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희 : 동학의 정신으로 독립선언서 발표에 앞장서다 - 비람북스 인물시리즈

손병희 : 동학의 정신으로 독립선언서 발표에 앞장서다 - 비람북스 인물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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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손병희는 1905년 12월 1일 자로 동학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한다. 그가 출판과 함께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교육이었다. 손병희는 나라를 지킬 힘은 교육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창설하여 운영하던 이용익이 1907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910년 손병희는 경영난에 봉착한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경영했다. 3·1운동이 이루어진 과정에서 천도교의 공로, 특히 손병희의 영도적인 지도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독립선언서의 민족 대표들인 종교인들을 이끌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큰 역할을 했다.
저자

송재찬

저자:송재찬
제주도출생
서울교육대학교졸업
동아일보신춘문예동화「찬란한믿음」당선.
동화집『무서운학교무서운아이들』,『돌아온진돗개백구』,『주인없는구두가게』,『노래하며우는새』,『비밀족보』,『우리다시만날때』,『홍다미는싸움닭』,『새엄마는허웅아기』,청소년소설집『비밀에갇힌영혼』,『전봉준-지지않는녹두꽃』외출간.
세종아동문학상,이주홍아동문학상,소천문학상,방정환문학상,박홍근문학상수상.

목차


머리말

1아버지를아버지라부르지못하는아이
2돈보다귀한생명
3끈질긴서자의설움
4가시나무에피는꽃
5차별없는평등세상
6조여오는숨통
7동학농민혁명
8충청도출신갑부이상헌
9동학에서천도교로
10나라를살리는교육의힘
11기미년3월1일

소설손병희해설
손병희연보
소설손병희를전후한한국사연표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어느날친구집에갔더니친구가울고있었다.이야기를들어보니친구의아버지가공금을써버려서곧관가에잡혀가게되었다는것이다.꽤큰돈이어서친구네로서는도저히어쩔수없이잡혀가죽을지도모른다고했다.
응구는집으로돌아왔지만잠을이룰수가없었다.
“응구야,우리아버지관가에끌려가죽을지도몰라.”
흐느끼며말하던친구의음성이밤새응구의잠을방해했다.이튿날응구는친구네집으로달려갔다.친구는멍하게앉아있었다.
“나에게좋은방법이있어.너희아버지를구할수있을거야.돈백량때문에죽기까지해서야되겠니?내가시키는대로만하면네아버지를구할수있어.”
응구는아버지가관가에바칠세금을거두어문갑안에보관하고있다는것을알고있었다.응구는친구에게식구들이다잠들면들어와돈을훔쳐가라고일러주었다.문갑이어느방에있는것까지자세히일러주었다.
“그래도되겠니?”
친구가걱정되어물었다.
“아버지를죽게할거야?”
“알았어.고마워.”
친구는식구들이다잠든다음응구네집문갑에서돈백량을훔쳐내어관가에갖다주었다.친구의아버지는옥에서풀려나왔다.
며칠후에응구네집은발칵뒤집혔다.세금으로거둔돈백량이감쪽같이사라졌기때문이다.
‘이럴수가…도둑은분명집안에있다.도대체누가가져갔단말인가.내가도둑을키웠구나.’
아버지는식구한사람한사람을떠올리며의심하였다.아무도돈을가져가지않았다니기가막힐노릇이었다.응구도시침을뚝떼었다.
아버지가며칠째식음을전폐하며누워있던어느날응구가무릎을꿇고앉았다.
“제가그돈백량,어디에있는지알고있어요.”
“그게무슨소리냐?”
아버지는,응구가돈을훔쳤다가아비가식음을전폐하니이제내놓는가보다했다.응구는그돈이사라진사정을정직하게고백했다.
“왜이제야말하는것이냐?”
“돈을훔쳐간다음날바로말했다면당장달려가돈을찾아왔겠지요.그러면그친구아버지는영영옥에갇히고맙니다.이제옥에서나왔으나말씀드리는겁니다.”
“세상에!세상에!네가훔쳐가라했단말이지?댓기놈!그친구가도둑이아니고네가도둑이구나.”
아버지는야단을쳤지만속으로는감탄했다.
---pp.23-25

