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분화된아니무스animus
유창근(문학평론가.문학박사)
문학작품을논할때,그작가의생애를조명하는일은매우중요하다.영국의대표적시인밀턴JohnMilton이쓴「실명失明에관하여OnHisBlindness」는그의눈이전혀보이지않았던44세(1608)때창작되었다는사실을알때,작품을훨씬더폭넓고깊이있게이해할수있다.
□김인녀시인의일곱번째시집『인연의열매』를관심있게읽었다.
김인녀시인은평안남도덕천에서3남3녀중다섯째로태어났다.유년시절에는대지주의딸로부유한환경속에서자랐으나,1948년국토가남과북으로분단되자북한이사회주의노선을택하면서그의가족들은사유재산을몰수당하고,봉산탄광촌으로쫓겨나근근이끼니를이어오다가1·4후퇴때월남越南하여전라북도이리(현재익산)에정착했다.교육열이남달랐던부모는어려운환경속에서도자녀들을모두학교에보냈는데,김시인은이리여자중·고등학교를거쳐수도여자사범대학(현세종대학교)을졸업한뒤모교의영어영문학과조교수,체신부공무원,미국계회사임원,독일계회사대표이사를역임했다.특히독일계회사에서는그에게조건없이CEO자리를맡길정도로업무능력이뛰어났고통솔력이강했다고한다.
평소시詩에관심이많았던김시인이시창작詩創作에본격적으로참여하기시작한것은76세때남편과사별하면서부터다.처음3년동안은혼자서습작생활을하다가시창작반에들어가2년간체계적으로시공부를하고,2017년「현대시선」가을호신인문학상시부문에「석양의단상」,「설악산의가을」,「허무」가당선되어시인으로등단했다.등단다음해인2018년에제1시집『나의황금날개』(2018.3)출간을시점으로,제2시집『나목의노래』(2019.3),제3시집『꽃잎사랑』(2020,3),제4시집『꽃바람』(2021.7),제5시집『흐르는강물처럼』(2022.5),제6시집『그대는나의봄』(2023.7)등해마다1권씩의시집을발간하여왕성한창작의욕을보여왔다.그리고등단7년차인금년에일곱번째시집『인연의열매』를세상에내놓게되었다.그가등단당시에‘매년한권씩의시집을내겠다’는약속을지금까지한번도어기지않았고,시집출판도첫시집을발간한출판사에계속맡겨온것은그의올곧은성격과무관하지않다.
김시인은등단이후한국문인협회회원,한국문인협회구로지회회원,현대시선문인협회부회장,아차산문학상추진위원장등으로활동하면서문인으로서의위치를탄탄히다져왔다.그동안의열정적인창작의욕과문학적성과를높이평가받아난설헌허초회문학회금상,제5회시선문학대상,제5회창작동네문학상,제7회시동네문학상,송강문학상대상,농민문학작가대상을받은바있다.
□김인녀시인의제7시집『인연의열매』(2024)에수록된작품들은기존의시집에서보여준인간人間과인간人間,인간人間과자연自然,자연自然과자연自然의연결고리를더욱구체적으로형상화했는데,특히이번시집에서‘꽃’과‘그대’와‘그리움’이라는시적대상물을역동적이면서도진취적인이미지와연결하여긍정적으로분화시키고있는점이주목된다.
김인녀시인은한마디로‘꽃의시인’이다.그의시를읽다보면수없이많은‘꽃’을발견할수있는데,그‘꽃’들은김시인이걸어온인생여정旅程을진취적이고,적극적이며,역동적인이미지로형상화하고있다.
프로이트의제자융C.G.Jung은인간의심리본질을영혼과의식과무의식을포함한포괄적인개념으로파악했는데,인간개개인의심리속에공통적으로작용하는원형가운데아니마anima와아니무스animus를언급하였다.여기서아니마는남성의내면에존재하는여성적인요소를,아니무스는여성의내면에존재하는남성적인요소를일컫는데,아무리남성다운남성일지라도그의내면에는여성적인요소가들어있고.아무리여성다운여성일지라도그의내면에는남성적인요소가들어있다는것이다.순수한남성과순수한여성이따로있는게아니라,이양성속에는각각서로다른성이들어있어서,특히여성의경우,건강한아니무스의발달을통해힘의충동에서진취적인성향과말의의미적힘을깨닫고,그의미를실현하고,지혜를획득한다는것이다.
