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의 현대시 산고 (황현산 유고 평론집)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 (황현산 유고 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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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선생이 유고로 남긴
시에 관한 끝없는 이야기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의 유고 평론집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 우리 시대 시의 ‘제 살아 있는 힘’을 일깨우는 비평가인 동시에 그 까다롭다는 프랑스 현대시의 가장 탁월한 주해자이기도 했던 그가 ‘시와 끊임없이 교섭하’며 마주한, ‘시가 가르쳐준’ 깊이들을 넓은 품으로 아울렀다. 시에 낯선 이에겐 문으로 들어서자는 노크일 것이고, ‘문학의 밀림’ 앞에 서 있는 이에겐 ‘앞서간 발자국’이 될 것이다.

그 제목이 ‘산고(散稿)’인 것은 현대시에 관한 “논문도 비평도 아닌 글”이라는 뜻일 테다. 그러나 “양쪽 모두이면서 어느 쪽도 아닌” 글로써,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과도 같은’ 팍팍한 작업(『잘 표현된 불행』, 6쪽)에서 벗어나 ‘문학을 맨얼굴로 대면’하는 가뜬한 읽기를 돕는다. 그의 평론집으로만 보자면 『말과 시간의 깊이』 『잘 표현된 불행』에 이어 세번째에 놓이겠으나, 언제든 비평에 붙은 더께를 벗고 “시를 우리에게서 해방”시킬 태세가 되어 있다. 시의 기쁨을 알게 하고 비평의 즐거움을 깨우치는 선생의 ‘영검’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젊은 비평가를 위한 잡다한 조언」을 덧붙였다. 다가올 시대에 대한 근심인 척 써내려간, 앞으로의 세대를 향한 프러포즈다. ‘산고’가 부산하지 않듯 ‘잡다’한 조언도 난삽하지 않다. ‘산고’도 ‘잡다’도 그다운 겸손의 표현일 것이다. 조언이라 달았으되 가르침이 아니라 물음이다. “당신보다 더 날카로운 칼이 어디 있겠는가” 물어올 때, “당신은 고백할 것이 많다” 끄덕일 때. 지금 현장의 글 쓰는 이들, 거기 있냐는 물음이겠다.
저자

황현산

1945년목포에서태어나고려대학교불어불문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대학원에서기욤아폴리네르연구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고려대학교불어불문학과교수를역임했다.프랑스현대시에서상징주의와초현실주의를연구하며문학평론가로활동했다.지은책으로『내가모르는것이참많다』『황현산의사소한부탁』『우물에서하늘보기』『밤이선생이다』『잘표현된불행』『말과시간의깊이』등이있으며,옮긴책으로앙드레브르통의『초현실주의선언』,생텍쥐페리의『어린왕자』,아폴리네르의『알코올』『사랑받지못한사내의노래』『동물시집』,말라르메의『시집』,로트레아몽의『말도로르의노래』,보들레르의『악의꽃』『파리의우울』,디드로의『라모의조카』등이있다.팔봉비평문학상,대산문학상,아름다운작가상등을수상했다.한국번역비평학회를창립,초대회장을맡았다.2018년8월8일별세했다.

목차

책을펴내며··························4

이육사의안좋은시들1····················9
이육사의안좋은시들2···················23
시를번역하는일·······················37
섬의상징섬의서사·····················61
산문시와음악························75
전쟁과자연·························91
「미라보다리」의추억····················107
김수영의꽃과꽃잎들····················121
백석의『사슴』·······················135
김종삼의‘베르가마스크’와‘라산스카’1············147
김종삼의‘베르가마스크’와‘라산스카’2············161
발레리의주지주의와영검없는시···············179
전봉건의「어느토요일」···················195
아름다운문학청년최하림··················211
이육사의포도와김수영의꽃·················227
박서원을위하여······················243
두개의달·························261

부기|젊은비평가를위한잡다한조언·············275

출판사 서평

“설렘이없는시는영검없이젯밥만축내는귀신과같다.”

