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 한국 최초의 순교 사제 - 비람북스 인물시리즈

김대건 : 한국 최초의 순교 사제 - 비람북스 인물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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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대건 신부는 1857년 9월 23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가경자의 칭호를 받았고, 1925년 7월 5일에 성인 위에 오르셨습니다. 로마교황청에서는 매년 7월 5일을 성 김대건 신부의 축일로 정하고, 그날이 되면 교우들은 김대건 신부님을 위한 기도와 묵상을 합니다. 지금 그의 유해는 가톨릭대학 신학부 성당에 모셔져서 신학생들의 교부가 되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순교자들의 피로 우뚝 선 것처럼, 조선교구 또한 신앙 선조들이 흘린 순교의 피로 대성당이 우뚝 섰습니다. 조선의 대원군 시대를 끝으로 이 땅에는 천주교 박해가 끝났고, 김대건 신부님이 조선 땅에서 새벽에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싶어 하시던 그 열망은 끝내 이루었습니다.
저자

유홍종

서울출생으로연세대학교국문과를졸업한후기독교방송프로듀서와동아일보기자를지냈다.문예지14회『월간문학』시부문신인상(1974년)과『현대문학』소설추천으로문단에데뷔,장편소설『불의회상』으로대한민국문학상소설부문신인상(1984년)을수상했으며,중편소설『서울에서의외로운몽상』으로제4회소설문학작품상(1986년)을수상했다.

저서로는창작집『불새』,『북가시나무』...

목차


머리말

제1장
등산포일기
추억의그림자
골배마실에서만나다
하느님은누군가
금지된하늘
성이그나시오의순교
샤스땅의편지
마카오의신학교
커다란종이호랑이
국경에서만난밀사
어서,일어나걸어라
만주횡단

제2장
뱃길을열어라
나침반과항해지도
요나의돛배
땅에서맺힌것은땅에서풀어라
내가너를선택했다
라파엘호의표류
숨어있는마을
서로의천사가되다
주여당신이름
나무조각에붙은영혼
붉은포승줄
세계지도를바치다
김대건구명탄원서
사랑하는형제여

김대건해설
김대건신부연보
김대건을전후한한국사연표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마카오에있는그림이그려진봉투석장,여덟쪽병풍그림이며구리로만든요강세개,조선에서순교한서양신부님들의유품이든누런주머니,이머스승리바신부에게보내는조선의한지스무장,조선그리빗세개,붓네개가든꾸러미도들어있었다.

김대건신부가항해도중세필로그린조선지도는훗날1855년파리왕립도서관에입수되어,프랑스의「지리학회지」에발표되었다.프랑스생마르탱의「세계지리사전」에는〈김대건의조선전도〉원본이수록되어있고,그지도는현재는파리국립도서관지도부에소장된품목이다.김신부는중국선장들과얘기가잘되어만주에서조선입국을애타게기다리고있는매스트르신부와최양업부제를모셔올수있는길이열릴것을기대했다.그들은그임무를성공적으로수행하고소청도와대청도를거쳐서등산포로다시귀항했다.
---pp.18~19

그해1836년봄,모방신부는교우들이숨어사는산골골배마실골배마실:지금의경기도용인특례시처인구양지면남곡리에서소년김재복을처음만났다.김대건신부의어린시절이름은김재복이었지만훗날조부가그에게큰뜻을세우라는뜻으로이름을김대건으로바꾸어주었다.당시은이마을의공소에서미사첨례를하던김대건신부의아버지김제준이그나시오는모방신부로부터해외에유학시킬신학생을찾고있다는말을듣게된다.그때마침아들을신학교에보내고싶었던그는아들을모방신부에게데려갔다.“바로이애가제아들김재복입니다.”

모방신부는소년김재복이착하고성실한데다가순교자의핏줄을이어받은자손이라는데깊은인상을받았다.당시15살이었던김재복은이미아버지로부터신학교얘기를들어서알고있어서남몰래마음속으로그꿈을키우고있었다.그는모방신부를만나자가슴이뛰었다.골배마실에서조부로부터한문을배우고있던산골소년김재복에게모방신부는하늘이보내준전령이나다름없었다.
---pp.37~38

