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전 : 혁명 그 이후 1917-1921

러시아 내전 : 혁명 그 이후 1917-1921

$33.00
Description
혁명 그 이후, 러시아를 피로 물들인 거대하고 참혹한 내전
현대 전쟁사의 거장 앤터니 비버의 역작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제국이 붕괴된 뒤, 최대 12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끔찍한 내전이 일어났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끄는 볼셰비키의 적군(赤軍), 이에 맞서는 백군(白軍)이 싸워 ‘적백내전’이라고도 불린 이 전쟁은 서쪽으로는 폴란드,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대륙 전역에서 전개되었다.
《스페인 내전》, 《스탈린그라드》 등을 집필한 앤터니 비버는 복잡하게 전개된 러시아 내전을 놀라울 정도로 명료하게 정리해 냈다.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기록보관소에서 찾아낸 새로운 자료들, 수많은 서적과 기록들을 모아 집필된 이 책에서 러시아 내전은 페트로그라드 거리의 노동자, ‘고요한’ 돈강의 초원을 행군하는 기병, 야전병원의 간호사 등 다양한 인물들의 눈으로 생생하게 재구성된다.

저자

앤터니비버

저자:앤터니비버(AntonyBeevor)
《베를린함락1945(Berlin)》,《스페인내전(TheBattleforSpain)》,《제2차세계대전(TheSecondWorldWar)》,《피의기록,스탈린그라드(Stalingrad)》등다수의책을썼다.그의저서는영국안팎에서주요상을받았고38개언어로출간되었으며850만부이상판매되었다.작가협회회장을지냈고,왕립문학협회및왕립역사협회회원이며다섯곳의대학에서명예박사학위와평의원지위를받았다.2017년에기사작위를받았다.

역자:이혜진
영국워릭대학교에서국제정치학을전공했다.우리말과외국어를함께다루는번역에매력을느껴글밥아카데미수료후바른번역소속번역가로활동하고있다.국제정치와세계사를특히좋아해서국제정치학을전공했고전반적인사회과학과인문과학분야에두루관심이있다.옮긴책으로는《19세기귀족연감》이있다.

목차

지도목록
서문

제1부1912-1917년

01유럽의자멸1912-1916년
022월혁명1917년1-3월
03쌍두독수리의몰락1917년2-3월
04전제주의에서혼돈으로1917년3-4월
05임신한과부1917년3-5월
06케렌스키공세와7월사태1917년6-7월
07코르닐로프1917년7-9월
0810월혁명1917년9-11월
09소년십자군-‘융커’의반란1917년10-11월
10갓태어난민주주의의살해1917년11-12월

제2부1918년
11거푸집깨기1918년1-2월
12브레스트-리토프스크1917년12월-1918년3월
13의용군의얼음행군1918년1-3월
14독일군이들어오다1918년3-4월
15변방의적들1918년봄과여름
16체코군단과좌파사회혁명당의반란1918년5-7월
17적색테러1918년여름
18볼가강에서의전투와적군赤軍1918년여름
19볼가강에서시베리아까지1918년가을
20동맹군의철수1918년가을-겨울
21발트해연안과러시아북부1918년가을-겨울

제3부1919년
22치명적인절충1919년1-3월
23시베리아1919년1-5월
24돈과우크라이나1919년4월-6월
25무르만스크와아르한겔스크1919년봄과여름
26시베리아1919년6-9월
27발트해의여름1919년5-8월
28모스크바로의진군1919년7-10월
29발트해에서의기습1919년가을
30시베리아에서의철수1919년9-12월
31전환점1919년9-11월
32남부에서의퇴각1919년11-12월
제4부1920년
33시베리아얼음대행군1919년12월-1920년2월
34오데사함락1920년1월
35백군기병대의마지막함성1920년1-3월
36총사령관브란겔과키예프를점령한폴란드1920년봄과여름
37서쪽의폴란드,남쪽의브란겔1920년6-9월
38비스와강의기적1920년8-9월
39하데스의휴양지1920년9-12월
40희망의종말1920-1921년

결론:악마의제자

용어해설
감사의말
도판목록
약어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역사상가장참혹하고거대한내전의기록
현대전쟁사의거장앤터니비버의역작

1917년러시아혁명으로제국이붕괴된뒤,최대1200만명이사망한것으로추정되는끔찍하고거대한내전이일어났다.레닌과트로츠키가이끄는볼셰비키의적군(赤軍),이에맞서는백군(白軍)이싸워‘적백내전’이라고도불린이전쟁은서쪽으로는폴란드,동쪽으로는블라디보스토크까지유라시아대륙전역에서전개되었다.그간러시아혁명에대한책은많았으나,이후의내전은소략하게다루거나아예그과정을생략한경우가많았다.하지만러시아내전은러시아혁명과불가분의관계로,이후의역사를제대로이해하고자한다면반드시알아야만하는20세기의중요한사건이다.

