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허수경 산문집 | 바빌론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 | 양장본 Hardcover)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허수경 산문집 | 바빌론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 | 양장본 Hardcover)

$14.80
Description
“무덤을 열고 들어가 나 스스로 죽음이 되어 쓴 책!”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를 펴냅니다. ‘바빌론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지난 2005년 9월 출간된 바 있는 저자의 책 『모래도시를 찾아서』의 개정판이기도 합니다. 지난 10월 3일 독일 뮌스터에서 세상을 뜬 시인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이 책은 오리엔트의 페허 도시 바빌론을 중심으로 고대 건축물들을 발굴하는 과정 속에 참여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한 권의 고고학 에세이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죽음’을 붙잡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있다 없어진 일, 지금에 와 없는 자는 말이 없고 있는 자는 말을 할 수가 없는 일, 그것이 죽음이라 할 때 시인은 다분히 그 상징성을 띤 발굴터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일에 능동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자

허수경

경남진주에서태어났다.그곳에서자라고대학역시그곳에서다녔다.오래된도시,그진주가도시에대한원체험이었다.낮은한옥들,골목들,그사이사이에있던오래된식당들과주점들.그인간의도시에서새어나오던불빛들이내정서의근간이었다.대학을졸업하고밥을벌기위해서울로올라왔고그무렵에시인이되었다.처음에는봉천동에서살다가방송국스크립터생활을하면서이태원,원당,광화문근처에서셋방을얻어살기도했다.

1992년늦가을독일로왔다.나에게는집이라는개념이없었다.셋방아니면기숙사방이내삶의거처였다.작은방하나만을지상에얻어놓고유랑을하는것처럼독일에서살면서공부했고,여름방학이면그방마저독일에두고오리엔트로발굴을하러가기도했다.발굴장의숙소는텐트이거나여러명이함께지내는임시로지어진방이었다.발굴을하면서,폐허가된옛도시를경험하면서,인간의도시들은영원하지않다는것을뼈저리게알았다.도시뿐아니라우리모두이지상에서영원히거처하지못할거라는것도사무치게알았다.

서울에서살때두권의시집『슬픔만한거름이어디있으랴』『혼자가는먼집』을발표했다.두번째시집인『혼자가는먼집』의제목을정할때그것이어쩌면나라는자아의미래가될것이라는예감이들었다.독일에서살면서세번째시집『내영혼은오래되었으나』를내었을때이미나는참많은폐허도시를보고난뒤였다.나는사라지는모든것들이그냥사라지지않는다는것을짐작했다.물질이든생명이든유한한주기를살다가사라져갈때그들의영혼은어디인가에남아있다는생각을했다.

뮌스터대학에서고고학을공부하고박사학위를받으면서학교라는제도속에서공부하기를멈추고글쓰기로돌아왔다.그뒤로시집『청동의시간감자의시간』『빌어먹을,차가운심장』『누구도기억하지않는역에서』,산문집『그대는할말을어디에두고왔는가』『너없이걸었다』,장편소설『모래도시』『아틀란티스야,잘가』『박하』,동화책『가로미와늘메이야기』『마루호리의비밀』,번역서『슬픈란돌린』『끝없는이야기』『사랑하기위한일곱번의시도』『그림형제동화집』등을펴냈다.

동서문학상,전숙희문학상,이육사문학상을수상했다.

2018년10월3일뮌스터에서생을마감했다.

목차

작가의말│7
개정판작가의말│10

바빌론│16
글쓰기,라는것의시작│31
애거사크리스티와고고학│46
‘그들’과‘신들’,그리고……│59
그러나,뿌리를위하여│73
몇개의순간들│84
타인의얼굴│97
방앗잎,그리고해골에게말걸기│109
서재안의흰고래│121
늘어진시계,20센티미터의여신│135
기억과기역,미음과미음│149
바다바깥│162
발견의편견혹은편견의발견│188
존재할권리│201
끝이전해지지않는이야기│212
사원과꿈│224
니네베혹은황성옛터│236

출판사 서평

총17개의챕터로이루어진이책은전인류의역사를막론하고흔적을남기고싶어한,불멸을탐한인간욕망의부질없음을탓하곤하는시인만의날카로운통찰을배울수있어일견숙연하게도만듭니다.서로를죽이고죽이지못해안달인인간만의정복과찬탈의역사로파괴와파괴를거듭한증거인유적들을통해어떤소용의무용에대해서도가르침없이그저보여줌의묘사로어떤깨달음을줍니다.그럼에도시인은역사적발굴현장에서근원적으로느낄수밖에없는인간본연의외로움과그리움을토로합니다.모래먼지속에모래먼지가될제운명을예견이나했다는듯,차곡차곡제죽음의당위성을미리써두기나했다는듯이발굴터에서써나간이아픈기록들은시인의유서로도읽히기에충분합니다.

