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보낸 봄날 (김일연 시집 | 양장본 Hardcover)

너와 보낸 봄날 (김일연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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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말의 ‘푸르다’는 서로 다른 두 색조를 아우른다. 예컨대, ‘물이 푸르다’고 했을 때 ‘푸르다’는 청색(靑色)의 색조를 지시하지만, ‘풀이 푸르다’고 했을 때에는 ‘푸르다’는 녹색(綠色)의 색조를 지시한다. 이처럼 전혀 다른 두 색조를 하나의 표현이 아우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국어학자 이남덕에 의하면, ‘푸르다’는 “자연[물]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한 표현”으로 추정할 수 있고 이때의 “자연물이란 ‘물’과 ‘풀’”로, “오늘날까지도 이 두 대상에 대한 색채 표현은 ‘푸르다’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한국어 어원 연구 3」, 62쪽). 요컨대, 물빛과 풀빛은 다르면서도 하나의 표현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청산(靑山)’이라는 표현은 산이 풀빛을 띠고 있음을 말하는 것일까, 물빛을 띠고 있음을 말하는 것일까. 맑은 날에는 산이 풀빛을 띠지만, 흐린 날에는 하늘과 어우러져 물빛을 띠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청산의 색조는 물빛이라고 해야 할까, 풀빛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이처럼 엉뚱한 생각으로 이끌리는 것은 우리말 시를 영어로 옮길 때 ‘푸르다’라는 표현을 물빛과 풀빛 가운데 어느 하나로 확정해야 할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다시금 젖게 된 것은 김일연 시인이 이번에 펴내는 시집 「백합의 노래」에 수록된 「파랑과 초록」과 마주하고서였다. 우선 그 시를 함께 읽기로 하자.
저자

김일연

김일연시인은1955년대구에서태어나경북대학교를졸업하고1980년『시조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빈들의집』『서역가는길』『달집태우기』『명창』『엎드려별을보다』와시선집『저혼자꽃필때에』『아프지않다외롭지않다』『꽃벼랑』이있고일역시집『꽃벼랑』등이있다.한국시조작품상,이영도문학상,유심작품상,오늘의시조시인상을수상했다.현재국제시조협회이사로활동하고있다.

목차

1부첫새벽문을여는일출빛으로익는다

백합의노래·12
송광사의저녁·13
만행萬行·14
홍시·15
파랑과초록·16
불이선란不二禪蘭·17
내편·18
바람의협곡·19
왕대·20
유빙遊氷·21
절리·22
무제·23

2부마침내나를버리고너를볼수있다는게

슬픔의약·26
얼마나다행이냐·27
저녁이깊어지면·28
코스모스·29
겨울별·30
기다림·31
꽃벼랑·32
얼룩·33
길이있는걸안다·34
눈없는물고기·35
땅끝에서·36
지문指紋·37
먼곳·38
하회河回·39
사막의신부·40
가시풀·41

3부지평선끝과끝에서둥글게만날때까지

성聖저녁·44
이모식당에서·45
꽃지는저녁에서서·46
초승달풍경風磬·47
딸·48
헛꽃·49
대천바다에서·50
먼사랑·51
노을이지는저녁에·52
잿등·53
젖무덤·54
삼우·55
유르트의하룻밤·56
봄물을기다리며·57

4부가벼운풍선인형의춤이더욱격렬해진다

고어텍스를입은자화상·60
폭풍의예보·61
야근하고양말사는남자·62
분리수거·63
분실·64
예각의풍경·65
밥과자유·66
살아있는나날·67
비단거미의죽음·68
공항에서·69
태항산대협곡·70
밤의갈매기·71
같이사는나무·72
아이다르의음화·73
사막으로·74


5부호수는제얼굴을가을하늘에닦고

붉은꽃너머·76
봄바람꽃다발·77
벚꽃십리·78
봄의나비·79
봄처녀·80
햇볕의켜·81
파계사대낮·82
오월종삼역·83
비의문장·84
비와새·85
야국野菊·86
아는가을·87
하늘과호수·88
상강·89
시월·90
눈오는저녁의시·91