러시아내전은단순히한나라의‘내전’이아니라러시아제국의붕괴이후독립하려는신생국가핀란드,폴란드,발트3국에제1차세계대전의적국이었던독일,기존의동맹국이었던영국,프랑스를비롯한연합국까지개입한국제적인분쟁이었다.또한적군(赤軍)과백군양측이모두학살과고문을일삼아타국과의전쟁보다도훨씬끔찍하게전개되었는데,이는한국가내에서정치적·이념적갈등이극단으로치닫고상대방의존재자체를무력으로말살하려할때어떤비극이일어나는지를보여주는사례이기도하다.

《스페인내전》,《스탈린그라드》등을집필한앤터니비버는복잡하게전개된러시아내전을놀라울정도로명료하게정리해냈다.러시아,폴란드,우크라이나를비롯한여러나라의기록보관소에서찾아낸새로운자료들,수많은서적과기록들을모아집필된이책에서러시아내전은페트로그라드거리의노동자,‘고요한’돈강의초원을행군하는기병,야전병원의간호사등다양한인물들의눈으로생생하게재구성된다.

2월혁명과10월혁명,그리고내전의시작

1917년의러시아제국은한계에달해있었다.시대착오적인러시아의전제군주정은1905년피의일요일사건으로심각한문제점을드러낸지오래였고,1914년부터3년째계속되고있는제1차세계대전은여기에치명타를날렸다.도시에는식량이부족했고,병사들의불만은쌓여만가고있었다.누가보아도제국이붕괴될위기에처한상황에서도차르니콜라이2세는두마(국회)의원들로내각을구성해민심을달래야한다는조언에“신민들이짐의신임을얻어야하는것아닌가?”라고답할정도로현실감각이없었다.결국페트로그라드에서일어난2월혁명의결과,니콜라이2세는퇴위하고,동생미하일대공도황위계승을포기하면서제정은막을내리게된다.

하지만임시정부또한독일과의전쟁을이어나가면서시민들의지지를잃었고,레닌이이끄는볼셰비키는10월에적위대와수병들을동원한무장봉기로임시정부를전복하고볼셰비키지도부(레닌,트로츠키,스탈린등)가설립한인민위원평의회를권력기구로내세웠다.이후11월에제헌의회선거가진행되어사회혁명당이가장많은표를얻었으나,레닌은제헌의회에권력을넘겨줄생각이없었고제헌의회는단한번의회의를끝으로다시는소집되지못했다.제정이붕괴된2월혁명당시에는어느집단에서도거의반발이없었으나볼셰비키의10월혁명이후에는각지에서장교,카자크,우파사회혁명당,체코군단(본래오스트리아군소속이었으나포로로잡힌후조국의독립을위해싸우기로하고러시아군에편입되었다)의반란이일어났고,이때부터내전이본격적으로시작되었다.

광활한유라시아를배경으로한참혹한내전

러시아내전은20세기의어느전쟁과도무척다른양상으로전개되었다.전장이된러시아는너무나거대했기에철도와강을따라전투가벌어졌다.끝없이뻗은평원,침엽수림한가운데로수천킬로미터로이어지는시베리아횡단철도,유럽에서가장긴강인볼가강이주된전장이되었고한쪽이기세를타고수백킬로미터를진격하다가전투력이소진되면반격을당해또수백킬로미터를물러나는일이반복되었다.이런환경에서기병이매우중요한전력으로취급되어백년전나폴레옹시기를연상시키는기병돌격이유용한전술로활용되었다.러시아내전을상징하는무기역시말이끄는수레에기관총을실은타찬카이다.적군(赤軍)과백군모두체제가붕괴된열악한상황에서전쟁을치러야했기에후방에서전방으로의보급은사실상불가능한경우가많았고,가장중요한보급방법은적군수물자의노획이었다.

