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잡지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

조선의 잡지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취향)

$23.00
Description
변화하는 시대를 읽어가는 역사 읽기의 재미를 맛보다!
정치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은 시기였던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18~19세기, 조선 최초의 세시풍속지인 유득공의 《경도잡지》를 새롭게 해석한 『조선의 잡지』. 조선 후기의 풍속을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인 《경도잡지》에 기록된 원전 텍스트를 통해 양반들의 삶과 그에 관련된 것들의 유래, 취향 등을 짚어보고 그동안 잘못 전해진 오류들을 바로잡아준다.
저자

진경환

고려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문학(고전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한국전통문화대학교교양기초학부교수이다.
지은책으로『집잃은개를찾아서:리링,다산,오규소라이,난화이진과함께떠나는진경환의논어여행』(1?2권),『백마강,한시로읊다』(편역주),『전통,근대가만들어낸또하나의권력』(공저),『고전의타작』등이있고,옮기고주석을단책으로『서울·세시·한시』등이있다.
나도한번조선시대의생활사서술에도전해보자는욕망을오랫동안품고있었다.그러다가몇년간조선최초의세시풍속지인유득공의『경도잡지』를강독하면서관련자료를하나둘씩모으기시작했고,그재미와새로움에흠뻑빠져들었다.
그동안번역의오류로우리가잘못알고있던것들도눈에띄었고,제대로알려지지않은흥미로운이야깃거리도많이보게되었다.원전텍스트를관점을달리하며들여다봐야할필요성도절감했다.
이책에서다루는18~19세기는근대로넘어가는변곡점인시기였다.당시서울양반의생활방식과취미,기호등은변화하는사회의모습을생생하게보여주면서편안하고친근한우리역사읽기의길로안내해준다.

목차

◎서문

제1장의관갖추어행차할제
1.머리끝에서발끝까지
갖가지쓰개l각자취향에따라l당초무늬당혜,구름무늬운혜l‘두루막힌’두루마기l모선들고장도차고l장옷과곁눈질
2.견마잡혀말을타고
말도말도많고많군l견마잡이거덜났네l나귀는아무나타나l명마보다백락
3.장가들고시집가네
혼인축하l신랑은백마를타고l신부는팔인교타고
4.물렀거라,양반님나가신다
꼴보기싫어피맛골l산자관원이면어때l?우,?우!
5.어사화입에물고신나게놀아보세
용문에오르다l게두마리,열매달린연꽃l삼현육각울리며삼일유가l가난한아버지는잔치대신시한수l고약하고도지독하네,그놈의신고식

제2장폼에살고폼에죽고
6.위엄있고탈없는집
대문은높이고처마엔노송취병l화문석깔고은낭에기대어l강태공써서동티를막고
7.서재에사는네친구
문방을들여다보니l족제비꼬리털이최고l종이?눈꽃,대나무,매미날개l설도와시전지l종이값에소설은짧아지고길어지고l검은벼루,붉은벼루l수필같은청자연적
8.꽃키우고나무심고
하나뿐인이불은매화에게l나무중기이한건소철이라네l온실만있으면문제없지l매화를사랑하려백발에도달함이라l웬만한집이라면국화화분몇개쯤은l여유가없으면상상속의정원이라도
9.여덟칸짜리비둘기집
이름이수십가지l유행은정말빠르기도해l비노혹은축부

제3장먹는낙이으뜸일세
10.술한잔,고기안주
도화주며두견주는다어디로갔나l벙거짓골바비큐파티l탕평책과탕평채l복사꽃떠내려오면행주앞강에그물치고
11.차한잔,담배한모금
언제부터차를마셨을까l작설차와녹차l백두산의전나무싹도차로달여서l담배쓰나미?입있는사람은누구나l맞담배질,안돼!l담뱃가게와대중소설
12.과일사랑,호박반찬
맛있는봉산배,칠절홍시,귀신쫓는복숭아l황금빛진상품들l독점과입도선매l옛날엔없던것,호박
13.안성맞춤놋그릇
놋점과모춤l놋그릇수난사l놋그릇예찬
14.시장엔온갖먹거리에사기꾼과이야기꾼
동부의채소,칠패의물고기l부자사기단,그리고소설낭독자l남산아래술,북촌의떡l약포와봉사

