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도이칠란트라디오의 방송을 위한 원고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 작가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를 생각하는 기나긴 밤」을 토대로 한다.
저자는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를 오랫동안 꾸준히 성찰해 왔고 아우슈비츠의 경험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끌어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인물, 레비와 아메리의 생생하고도 농밀한 초상화를 그려냈다. 두 사람은 매우 비슷한 운명을 겪었음에도 그 삶과 작품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쇼아 생존자인 이 두 위대한 사상가가 걸은 인생길이 달랐던 탓에 프리모 레비는 유화적인 낙관주의자로, 아메리는 비관론자이기는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르상티망 Ressentiment(한 恨)을 풀어나간 인물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물론 두 사람은 저 항에서부터 수용소 경험을 거쳐 그 상흔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로부터 서로 다른 결론을 도출했으며, 저마다 상대의 독법, 즉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읽어내는 독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책의 제1부는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가 수용소로 끌려가기까지의 인생 역정을 다룬다. 제2부는 고문당하는 아메리와 레비의 수용소 수감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아우슈비츠로 옮겨간다. 인간으로서 겪는 더없이 비인간적인 굴욕, 사람 사이의 인간다움이 일체 파괴되는 현장을 증언하는 레비의 이야기에 이어, 영혼과 정신을 위해 부르는 아메리의 송가 그리고 복구할 수 없이 망가진 생활을 그린 현상학적 묘사가 전개된다. 제3부의 주제는 ‘계속 살아야 하는 인생’이다. 무참히 짓밟힌, 상처뿐인 희생자가 이제 과거를 끊어내야 한다고, 내일을 위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문명에 항의하며 역사 속에 기억될 자리를 인정해달라는 투쟁이 등장한다. 전쟁 이후의 시절은 과거를 복기하자는 기억의 담론을 꺼렸으며, 수용소의 생존자들을 부담스러워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레비와 아메리는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는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살아남았지만 이 경험에서 저마다 다른 결론을 내렸다. 한쪽은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선 반면, 다른 쪽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자로 남았다. 이탈리아의 유대인 레비는 자신의 증언으로 그 끔찍했던 아픔을 덜어낼 수 있었던 반면, 유대인으로 만들어진 오스트리아 남자 아메리는 이 세상에서 더는 안식처를 찾을 수 없었다.
홀로코스트가 유일한 사건이 아니었으며 유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면서 공공연히 그 의미를 깎아내리려 하는 오늘날, 적어도 아우슈비츠가 실제로 어떠했는지 짐작이라도 하게 해줄 증언을 남기는 일은 꼭 필요하다. 파시즘에 맞서는 저항에서 시작해 인간을 짓밟는 강제수용소의 경험과 이를 글로 이겨내고자 했던 서로 대비를 이루는 두 인물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금 귀중한 교훈을 선물한다.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는 허약하다. 주먹 한 방에 허물어질 수 있는 가치의 취약함은 인생 선배 아메리와 레비의 증언에 기대지 않아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에 그치지 않고 무한함을 생각할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채워지지 않고 달랠 수도 없는 권력욕에만 매달리지 않고 권력 너머를 바라볼 줄 알 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길이 열린다. 작은 힘이나마 정성을 다해 쌓는 기초는 흔들림 없는 굳건한 가치를 세워준다.” _ 역자 후기 중에서
저자는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를 오랫동안 꾸준히 성찰해 왔고 아우슈비츠의 경험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끌어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인물, 레비와 아메리의 생생하고도 농밀한 초상화를 그려냈다. 두 사람은 매우 비슷한 운명을 겪었음에도 그 삶과 작품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쇼아 생존자인 이 두 위대한 사상가가 걸은 인생길이 달랐던 탓에 프리모 레비는 유화적인 낙관주의자로, 아메리는 비관론자이기는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르상티망 Ressentiment(한 恨)을 풀어나간 인물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물론 두 사람은 저 항에서부터 수용소 경험을 거쳐 그 상흔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로부터 서로 다른 결론을 도출했으며, 저마다 상대의 독법, 즉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읽어내는 독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책의 제1부는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가 수용소로 끌려가기까지의 인생 역정을 다룬다. 제2부는 고문당하는 아메리와 레비의 수용소 수감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아우슈비츠로 옮겨간다. 인간으로서 겪는 더없이 비인간적인 굴욕, 사람 사이의 인간다움이 일체 파괴되는 현장을 증언하는 레비의 이야기에 이어, 영혼과 정신을 위해 부르는 아메리의 송가 그리고 복구할 수 없이 망가진 생활을 그린 현상학적 묘사가 전개된다. 제3부의 주제는 ‘계속 살아야 하는 인생’이다. 무참히 짓밟힌, 상처뿐인 희생자가 이제 과거를 끊어내야 한다고, 내일을 위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문명에 항의하며 역사 속에 기억될 자리를 인정해달라는 투쟁이 등장한다. 전쟁 이후의 시절은 과거를 복기하자는 기억의 담론을 꺼렸으며, 수용소의 생존자들을 부담스러워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레비와 아메리는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는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서 살아남았지만 이 경험에서 저마다 다른 결론을 내렸다. 한쪽은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선 반면, 다른 쪽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자로 남았다. 이탈리아의 유대인 레비는 자신의 증언으로 그 끔찍했던 아픔을 덜어낼 수 있었던 반면, 유대인으로 만들어진 오스트리아 남자 아메리는 이 세상에서 더는 안식처를 찾을 수 없었다.
홀로코스트가 유일한 사건이 아니었으며 유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면서 공공연히 그 의미를 깎아내리려 하는 오늘날, 적어도 아우슈비츠가 실제로 어떠했는지 짐작이라도 하게 해줄 증언을 남기는 일은 꼭 필요하다. 파시즘에 맞서는 저항에서 시작해 인간을 짓밟는 강제수용소의 경험과 이를 글로 이겨내고자 했던 서로 대비를 이루는 두 인물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금 귀중한 교훈을 선물한다.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는 허약하다. 주먹 한 방에 허물어질 수 있는 가치의 취약함은 인생 선배 아메리와 레비의 증언에 기대지 않아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에 그치지 않고 무한함을 생각할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채워지지 않고 달랠 수도 없는 권력욕에만 매달리지 않고 권력 너머를 바라볼 줄 알 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길이 열린다. 작은 힘이나마 정성을 다해 쌓는 기초는 흔들림 없는 굳건한 가치를 세워준다.” _ 역자 후기 중에서
말로 담아내기 어려운 이야기 :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의 인생과 작품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