김인녀시인의시에서특히아니무스적성향의시어나정황을발견할수있는데,그의시집『인연의열매』에사용된시어를분석한결과,시집에수록된총105편의작품가운데41%에해당하는43편이‘꽃’을소재로선택하고있다.특히시집의제1부에수록된25편의작품은전체가꽃을소재로하고있는데,25편가운데「그대사랑」과「난꽃이지네」등2편을제외한나머지23편은‘피는꽃’을노래하고있어서전체적으로상승적上昇的이미지를강하게표출하고있다.상승적이미지는그밖에「그리움」에서‘꽃이활짝핍니다/많은고운생각이꽃처럼핍니다/당신의안부인가가슴설렙니다’,「붉은꽃으로오는당신」에서‘향기로운꽃향기타고당신이/날아와삭막하던내뜰에/따사로운봄꽃을펼치고/내가슴에붉은사랑꽃이피었네’,「나의바다」에서‘간밤에비바람지나니동녘에/오색무지개희망의꽃등달고/파도는영광의찬미를노래하고/바다는사랑의윤슬이일렁인다’등여러작품에서적극적이고진취적인이미지로형상화되고있다.
현대백화점입구에얼마전
꽃집이문을열어가지가지
꽃이활짝웃으며반긴다
아침이면새꽃들향기물씬안고
꽃집아가씨는꽃보다더곱게
이꽃저꽃꽃이야기를묶는다
시들은꽃은슬며시빠지고
새로운이야기는매일다른꽃으로
시작해야하는꽃집이다
그많은꽃중에항상있는
시들지않는꽃속에웃음꽃피우는꽃
활달한꽃집아가씨꽃이다
「시들지않는꽃」전문
앞의시「시들지않는꽃」은형식적인면에서4연12행의기승전결起承轉結형식을갖춘정형시다.관심있게살펴보면,전체12행중11행에서‘꽃’을시어로선택하고있는데.다만둘째행‘현대백화점입구에얼마전’이라고서술한단한행에서만‘꽃’을시어로선택하지않았다.그런데,2연의3행에서‘이꽃저꽃꽃이야기를묶는다’.4연의2행에서‘시들지않는꽃속에웃음꽃피우는꽃’이라고서술하는등,한행속에서‘꽃’이라는시어를무려3회씩반복사용하고있는데,이는곧‘시들지않고,활력이넘치는꽃’을시각적으로희화화戲畫化하기위한의도로분석된다.
또한,「시들지않는꽃」전반부에서김인녀시인은꽃의속성인‘시듦’을체험적사실에비추어진술하고있는데,마지막결론부분에꽃집아가씨를‘시들지않고’,‘웃음꽃을피우고’,‘활달한꽃’으로비유한것을볼수있다.그러나이와같은비유는솔직히논리적으로수용하기어려운모순적矛盾的진술이다.영원히시들지않는꽃은세상에존재하지않을뿐더러,항상웃음꽃을피우고,활달한모습을보여주는꽃은세상어디에도존재하지않기때문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화자가「시들지않는꽃」에서모순적인논리를거침없이쏟아내는행위는남성특유의오기傲氣로이른바여성의내면에존재하는남성성,즉아니무스animus로해석할수있다.
시에서의언어는서로모순되거나충돌하는것끼리하나의문맥안에수용할때의외로신선하고훌륭한시가빚어질수있다고한다.정서적언어상으로볼때,설령지시대상指示對象의오류가크다고하더라도,태도나정서면情緖面에서일으킬수있는효과가더크다고판단될때는서로모순되거나충돌하는언어를한문맥안에수용하는것이크게문제되지는않는다.