제4장멋들어지게한판놀아야지
15.꽃놀이는여기서
멋지기때문에놀러왔지l복숭아꽃살구꽃아기진달래l버드나무와연잎주l탕춘대에올라술한잔,시한수l다같이돌자,도성한바퀴
16.연주하고춤추고연극하고
내취와세악수l느린곡조는싫어l춤,혼자서는안추지l의녀와기녀l산희와야희
17.글읽고지어서읊조리고
학동의교과서l초본당시‘마상당음’l접과운
18.멋진글씨,뜻깊은그림
‘순박한서풍’촉체와큰글씨액체l버드나무끝을갈라l귀신잡는종규l누워서유람하고‘부귀옥당’두르고
19.투전판타짜들
노름과노름꾼l투전세상좋을시고l타짜의출현

◎주

출판사 서평

그시절서울양반들은어떻게살았을까?

'조선최초의세시풍속지인유득공의『경도잡지』를새롭게해석,
우리가잘못알고있거나제대로알지못했던실상을낱낱이파헤친다
엄격한신분제사회에서근대로넘어가는18~19세기는정치뿐아니라사회?문화적으로다양한변화를겪은시기였다.당시의지배층이었던양반,특히조선의중심지였던서울지역의양반들이어떻게살았는지를생생하게써내려간유득공의『경도잡지』는조선후기의풍속을한눈에보여주는중요한문헌이다.
이책은『경도잡지』에기록된원전텍스트를통해양반들의삶과그에관련된것들의유래,취향등을짚어보고그동안잘못전해진오류들을바로잡아준다.권위와격식,체면을앞세웠던양반들이점차실용과효용,유행을따르는모습을보면서변화하는시대를읽어가는역사읽기의재미를맛볼수있을것이다.

조선후기양반의사소한일상과사회풍조를들여다보는생활사!
원문텍스트를바탕으로새롭게번역?구성한대중교양서
“격식과체면은차리되변화하는세태와유행에뒤떨어지고싶진않으이!”

조선시대최초의세시풍속지인유득공(柳得恭,1748~1807)의『경도잡지(京都雜志)』는18~19세기서울지역의풍속과양반의생활상을저술한책이다.제1권[풍속]편,제2권[세시]편으로구성된『경도잡지』는각각19개항목으로나뉘어져있다.
대표적인실학자중한명인유득공은그자신이서울출신인데다양반층의일상생활을가까이서접하거나경험했던만큼『경도잡지』에서당시의풍속과세시를있는그대로생생하게기록하고있다.
책제목에‘잡지(雜志)’를붙인것만봐도짐작할수있듯이,『경도잡지』는특정한기준에맞춰항목을구분하지않고군더더기없이짧게핵심만서술되어있다.
그럼에도이후에나온김매순(金邁淳,1776~1840)의『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홍석모(洪錫謨,1781~1857)의『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함께우리나라3대세시풍속기중하나로손꼽힐만큼민속사적측면에서중요한저작이다.
이『경도잡지』에는서문이나발문이없다.유득공이『경도잡지』를왜서술했는지직접밝히지않은만큼집필동기와그내용을미루어짐작할수밖에없다.17세기중엽이후조선에는변화와개혁을주장하는새로운사상조류가생겨났는데,바로실학사상이다.
유득공역시홍대용,박지원,이덕무,박제가등과더불어조선후기의대표적인실학자(북학파)로손꼽히는인물이었다.이들은이전의관념론적성리학에서벗어나나라밖의선진문물을받아들이고실용성과효용성을우선시하며산업의활성화를도모했다.
그런관점에서,즉당시의사회변화를정확히읽을수있는생활사자료가바로『경도잡지』다.그런만큼제대로된평가가이루어져야하고원전텍스트를새롭게해석할필요가있는것이다.
『경도잡지』[풍속]편의19개항목을토대로한이책은원전의의미에조금이나마더가까이다가가기위해‘조선의잡지’라는제목을붙였다.
또한현대의독자들이좀더편안하게읽을수있도록『경도잡지』에나온항목의순서를따르지않고19개항목을4개장에나누어정리했으며,각항목의시작부분에해당원문을번역하여실었다.
이책의저자인진경환은그동안전통문화를공부하고강독했으며조선시대생활사를누구나쉽고재미있게접할수있는대중교양서로서술해보고싶다는생각에오랫동안사로잡혀있었다.
그러던중에『경도잡지』[풍속]편을접하게되었는데,기존에출간되거나인터넷으로서비스되고있는내용들중많은부분에서심각한오류들을발견했다.
이에『경도잡지』내용번역의오류문제들을글로지적했지만별달리수정,보완되지않은데다고전텍스트의번역과주석의방식에서한번쯤생각해볼수있는새로운예시를보여주고싶다는마음에서이책을집필하게되었다고한다.
사실이책의원전인『경도잡지』는핵심만짧게서술되어있기때문에관점에따라단어하나도여러논란과주장을낳을수있다.번역은제각각,해석은동서남북인부분도있다.그런만큼당시양반들의의식주부터취미와놀이,유흥과공부,그리고의례까지잘못전해진부분이적지않다.
오늘날우리가머릿속에그리고있는조선시대양반의모습은어떠한가?머리에상투틀어갓쓰고,아랫사람들에게호통치고,서책만끼고앉아멋이라곤찾아볼길없고,가난하여끼니를때우지못해도남에게절대굽실거리지않고꼿꼿하기가이를데없는……TV사극이나영화등에등장하는양반의모습이전형이라고여기고있지는않은가?그렇다면이책을통해왠지낯설고어색해보이지만친근한듯하고,여전히격식에얽매이면서도이전보다는개인적인욕망이강해져가는새로운양반의모습을만날수있을것이다.

