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박서영 유고시집)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박서영 유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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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죽음을 통해 삶을 정련精鍊한 박서영의 유고시집
박서영 시인은 초기 시편들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고시집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보이고 있지만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런 이미지들에 절박함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분홍색 목젖에 울음이 매달려 흔들린다” “하늘이 울음을 얼려 눈을 내리는 밤이다” “한 호흡만 더 건너가자, 생이여” 등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견뎌내는 모습을 담은 문장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게 다가온다. “그는 언어를 빚은 게 아니라 그의 생을 빚었다. 그가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난 것은 그가 몸 안에 ‘천국’을 너무 많이 지니고 있어서 그 ‘천국’을 돌려주려 간 게 분명해 보인다.”고 전하는 김재근 시인의 추천사가 유난히 아프게 다가온다.
저자

박서영

1968년경상남도고성에서태어나,
1995년『현대시학』신인추천으로등단했다.
시집으로『붉은태양이거미를문다』(2006),
『좋은구름』(2014)이있으며2018년2월3일작고하였다.

목차

1부넌,아직도나때문에울고있구나
거북이와새
천국
미안해요

방해가되었습니까?
흑백사랑
밤의그림책
전당포
사과를파는국도
통영
달고기와눈치
나뭇잎
밤의외로움
신생아발굴
오월의여행

2부하늘이울음을얼려눈을내리는밤
의자위의돌하나
당신의방
세월너머멀리멀리
울음의탄생
위로
우리가서있는바로거기
목련나무빨랫줄
동경
아,자정조금넘어가는이런밤에
혼혈양은슬픔
그림자가시간을옮기는집

3부몸안의은하수가사라져버리면
토끼의고백
고래를말하듯
보리밭놀이방
무중력배아기의슬픔
심해의열달
연인들
운명을슬슬쓰다듬어보는저녁이야
방언으로속삭였다
중얼거리는사내가있다
노란리본을맨목공소
흰것들이녹는시간
달과무
검고파란시간의죽음곁에서
바바마마

4부당신의심장에불을켜주고
공룡발자국화석
미혼모未婚母
거위의죽음
돌꽃1
돌꽃2
돌꽃3
황목수의작업실
뿌리의방
능소화
남해암수바위
가을날매미
천년은행나무슬하에서
구역
기다리는사람
우리의천국

해설
‘멀고도높은꿈’,그슬프고도무서운계시/김경복(문학평론가,경남대교수)

출판사 서평

2018년2월작고한고故박서영시인의유고시집이걷는사람시인선을통해출간됐다.1995년『현대시학』으로등단한박서영시인은생전에시집『붉은태양이거미를문다』『좋은구름』을냈고,작고후세번째시집이묶이게된것이다.김재근시인은추천사를통해“이유고시집은고故박서영시인의‘그림자가흘려보내는눈물의고백서’다.”“그가남긴울음같은시편들로우리는‘천국의진경’을볼수있을것이다.”라며그를애도했다.박서영시인의부고를듣고많은지인들이놀라안타까워했다.모든죽음이갑작스럽지만박서영시인은큰병을견디며시한부삶을살면서도내색한번하지않았다고전해진다.김경복교수는해설을통해“애이불비(哀而不悲),슬픔속에서더큰감상(感傷)에빠지지않고자신의실존적삶을쳐다보는자세는독자에게더큰슬픔을환기한다.”라며“태도는단정하지만그래도그안에죽음이깃들어있거늘어찌그들끓는슬픔을떨칠수있었을까.슬픔이정제되고상징화되어가끔시인의처지를잊게만들기도하지만쓸쓸해져가는시의이미지앞에서그사정을아는사람은목이막힌다.”라고했다.또한<시인의말>의“동물원문을닫을시간이야./흩어지는모래밭에두발을묻은토끼가/갑자기일어서서노을을바라보며두손을모은다.”라는구절은담담한목소리와이미지로자신의현존을우회적으로알리고있는것이지만,“그내막을아는사람에게는극통의감정을불러일으키는표현이다.”라며가슴아파했다.

누추한속옷내걸린목련나무빨랫줄
꽃이어느시간속을이동해사라지는것처럼
축축해진옷을입은사람의시간도말라간다
빨래에서떨어지는물방울받아먹는
야생고양이한마리의시간도.
-「목련나무빨랫줄」전문

이어김경복교수는위의시편도같은의미의맥락을형성한다며,“이시의놀랍고아픈이미지는‘사람의시간도말라간다’는것이다.담담한시선으로자연현상을바라보는듯하지만그안의쓸쓸하고절박한감정을어떻게감출수있을까?말라간다는표현은빨래의자연스런현상이지만,그것이물이아니라시간으로전이되어사람의목숨이곧다해간다는의미로변주될때이발견은놀랍다못해처연하기짝이없다.”라고말하며시집전반에깔려있는쓸쓸하고담담한이미지들에집중했다.

나의눈동자는색을바꿀줄안다
앵두나무가보이는여관집방문을열고앉아
일렁이는가로등빛그늘을본다
하늘이울음을얼려눈을내리는밤이다
족발에소주한병앞에놓고
슬픔을애도하는밤이다
앵두한알매달지않았는데도
저나무는무겁고힘들어
눈쌓인앵두나무발목이젖어축축해
나는무릎을세우고쭈그려앉았는데
몸에울긋불긋지렁이가피었다
밖이어둡지도않는데밤이라고하지말아요
어디로가야할지망설이는사이
생각이깊어슬픔이탯줄처럼길어지는사이
순천의한여관방에서
분홍색목젖에울음이매달려흔들린다
한호흡만더건너가자,생이여
추운앵두나무를몸안에밀어넣고있는
환한가로등처럼

눈이녹아내려드러난앵두나무뿌리가
족발처럼자꾸보여,
물어뜯고싶어지게,
쭈그리고앉아
발가락열개를꾸욱꾸욱눌러본다
-「울음의탄생」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