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스탈린!
수십년전만해도한국에서는북한이풍선에실어보낸‘삐라’가심심치않게발견됐다.과장된인물과거친문구로치장된,한눈에봐도기이한붉은종이쪼가리였다.이‘삐라’의형식적기원은소련의‘카리카투라’로거슬러올라간다.카리카투라는용어는캐리커처의러시아식표기이다.‘인민대중에게쉽고,친근하고,직관적인방식으로자본주의와부르주아들을폭로하고풍자’하기위한,그라피카(그래픽)예술의한부분이었다.
그렇다면당시소련의예술은거칠고미학적으로볼품없는것이었을까?꼭그렇지만은아니었다고한다.당시사회의분위기(특히정치적분위기)속에서예술가들이시대와조응하는방식에따라변주되었다.예컨대소련의예술가들은레닌의초상화를정적이고극히사실적으로그려내는(〈스몰니의레닌〉,이삭브로드스키작,[33쪽])한편,붉은깃발에둘러싸여격정적인연설을하거나군중을향해손을뻗는,전형적인‘붉은그림’(〈단상위의레닌〉,알렉산드르게라시모프작,[38쪽])또한그리기도했다.
소련은공식적으로‘사회주의리얼리즘’을예술의기치로내걸었지만,언제나이견이있어서는안되는,단일한형식으로강제되었던것만은아니었다고책은말한다.특히스탈린이사망한이후일종의‘해빙기’가찾아오기도했다.스탈린이사망하자그동안의억압에맞서동유럽(헝가리,폴란드등)에서항쟁이분출했다.이에직면한모스크바는잔인하게그들을진압했지만,한편으로기존의질서만을고집할수는없었다.예술에도다소나마숨통이틔었다.그동안서구적인것으로금기시되었던인상주의화풍이화실마다쏟아져나왔다.나아가예술가들이창작의자유와권리를요구했지만,어디까지나세계공산주의진영의맏형을자임하던소련의통제내에서만가능한것이었다.
북한으로간재일조선인예술가들
1959년12월‘귀국선’(북송선)을타고재일조선인들이북한으로향했다.‘조선인’도‘일본인’도아닌경계인들이‘조국’으로북한을택한것이다.이들중에는조선인을가족으로둔일본인도있었으며,예술가들도포함되었다.북한은이들을‘열렬히’환영했다.1960년북한에서제작된포스터〈재일동포들의귀국을열렬히환영한다〉(곽흥모작,[395쪽])를보면,인공기를배경으로저고리를입은어머니가자식을반기듯두팔을벌려이들을맞이한다.북한을어머니의나라로표현한것이다.일본에서의모든것을내려놓고어머니의나라에안겼던예술가들의삶과작품들은어땠을까?
북한은“단순히감동과연대의정서로만재일조선인미술가들의작품을이해할수는없는”,“여전히부르주아예술의형식적잔재와개인주의적표현의잔재가남아있다”고폄훼했다.재일조선인들이북으로향하기에앞서,1956년8월평양에서김일성반대파들의정치적쿠데타시도가있었으나처참히실패했다.소위‘8월전원회의사건’.이사건의여파로대숙청이뒤따랐다.이여진은예술계도피해갈수없었다.이런상황에서조국을찾은재일조선인예술가들의처지가어땠을지는짐작하고도남는다.
한우영의〈궐기한남조선청년학생들〉[406쪽],이철주의〈피로물들인교복〉[406쪽],박일대의〈궐기한남조선의인민〉[405쪽]등남한의현실(4·19혁명)을폭로하고재현하는‘붉은미술’에몰두한것은나름의방편이었을것이다.유토피아로여겼던조국의현실과마주한재일조선인예술가들은체제에안정적으로정착한일부를빼면대부분이름조차남기지못했다.중앙화단에서밀려나지방을떠돌거나‘붓’이아닌‘망치’를들어야했다.
제각각의‘붉은미술’
그렇다면소련과북한등공산주의진영이채택한사회주의리얼리즘을실패한산물로만치부할수있을까?저자홍성후는“단순히미학적파산이나정치적오류로만환원되기어렵다”라고설명한다.사회주의리얼리즘은“많은경우체제의요구에봉사하며예술의자율성을제한했지만,그와동시에계급적불평등과식민의경험,전쟁과빈곤이라는구체적인현실을가시화하려는시도”이기도했다.단순한국가권력의언어만이아닌,미래를상상하기위한또하나의시각적,역사적언어의일부로봐야한다는것이다.
예컨대미-소핵무기경쟁과전쟁의위협속에서동독의반전·평화의예술,일본의진보적예술가들의반핵·평화의예술이단순히프로파간다로만치부할수없다는것이다.그런데그배경이2차대전의전범국인독일과일본이라는점은매우역설적이기도하다.책에서는이역설이어떻게가능했는지를당시의국제관계,정치적분위기에예술가들이어떻게조응하고이를작품으로남겼는지를상세히묘사한다.
책에는총150여개의희귀도판이수록되어있는데이작품을마주하는것만으로도꽤흥미롭다.특히1924년에이삭브로드스키가그린〈코민테른제2차세계대회에서의레닌〉[32쪽]에는수많은군중들이묘사되어있는데자세히들여다보면,나비넥타이를메고있는유일한동양인참가자가눈에들어온다.한인사회당을대표해대의원자격으로국제공산주의운동기구인코민테른(공산주의인터내셔널)에참여한최초의조선인사회주의자박진순이다.
이렇듯책은미술사뿐만이아니라사회·문화사까지입체적으로조명하며당대역사의한장면,한장면을기술한다.이를두고미술사학자최열은“예술은언제나시대와하나였고놀라운상상력을발휘해왔다…연구자홍성후는아주오랫동안냉전의장막에가려졌던한시대의미술을우리앞으로불러낸다.《붉은미술》을펼치는순간,우리가외면하고왜곡해온미술사의한페이지가장엄한극장처럼펼쳐진다.”라고평한다.
추천평
내가명지대학교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으로있던시절,당시연구원이었던홍성후는한국근대미술의사각지대인사회주의계열미술운동과북한현대미술에관심을가지고꾸준히논문을발표해왔다.그가이번에펴낸《붉은미술》은여기에서한걸음더나아가냉전시대사회주의진영의미술을포괄적으로다루고있다.구체적으로말하면사회주의이념과역사,전쟁과평화,그리고디아스포라까지깊이있게규명하는‘장벽너머의사회사이자문화사’이다.그의연구가집대성된이책은한국근대미술의넓이와깊이를한층확대할뿐만아니라미술의진정한사회적기능은무엇인가라는근원적인성찰로이끈다.
-유홍준(미술사가·국립중앙박물관관장)
예술은언제나시대와하나였고놀라운상상력을발휘해왔다.또한예술은사람들의감각을재구성하며불가능할것처럼보이던현실의변혁을이루어냈다.사회주의미술은인류역사상단한번도본적이없는신세계의미학이었다.세기가바뀐오늘,신진연구자홍성후는아주오랫동안냉전의장막에가려졌던한시대의미술을우리앞으로불러낸다.《붉은미술》을펼치는순간,우리가외면하고왜곡해온미술사의한페이지가장엄한극장처럼펼쳐진다.나는예술이인간과사회를혁명하는멋진도구이자‘감각의형식’이라고믿는다.그런까닭에그시절세상을바꾸려는열정으로몸과마음을불태운예술가들의이야기는여전히두렵고도설렌다.아름다운미래를꿈꾸는이들에게이책곳곳에스며든희망과절망,승리와패배의숨가쁜서사는큰울림을줄것이다.
-최열(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