천원권지폐속퇴계의복건차림은근거가없고,
『천자문』은한자학습용교재가아니다?
그동안잘못알려진오류들과,고전텍스트에관한다양한주장들

이책은조선시대양반의차림새,그중에서도남성양반의쓰개부터살펴본다.복건,방관,정자관,동파관등그종류도다양한데제각각때와장소에따라구분하여썼다고한다.그중검은헝겊으로위는둥글고삐죽하게만들고,뒤에는넓고긴자락을늘어지게대며,양옆에는끈이있어서뒤로돌려매개한쓰개인복건은크게두가지관점이대립하고있다.우선주위의시선을의식하지않고한가로이노닐때복건을착용한것으로보이는데,퇴계이황은복건을중들이쓰는두건과같아서선비나학인이쓰기에적절치않다고했다.그런데오늘날천원권지폐에는복건차림을한이황의초상이들어있다.
이는사상·문화사적으로깊이따져보아야할문제라고이책의저자는말한다.한편정약용은복건이중국진나라때부터사부의복장이되었고주자에이르러예복이되었으며송대에이르러유학자들사이에널리퍼지게되었다고언급했다.
복건의제작방법을당파와관련하여설명한연구도흥미로운데이황이복건을중의모자라하고대신정자관을쓴이후로,남인들은이황의선례에따라200년가까이복건을착용하지않았다고한다.그러나초상화를보면,남인인허목이복건과심의를착용한것이발견되고있어일률적으로단정해말하기는어렵다.
이외에도복건이조선시대에주자학이전래되면서유학자들이유가의법복으로숭상하여착용했지만,그모습이매우괴상하여일반화되지는못했고소수의유학자들에의해서만조선말기까지이어졌다는주장도있다.이처럼쓰개하나에도다양한관점과주장이상존하며반드시바로잡아야할잘못도있다.
흔히들『천자문』을한자학습용교재로여기는데,이는아주잘못된생각이다.네자두구를한문장으로모두125개문장인『천자문』은원래산문으로지어졌지만,이후에다시운을넣어사언고시형식으로편찬되었다.또한『천자문』은동아시아고전의주요테마인문·사·철을모두담고있다.
오랫동안전통적인한자교재로활용되어온『동몽선습』과『격몽요결』이인간의기본덕목인오륜을중심으로철학적내용이집약되어있고,『훈몽자회』가초학자에게한자를가르치고익히는데에만초점을맞추었다면,『천자문』은문장구성이시적이고역사,천문,지리,인성등거의모든분야를망라하고있다.따라서학동들이나초학자들에게다양한교양지식과표현법을익히게할수있다는장점이있지만전체적으로학동들이읽기에는내용이조금어렵다는비판도있다.그럼에도『천자문』은오랫동안기초학습교재와입문서로활용되어왔다.