러시아내전의또다른큰특징은그잔혹함이다.억압적인체제를고수한지배계급에대한분노를품은적군(赤軍),혁명으로모든것을잃은백군양측모두서로에대한증오를키워가며잔혹행위를일삼았다.볼셰비키의비밀경찰이자무장집단인체카(KGB의전신)의고위직으로있던마르틴라치스는1918년8월《이즈베스티야》에기고한글에서“확립된전쟁관행”은쓸모없다고밝혔다.“당신과싸운모든부상자를학살하는것.이것이바로내전의법칙이다.”처형및고문방식도유달리잔혹한경우가많았다.백군은포로로잡은공산당정치위원(commissar)을산채로불에태우곤했고,적군(赤軍)이점령한지역에투입된체카요원들은반대자들을체포한후끓는물에손을집어넣어손의가죽을그대로벗겨내거나,어깨에견장을못으로박는등글로만읽어도끔찍한고문을자행했다.포로로잡은적병사들에게직접구덩이를파게한뒤죽이고그대로파묻는,20년뒤나치의인종청소와똑같은양상의학살도벌어졌다.

이러한혼란의와중에본래부터박해를받아온유대인들은다시한번피해자가되었다.본래도러시아제국은차르니콜라이2세가직접반유대조직‘검은백인대’를후원했을정도로유대인에적대적이었는데,그뒤를이은백군세력은볼셰비키중유대인출신지식인이다수있다는이유로그들에대한탄압에더열을올렸고,정도는덜했지만적군(赤軍)역시유대인에호의적이지않았다.내전기간중대규모포그롬(유대인을겨냥한약탈과폭동)이수없이일어나우크라이나에서만5만에서6만명의유대인이살해당한것으로추산된다.

러시아내전의본격화와그결말

러시아내전당시적군(赤軍)의수뇌부가레닌과트로츠키가이끄는볼셰비키임은명료하다.그에반해백군은가장그규모가컸던시기를기준으로세개의세력(동부의백군‘최고지도자’콜차크,남부의데니킨,서북부의유데니치)으로나뉘어있었다.얼핏보기에는볼셰비키가사방에서포위당해위기에빠진듯보였지만,실제로는적군(赤軍)은러시아의인구와산업이집중된핵심부를차지하고있었을뿐아니라,한전선에전력을집중해적을무찌른뒤또다른전선으로병력을이동시키는식의전략을구사해우세를점할수있었다.또한볼셰비키정권의군사인민위원트로츠키는이전까지철저히배척했던구러시아제국군의장교들을‘군사전문가’란명목으로기용하고,부사관중유능한이들을선발해지휘관으로발탁하면서적군(赤軍)의전반적인역량을향상시켰다.트로츠키는심지어위기에빠진전선각지로직접장갑열차를끌고나가반격을이끄는영웅적인면모를보였다.

적군(赤軍)의반격에가장먼저붕괴된것은서부시베리아의콜차크군이었다.교통의요지인우파와옴스크를차례로빼앗긴콜차크군은시베리아횡단철도를따라끝없이동쪽으로물러나야했고,결국콜차크는이르쿠츠크인근에서우파사회혁명당,체코군단과의불화끝에볼셰비키측에넘겨져처형당했다.러시아남부에서는한때데니킨이이끄는백군이오룔을점령한뒤모스크바로가는관문인툴라를위협하고,북서부에서는유데니치가페트로그라드바로앞까지진격하기도했지만결국에는모두패퇴하였다.1919년겨울이되자실질적으로남은백군세력은러시아남쪽끝크림반도에갇힌브란겔의군대뿐이었다.동부시베리아에는부패와잔혹성으로악명이높은백군군벌들이여전히남아있었으나,이미대세는정해진뒤였다.

다음해인1920년가을,폴란드와의전쟁을끝낸적군(赤軍)은백군세력을일소하기위해크림반도에대한대대적인공격을시작했고백군은크림반도곳곳의항구에군함을파견한연합국의지원을받아20만명이상이배에올라러시아를떠나게된다.러시아내전의사실상의종결이었다.한편다음해인1921년2월,본래혁명에앞장서트로츠키가직접“러시아혁명의긍지이자영광”이라고찬사를보냈던발트함대수병들은계속되는공산당의독재와식량난으로인해공산당에대한지지를철회하고봉기했다.하지만트로츠키의지시를받은투하쳅스키는이를무자비하게진압했고,혁명의이상도그와함께빛이바라고말았다.