■해설|장경렬
시의자연스러움과시와삶의자연스러운조화를향하여·94

출판사 서평

추측건대,시인은속이환하게비치는바다를가까운사람들과함께들여다볼기회를갖게되었던것이리라.그리고그속에서물고기가노니는모습을보게되었던것이리라.그런물고기의모습을보자,한쪽은물고기의색깔이“파랑이다!”라고외치고,다른한쪽은‘초록이다!’라고외친다.이는햇빛이비친곳과그늘진곳에서바라볼때관찰되는색조의차이에따른것임을모르지않기에,시인은“장난친햇빛”이라는표현을작품에동원한다.어느쪽이라고우기든,“햇빛”이보기에,나아가논란의대상이된“물고기”가보기에,이는우스운일일뿐이다.
파랑인가또는초록인가와같은논란이불거졌을때,사람들가운데는물고기를잡아올려색깔이물빛인지,풀빛인지,아니면전혀다른빛깔인지를확인함으로써논란을잠재우고자하는이도있으리라.또한물빛이든풀빛이든이는햇빛의“장난”에따른착시현상임을설명함으로써논란을잠재우고자하는이도있을수있으리라.어느쪽이든합리적인이해와판단에근거하여논란을잠재우고자한다는점에서는차이가없지만,후자쪽이더현실적인설득력을지니는것으로판단되는까닭은관찰대상이처한‘상황’을판단기준으로삼고있기때문이다.물론시인은후자의입장에서서상황을이해하고자하는것처럼보인다.하지만그것이전부는아닌데,“햇빛이웃는다/물고기도웃는다”라는진술은합리적인이해와판단을넘어서는것이기때문이다.“햇빛”과“물고기”가“웃는다”니?이는바로합리적인이해와판단을뛰어넘어‘시적으로’세상을바라보는시인의마음을반영한것이다.모름지기시인이란웃음은인간만의것이아니라이세상모든사물이잠재적으로지니고있는특성임을꿰뚫어보는상상력의소유자가아니겠는가.
하지만시인의시적관찰과사유는여기서끝나지않는다.두수로구성된연시조형식의작품인?파랑과초록?의둘째수에이르러시인은시적세계이해에서철학적사유로옮겨가는데,“파랑에초록있고초록에파랑있고/햇빛에바람있고바람에햇빛있고”에담긴철학적깊이는결코쉽게헤아릴수있는것이아니다.이는세계를‘차이’에근거하여둘로나누고이에따라세상을이해하고자하는이분법적또는이원론적세계관에대한비판적시각을드러낸다는점에서그러하다.순전한추론이긴하지만,“파랑”과“초록”을둘이아닌하나로받아들이고자하는일원론적에토스가우리민족의정신세계저변을이루고있기에,물빛과풀빛을‘푸르다’라는하나의표현에아우르게된것은아닐지?
그런맥락에서보면,어찌“햇빛”과“바람”조차둘일수있겠는가.“햇빛”과“바람”은촉감을통해감지되긴하지만,그럼에도여전히그자체를눈으로확인할수도없고손으로잡을수도없는자연현상이다.그런의미에서보면,이둘은존재하지만동시에존재하지않는것일수있다.따라서우리의오감을동원하여이둘을나누어이해하려는시도자체가물고기의색깔을“파랑이라우기고초록이라우[기는]”것과다름없는우리의‘우스운’마음가짐에서나온것일수있다.이같은깨달음을다시금확인케하는것이원효의말씀인“파도와고요한바다/그둘이/다르지않다”로,파도가몰아치는바다는바람의존재를암시한다면,고요한바다는이를비추는햇빛(또는달빛또는별빛)의존재를암시한다는점에서그러하다.다시말해,“바다”는바람과햇빛의존재를우리에게감지케하지만,그것이존재하면서도존재하지않은햇빛과바람이라는자연현상에따른것이기에둘은달라보일뿐,궁극적으로다른것이아니다.바다는여전히‘있는그대로’바다일따름이다.이엄연한진실을외면한채,바람과햇빛처럼있으면서없고없으면서있는무상(無常)한자연현상에기대어구분하고자하는것자체가얼마나헛되고부질없는일인가.자연의자연스러움에이르기위해서라면,우리는이처럼자연을둘로나누고차별하는일에서,둘가운데하나를택하거나우기는일에서벗어나야하는것이아닐지?어찌자연만이문제되랴.인간을인간답게,삶을삶답게,나아가시를시답게하는일조차이처럼나누고차별하는일에서,어느하나를택하거나우기는일에서벗어나,둘로나뉜것으로보이지만‘둘이아님’을,즉,‘불이(不二)임’을깨닫는데서가능한일이아닐까.
시인이인용한원효의말씀에담긴것은바로이같은‘불이의경지’에대한깨달음이다.세상이란주체와객체,인간과자연,나와너,안과밖,삶과죽음,육체와영혼등등‘둘’로나뉘어있는것처럼보이지만본질적으로둘이아님을깨닫는것,그것이「백합의노래」에서우리가확인할수있는시세계의기본정조이자화두가아닐지?따지고보면,‘불이’의경지에대한깨달음을기본정조로삼되,이를화두로삼아세상과삶을이해하고자할뿐만아니라시를창작하는일과관련해서조차시와시인또는시와삶이자연스럽게‘하나’가되는경지를추구하고자하는것이어찌어느한특정시인만의목표일수있겠는가

김일연시인이상재上梓하는시집『너와보낸봄날』은둘이하나인정적인세계이해를넘어서서역동적인움직임을통해둘이하나가되는세계에대한이해와관찰의기록이라고할수도있다.달리말해,『너와보낸봄날』은우리가통상적으로둘로나누어생각하는시와시인이,시인과시쓰기가,삶과시가,인간과자연이,아니,우리의피상적인눈에둘로나뉘어있는것처럼보이는이세상의모든것이둘이아니라‘조화로운하나’라는깨달음을,여기서한걸음더나아가‘둘이조화로운하나가됨’에대한역동적인깨달음의과정을시화한것으로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