.훗날역사를바로알게하는증거가되기도하니,지금당장은가족의일일뿐이겠지만한일대기가책으로남는일은역사앞에서뿌듯해지는일이다.

《白巖自敍傳》내용은대체로소상한데자녀들출생은기록되었으나결혼이라든지손주들출생따위는누락되었다.선생의부인박남금여사에대한이야기도그러하다.나는어려서외할머니등에업혀서자란데다방학때마다외갓집에서살았기때문에외할머니도소중하게기억하고있다.나의외할머니박남금여사는교장선생부인이었지만,내세우거나대접받는삶을살지는못하였다.여느촌부와다르지않게텃밭을일구고가족의끼니를챙기는일에매여살았다.팔남매를낳고키우는일로청춘은연기처럼사라졌는데,나중에는고혈압과합병증으로자주병원을드나들어야했다.그때도아내로서,어머니로서의입장은외할머니를놓아주지않았다.자식들이일가를이루고잘살게된뒤에는이미늙고지쳤는데,본처입장에서애써마음을다스려야하는일도겪어야했다.자신이어떤입장이든자신을위해마음을써보지못한삶을살다가이천육년일월이일,음력으로이천오년십이월삼일에팔십일세로귀천하였다.그삶은진취적이고당당한백암선생의온전한동력이었다.

백암선생이생전에자서전을탈고하고책으로엮을것을요청해서이천사년사월이십사일에《白巖自敍傳》을소량발행한적이있다.선장본고서를응용해서나름대로예스러운편집과디자인을적용한책이었는데볼수록아쉬움이많아서틈나는대로살피며다시발행하고자하였다.그뒤로이천십이년이월이십칠일에백암선생이팔십칠세로귀천하였고,이천십삼년삼월십삼일에는선생의동생백수(白水)김필한(金弼漢)선생이팔십사세로귀천하였다.백수선생은평소사진등예술에조예가깊었으며,유능한미학자,공학자,수학자아들들을두었다.이천이십일년시월십팔일에는선생의둘째아들이오랜투병을끝내고육십구세로귀천하였다.이천이십이년삼월사일에는선생이애써지킨홍성군갈산면오두리산413-3번지조상묘를인근기산리산4-6번지로옮겨가장큰소나무밑에합폄하였다.

세월은유수와같이흘러서백암선생십주기가되었다.《白巖自敍傳》을다시발행하고자이전에발행한책을꼼꼼하게살피고보완하였다.선생이생전에수정본을만들어놓아서참고하였고,선생의자녀들가족소사와선생의동생백수선생가족소사도수집하여더하였다.일찍이기록과수집의역사적가치와역할을깊이인지한백암선생이평소꼼꼼하게챙겨놓은문서들도찾아서더하였다.통신부,상장,표창장,증명서,졸업증서,편지,채용증,수료증,발령증,수강증,수료증,이수증,자격증,인사기록,호적,임명장,이수증,위촉장,이력서,인감증명서,진단서,훈장증따위문서들은그내용이생생하여그자체만으로도당시대는물론선생의일생을고하고증명하기에충분하다.연도순으로배열하였고,실물크기를가늠할수있도록절반정도크기로동일하게축소하였다.

때때로백암선생가족저마다의기억을소환하여자서전의여러정황들을확인하는자리를갖기도하였다.여러친척들이홍성군과보령시에살고있어서서로해후하는일이기도하였다.선생이일가를이루어동거동락한충청남도보령시청라면장현리를방문한적도있었다.든든한가장이었던백암선생은물맑고공기좋은이곳에당시신설된장현국민학교교장이었고,양봉과인삼농사를성공하여주변에장려한귀인이었다.팔남매는저마다그시절을선명하게기억하였다.대가족생활이어서할아버지,할머니에대한기억과그리움도컸다.강직한선비였던할아버지를따라인근청양군화성장에가는것이큰기쁨이었다는,장터주막에서할아버지는소주를한잔하고할머니와손주들은맛나게떡을먹었다는,돌아오는길에짐꾼들어려운사정을살펴서쉬엄쉬엄걷자면엄하던할아버지얼굴에도웃음꽃이피었다는이야기들이생동하였다.그이야기들을다더하지는못하였다.

이천이십이년일월신정과구정사이어느날백암선생둘째딸인나의어머니와함께대천으로선생의첫째딸인희동이모네를찾았다.지팡이없이는거동하기어려운상황에서도반갑게맞아주고이것저것먹을것을내오는정성에몸둘바를모를때였다.이모가카세트테이프하나를내놓으며플레이어가없어서듣지못하는신세를고백하였다.‘백암이불러본흘러간노래’라고테이프에손수적어놓은것까지선생의손길이정성스레배어있었다.방송장비로카세트테이프를디지털파일로변환해주는곳에맡겨서선생의음성을다시들을수있었다.노후에청양집에서적적한시간을보내며본인이좋아하던노래를불러녹음한것인듯하였다.시간이흘러제작한미디어마저사라진시대라도반가운목소리를듣게될누군가가있을것을알고있었던것일까.선생의음성을들은가족들은모두반가워하며지난날들을추억하였다.더욱우애하는계기가되었다.누구라도그노래를들을수있게큐알코드를달아놓았다.

《白巖自敍傳》은누구라도읽기편하게큰글자를썼고,한글의아름다움이배가되는세로쓰기를하였다.예스러운면면을도모하면서도널리쓰이는서양의형태와도어울리게애썼다.평평하게펼쳐져서속속들이다볼수있게일일이손수책장을엮어만드는정성도더하였다.여러모로남다른이책은풍모까지도온전히백암선생을닮고자하였다.보거나소장하거나책은작을수록유용하기도하니내용은같고절반정도크기로축소된책도따로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