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 동의보감을 편찬하다 - 비람북스 인물시리즈

허준 : 동의보감을 편찬하다 - 비람북스 인물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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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시연

저자:유시연

동국대학교문화예술대학원문예창작과졸업.

2003년계간『동서문학』신인문학상단편소설당선.

2015년제7회현진건문학상수상.

현한국작가회의소설분과위원회간사.



소설집『알래스카에는눈이내리지않는다』,『오후4시의기억』,『달의호수』,『쓸쓸하고도찬란한』

장편소설『부용꽃여름』,『바우덕이전』,『공녀,난아』,『벽시계가멈추었을때』

기행에세이『이태리에서수도원을순례하다』

목차

머리말

1.봄날
2.먼길
3.의원이되는길
4.십년세월동안
5.오해
6.세상밖으로
7.내의원에입시하다
8.바람의물결
9.의서연구에눈을뜨다
10.전쟁이일어나다
11.여진족
12.의병궐기하다
13.환궁
14.유배
15.다시봄
16.동의보감을완성하다

장편소설허준해설
허준연보
장편소설허준을전후한한국사연표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초여름의숲이우거지며날이더웠다.그날이후허준은숙정의모습을떠올렸으나김시흡은먼길을떠나고홀로동분서주하며큰집과작은집을오고갔다.가끔김시흡의심부름으로절에다녀오곤했다.잘말린약재나쌀을말잔등에싣고절에다녀왔다.때때로숯을망태기에담아갖다줄때도있었다.여름이깊어갈무렵이었다.바위계곡을세차게흐르는물소리가시원했다.
“숙정아기씨는왔다갔나요?”
“으흠,인제보니도련님흑심이있습니다.”
“그게아니라그냥궁금해서……발목이삔건다나았는지요.”
“대감이침술하나는끝내줍디다.다음날멀쩡히걸어서산문을내려갔습니다.”
“다행입니다.삼촌이그소식을들으면기뻐하겠어요.”
“도련님,외가는대대로약재로유명한집인디많이배워두십시오.혹시압니까.약재로조선을들었다놨다할지.”
“그깟약재가다무슨소용이있겠습니까.글공부를해야…….”
허준은여기까지말하다가그만말문이턱막혔다.자신은글공부를해도아무쓸모가없는신분임을자각했기때문이었다.상좌승은아마도집안내력을알지도모를일이었다.
“무슨한숨이그리도깊어집니까.”
“막막해서그럽니다.”
“좋은집안내력을배워서써먹으십시오.도련님외가는대대로한방약재와치료술로유명했습니다.”
“그걸어찌압니까.”
“주지스님께들었습니다.”
허준은어머니나삼촌에게그런말을듣지못했다.그냥집안에약재가많고일반백성집보다그방면으로조금더신경을쓰는구나싶었기에대수롭지않게여겼었다.사실지난번숙정에게침을놓는김시흡을보고의외라서놀라기는했다.비로소허준은어린시절배앓이를하거나머리가아플때어머니가무슨풀인가를끓여서먹이던걸기억해냈다.어머니가배를쓰다듬어주면금세나았고그냥자연스럽게받아들였다.외가에서보낸지해가바뀌었는데허준은본가로떠날생각을못하고있었다.김시흡의입에서그말이나오기를기다렸으나무슨일인지아무말이없었다.어머니가보고싶었으나허준은내색하지않았다.손맛이좋은어머니는집안의일을해내느라몸이성할날이없었다.안채큰어머니는특히어머니를부리며쉴틈을안주는분이었다.고달픈어머니의일상이허준은보기가싫었다.
“도련님,제말대로하시오.잘배워서어의가되시오.”
“어의?”
“임금님의병을고쳐주는의관말입니다.”
“에이,내가어찌그런막중한일을할수가있겠습니까.어의라니말도안됩니다.”
---p.18~20