“수없이파괴당했던바빌론,누가그곳을그렇게수없이다시건설하는가”라는브레히트의말은“발굴을하는자에게폐허도시는잊힌도시가아니다.자신의환상속에서움직이고자신을구속하는살아있는현재이다”라고한시인의말과일견겹칩니다.그래서일까요.시인은끊임없이자문합니다.“과거를발굴하는일을왜,하는가,라고동아시아인은스스로에게”묻기를반복합니다.“얼마나많은신이그곳에살았고,잊혔고,그리고현재속으로다시불려졌는가!”수없이메모를남깁니다.“어떤대륙도주인을가지지않았는데,누구도어떤한뼘땅의주인이될수없는데……”

죽은자의휴식을정말,방해하고싶지않았지만그럴운명속의시인은대신그발굴터에서만나게된철기시대의무덤속한소년과한나절을보내기도하면서“마치산사람과터놓고지내는것처럼그와터놓고,그철기시대의한저잣거리에서일어난이야기가은걸나누고싶어”합니다.무덤을발굴하는것을그다지좋아하지않지만해야하는상황속의시인은고고학자와시인이라는운명가운데후자가제게더맞다는것을깨닫고는합니다.이책의일견이되려시론으로읽히기도하는이유는그렇게시로향하는제자신의마음을솔직히토로해가는그녀의자문자답속에시의나침반이미친듯이흔들리고있어서가아닐까생각도해보았습니다.그리하여어떤‘냄새’로맡아지는,규명할수없는어떤‘훈기’로알아채야하는조짐같은게시라할때,그뒤안에서시를되새기는이런대목을보고있자면요.

“이소년의뼈와해골을분석해서철기인들에대한정보가담긴자료를좀더보태는것이,사실고고학현장작업을하던그때나의숙제였는데,그숙제를끙끙거리고하면서도나는내숙제라는것이이소년과는아무상관이없다는생각을하고있었다.만일내가죽어몇천년뒤에이렇게발굴이된다면그뼈는나와무슨상관이있겠는가.해아래로드러난그에게서는,그의손가까이에놓여있던종지에서는아무런냄새가나지않았다.그의어미였을까,그에게곡식과대추가담긴종지를놓아둔이는.종지안에서돌처럼굳은곡식알과대추씨를작은구멍을낸비닐포장지에담았다.고식물학을하는이가실험실에서이곡식알과대추씨를분석할것이다.그러면적어도이곡식알이밀알인지보리알인지뭔지를우리는알수있을것이다.그러나,그냄새는.
휴일,아무도없는폐허지를산책하다가그늘에앉아물을마시며내가판텅빈무덤을바라보노라면,글쎄,그죽음이라는것,그리고살아간다는것이냄새가있고없고를넘어다정하게어깨를겯고있다는생각이든다.조금쓸쓸한것은어떤실험실도내가기억하는,유럽인들이시암바질이라고부르는방앗잎의냄새를뼈에서찾아낼수없을거라는것,살아있다는것이그래서그렇게즐겁다는것도.혹은죽은뒤가되면어떨까,물고깃국을함께먹던식구들의그등을나는기억할까.아마도,저돌처럼딱딱해진곡식알과대추씨처럼,그렇게.”
-119~200쪽

시인이떠난이후시인의사십구재에맞춰출간된이산문집은허수경이라는사람의인생앨범같기도하다는생각이듭니다.고향의냄새를맡으려기억을타고올라가던고백에서,고향을떠나와독일에서두번째생의짐을부려놓는나날의아픈대목에서,아무런냄새가나지않더라고한발굴지에서“마치폐허를몸소살고있는것같이,고요했고허탈”한표정을짓곤하던대목에서,“이지상에있는어떤시집들은김치중독자들이밥먹을때김치를꼭챙기는것처럼일용할양식에속한다”며백석의시집을읽고또읽는대목에서,나아가“거대정치가짓이겨버린순간들이나즉나즉모여들어이지상에서말의한우주로만들때”그우주를엿볼수있는시인들에게평안을비는대목에서,우리는허수경이라는한시인이자한여성을전부는아니더라도조금안듯한안도에순간심장의뜨거운피돎으로울컥거리게도돕니다.

그러나저러나시인은지금어디에있을까요.허수경이라는시인,저만이할수있는뜨거운제솜씨의음식을우리들토기에퍼준것까지는받아들어알겠는데지금허수경이라는시인,저만이쓸수있는언어의토기는여기에두고대체어디에서와서어디로간걸까요.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