양반들의사치풍조와명품선호,그리고마니아의등장
“이정도는가져야그럴듯해보이고,남들과조금이라도다른걸갖고싶네!”

남들보다더고급스러운것,더값비싸보이는것,더특별한것을갖고싶다는사람의욕망은예나지금이나다를바없다.18~19세기서울양반들도마찬가지였다.의식주에소용되는것들부터주로여성들이지닌노리개나패물,말,집,혼례,담배,문방사우,꽃과나무등명품을선호하고유행을좇다보니양반사회의사치풍조가절정에다다랐다.그러한세태를비판하거나일침을가하는목소리도함께터져나왔다.이는곧신분제사회가무너지고개인의행복을더중시하는근대사회로나아가는전조이기도했다.
칼은사치스러운패물이었다.여성이정절을지키는데사용한것으로잘알려진은장도역시노리개중하나였다.장도의칼자루와칼집을만드는데쓰인재료로는은뿐아니라옥,코뿔소의뿔,바다거북의등딱지,검은물소뿔등국내에서생산되지않는희귀한상품들이었다.
견마잡이들도덩달아허세를부려더좋은고삐를가지려했다.질좋은매끈한가죽으로만들어번쩍번쩍광을내고거들먹거리고다녔는데‘거덜났다’는말이여기서생겨났다.견마잡이주제에우쭐하고다니니,그나마알량한재산이나살림같은것이여지없이허물어지거나없어진다는뜻이다.
혼례때신랑이백마를타고,과거급제자가삼일유가를치르는것또한축하하는의미를뛰어넘어당시의허례허식풍조가얼마나만연했는지를잘보여준다.어디그뿐인가.가문을드러내기위해대문을크고높게만들고처마를노송취병으로치장하는가하면,서울의호사가들은여덟칸짜리비둘기집(용대장)을만들어놓고누가더많이희귀하고값비싼비둘기를사들이냐를놓고경쟁했다.체면때문에품위없이쌈지따위를갖고다닐수생각한양반들은쇠로만든담배합에은으로매화나대나무를장식하고,자줏빛나는사슴가죽으로끈을달아담뱃대와함께말꽁무니에달고다니면서멋을부렸다.
담뱃대를걸어놓는연관대,담뱃대를청소하는찔개와꼬질대,담배를빤후침이나가래를뱉는그릇인타구나재떨이등도명품을추구하는양상이심화되었다.
사는곳이어디냐에따라먹고마시는풍속도달랐다.북촌에는부귀한집이많아서음식사치가대단했는데,갖은편이라고하는떡만드는솜씨가발달했다.반면남산밑에는구차한샌님과형편이넉넉지않은무반들이사는곳이라서손쉽게얼근하여불쾌한것을잊자는데서술빚는솜씨가좋았다는것이다.
양반들의명품선호와함께특정한것에매달려즐기는마니아들도등장했다.그중대표적인것이웰빙붐을타고크게성행한화훼재배와정원경영이었다.같은꽃이라도특이한품종과양태에관심을가졌으며남들과다른것을갖고싶어했다.마니아들이애호한것들중하나인비둘기역시그색깔이며생김새,그리고습성에따라가격도천차만별이었다.작은몸집에순백색으로이마에는검은화점하나가있는점모가제일비쌌는데한쌍에백문(1,000전)이넘기도했다고한다.또한조선후기의문인인이옥은스스로담배를몹시사랑하고또즐긴다며자신에게담배벽이있다고했다.
이렇듯조선후기에는꽃이나나무,애완동물,담배,악기같은것은물론이거니와칼,과일,그림,수집품,표구등에깊은관심을가진마니아층도있었다.조선후기,특히18~19세기는권위적이고형식이지배하던시대에서개인의취향과행복이더중시되는시대로넘어가는시점이었다.
왕조시대의종말과양반의몰락이라는거대한시대적흐름은언뜻사소해보이지만너무가까워서쉽게느껴지지않는일상적인변화와함께서서히격랑의소용돌이속으로빠져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