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입니까 (박혜지 소설)

사랑 입니까 (박혜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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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청색지소설선’ 여섯 번째 작품으로 박혜지 소설가의 『사랑, 입니까』가 출간되었다. 2022년 아르코창작기금에 선정된 작품이다. 작가는 2013년 단편소설 「처형」으로 〈제5회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10년 동안 꾸준히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찾아가고 있다. 그 지난한 과정이 이번 소설집에 아로새겨져 있다.
이번 소설집에는 총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대답할 수 없는 사랑의 담론을 통해 ‘결핍’으로부터 파생되는 질문 앞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생래적 결핍을 인지한 후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관해 각기 다른 시선으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여전히 대답 없는 질문이 남는다. 평론가 김대현은 “인식을 위해 형체를 갖추는 순간 그 존재를 잃고 사라지는 ‘혼돈’의 우화처럼 사랑 또한 그 현상을 규정하려고 애쓰는 순간 반드시 실패하고야 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저자

박혜지

2013년제5회〈구상문학상젊은작가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시작.소설집『오합지졸특공대』,동화『아홉계곡의보물』이있음.

목차

009 무늬
035 오래전애인이안부를물을때
063 관계의지정학
091 아름답다
117 복수가이쯤은되어야지
143 오십번지서쪽
171 비밀
197 그럴리가없습니다
221 침몰

243 작품해설김대현문학평론가
사랑,입니다
264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첫작품「무늬」는파격적인독백으로시작한다.“나는사람을죽이려한다.이세상단하나의사람.나의사랑.”아내가있는옛애인의간병인으로들어간‘나’의심리묘사가탁월한이작품은욕망의상호성이결여된비극적인결말을향하고있다.타인이인지하지못하는한나의실존은불가능하다.그래서의식이없는옛애인의몸에‘무늬’를남기려한다.이로물어뜯거나손톱으로할퀴는등타자의감각을깨우기위해가학적인행위를서슴지않는장면은근래한국문학에서발견하기어려운충격적인장면이다.욕망의상호성을재현하는것은‘사랑’을완성하기위한마지막실험이다.
결핍된욕망의서사는「오래전애인이안부를물을때」에서도이어진다.대학시절의‘나’와선배의사랑은이루어지지못한다.‘동성동본’과학생회의‘연애금지’라는강령은두사람의관계를지속할수없게한다.그러나어떤욕망은결코다른것으로대체될수없다.‘나’의결핍을충족시킬수있는사람은오직‘선배’밖에없는것이다.요컨대누구에게나사랑이추구하는욕망의대상은단하나의‘그’사람이라는이야기다.
「관계의지정학」도욕망의대상이되지못한주체가등장한다는점에서앞서의작품과마찬가지다.하지만그불가능에대한배경은다르다.전자가그충족이가능하지만그를둘러싸고있는사회적관계망으로인한후천적불능이라면후자는애초에욕망의대상으로성립할수없는원시적불능에해당한다.사랑이가지는최악의부조리도여기에있다.사랑은자신이포섭할수없는존재들에대해얼마든지잔인해질수있는것이다.
모든사랑의끝이파국으로향하는건아니다.사랑은어떻게결여된주체를승인하고그욕망을충족시키는가.이에대한하나의응답이「아름답다」에있다.엄마에게는‘나’와공유하는한가지비밀이있다.한달이나두달에한번‘나’와함께외간남자를만나고돌아오는것이그러하다.

“정연아.”
그남자의목소리는달콤했다.이제는아무도부르지않는엄마의이름을그남자는마치제것인양아무렇지도않게불렀다.나는처음들어본것처럼엄마의이름이낯설기만한데,그남자는너무나당연하게엄마의이름을불렀다.정연아,그남자가부를때마다엄마의머루빛눈동자가점점깊어졌다.

인용한이문장들에서우리는결여된주체가어떻게자신의욕망을충족하는지알수있을것이다.어떤이의이름을부른다는것은특별한의미를가지고있다.교수의아내이자사모님,그리고‘나’의엄마라는것등이모여엄마라는존재를이루는것이다.이관계들에서엄마는그자신으로존재하지않으며언제나부분적으로승인될뿐이다.하지만“정연”은다르다.이지칭은관계가아닌존재를직접호명한다.엄마의욕망이온전히충족되는순간이다.도구나수단으로서의관계가아닌자신의존재그자체로누군가의사랑의대상이될때인간은충족될수있는것이다.
욕망하는대상의고유성을발견하는것이사랑의가장주요한요건임을확인하는것은「비밀」에서도크게다르지않다.‘나’는노인들의생애를구술을통해채록하는공공프로젝트의일원이다.누군가를사랑한다는것은종으로서의특성이아니라단하나의고유성을이해해야한다는것이사랑을유지할수있는‘비밀’이다.
그래서「오십번지서쪽」은사랑의모순에대한하나의우화처럼들린다.오십번지에있는집에유성식,김간난,이입분이살고있었다.김간난과혼인관계인유성식이이입분을첩으로들인것이다.유성식의죽음으로시작하는서사는이후애증관계에있는김간난과이입분의대화로이어지고있다.전치된사랑의욕망은동일한결여에대한통각의공유를통해새로운사랑을가져오게한다.이러한우연에의해사랑은미움으로,미움은사랑으로전화한다.
「침몰」은세월호사건에대한애도와강렬한의지를표명하고있는작품이다.언제까지나함께하리라믿었던대상의상실은우리의일상을결여된상태로멈춰놓는다.“거대한슬픔의반석위에정의의집을짓고젖은영혼들을건져내어그들과함께진짜세상을살아갈것입니다.”라는목소리는슬픔속에결여된일상을다시채우려는의지에서솟아오른다.「그럴리가없습니다」에서도공감을통해타인의아픔을이해하려는이야기가이어진다.“공감의힘은그어떤권력보다강합니다.”라는진술도동일한맥락이다.반복되는사랑의결여에도불구하고잃어버린대상에대한애도와애도하는사람에대한공감을통해우리의삶을유지해나가고있는것이다.「복수가이쯤은되어야지」는남겨진사람들의흔적을지우는것이아니라그가남긴모든자산과부채를승계하여마지막까지함께나아가는것이그러하다.그렇게사랑은영원히지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