조선에서천주교박해에나선좌우정이지연은김효임,김효주를비롯하여허계임,홍금주등양반가문의딸십여명을전격적으로참수시켰다.앵베르주교와두서양선교사를자수시키기위한압박하기위해교우들을계속희생시키겠다는뜻이었다.앵베르주교는교우들의희생을숨어서지켜볼수가없었다.더많은희생자가나오기전에어떻게든손을써야했다.마침내앵베르주교는모방신부와샤스탕신부를청나라로보내고혼자자수할결심을굳혔다.하지만두신부는앵베르주교에게결코조선을포기하지않겠다는의지를보였다.먼저배교자김순성의밀고로포졸5명이일꾼으로위장하고앵베르주교를찾아왔다.자수를결심하고있던앵베르주교는포졸들의붉은밧줄을순순히받았다.좌포도청손계창은그를정치범을체포할때만쓰는붉은밧줄로포박해서연행했다.모방신부와샤스탕신부가각기새은신처를찾아떠난후에야이미체포되어감옥에있던앵베르주교로부터한통의편지를받았다.그편지는라틴어전문으로씌어있었다.

「무릇착한목자는자기양들을위하여목숨을바칩니다.신부님들께서아직배를타지않으셨다면좌포장손계창에게자수하기를바랍니다.교우는한사람도따라오게해서는안됩니다.」

앵베르주교는교우들이사제로인해서계속죽어가는모습을지켜보면서얼마나가슴이아팠는지알수있다.포청에서는모방신부와샤스탕신부를체포하기위해앵베르주교를압박하는수단으로교우들을대신계속처형시키고있었다.
---pp.67~68

주여!제영혼도당신의손에맡기나이다.김대건신부는두손을움켜잡고속으로크게외쳤다.목이메어기도가더이상나오지않았다.10년전에있었던세신부의사형장면은마치지금보는것처럼생생하게떠올라서저절로몸서리가쳐졌다.세신부가참형을받은후에순교한교우중에는정하상의어머니가옥사했다.정하상과정정혜남매가서소문에서참수치명되었다.역관유진길이참수되었으며,그의어린아들유대철은교수형,최양업신부의부친최경환은형조에서맞아서옥사했다.북경동지사의마부조신철은김대건신부의아버지김제준이그나시오와함께서소문에서참수순교를당했다.주여!아버님의영혼을주님의손에맡깁니다!

김대건신부는기해년9월26일에아버지를잃은아픔과고통을겪어야했다.김신부는15살때은이마을공소에서아버지와헤어진후이번에는돌아가신아버지를꿈속에서나마다시만날수있었다.중국인유방제신부의손에이끌려한양으로떠나던날,김신부의부모님은그가시야에서사라질때까지손을흔들던모습이마지막이었다.아버지가원하던대로아들이사제가되어돌아온것을천국에서내려다보고기뻐하셨을까?김신부는또다시눈물이앞을가렸다.그는집안의어르신들을떠올리면눈물부터앞섰다.부모님과은이마을에함께살때는너무어려서효도도제대로한번해보지못한것이통한이되어가슴속에서사무쳤다.많은교우가함께고난을겪고끝내는참형을당했기에유독아버지를잃은고통만더크게느낄수없는것이사제로서의애틋한감정이긴해도,그죄스러움과한스러움은피할수가없었다.“사랑하는교형자매여러분,그토록큰환난속에서그처럼처참하게모두들하느님의곁으로떠나셨습니다.”
---pp.81~82

김대건은만주변문근처에서조선인옷으로바꾸어입었다.옷속에는은돈1백냥과금돈40냥을단단히꿰매어넣고,비상식량으로준비한빵과소금에절인생선도허리에찼다.그는나무꾼행색을갖추기위해지게를마련하여등에나무를잔뜩짊어지고중국변문에서다소먼국경지대를무사히통과했다.

김방지거의조언대로나무꾼으로위장하여변방의국경선을넘는것이국경수비대를속일수있는가장자연스러운방법이었다.김대건은다음날새벽부터해저물녘까지하루1백30리길을꼬박걸어서얼어붙은압록강위를조심조심발을떼었다.압록강의칼바람은뺨을도려낼듯매서웠다.오랜만에밟는고국땅의냉대가너무냉혹했다.그는몇번이나미끄러지고고꾸라지고엎어지면서압록강을겨우건너해질무렵쯤에의주에도착했다.

이제부터그는조선인교우들을만나서페레올주교를안전하게입국시킬수있는길을찾아야했다.그것이그의첫번째과제였다.지금,조국은슬픈땅이다.아버지는참형당했고,어머니는지금어디계시는지알수가없다.지금조선에는앵베르주교도,영원한첫스승모방신부도샤스탕신부도모두저세상으로가고없다.해질녘,석양의붉은노을을바라보면가슴한구석에서슬픔이안개처럼자욱하고스산하게덮여왔다.
---pp.118~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