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박사님을생각하며
그분생각이날때마다
이미타버린눈물샘때문에
흐르지도못하는눈물을속으로만삼킵니다
-채규철(1937~2006.사회운동가,교육자)
1968년10월30일,하루아침에내운명이바뀐그날은하늘이맑았고바람이솔솔부는좋은날씨였습니다.덴마크유학에서돌아와농촌운동을하던나는,그날양계장견학을마치고회의에참석하러가고있었습니다.시간이조금늦는바람에지름길로달리게되었는데,그길은너무험해서지나가는차도사람도거의없이한적했습니다.
그런데어느순간,우리가탄미니버스가앞머리부터기울기시작하더니약10여미터아래언덕으로구르기시작했습니다.미처정신을차릴새도없이차는순식간에뒤집혀버렸습니다.그때차안에는유아원바닥을칠할때쓸시너두통이실려있었습니다.
결국우리는그것을온몸에뒤집어쓰고말았습니다.그리고얼마뒤시너는여기저기서튀어오른불꽃에닿아펑,하고폭발했습니다.그와동시에우리몸은시뻘건불길에휩싸였습니다.
나는정신을놓지않았습니다.그리고창문을힘껏발로차고깨진창틈으로나와동료들을끌어내기시작했습니다.그러나온몸에붙은불은아무리털어도꺼지지않았습니다.마침아래쪽논에서일하던농부들이뛰어와입고있던옷을벗어불을꺼주었지만,내몸은이미한참이나타버린뒤였습니다.도저히살수있을것같지않았습니다.
덴마크에서돌아오자마자시작한일이몇가지있었습니다.그가운데두가지가내겐아주중요했는데,부산복음병원원장으로계시던장기려박사님과시작한‘청십자운동’과‘부산모임’이었습니다.나는이두가지일에대해장박사님께유언이라도하고죽어야겠다고생각했습니다.
엉망이된몸을이끌고지나가는차를향해손을흔들었습니다.하지만아무도세워주지않았습니다.기사들은나를보면도망가느라정신이없었습니다.
“사람이죽어가는데……덴마크에서는이러지않아!”
아무리고함을쳐도나를태우려고서는차는없었습니다.트럭도자가용도모두그냥지나갔습니다.
그때이상하게오른쪽눈앞이숯불처럼빨갛게되더니사르르꺼져버렸습니다.아마도깨진자동차유리창파편이오른쪽눈동자속으로뚫고들어갔던모양이었습니다.나는그때한쪽눈을잃었습니다.그렇게약30분쯤지나서야동네파출소에서달려온순경이지나던택시한대를강제로잡아주었습니다.나는장기려박사님이름을애타게불렀습니다.
복음병원에도착했을때,장박사님은회의때문에시내에나가고계시지않았습니다.나는수술대에누운채가능한한빨리장박사님을불러달라고애원했습니다.빨리박사님을만나서그동안애써벌여놓은의료조합운동일에대해유언을해야한다는생각뿐이었습니다.그리고얼마나지났을까,장박사님이뛰어오셨습니다.
“채선생,이게어떻게된거요?”
“박사님,제가몇시간을더살지모릅니다.청십자운동이랑부산모임만큼은꼭잘되도록이끌어주십시오,제발…….”
유언처럼말을마치자장박사님은온몸을소독하고이곳저곳살피기시작했습니다.그야말로혼신의힘을다한,여섯시간이넘는응급처치였습니다.당장은수술을받는것도위험했습니다.의사들은하나같이살가망이없다고말했지만,그래도나는사는데까지살아야겠다는생각으로버텼습니다.
물이건우유건,주는대로젖먹는힘을다해마셨습니다.그사이장기려박사님은부산에서제일큰침례병원의외과과장으로있던,테보라는미국인의사를데려와나를보였습니다.
“우리병원에는화상을치료할약이없습니다.전문의사도없고,시설도부족합니다.시설이좋은그쪽병원에입원시키면살릴수있지않겠습니까?”
테보박사의입에서나온첫마디는이거였습니다.
“Hopeless!(가망없습니다!)”
“그래도혹시목숨만이라도살릴수없을까요?”
“팔다리를모두자르면목숨만은살릴수있을지모르겠습니다.장담하기는어렵습니다만…….”
두사람은영어로이야기하고있었습니다.내가영어를모르는줄아는모양이지만,나는그이야기를다알아듣고있었습니다.고통은참기힘들지경이었습니다.나는차라리죽는게낫다고생각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장박사님이단호하게말했습니다.
“안됩니다.”
장박사님은또이렇게말했습니다.
“생명은하나님손에달린것입니다.제가할수있는데까지최선을다해보겠습니다.”
나는지금도그때를생각하면온몸이떨려옵니다.장박사님과테보박사는마음의자세가달랐습니다.한의사의마음가짐과생각에따라환자의운명이극과극으로달라질수있다는것을새삼느꼈습니다.
그순간,장기려박사님의결단덕에나는살아날수있었습니다.그리고청십자운동에좀더힘을보탤수있었고,지금까지도살아서주어진사명을감당해나가고있습니다.비록‘이티(이미타버린몸)할아버지’라고불리는불편한몸이지만,글을쓰고강연을하고아이들을가르치는데는전혀부족함이없습니다.
나는함석헌선생님이만들어준정신과장기려박사님이만들어준몸으로된사람입니다.그래서돌아가신지10년이넘었지만,아직그분을잊을수없습니다.그리고그분생각이날때마다이미타버린눈물샘때문에흐르지도못하는눈물을속으로만삼킵니다.
그분이야기가책으로만들어져나온다고하니감회가새롭습니다.전쟁영웅이나정치가들보다먼저기억되었으면싶은아름다운의사한분이우리곁에있었다는것을우리청소년들도알수있게되었기에말입니다.
그분무덤에세운비석뒷면에는내가쓴비문이새겨져있습니다.그글귀를다시한번마음에새기며맺고자합니다.
모든것을가난한이웃에게베풀고,
자기를위해서는아무것도남겨놓지않은
선량한부산시민,의사,크리스천.
이곳모란공원에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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