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국 인문 기행

나의 영국 인문 기행

$18.00
Description
디아스포라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다시 찾은, 아이러니의 나라 영국!
영국을 찾아갈 때마다 이 땅은 나에게 동경과 반감, 경의와 경멸이 한데 뒤섞인 복잡한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등 나에게는 우상이라고도 할 법한 수많은 문학가들을 낳은 곳. (...) 어쨌든 나는 젊은 시절부터 영국의 문화와 예술에 매혹되어 왔다. 이와 동시에 이 나라가 대제국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휘해왔던, 두려울 정도로 냉혹하고 교활했던 측면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이렇게 모순으로 가득 찬 양면성이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에도 암울한 아이러니를 움트게 하여 그들의 작품은 복잡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당신은 영국이 좋은가?”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고 해도 답하기는 어렵다. 질문 자체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이 양면성이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인문학적 물음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국이 좋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만, ‘영국적 문제’에 마음이 끌린다는 점만은 부정할 생각이 없다.
_ 저자의 말 중에서
저자

서경식

1951년일본교토에서재일조선인2세로태어나1974년와세다대학문학부프랑스문학과를졸업하고현재도쿄케이자이대학현대법학부교수로재직중이다.2006년부터2년간성공회대학에서연구교수로머물며한국의다양한지식인,예술가들과교류했다.1995년『소년의눈물』로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을받았고2000년『프리모레비로의여행』으로마르코폴로상을받았다.2012년에는민주주의실현과소수자인권신장에기여한공로로제6회후광김대중학술상을받았다.저자는1970년대‘재일조선인유학생간첩단사건’으로알려진조작사건으로구속되었던형들(리쓰메이칸대학교수인서승과인권운동가인서준식)의석방과한국민주화를위해활동한경력이있다.이때의경험은이후의사색과문필활동,강연으로연결되었다.
한국에는1991년출간된『나의서양미술순례』로알려지기시작했으며,그밖에『청춘의사신』,『디아스포라기행』,『난민과국민사이』,『사라지지않는사람들』,『시대를건너는법』,『고뇌의원근법』,『언어의감옥에서』,『나의서양음악순례』,『역사의증인재일조선인』,『나의조선미술순례』,『시의힘』,『내서재속고전』,『다시,일본을생각한다』,『나의이탈리아인문기행』,『책임에대하여』(공저)등의책이소개되어있다.

목차

책을펴내며
1.케임브리지1
2.올드버러
3.런던1
4.런던2
5.런던3
6.케임브리지2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루벤스,프란스할스,벤자민브리튼,피터피어스,윌프레드오언,헨리퍼셀,잉카쇼니바레,잉그리드폴라드,터너,존컨스터블,리처드빌링엄,버지니아울프,레너드울프……