러시아내전은왜적군(赤軍)의승리로끝났는가?

혁명으로정권을잡은볼셰비키였지만,내전발발당시그들이처한상황은절대낙관적이지않았다.혁명의결과장교들이대부분이탈하면서군대는완전히붕괴했다.혁명을지키자는구호아래모인자원병의숫자는턱없이모자라결국징집을해야했다.독일과의종전협상과정에서는군사적으로도열세였는데트로츠키의오판이더해져폴란드,벨라루스,우크라이나,발트3국전역을포기하는브레스트-리토프스크조약을맺을수밖에없었다.산업과농업도잘못된정책의결과로심각한타격을입었는데,특히도시에필요한식량을공급한다며농촌을상대로실시한무차별적인징발은농민들의극심한반발로이어졌다.러시아황실에충성하던카자크들에대한볼셰비키의제노사이드에가까운탄압과학살의결과,러시아에서가장중요한군사적자원인그들은대부분볼셰비키에등을돌려백군에가세했다.게다가한때볼셰비키와협력했던좌파사회혁명당이볼셰비키의독재,독일과의굴욕적인강화에반발해반란을일으키기도했고,레닌을비롯한수뇌부가암살당할뻔한위기를겪기도했다.

하지만그럼에도적군(赤軍)은승리했다.앤터니비버는가장중요한요인으로볼셰비키측이훨씬중앙집권적인체계를갖추었음을지적한다.적군(赤軍)도백군에못지않게많은오류를저지르고무능함을보였으나,철저하게수뇌부에의사결정을집중한그들이분열된백군을상대로승리하는것이당연했다는것이다.백군은볼셰비키의독재에반발한우파사회혁명당,제정복고를원하는장교들,사실상반독립적인세력이된카자크와시베리아군벌등서로완전히입장이다른여러세력들이모여있어처음부터제대로된협력이불가능했다.그들의공통점은오로지볼세비키에대한증오뿐이었다.선거로구성된제헌의회를무력화한볼셰비키의독재와정권찬탈에반대한다는명분을내세웠으면서도,막상‘최고지도자’인콜차크가제헌의회의원들이구성한행정부를쿠데타로전복하는등반동적인군사독재로일관했다.또한토지개혁등필수적인사회제도변혁에도아무런노력을기울이지않아내부에서의분열이극심했고,민중의지지도받지못했다.

여기에더해백군은러시아제국의영토를그대로유지하려는‘대(大)러시아주의’를끝까지포기하지않아,당장적군(赤軍)과의싸움에서밀리는와중에도강력한동맹상대가될수있는신생독립국가들에적대적인태도를버리지않았다.그에반해레닌은전략적으로불리한상황에서더중요한전선에집중하기위해핀란드,에스토니아와협정을맺는등현실정치(realpolitik)에충실한면모를보였다.

동유럽의지도를뒤바꾼,국제전으로서의러시아내전

러시아내전을러시아의‘내전’으로만보면그실체에제대로접근할수없다.러시아제국은지금의핀란드,발트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우크라이나를포함한광대한지역을지배하는제국이었고,제정의붕괴는곧바로이지역들에서의독립운동을촉발했다.본래러시아차르가핀란드대공을겸하는형식으로러시아의지배를받고있던핀란드는바로독립을시도했고,자국내에서의내전이보수파(백군)의승리로끝나면서독립에성공했다.다른지역들도볼셰비키혁명이후레닌이중부열강과맺은브레스트-리토프스크조약의결과러시아의지배에서벗어나면서독립운동에불이붙었다.
볼셰비키는독일의패전후조약의무효를선언했고,내전에서확실한승기를잡은후다시이지역들을점령하는한편더나아가독일을비롯한유럽각국으로진격해세계혁명의초석을놓으려했다.하지만이들의야망은수도바르샤바앞에서기적적으로반격에성공한폴란드에의해좌절할수밖에없었다.소련은20년뒤제2차세계대전전후로다시이지역들을병합하거나세력권에넣었지만,소련붕괴후다시포기할수밖에없었다.지금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폴란드를비롯한발트3국이가장강경한입장을취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