1882년여름어느날,22살의손병희에게조카손천민(孫天民)이찾아왔다.그는이복형의아들로7살연상이었다.
“당숙,그간별고없으셨습니까?”
“어서오시게.조카님도잘지냈는지요?여기앉으시게”
“네.조용히드릴말씀이있어왔습니다.”
두사람은마주보고앉았다.
손천민은쾌활한성품이어서우스개도곧잘하는사람이었다.그런데무슨일인지여간점잖게나오는게아니었다.
“그래무슨일로?”
“당숙께서도동학에대해들어보셨지요?”
동학.뜻밖의말이조카의입에서나왔다.
“동학모르는사람이어디있나?듣기야많이했지.”
그렇지않아도궁금하던참이었다.
“당숙님,제가동학에입도했습니다.”
손병희얼굴에놀라움과호기심이떠올랐다.나라에서금하는동학이라는걸,손병희도모르지않았다.
“조카님이동학이라….”
손병희가관심을보이자손천민은자신있게입을열었다.
“당숙님,동학을믿으면삼재팔난을이길수있습니다.약을먹지않아도병이스스로물러가요.흉년이들어도굶주리지않게되고난리가나도미리알게되어예방할수있습니다.그러니당숙님도동학에들어오십시다.또무슨일이나소원을이루게되어잘살게될것입니다.”
---pp.48-49

그러나나라에서는약속을지키지않았다.더욱거칠게동학을탄압하였다.나라의명에따라포졸들이집으로가려는동학교도를잡아들이기시작했다.왕의전교는속임수였다.
최시형의뜻을따라온건파에속했던손병희는나라의이런처사에마음을바꾸지않을수없었다.최시형도크게분노하였다.
나라의속임수로광화문교조신원이실패로끝나고서울로올라갔던교도들까지체포당한데다관헌들의약탈은더욱심해졌다.
광화문복합상소가끝나고얼마지나지않은1893년3월중순,최시형의명을받은동학교도3만여명은다시보은장내로모여들었다.〈척왜양창의〉5자를새긴깃발을휘날리며보름동안시위를벌였다.
척왜양창의.이깃발에서알수있듯이일본세력이나라깊숙이침투하여왕은이미허수아비같은신세로전략했고서양세력들도호시탐탐우리땅을노리고있었다.나라의권세가들이일본의눈치를보며그들의앞잡이노릇을할때동학도들은평화적인시위를하며나라를지킬뜻을분명히한것이다.
이보은집회의시위는우리역사상최초의평화적시위로손병희는이집회에서충의대접주로써확실한지도력을보여주었다.3만여명을흐트러짐없이질서를잘지킬수있도록지도하여시위에참가하지않는일반백성들에게까지깊은인상을심어주었고동학교도들에게는‘손병희는뭔가다른사람이다.보통사람이아니야.’하는확실한믿음을심어주었다.
이보은집회의규모에놀란조정은급히보은군수를현지에급파하여동학교도들을해산시키려했다.
---pp.71-72

일제의만행이계속되는가운데제1차세계대전(WorldWarI)이터졌다.제1차세계대전은1914년7월28일부터1918년11월11일까지일어난유럽을중심으로한세계대전이다.전세계의경제를두편으로나누는거대한강대국들동맹끼리의충돌이다.대영제국,프랑스,러시아제국의연합국에맞선독일제국과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있는동맹국이다.
연합국의승리로끝난이전쟁은사망자가가장많았던전쟁중하나로병사900만명이상이사망했다.사망자는병사만이아니라무고한시민들도셀수없이희생되었다.
-전쟁으로인명피해가너무심했다.
-다시는이런참사가일어나지않아야한다.
-이런참혹한일이일어나지않도록방법을생각해봐야한다.
이런주장들이세계여기저기서터져나오며1919년1월프랑스파리에서세계평화를위한파리강화회의가열렸다.여기서미국의윌슨대통령은그민족의문제는그민족스스로결정해야한다는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를발표하였다.어떤민족도다른민족의간섭을받을수없다는내용의이민족자결주의는우리처럼강대국의식민지로있던여러약소민족에는매우반가운소식이었다.
이소식은우리나라에도전해져독립을꿈꾸는국민들에게큰응원이되었다.
‘우리도힘을모아일본에맞설수있다는것을세계만방에알려야한다.더늦기힘을모아우리의절실한마음을세계에알리자.’
손병희는더늦출수없다는절박감을느꼈다.
‘우리가뭉친힘을과시하면일본도세계여러나라의눈치를보지않을수없을것이다.’
---pp.116-117

1919년2월28일밤.33인민족대표중에서서울에있던23명이가희동손병희집에비밀스럽게모였다.코앞에다가온거사에대한최종점검을위한모임이었다.
“우리가내일탑골공원에서모이기로한게아무래도마음에걸립니다.우리측비밀요원들이독립운동인쇄물을뿌리면학생이며일반시민들이많이모일텐데그러면일본경찰이가만있겠습니까?군중심리가폭발하면어떤결과가나올지예측할수없어요.”
“우리모임은어디까지나비폭력평화적인모임으로나가자했는데경찰이강제로해산시키려할것이고고성이오가고몸싸움이일어날수있어요.잡혀가더라도우리가잡혀가야지학생이나시민이잡혀가선안됩니다.”
“그렇습니다.온갖억지를다붙여끌고갈것입니다.”
여러이야기끝에처음모이기로했던탑골공원대신음식점인명월관지점태화관으로정해졌다.
---pp.135-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