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읽는 빈손 빈마음 (2 판)

다시읽는 빈손 빈마음 (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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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성공회 신부로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여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수행적 차원에서 깊이 서술하고 있다. 특히 가정과 학교의 교육론에 대해서 깊이 있는 새로운 통찰을 보여 주고 있다. 물질만능 사회에 도와 덕 그리고 윤리에 입각한 진정한 가치의 회복을 강조하는 훌륭한 책이다.
저자

강연희

강연희(姜鉛熙) 신부는 1938년에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여 성균관대 법과를 졸업하고,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과,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성공회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성공회 강남교회, 강화도 온수리교회 등에서 관할사제로 시무하였다.
은퇴 후 세상과의 인연을 멀리하고 은둔 생활을 하면서 동양철학, 서양철학 연구와 집필에 열중하시다가, 2020년 3월 어느 날, 전라남도 장성군내 실버센터에서 홀연히 고독사 하였다.
기존의 저서로는 1993년에 출간(다산글방)된 『빈손 빈마음』과 2009년 번역ㆍ해설(신아출판사)한 『노자 도덕경』이 있고, 유고 작 『광야로 간 사제』(2021년 도서출판 人)가 있다.
그밖에 유고로 남긴 『논어』, 『주역』, 『장자』는 현재 ‘강연희 신부 전집 간행위원회’에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목차

헌 시 강희석(시인) / 5
추천사 최자웅(신부) / 8
회 고 강민정(국회의원) / 12
머리말 / 16

제1장 무엇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행복을 파괴하는가?
Ⅰ. 일그러진 가정 / 23
Ⅱ. 무지(無知)와 육신생활(肉身生活) / 43
Ⅲ. 직업의 차별 / 59
Ⅳ. 출세주의 / 72
Ⅴ. 무너진 권위 / 85
Ⅵ. 돈 버는 일 / 96
Ⅶ. 무능(無能)한 왕관 / 106
Ⅷ. 위장하고 사는 인간들 / 119
Ⅸ. 잃어버린 건강(健康) / 128

제2장 누가 가치 있고 행복한 사람인가?
Ⅰ. 돈키호테(Don Quixote)의 비통한 후회 / 141
Ⅱ. 순수와 진실 / 165
Ⅲ. 정신생활 / 179
Ⅳ. 탈속(脫俗) / 190
Ⅴ. 문화인(文化人) / 205
Ⅵ. 인간은 각자가 하나의 세계다 / 222

제3장 빈손 · 빈마음으로 사는 가치 있는 생활
Ⅰ. 출가수도(出家修道) / 241
Ⅱ. 간소한 생활 / 251
Ⅲ. 자유의 혼(魂) / 260
Ⅳ. 자연과 진리 속에 사는 인생 / 272
Ⅴ. 알바트로스(Albatross) / 288

제4장 위대한 영혼, 빈손 빈마음의 인물들
Ⅰ. 소크라테스(Socrates) / 299
Ⅱ. 디오게네스(Diogenes) / 318
Ⅲ. 스피노자(Spinoza) / 323
Ⅳ. 헨리 소로우(Henry Thoreau) / 334
Ⅴ.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 347

추모의 글 유종일 박사(KDI국제정책대학원 원장) / 364
편집 후기 강헌희(대표 편집인) / 374

출판사 서평

[책속으로] 이어서

2. 돈은 왜 궁극적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돈은 올바른 사람이 가져야 올바르게 쓰이게 되는데 비해, 잘못된 사람이 가지게 되면 그 돈은 대부분이 잘못 쓰이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돈이 악의 도구가 되거나 악 자체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잘못 쓰이는 돈이라면 없는 것이 오히려 낫다. 왜냐하면 돈 때문에 가정의 불행이나 사회악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돈은 생활하는데 필요한 정도 이상을 가지게 되면 잘못 쓰이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불필요한 사치와 주색잡기에, 뇌물로 감투를 팔고 사는 매관매직(賣官賣職)에, 선량한 대다수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투기 등에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인격을 먼저 갖추고 나서 돈을 벌어야 그 돈이 바르게 쓰이고, 바르게 쓰이는 돈이라야 사회범죄를 유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돈을 잘못 쓰려고 벌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많은 돈을 벌게 되면 잘못 쓰게 된다. 그것이 돈의 속성(屬性)이다. 그렇게 쓰이는 돈이 인간을 파괴하고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다. 돈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의 도구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본문 23-24쪽

