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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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故 박서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가 걷는사람 복간본 시리즈 ‘다;시’를 통해 발간되었다. 2018년 2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박서영 시인은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박서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의 근간이 되는 것은 ‘훼손된 몸’에 대한 인식이다. 시 도처에서 발견되는 '시간'과 '죽음'의 상상력은 마멸되어 가는 '몸'에 대한 치열한 자의식의 산물이다. 존재의 유한성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초월의지가 여성 특유의 감수성을 통해 내면화되고 있는 것이 박서영 시인의 시편들이다.
저자

박서영

1968년경상남도고성에서태어나,
1995년『현대시학』신인추천으로등단했다.
시집으로『붉은태양이거미를문다』(2006),
『좋은구름』(2014)이있으며2018년2월3일작고하였다.

목차

1부
숫눈
빈집
새발자국화석
경첩에관하여
점자책
알전구속의풀밭
견인차에시계가매달려있다
물탱크청소
식물의눈동자
해변은어떻게태어나는가
비누
피아노주치의를위한시詩
왜가리
폭우속에서
슬리퍼한짝
저녁밥생각
마라토너

어디든간다
죽음의강습소
뿔위의모자
중이염
어머니의틀니
부부夫婦
송이버섯


2부
무덤박물관가는길
문상
숨쉬는집

광인
구산동고분군가는길
그대의유품
지도
무덤밖의지도
토우
봄의환幻
혼자서는무덤도두려운내부다
풀을베다

네트워크는어디든있다
바람궁전
노출전시관에서
너에게가는길
무덤속으로의긴산책에대하여
수로왕릉가는길
월도月刀
파사석탑을보며
가락국에서쓰는편지

3부
얼음위의맨발들
우물
허물
마음이라는표범한마리
새의부족
낯선평화
모서리를향해걸어가는삶이
붉은태양이거미를문다
왕따
밤길
봄,봄,봄
죽은양羊에게
정승골계곡에서죽은양羊을위한습작
양羊,혹은
상실

해설
무덤속에서피어난몸/강경희(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인은자아와세계,삶과죽음,몸과정신의경계를넘나드는사유를통해훼손된몸이가야할길을찾는다.그래서결국닿게되는것이'죽음'이다.시인은죽음을막연한관념으로표현하는것이아니라구체적인대상인몸의문제로재현한다.'무덤박물관에서'라는부제를단연작시편들에서는죽음이야말로삶에대한가장적극적인인식의귀착점이라고믿는시인의의식의엿볼수있다.

아무도살지않는무덤이점화한다
복제보다아름다운기억들이펑펑터진다
누가태초에봄여름가을겨울의이름으로저제비꽃을
민들레를엉겅퀴를개망초를세상에꽂기시작했을까

무덤의콘센트가은밀하게연결되어있는
땅의배꼽이열린다

-「무덤박물관가는길」부분

“아무도살지않는무덤”에시인은“플러그”를“점화”한다.“무덤의콘센트가은밀하게연결되어있는/땅의배꼽”은화자에게환한무덤의내부를보여준다.육체의죽음은새로운재생의몸으로환원된다.즉폐허의육체는죽음을낳고,다시금죽은육체는환한기억으로재생된다.죽음을통해생성된기억은그어떤생의순간보다도환하게빛난다.이는죽음이폐쇄되고고립된세계가아니라환한‘열림’의공간임을의미한다.(강경희문학평론가)


오전여덟시상가를지나친다
동네입구의전봇대에는하얀종이에
반듯하게씌어진상가喪家→가붙어있다
이길로가면상가로갈수있다
나는지금문상가는중이아니다
그러나태어나자마자이표식을따라왔다
울면서도왔고졸면서도왔다
사랑하면서도왔고아프면서도왔다
와보니또가야하고하염없이가야하고
문상가는줄도모르고나는문상간다
죽어서도계속되는삶이무덤속에누워
꺼억꺼억운다

-「죽음의강습소」부분

박서영시인에게삶은죽음으로치닫는과정으로인식된다.“문상가는줄도모르고나는문상간다”라는문장처럼삶은가는줄도모르는채죽음을향해가고있다.죽음에이르는길은시인의선택과무관하지만순응할수밖에없는운명적존재이다.
강경희문학평론가는해설을통해“박서영은자신의고통을내면화하는방법으로‘죽음’의문제에몰입한다.”면서“그런데때로는이죽음이너무환하다.삶보다밝은죽음에경도하는시인의눈이죽음의빛에멀지않기를바란다.”고말했지만시인은너무일찍죽음의빛에눈이멀어버린것같다.새롭게발간되는고故박서영시인의『붉은태양이거미를문다』를통해그가오래기억되었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