처음패를떼어물주(物主)를정한다음패를방바닥에엎어놓고섞었다.각각5개씩떼어앞에놓은후물주는다시2개를떼어내고그중에서1개를펼쳐보였다.막시작하려는찰나뒤에비스듬히누웠던사내가배를움켜쥐고뒹굴기시작했다.
“아이고오,아이고오!”
모두들손에들었던골패를내려놓고소리지르는사내쪽으로둘러앉아무슨일이냐고웅성거렸다.사내는통증이심한지배를움켜쥐고진땀을흘렸다.일행중한명이주모를불러의원을불러달라고청했으나깊은산골에어디가서의원을부르냐며난감해했다.혜월이일어났다.
“소승이환자를좀보겠소이다.”
혜월이소리치는사내의맥을짚고얼굴을살폈다.사내는식은땀을흘리며어지럼증을호소했다.혜월이바랑에서두루마리천을꺼내더니바늘보다작은침여러개를꺼내손바닥에꽂았다.조금후사내의굳었던표정이펴지며편안했고느리게뛰던맥이돌아왔다.허준은어머니가싸준약초를끄집어낼까어쩔까망설였는데사내의상태가호전되자다시일행들의놀이에관심을두었다.그들은한바탕회오리가지나간방에서엽초를말아피우거나구석에새우처럼구부린채웅크려잠을청했다.좁은방안에사내들의퀴퀴한냄새가가득했다.
“스님,의술은언제배우셨습니까.”
“의술이라할게뭐있나.내친구유의태와다니며어깨너머로침술을익혔을뿐이네.”
“유의태란분이명의인가봅니다.”
“의원으로서그양반은성인이라네.가난한백성들을위해의술을베풀며은자처럼산다네.”
“소인도그분을뵐수있을까요.”
“의원이되려고?”
“스님을보며뭔가제가할일이생긴듯합니다.”
“이번에나와함께가세나.내자네를천거해줄터이니.의술을배워보게.”
허준은어느덧자신이가야할길을찾은것같아기뻤다.어려운시절에가난한백성들을위해의원이되는길도나쁘지는않을것같았다.허준은혜월과이야기를계속나누고싶었다.촛불이꺼지고창호지문으로달빛이새어들어왔다.
“거,잠좀잡시다.”
두런두런말소리에일행중사내하나가짜증을내며뒤척였다.허준은입을다물었다.그도눈을붙여야다음날일찍새재를넘을것이었다.이튿날방물장수일행이서둘러조반을먹고떠났다.허준도혜월과봇짐을짊어졌다.
---p.56~58

허준은기쁨에입이벌어졌다.어느사이정임이다가와그런허준을바라보았다.고맙소.허준은정임의손을덥석잡았다.아들과며느리를바라보는어머니의표정에평화가머물렀다.기쁨의상봉후어머니와정임이바빠지기시작했다.어머니가나물을다듬고정임이아궁이에불을지펴솥에보리쌀을안쳤다.밥상에는삶아서소금과들기름에무친뽕나무잎,간장에무친머윗대,들깻가루를넣어볶은죽순나물이올랐다.지난설이후세식구가다시한자리에모여오붓한식사를했다.허준은아내정임의상태를살폈다.몸은괜찮은지아기는건강하게자라고있는지걱정이되어밥을먹으면서도자꾸정임을주시했다.허준과눈이마주치자정임은볼이발그레해져서고개를숙였다.허준이정임에게해줄수있는것은아무것도없었다.모든것을어머니에게맡기고허준은의원으로돌아왔다.
허준은더욱더의서공부에매달렸다.낮에는구민당에서환자를돌보고밤에는서가에서의학서를읽었다.대대로전해내려오는의학서의종류는많았으나마음에흡족하게남는내용은없었다.황제내경만보더라도오래된전통과우주만물,삼라만상,음양오행같은도교적인배경에서우주내적인원리를밝히려애쓰는학문서였다.자연요법과예방치료법을위시하여생태학과연관이있지만한편으로는구체적인임상치료의접근이아쉬웠다.기존의의학서에는다양한고가의약재를처방함으로써일반백성은엄두를못내는처방이주로이루어진것도아쉬웠다.허준은갈길이멀다는생각에초조해졌다.우리주위에서구할수있는동식물로약재를얻도록한다면더할나위없이좋을것이었다.
허준은지난여름의자작나무숲을떠올렸다.하얀몸체의자작이산비탈가득서있던풍경은무릉도원으로가는길목같았다.연둣빛잎사귀들의쉼없는흔들림,스스로껍질을벗어버리며날아오르려는몸짓은허준이이르고자하는어떤세계였다.그이후힘들거나두려움이몰려오면허준은자작나무를떠올렸다.지난밤허준은꿈속에서자작나무길을걸었다.아침에꿈에서깨어꿈의의미를헤아려보았으나아무런단서를얻지못했다.기분은나쁘지않았다.
하루하루바쁜나날중에도시간은흘러어느덧기러기떼날아가는계절이되었다.들판에첫서리가내린어느날막쇠가아내정임이아들을낳았다는전갈을가져왔다.함께있던구민당문하생들이모두듣고축하했다.허준은그때자작나무숲을떠올렸다.가슴에한줄기빛이지나가는듯한느낌에하늘을우러렀다.아들이라니,기쁨과두려움이교차하며불안의그림자가언뜻스쳐갔다.자신의처지를돌아보면서였다.서얼자식은과거시험의문턱이높았고양반댁규수와혼인은물론변변한직업을가질수가없었다.허준은어떻게해서든자식만은고생시키지않으리라는다짐으로주먹을꽉쥐었다.
---p.92~94