식민지배와대서양삼각무역,청교도혁명과종교전쟁,제1~2차세계대전……

1.재일조선인디아스포라가만난영국의역사와예술

『나의이탈리아인문기행』에이어서경식이《릿터》에연재한여행에세이를묶은책이다.서경식은2015년영국과아일랜드등지를여행하며루벤스부터프란스할스,벤자민브리튼,헨리퍼셀,잉카쇼니바레,터너,존컨스터블,버지니아울프등의작품들을감상하고,노예제와대서양삼각무역,식민지배와가부장제,청교도혁명과종교전쟁,제1~2차세계대전에이르기까지역사를디아스포라의관점에서재해석하여들려준다.
서경식의책의애독자들을이미잘알고있는내용이지만,그의유럽여행기는일상을벗어나낯설고자유로운곳에서견문을넓히는즐거움으로가득찬여행의기록이아니다.조국에서옥살이를하는형들(서승,서준식)의옥바라지를하는30대의재일조선인청년에게유럽의다양한미술관에서만난작품들은지하실에난창문으로겨우들어오는희박한공기였다고기록한『나의서양미술순례』부터30여년이흐른지금까지도항상,그의여행은그야말로‘순례’라는말이정확히들어맞는다.그것은‘자신’에대해묻고,‘조선인’이라는정체성과연결된식민지의역사,제국의역사에대해묻고,또나아가‘인간’에대해묻는깊고어두운탐색에가깝다.
특히거대한제국의그림자를지닌영국,근대과학과정치와경제의역사를이끌어온영국,전지구화로인해신음하는수많은사람들이뒤섞여살아가는영국을여행하면서이런탐색은더빛을발한다.올드버러에서크롬웰의생가를방문한곳에서도요토미히데요시를떠올리고,레이크디스트릭트에서아프리카여성아티스트의시선을상상해보는저자의기록을읽으며독자들역시나름의질문들을만들어볼수있으리라.특히버지니아울프의자살을레너드울프의유대인정체성과전쟁으로치닫는당대유럽의광기와연결시켜읽어내는대목은놀라울정도로참신하면서도설득력있다.
재일조선인이라는정체성뿐만아니라1983년의방문,2001년의방문,2015년의방문이라는세겹의시간이더더욱입체적인여행의기록이되었다.젊은시절의‘미술중독자’가바라본터너의작품과60대의모즈쿠전쟁패전용사가바라보는터너의작품은어떻게다른지,브레히트의시는30년의거리를두고어떻게다시읽히는지,단순한구로코역할로생각되었던피어스가어떤과정을거쳐브리튼의음악에막대한영향을미친아티스트로이해되는지음미해볼수있는것은서경식책의애독자들이누릴수있는즐거움이다.

설문조사를둘러싼상황을보며나는자연스럽게도요토미히데요시를떠올렸다.“히데요시는영웅일까,악한일까?”라고묻는다면현재일본국민들은어떤대답을할까?히데요시가죽었던해는1598년.그로부터1년후일본에서멀리떨어진잉글랜드땅에서크롬웰이태어났다.이두사람의생애는여러면에서서로닮았다.특히히데요시가주도한두번의조선침략인임진왜란(1592)과정유재란(1597),그리고크롬웰군대의아일랜드침공에는유사한점이있다고생각된다.반세기남짓시차를두고극동과,영국·아일랜드라는극서의땅에서이렇게서로비슷한양상의커다란사건이일어났던것이다.히데요시가조선을침략한동기에대해서는여러설이있지만,1492년콜럼버스의신대륙도달이후의세계적대변동과‘세계시스템’의형성과정에서생겨난거대한파도가동아시아에까지미쳤던현상으로보는것도가능하다.(35,37)

많은일본인아이들과마찬가지로히데요시를영웅이라고생각하면서자랐던나는,사춘기에접어들면서그런내자신에게위화감과불편함을느끼게되었다.히데요시가나의영웅이아니라는점을깨달으며묵살되어온소수자나패배자의존재에눈을떴던셈이다.나자신이그런패자들쪽에속해있다는사실역시.그러한‘불편함’이야말로내인생의귀중한자산이다.만약그자각이없었더라면내정신세계는언제까지나일면적이고천박했으리라.아일랜드사람이라면크롬웰을어떻게생각할지를상상해보는일도불가능했을것이다.(39)

반전평화주의자벤저민브리튼이천황제군국주의의중요한의전이었던황기2600년기념제를위해작곡했다는에피소드는꽤복잡하고흥미롭다.당시브리튼은아직젊었고(28세),미국에서의타향살이로경제적으로도곤궁했다는사실이하나의설명이될수있다.젊고가난하며야심이넘쳤던작곡가에게는이의뢰가큰기회로여겨졌으리라는점은이상하지않다.또아무리반전주의자라고하더라도유럽에서자랐던젊은이에게머나먼극동에위치한일본은관념적이고추상적인존재였을것이다.그래서절박한위기감으로다가오는대상은아니었으리라는해석도가능하다.(83)