3. 감투가 왜 높은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감투란 그 본질이 명예가 아니고 봉사이며,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고 인도자의 자리이며, 월계관이 아니고 가시관의 자리이다. 봉사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면서 일하는 것이고, 인도자란 가장 바르게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최고 수준의 영혼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장 바르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길을 바르게 아는 것이고, 길을 안다는 것은 득도(得道)에 이른 것이고, 득도는 진리의 통달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통달하면 비로소 지상적 가치를 멀리하게 된다. 반면에 지상적 가치를 떠나지 못한 자가 감투를 쓰게 되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부정과 불의를 행하게 된다.
감투가 가시관이라는 말은 그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들보다 못 먹고, 못 입고, 고생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뜻이다. 공동체 내에서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남보다 더 호화롭게 살고, 위세를 부리고, 지배욕을 부린다면 그것은 곧바로 선행이 아니고 악행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행을 일삼게 되면 반드시 그 사회에는 아부와 뇌물이 뒤따르게 되고 잘못된 야심을 갖는 자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 그 공동체는 성장이 정지되고, 분열되고, 종내에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감투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 그는 곧 악인(惡人)이 되는 것이다.

4. 학벌과 학위는 왜 높은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학벌과 학위는 일반적으로 학교 다닐 당시에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이 갖게 된다. 재능은 인생 초반에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중년이나 말년에 이르러 비로소 나타나는 사람도 있어서 사람마다 각자 개인차가 있다. 또 지능지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일에 만능(萬能)인 것은 아니고 생각이 뛰어나거나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사상이 고차원인 것도 아니다.
지능은 신체상의 한 기능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학교 다닐 때에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반드시 실패하는 인생도 아니고, 학과 성적이 좋다고 해서 꼭 성공하는 인생도 아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는 좋은 두뇌 못지않게 중요하다. 남다르게 타고난 재주 하나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엄청난 오해이고 잘못이다. 재주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가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재주와 ‘사람 되는 일’은 거의 관계가 없으며, 재주란 인간을 이루는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재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격이다. 성공은 그 사람의 인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점수 위주, 학벌·학위를 위한 공부는 오히려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기 쉽다. 이기적인 인간을 만드는 공부는 차라리 안하는 것이 국가 사회에 유익하다. 왜냐하면 이런 자는 나라도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사회에 엄청난 해를 끼치면서 단지 자기 배만 채우려 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람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국가사회에 해를 끼쳐가면서까지 내 배만 부르면 되겠는가? 이는 국가사회를 허약하게 만들어 결국은 나라를 멸망하게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내 배만 채우려다 보면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부패되기 마련이다. 나로 인해 사회를 부패시키면서까지 잘 먹고 살아야 한

본문 27-29쪽

Ⅱ. 무지(無知)와 육신생활(肉身生活)

1. 무지란 어떤 것인가?

