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과 사귀다

그늘과 사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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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영광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늘과 사귀다』가 도서출판 ‘걷는사람’을 통해 복간됐다. 2011년 한 차례 절판되었다가 다시 출간된 『그늘과 사귀다』는 2007년 첫 출간 이후 꾸준히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이영광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에 이어 시인이 착안하고 있는 주된 이미지는 ‘죽음’이다.
추천사를 쓴 이장욱 시인의 표현대로 이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폐가를 키우고 관을 키우고 묘지를 키워서도 끝내 하나의 죽음을 이룩하지 않”으며 “이 과묵한 리듬은 삶의 내부에서 태어나는 죽음을, 죽음의 내부에서 또 부활하는 형용모순의 생명들을 근근이, 유려하게, 하지만 강인하게 변주”하고 있다. 아울러 한영옥 시인이 지적한 것처럼 “이영광의 시편들은 훌쩍임 없는 비창이 되지만 읽는 이의 마음에 부려지는 비감은 오래오래 그 여운이 시리”게 남고, 독자들은 그의 시를 통해 “정신주의의 시퍼런 위풍당당을 서늘하게” 만나는 경험을 할 것이다.
이영광 시인에게 ‘죽음’이란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천국행」) 모습을 보여준다. 영원한 천국도, 지옥도 없는 듯해 보이는 ’죽음‘의 이미지들은 번뇌에 흔들리지 않는 그늘과 같다.
저자

이영광

1965년경북의성에서태어나고려대학교영문과와동대학원국문과를졸업했다.1998년『문예중앙』에「빙폭」등이당선되어등단했다.시집으로『직선위에서떨다』『그늘과사귀다』『아픈천국』『나무는간다』『끝없는사람』이있다.2008년노작문학상,2011년지훈상과미당문학상을수상했다.현재고려대학교미디어문예창작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오래된그늘
휴식
경계
호두나무아래의관찰
음복
4월

나의살던고향
성묘
떵떵거리는
나무금강(金剛)로켓
수양버드나무채찍
쉼,
소리지옥
황금벌레
슬프고어지러운그림자
문병
청명
눈꽃열차

생각하지않는사람
신비의도로1
신비의도로2
우도
빗길
길의장례

망우리취중(醉中)
뼈1
뼈2

시詩는
동해2
라일락라일락
물위를걷다
저수지
빨랫줄
사라진다
현대문학
백운동
절1
절2
몰골(沒骨)
일찍죽은사람
그집
그러니까
한순간도
정상부근
천국행(行)
세월
미동도않는돌기둥
흉터
내소사
거울얼굴
얼음산
광활한감옥
동쪽바다
일포스티노

식은풍경
탁본

해설
메멘토모리mementomori/이혜원(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몸은제몸을껴안을수가없다
사랑할수가없다
빵처럼부풀어도
딴몸에게내다팔수가없다
탈수하는세탁기처럼
덜덜덜덜덜덜덜덜덜,떨다가
안간힘으로조용히
멈춘다,벗을수없구나
몸은몸속에서지쳐잠든다
몸은결국이렇게죽는다
-「몸」전문

우리의몸은촉촉한생의물기를털어내고있는지모른다.이영광시인에게‘죽음’이라는키워드는어떤의미도필요없어보인다.현상학적인죽음만이존재할뿐이고우리는학습이불가능한죽음앞에서그런불안한삶을살수밖에없었던삶을추모할뿐이다.하지만그런가운데서도시인은“불끈거리며몸속을달리는정맥혈관”(「시는」)을직시하며“죽음과더불어더욱확장되는삶”을살아내려한다.

사람이떠나자죽음이생명처럼찾아왔다.
뭍에끌려나와서도살아파닥이는은빛생선들,
바람지나간벚나무아래고요히숨쉬는흰꽃잎들
나의죽음은백주대낮의백주대낮같은
번뜩이는그늘이었다.

나는그들이검은기억속으로파고들어와
끝내무너지지않는집을짓고
떵떵거리며살기위해
아주멀리떠나버린것이라생각한다.
-「떵떵거리는」부분

‘죽음’이재구성하는기억에‘슬픔’이나‘그리움’이앞서는이유는‘죽음’앞에감정이너무쉽게무너지기때문이다.하지만이영광시인은‘죽음’을통한기억의대상이나감정에집중하기보다는‘죽음’이기억하는방식에어떤영향을미치는가에더시선을두고있는듯하다.‘끝내무너지지않는기억의집을’지어야‘사람이떠나’도담담하게‘번뜩이는그늘’을향유할수있을테니말이다.
이혜원문학평론가는해설에서메멘토모리(mementomori),‘죽음을기억하라’라는라틴어를통해“죽음을기억함으로써삶의의지는더욱강렬해진다.죽음을의식함으로써인간은자신의존재를섬뜩하고낯선것으로자각한다”며“이번시집에서행해진죽음에관한탐구로인해이영광의시는한차원새롭게도약”하고있다고말했다.“죽음과대면하면서도허무에함몰하지않고그것을삶의의지로환원”하는시집『그늘과사귀다』가죽음이넘쳐나는이시대에다시금의미있게조명될것을기대해본다.

[초판본시인의말]

이어룽어룽하고쓰린세상에
멍멍한사람으로서와서
다름아닌시와더불어고행苦行하게된것이
행복하다

번개와함께나타난골짜기의나무들이
젖은채로타고있듯이,
섬광일순일뿐이지만

속수요,
무책이라고생각한다

정해년봄,광릉숲
이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