『밤이선생이다』황현산선생이유고로남긴
시에관한끝없는이야기

‘시’는최초의무후했던기억을현실을관통하여미래에던진다.
‘시인’은슬퍼하는인간이지만또한의지의인간이다.

나는오래전부터시에관해서,특히한국의현대시에관해서,논문도비평도아닌글,양쪽모두이면서어느쪽도아닌글,내가읽은시들이저절로말하는것같은,그래서말이말을이어가는것같은그런글을쓰고싶었다.그욕망에서이연재를시작하지만,필경내가쓰는글이내희망대로이어지지는않으리라는것을나는글을쓰기도전에짐작한다.(……)그렇더라도이연재에두서가없으리라는생각을하면유쾌하다.여기도더듬어보고저기도찔러보는일이자칫시간의엄연한질서를허물기도하겠지만,이기율위반을탓하지않을만큼시간은충분히너그럽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책을펴내며」중에서

희망도하나의연습이다.
좌절의땅에서는그연습이불가능하다.

『황현산의현대시산고』는2012년여름부터2017년봄까지『문예중앙』에연재했던글을한데모은책이다.시작하기에앞서“내가쓰는글이내희망대로이어지지는않으리라는것”“이연재에두서가없으리라는생각”부터털어놓는목소리는더할수없이유쾌하다.『내가모르는것이참많다』던그말쑥한고백과도궤가같다.그에게‘명랑하기’는윤리였다.“늘희망을가지려고애쓰고다른사람들을사랑해야만”지킬수있는것(『내가모르는것이참많다』,126쪽).쓰는이의윤리,선생의명랑함으로책머리를열었다.

안으로는이육사,백석,김수영,김종삼,전봉건에이르는한국시사의기둥들,밖으로는말라르메,아폴리네르,발레리라는프랑스시의면면까지뻗었으니,그품도폭도참으로넓다.익히알려진시인들에게서미처발굴되지못한,가려져있던“비밀의광맥”을찾아내는것이선생의특출함이다.그는줄곧시인들의변호인을자처해왔다.삐친혹을감싼다는뜻이아니라감춰진빛을밝히고내보이는일이다.‘안좋은’시로저평가된이육사의시편들이“육사의기개에,그러나너무협소하게이해된기개에,눌려있는것”임을짚어내며그의“일관된정신”“역사적시간에대한믿음”을구제할때,백석이“샤머니즘에탐닉했다”는주장에맞서“그가무속에일정한거리를유지하고있다는사실”을비추며그현대성을복기할때,우리는선생이건네는통찰이미처손타지않은,비평의‘텃밭’에서온시의‘열매’임을알게된다.

지성은우리를감탄하게하고존경하게는하지만
우리에게감동을주지는않는다.

황현산은빼어난비평가인동시에가장믿을만한번역가이기도했다.아폴리네르,보들레르,말라르메등걸출한시편들이그의살핌으로우리말새옷을입었다.이책에서도그도저한식견의한귀퉁이를열어보인다.「두개의달」에서는아폴리네르의‘신소리’,말꼬리하나에서“말의내기에자신의미래를모두걸고있는”시인을발견하며,‘「미라보다리」의추억’을말할때는소위‘초월번역’이라불리는,‘원문보다더나은번역’이진실된것인가의심한다.결코길지않은각각의글은여정을읊는대신그입구를일러주는지도다.“튼튼하지만녹이슨철문”,시의세계는그너머에있는“오래된정원”과도같다(「김종삼의‘베르가마스크’와‘라산스카’2」).선생의글이그문을여는가볍고맞춤한열쇠가될것이다.