꽃은피었습니다
인생도그러하거늘
하늘의먹구름이몰려와도
폭풍이가로수를후려쳐도
눈보라가맨살을할퀴어도
목이마르고배가고파도
눈물젖은가슴이희망의패기로
봄은다시오리니참아야한다고
꽃은말합니다
꿈의정상은눈부실거라고
「꽃은말합니다」2연
앞의시「꽃은말합니다」는꽃에게인격을부여하고,비유적으로교훈적메시지를전하는일종의알레고리allegory시로볼수있다.알레고레시는특히독자의반성이나성찰을촉구하려는목적을지니기때문에지적知的인성격이강하다.이시에서화자는꽃을의인화하여추상적인개념이나현실의모습을인생에비유하고있는데,시의화두를‘꽃은피었습니다’로시작하여먹구름이몰려오고,폭풍이몰아치고,눈보라가맨살을할퀴고,목이마르고,배가고파도역경을잘견뎌야좋은결과를얻는다는교훈적메시지를담고있다.여기서‘먹구름’,‘폭풍’,‘눈보라’,‘갈증’,‘배고픔’등은언어그자체에남성성을지니고있어서시인의정신세계에잠재한아니무스animus를어렵지않게읽을수있다.그리고「꽃은말합니다」에서‘꽃’은마치세상을오래살아온인생의대선배가새내기들에게‘온갖고초를잘견뎌야좋은결과를얻는다’며,마지막을‘꿈의정상은눈부실거라’고마무리하여주제가선명하고,시의제목을동사형으로처리한부분도생동감이있다.
잊은듯잊혀지지않는그대생각
아픔을미소로색칠한다
무심한순간속에눈물을
뜨겁게삼키며두레박질을한다
길어올린차가운고독으로
고통이아플수록강한채찍이다
차곡차곡쌓은고뇌로벙그는
꿈의꽃은화사하고눈부시다
뭉게구름푸른하늘잊은채
먼고개무심히넘고넘어가도
변함이없는꽃
꿈의꽃이다
「꿈의꽃」전문
시인은「꿈의꽃」을화사하고,눈부시며,어떤상황에서도시들지않고,변하지않는‘영원불멸의꽃’으로형상화하고있다.여기서화자가말하는‘꿈의꽃’은단순히식물로서의꽃이아니라,영원히변하지않는‘아름다움’인동시에‘순결함’이고,‘새로움’을의미하는관념적인상징물이다.특히이시의화자가‘길어올린차가운고독으로/고통이아플수록강한채찍이다’라고표현하고있는데,여기서‘차가운고독’이나‘강한채찍’또한,언어자체에남성성이강하게내재된것으로읽을수있다.
□시집『인연의열매』에서주목해야할또하나의시어는‘그대’라는대명사다.사전적의미로볼때,말하는사람이친구나아랫사람을높여부를때사용하는2인칭대명사가‘그대’다.주로‘~하오’체와‘~해라’체에서사용하는경우가많은데,‘~하오’체와‘~해라’체가사어死語가되면서특히현대시에서는사용빈도가점차낮아지고있다.김인녀시인의이번시집을분석해보면,‘그대’라는시어가약60여회선택되고있어‘꽃’다음으로사용빈도가매우높은편이다.
①메마른가슴에불꽃이입니다
그대눈빛에내가슴이탑니다
연기도없이탑니다
재도없이타오릅니다
그대는시시때때이글거립니다
내모두를태우는불덩입니다
태양보다뜨거운불꽃그대
날사르는활활타는불꽃입니다
「그대는불꽃」전문
②무료한봄날에그대가
꺾어준꽃은그저꽃이아니라
그대의붉은관심이었습니다
찌는듯태양이쏟아질때
펼쳐준양산은빛가리개가아니고
그대의뜨거운열정이었습니다
땀을식혀주는그대그림자는
그냥그림자가아니라사랑을
말해주는그대몸짓이었습니다
한겨울꽁꽁언내손을잡아준것은
그대손이아니라그대심장에서
분출하는뜨거운사랑이었습니다
「그대사랑」전문
김인녀시인은시①「그대는불꽃」에서불의이미지와꽃의이미지를자연스럽게접맥하고있다.그대는곧‘내모두를태우는불덩이’이며,‘날사르는불꽃’이라비유하고있는데,이시에서,연기도없고재도없이모두를다태워버리는불꽃은아니무스animus의상징물이기도하다.
불은그속성으로보아빛과열을수반한다.「그대는불꽃」에서화자는‘그대’를‘태양보다뜨거운불꽃’,‘활활타는불꽃’에비유한뒤,‘그대의눈빛에내가슴이탄다’고고백한다.그리고‘그대’의존재를어느것에도비교할수없는‘강력한존재’,신神과같이‘절대적인존재’로인식하고있다.따라서‘불꽃’이나‘불덩이’는김인녀시인의내면에잠재된대표적인아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