무엇을 모르는 것을 무지라고 한다. 그러나 모를 뿐만 아니라 잘못 아는 것,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 막연하게 아는 것, 단순하게 어느 한 쪽만 아는 것, 지나치게 주관적인 것도 다 무지에 해당된다. 그 중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을 받은 자의 독단적 무지이다.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무지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교육 받은 자들의 무지의 행위가 교육을 받지 않은 자의 무지한 행동보다 오히려 더 큰 해독을 끼친다는 사실에 무감한 듯하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잘못 알고 있으면서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남을 가르치는 가정교육, 학교교육, 종교교육, 사회교육이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간을 양산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해 온 것이다. 어찌 보면 오늘 우리의 모습은 무지 위에 피어난 추악한 형상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무지의 심각함을 일깨우고, 무지를 자각하게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긴급한 현안 문제이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철학은 이러한 인간의 무지를 자각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것은 지식과 진리이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인간에 관한 지식을 인문과학이라고 하는데 문학·예술·철학·종교 등이 이에 해당하고, 사회에 관한 지식을 사회과학이라 하는데 정치·경제·법률·역사 등이 이에 해당하며, 물질에 관한 지식을 자연과학이라고 하는데 물리·화학·생물·수학·의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식은 또다시 그 넓이와 깊이에 따라서 교양으로서의 지식과 전문지식으로 나누어진다. 전문가에게 필요한 것이 전문지식이고, 일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교양으로서의 지식이다. 사람은 누구나 교양으로서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교양이란 인간답게 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살고,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모두가 다 잘 살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이다.
교양이란 어느 한계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더 넓게, 더 깊이 알수록 좋다. 더 넓게 더 깊이 알수록 교양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히 지식만 갖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정작 인간이 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칫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명리(名利)에 급급하여 천박한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진리를 알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란 어느 시대, 어느 곳의 사람에게도 다 옳은 것을 말한다. 즉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어떤 일, 어떤 사람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이 진리인데, 이것은 모든 인간이 동의하는 공통된 뜻에 따르는 것이고, 인간의 원초적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고귀한 양심에 이르는 밝은 빛과 같은 개념인 것이다.
언뜻 보면 지식과 진리는 같은 것 같지만 전혀 그 차원이 다르다.

본문 43-44쪽

Ⅲ. 직업의 차별

1. 직업을 차별하는 것은 죄악이다

초기 부족사회에서는 직업의 차별이 없었다. 모든 일을 함께 하기도 했지만 남다른 지혜와 능력을 가진 주술사(呪術師)도 있었고, 물건을 잘 만드는 장인(匠人)도 있었으며, 특별히 춤과 노래를 잘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와 같은 특별한 지혜와 능력에 대한 서로 간의 존중과 존경은 있었지만, 각자의 직업이나 능력에 따른 차별은 없었다. 그런데 직업과 능력에 따른 차별은 먼 훗날 타락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사회현상이다.
초기 부족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은 먹고 사는 일이었다. 연중 기후가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고, 풀과 나무가 무성한 곳에서는 짐승이나 물고기나 과일이 비교적 풍족해서 먹고 사는 일에 큰 걱정이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자연환경이 좋지 않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먹고 살 음식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에 따른 인구증가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불리한 자연환경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최초로 우리 인류가 생각해낸 기법이 바로 동물을 기르는 목축업과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
이 일은 최초로 나일 강 유역과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유역에서 시작되었다. 목축과 농업이 시작되면서 인간은 비로소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 식량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면서 인구도 자연히 늘게 되었다. 그리고 인구가 늘면서 인간생활에 보다 편리한 사회 분업제도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각자의 소질에 따른 다양한 직업 간에는 전혀 차별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사회형태도 바뀌었다. 소수 부족사회가 얼마 되지 않아 다수 도시사회로 바뀐 것이다. 이 도시사회가 도시국가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것이 고대국가의 최초의 형태가 되었다. 이 일은 B.C. 3,500년경에 나일 강 유역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B.C. 3,000년경에는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과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인류사회가 국가의 형태로 바뀌면서 드디어 통치 권력이 탄생되었다. 최초의 통치 권력자는 그 사회에서 가장 지혜롭고, 힘이 센 자였다. 다시 말하면 덕망과 지적능력과 무예가 가장 뛰어난 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통치 권력이 점차 자손 대대로 세습이 되면서 타락하게 되고 통치 권력자의 탈선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소인배적인 권력자 주변에 유한계급(有閑階級)이 생겨났다. 그로부터 전혀 노동을 하지 않고 지시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