한편의시를번역하는여정을따라밟아보는일도새로운즐거움이다.「시를번역하는일」은말라르메의소네트를번역하며세번에걸쳐‘실패하는’기록이다.“결국시는번역될수없다는일반적인생각을다시확인하기위해이제까지쓸데없이긴수고를한셈”이라며너스레를놓지만,선생은“이실패를통해원문의지속적생명을확인할수있는가능성”을찾아내는것이번역의목적지임을알고있다.그는결코앎을뽐내지않는다.문학은‘모름’으로참여하고,어려움으로‘감동하는’일이다.

그러나나는여기서이런이유를들어시의번역불가능성을강조하려는것이아니라,오히려그반대이다.역설적인말같지만,시의번역불가능성이그에대한번역의필요성을만들어낸다고할수있다.(……)번역작업은원문이지닌지속적·미래적성숙성을다른언어풍토에그대로옮겨놓기에성공할수는없지만,적어도그생명에참여하는한방법이될수는있다.
-「시를번역하는일」중에서

가장쉽게잃어버리는것이또한낙원이다.
시는잃어버린것을마음에묻어두고다시얻어야할것을생각해낸다.

말미에는「젊은비평가를위한잡다한조언」을덧붙였다.다가올시대에대한근심인척써내려간,앞으로의세대를향한프러포즈다.‘산고’가부산하지않듯‘잡다’한조언도난삽하지않다.‘산고’도‘잡다’도그다운겸손의표현일것이다.조언이라달았으되가르침이아니라물음이다.“당신보다더날카로운칼이어디있겠는가”물어올때,“당신은고백할것이많다”끄덕일때.지금현장의글쓰는이들,거기있냐는물음이겠다.문학으로또만나자는부름이겠다.그는언제나‘듣는선생’이었던사람,손이아닌귀로쓰는사람이었으니까.

“만해나소월은없어진사람들이아니며,저고인들의역사를제역사로여기지않는젊은이는젊은이가아니다.시가가르쳐준바에따르자면그렇다.”(「책을펴내며」)이제와서이들의시를‘다시’읽는것이아니라‘여전히’읽어야하는이유다.그의비평은여전히지금,언제나현장이다.“현장의사상가는늘명랑하다”는선생의말을뒤집어,명랑한글이그를영원한현장에살게도할것이다.

온갖재능의사치는생명의행복을증명하지만,제재능이나남의재능이나재능이거기있음을보고행복할줄아는능력은생명의위엄을증명한다.
-부기「젊은비평가를위한잡다한조언」중에서

시가한구절태어날때세상이바뀌고
꽃이한구절태어날때다른세상이온다.

『내가모르는것이참많다』『잘표현된불행』으로맞은것이선생의1주기였으니,어느덧그그리움으로2주기를지나며엮은책이다.생전의저서『밤이선생이다』『황현산의사소한부탁』,번역서아폴리네르의『동물시집』까지난다와함께한책이여섯권.그여섯번째가마침난다에서펴내는백번째책이되었다.다른이아닌선생이니,이번에도나란하려보폭맞춰주신것이리라.「아름다운문학청년최하림」「박서원을위하여」에서작고한시인들과의추억을꺼내올적에예갖추어전송하는그곡진함,유심히들여다보게된다.시인과시를향한그리움의목소리는이제이책을읽는우리의몫이기도할터다.

김종삼의「라산스카」속“미구에이른아침”을읽으며,선생은이런주석을달아두었다.“글을다쓰고원고를정리하는과정에서‘미구’가‘微軀’일수도있다는생각이들었다.만일그렇다면첫시구는‘이보잘것없고천한몸에찾아온아침’이라는뜻이되겠다.”책소개를마무리하며,이책의제목『황현산의현대시산고』가‘산고(散告)’일수있겠다는생각을해본다.사전을참고하자니그뜻이이렇다.‘나라에길례(吉禮)가있을때그준비를서두르도록미리통고하던일.’황현산선생이남긴이책이,축복처럼다가올우리시대의시를위한,그시에찾아올아침을향한부름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