나는20년쯤전에코번트리를방문한적이있다.워릭대학교에서유학중이던친절한일본인청년이폭격의흔적이남아있는대성당터와거기에인접한새로운성당을안내해주었다.예전에나는연합군에의한전략폭격으로철저하게파괴된드레스덴에갔다.그때피해의상징이라고할수있는성모교회를찾은적이있었기에적대국관계에있던영국과독일두나라에서공통적으로전략폭격의피해를입은도시에가보고싶었다.그렇지만그무렵에는브리튼의「전쟁레퀴엠」에특별히깊은관심이없었고모처럼방문했던코번트리여행도지금생각하면겉핥기식으로끝났다.20년이지나이미늦어버렸지만그런생각이떠올랐다.(101,103)

오늘하루보고들었던것을천천히반추해본다.머릿속에서브리튼이토머스하디의시에곡을붙인가곡「겨울의언어」의마지막곡「생명의앞뒤」마지막행이조용히흘렀다.“Howlong,howlong?”이라고.머릿속으로테너가수의섬세한목소리가반복해서맴돈다.
정말앞으로얼마나지나야할까?제1차세계대전의참화를경험한후인류는게르니카,난징,코번트리,드레스덴,아우슈비츠,히로시마,나가사키……그밖에도과거의일들을훨씬능가하는잔학과무자비를스스로연출했다.그후로도계속이어진한국,베트남,구유고슬라비아,팔레스타인,이라크,우크라이나,시리아……아,여전히세계는피투성이다.대체언제까지?제1차세계대전때죽은젊은시인의말에인류가귀를기울이기까지는앞으로얼마나더시간이흘러야할까?브리튼의음악에는이어리석은행진을멈추게할힘은없다.하지만그의음악자체가무의미하다는것을뜻하지는않는다.그렇게믿고싶다.그렇지만앞으로얼마나더지나야할까?(109)

“피어스는브리튼에게참커다란존재였네.”F가입을열었다.“응,그런생각은별로하지못했어.”라고나는대답한다.나는아무래도피어스가브리튼의그림자뒤에조용히숨어있는구로코(가부키무대에서검은옷을입고배우뒤에서연기를돕는사람)같은존재라는잘못된이미지를갖고있었다.하지만알고보니그는뛰어난가수였을뿐만아니라당당한지식인이자때로는브리튼을이끌어주던사람이었다.브리튼은피어스라는존재가있었기에그가노래를부를것을상정하고수많은명곡을썼고,피어스도거기에견실히응했다.고흐와동생테오가그랬듯브리튼과피어스도한몸인예술가였다고말할수있을지도모른다.피어스에대해서더알아야만하겠다는생각이들었다.
케임브리지로돌아갈시간이가까워졌다.왔을때와같은루트로거꾸로거슬러돌아가게된다.버스에올라마을을떠날때브리튼과피어스가나란히잠든작은교회옆을다시지나갔다.(111)

그는고개를저으며희미한미소를띠다가“그래?기왕연극을한다면브레히트를읽지않으면안돼.”라고말했다.브레히트?의아해하는내게L형은두꺼운안경너머로눈을가늘게뜨고서소격효과같은난해한개념과용어를설명해주고는『오늘날의세계는연극으로재현가능한가?』라는책을읽으라고권했다.일본의연출가이자연극배우센다고레야가브레히트의연극론을묶어서번역했던,1962년당시막출간된책이었다.어떤일이든내능력밖의것까지해내려고애썼던나는바로그두꺼운책과씨름했지만,거의알아먹을수가없었다.다만내가이해했던것은L형이나를아이취급하며깔보지않고오히려대등한어른처럼대해주었다는점,그리고‘오늘날의세계’를이해하고또‘재현’하기위해서는이런난해한책과씨름하지않으면안된다는것,덧붙여‘브레히트’라는인물은어쨌건그러한분야에서세상사람들에게존경받고있다는사실이었다.(137)