집집마다눈녹은물로메주를담그는날들이었다.갑자기내의원이분주해졌다.수의양예수가심각한얼굴로연락받고달려온의원들의얼굴을하나하나뜯어보며목소리를낮게깔았다.
“역병이돌고있다하오.”
“역병이라구요?”
내의원의원들의표정이복잡해졌다.그것이무엇을의미하는지잘알기때문이었다.지방에는활인서나혜민서같은가난한백성들을치료하는곳이없어서도성에서지방으로출장을가야했다.
“함경도를비롯하여경기도일대에환자들이속출하고있다하니그대들이가야할듯싶소.짐을꾸리시오.”
양예수의말이떨어지자허준은약재창고로달려갔다.필요한약재를담을수있을만큼분류를하여바랑에담았다.허준은집으로퇴궐하여짚신과옷가지,비상식량을꾸렸다.다음날허준은유의정작과같이천안,아산쪽으로출발했다.옷섶을스치는바람이쌀쌀했다.입춘이지났다해도추위는여전히매웠다.정작도허준도말이없었다.정작은집안에서말을구해줬으나허준과동행하며말을타지않고함께걸었다.걷고또걸으며고을마다상황을살펴보려애썼다.
며칠후허준과정작은아산에이르러관아를찾았다.관아대문여민루편액을지나자병방이두사람을맞이했다.현감이고을시찰을나가곧돌아올때가되었다며객방으로안내했다.허준과정작은물을청해마시고현감을기다렸다.얼마후현감이이방을앞세워헐레벌떡달려왔다.
“먼길오시느라고생하셨습니다.이지함이라합니다.”
“정작이라하오.”
“의원허준입니다.”
허준과정작은현감이지함으로부터고을의상황을듣고관청손님방에임시진료소를마련했다.그러고는현감에게몇가지를안내했다.
“먼저환자를다른가족과격리하십시오.두번째는물은필히끓여서먹고,만약마을사람전체가역병을앓고있다면최악의경우이주시켜야합니다.”
“이주라구요?”
현감이놀라되물었다.실제로마을에돌림병이돌았을때마을사람모두를깊은숲속이나산속암자같은데로피신시킨적이있었다.이것을피접이라하는데나라에서워낙엄격하게관리해서아무도대항하지못하고집을떠나야했다.
“마을을둘러본결과아직전체사람들이역병을앓는것은아니었습니다.서너집중에서일부가족이그러한데일단격리해놨습니다.”
“잘하셨습니다.마당에무쇠솥두개를걸어물을끓여주십시오.”
허준은관노비를시켜솥에물을가득붓고죽을끓이기시작했다.녹두죽에찹쌀을섞었다.환자들을치료하며먹일죽이었다.제대로먹지못하면병이낫지않는데더구나집집마다양식이떨어져환곡을꾸어먹을시기였다.굶는사람이많으니자연히병이많았다.다른솥에는승마갈근탕같은약재를넣고끓였다.현감을통해마을사람들이한사발씩마시도록했다.
관아객방에는환자들로넘쳐났는데진료하다보니이상한일이벌어졌다.환자도아닌데환자행세를하는사람들이었다.허준이맥을짚고열을재고목안을살피고온몸을살펴봐도아프지않은데거짓으로환자행세를하고있었다.
“현감께고해바치면경을칠것이오.당신같이멀쩡한사람이의원의시간을붙잡고있으면아픈환자는진료를못받고밀려나결국회복하지못할수도있어요.”
“잘,잘못했습니다.관아에서죽을준다기에……며칠굶었더니눈이뒤집혀서,죄송합니다.”
허준은기가찼다.죽한그릇때문에가짜환자가많았던것이다.
“죽한그릇얻어먹고다시는이러지마시오.”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p.138~142

어린왕자가비단보료에누워불안한표정으로어머니인빈김씨와의원의이야기를듣고있다.목부위에긁은자국이있는것으로보아태열로인한증세일가능성이높았다.허준이조심스럽게신성군의저고리앞가슴을제쳐보고소매를걷어보았다.발진(發疹)과발적(發赤)증세가심했다.목어깨엉덩이팔과다리에증상이심했다.손발에는땀이차고몸은건조했다.
“더위를심하게타고찬것을좋아한다오.”
허준의탐문에인빈김씨가친절하게응대했다.아랫배를만져보니차가웠다.태열이증세이긴하지만더위를많이타고찬것을좋아하며몸에땀이없는것을감안하여감초,석고,황금,길경,방풍,천궁,당귀,적작약,대황,마황,박하,연교,망초,형개를처방하였다.유의정작이옆에서지켜보았는데허준은약선별과달이는것과먹이는일을직접하였다.여러날이지났다.피로한기색이역력한허준을보고정작이좀쉬라고해도그는신성군옆에서떠나지않았다.신성군옆에서꾸벅꾸벅졸면서그는밤을보냈다.
“허의원의지극정성이하늘에닿았을거요.”
신성군이웃음을되찾자인빈김씨는기쁨에들떠얼굴이화사하게피어났다.
“고맙소.내이은공을잊지않으리다.”
“황공하옵니다.”
신성군의병이낫자선조임금은허준에게당상관벼슬을내렸다.정3품통정대부이상이었다.사헌부와사간원,홍문관삼사에서상소가빗발쳤다.
“전하,어의는왕실가족의병을고치는의원이옵니다.당연한일을했사온데벼슬을내리다니요.”
“전하,벼슬이너무과하옵니다.이로인해오만해져서자신의처지를잊을까염려되옵니다.”
“전하,이번일로벼슬을높게주시면나쁜선례가되옵니다,통촉하소서.”
대신들이허준의벼슬이부당함을고하자성균관유생들까지나서서탄핵을주청했다.
“이일은더이상거론마오.”
---p.170~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