오페라「마하고니시의흥망성쇠」는큰갈채를받으며막을내렸다.흥분이채가라앉지않은관객들과뒤섞인채F와나는코번트가든으로휩쓸려나왔다.밤은이슥했지만거리는여전히밝았고,서로친밀해보이는사람들은세련된카페나펍으로몰려갔다.경쾌하고절묘한기지,신랄한풍자,압도적인무대미술,일류예술가들이펼쳐낸노래와춤…….나역시물론만족스러웠다.그렇지만한편으로마음이복잡했다.이곳에서나는‘브레히트’라는키워드를통해열두살이후반세기에걸쳐지나온나의인생을되돌아볼수있었다.제1차세계대전이끝난후펼쳐진나치즘의흥망,제2차세계대전에서시작하여사회주의권의붕괴를거친지금까지의인류사를돌이켜보게되었다.과연나는제대로살아가고있다고말할수있을까.인류사회는나아지고있다고말할수있을까.무엇보다“이괴물을낳은자궁”은이제사라졌다고말할수있을까.
관객들대부분은오페라를무척즐겁게본듯했지만이작품을즐긴다는것은과연어떤행위일까.「마하고니시의흥망성쇠」는최고수준의‘오락’이될수있을까.그리고“오늘날의세계는연극으로재현가능한가?”어린시절의나에게던져졌던무거운질문이반세기가지나먼곳런던에서머릿속에되살아나마음을들쑤셨다.(149,151)

생각해보면그무렵은제2차세계대전이끝난지거의20년밖에지나지않았던시절이다.20년이라니,지금생각하면눈깜짝할사이다.고등학교1학년이었던나는저먼나라의시인이부르는소리를다름아닌‘후대사람’의위치에서서읽었던것이다.‘암울한시대’가아직지속되고있다고는해도어디까지나내뒤편에놓여있는듯생각했다.그시절로부터거의반세기가지나버렸다.뭐라고말해야할까.‘암울한시대’는여전히지속되고있다.나의앞쪽으로,끝도없이.지금나는런던에서브레히트의목소리에덧붙여‘후대사람’들에게호소하는심경으로,이시를떠올리고있는셈이다.(2014년5월에일본오사카에서강연을할때,청중가운데젊은재일조선인과일본인을염두에두고이시를인용하며낭독한적이있다.)(141)

일반적인백인남성은느낄수없는감각일것이다.‘전형적인영국의’풍경,그속에몸을두는행위자체가‘노예출신의여성’에게는강한불안과공포를불러일으킨다는뜻이다.그들,백인은폴라드의선조를사냥감으로취급하며몰이를했고반항하면채찍질을,때때로강간도서슴지않았으며,결국죽으면대서양에내던져버리던자들이었기에.백인들이사랑해마지않는목가적인풍경조차그런불안과공포를불러와그녀의마음속을휘저어놓았던셈이다.백인주류계층은폴라드의작품을통해그런감각을아주일부만짐작할수있을뿐이다.
‘포스트콜로니얼’시대의미술은우리에게이러한시점,다름아닌‘타자의시점’을요구한다.무척이나힘겹지만우리의시야를확실하게넓혀주는요구이기도하다.재일조선인남성인나는레이크디스트릭트를찾아갔던과거를그리워한다.하지만그것만으로괜찮은걸까?이렇게말하는나는과연누구인걸까?잉그리드폴라드의작품을알게된후,스스로에대한그런의문들이복잡하게뒤얽히고있다.(211)

멀리유럽까지왔으니그래도이런명작감상은포기해서는안될사명과도같다고스스로를다그치며,고된노역에시달리는노예처럼미술관에서미술관을전전했던것이다.터너의소품에마음을빼앗겼던이유도그때문이었을지도모른다.
파리를떠나드디어영국으로건너간다는사실에어떤해방감마저느꼈다.‘영국에가면반드시봐야하는작품이프랑스처럼많지는않겠지.조금쉬면서자연속에서조용히며칠을보내야겠다.’라고생각했다.부끄러운이야기지만35년전의나는그정도로무지했다.(215)

영국을대표하는위대한풍경화가터너와컨스터블은거의동시대를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