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애에 걸다 (장영춘 시집)

단애에 걸다 (장영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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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놓친 자아를 구하고 흘러 삶을 회복하고 성취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은 부분적으로 변형되거나 해체되기도 한다. 공간과 시간이 바뀌거나 재구성되기도 한다. 그렇게 무화되는 과거를 일으키고 되돌리는 일은 삶의 목에 다시 올가미를 씌우는 안간힘이 되어 상처 난 기억을 자주 덧나게 한다. 그럴 때마다 시인은 길을 떠난다. 세상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애월 바다”(「단애에 걸다」)와 “이승이악”(「이승이오름」)을 거쳐, “페루의 이까사막”(「묵시록 2017」)으로, “진해에서 하동으로 화개장터 섬진강”(「사람을 찾습니다」)까지 떠도는 시인에게 그림자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그리움은 지독한 열병과도 같다. 출구도 활로도 없는 그리움이 단애에 걸린 내면을 미로처럼 끌고 간다.

이 겨울 누가 내게 마른 꽃을 건넨 걸까
거꾸로 걸어놓은 한 움큼 산수국이

기어코 애월 바다로
나를 끌고 나왔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한 무리 괭이갈매기
저마다 파도 끝에 사연들을 묻어놓고

해질녘 아득한 하늘
또 하루를 삭힌다

늦은 귀갓길에 눈 몇 송이 남아서
모난 마음 한쪽 자꾸만 깎아내다

아슬히 단애斷崖에 걸린
인연마저 떠민다
-「단애에 걸다」 전문

어떤 인연이었을까. “거꾸로 걸어놓은 한 움큼 산수국”, 생명을 잃은 그 “마른 꽃”이 기어이 화자를 바다로 끌어내고야 마는 해질녘의 “아득한 하늘”을 날아가는 “애월 바다” “한 무리 괭이갈매기”를 바라보다 돌아오는 “하루”.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하루는 화자에겐 오직 “삭”혀지는 시간일 뿐이며, “모난 마음 한쪽”을 “자꾸만 깎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냉혹한 시간일 뿐이다. “늦은 귀갓길”에 동행하는 “눈 몇 송이”조차도 시간을 재촉하며 “아슬히 단애斷崖에 걸린/ 인연마저” 떠밀어낸다. 눈 몇 송이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 “기어코” 산목숨의 등을 떠미는 삶의 진부한 역설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향방을 따라 그리운 시간을 내딛는 것이겠지만, 순간순간 전해지는 삶의 기척과 기미를 어쩌지 못하는, 존재의 슬픔으로 가득한 시다. 불가역적인 시간에 비해 공간의 가역성은 또 얼마나 잔인한가.
저자

장영춘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에서 태어나 2001년 『시조세계』로 등단했다. 시집 『쇠똥구리의 무단횡단』 『어떤 직유』, 현대시조 100인선 『노란, 그저 노란』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작가,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차례

1부 아득히 비켜선 자리

게·12
과물·13
쏙닥쏙닥·14
아득히 비켜선 자리·15
한반도 언덕·16
새털같이·17
사람을 찾습니다·18
고래콧구멍 동굴·19
장한철 산책로·20
진눈깨비·21
단애에 걸다·22
묵시록 2017·23

2부 별짓 다 해봤자

꽃불·26
새별오름의 봄·27
다시, 가을·28
이승이오름·29
새들과 병작하다·30
우도의 밤·31
김녕, 성세기해변·32
별도봉·33
폭풍, 갈 수 없는 곳·34
항파두리·35
흙으로 쌓다·36

3부 바람결 증언하듯

선흘 겨울딸기·38
오월·39
돼지감자·40
수선화의 봄·41
절물오름·42
단풍·43
귀향鬼鄕·44
오동나무·45
거미의 집·46
이제는 노래하고 싶네·47

4부 내 사랑 굽이굽이

봉하마을·50
자작나무·51
물끄러미·52
삽살개 눈망울 같은·53
백서향·54
소매물도·55
이모바당·56
내 사랑 굽이굽이·57
그 여자·58
빙어·59
들국·60

5부 고독한 왕이 되다

왕이 되다·62
만평 밥상·63
바다나무좀·64
중심 잡기·65
시월·66
숲길에서, 문득·67
까투리·68
첫발·69
유턴·70
오늘-3·71
희망봉·72

■ 발문 | 박명숙
존재의 마음을 만지고 싶은 길 위의 시간들·74

출판사 서평

삶과 죽음은 오고 가는 길이 같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어머니와 딸이 되어서, 어린 생명에게로 대를 물리며 촘촘한 현실을 이어간다.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삶도 유산의 몫으로 가차 없이 상속된다. 끝없는 고민과 고난에 휘말리는 역경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질 않는다. 어머니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운명처럼 다가왔을 터이고 선택은 꿈이었을 것이다. 힘든 노동의 고통이 단단한 침묵과 함께 굽이쳐왔을 것이다.

애월과 금성 사이
밀물과 썰물 사이
백록담 숨어든 물 해안에 와 터지는
그만치 그 거리에는 곽지리 과물이 있다

윗물은 마시는 물,
아랫물은 멱 감는 물
숭숭 뚫린 담벼락 여탕을 훔쳐보던
깔깔깔 조무래기들 멱살 잡힌 낮달아

물허벅에 퐁퐁퐁
원정물질 발동기 소리
울산일까 방어진일까 어머닌 떠났어도
내 고향 마르지 않는 순비기꽃 숨비소리
-「과물」 전문

원정물질 떠난 유년의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간은 애틋하고 길기만 하다. “애월과 금성 사이”, “밀물과 썰물 사이”, “백록담에 숨어든 물이 해안에 와 터지는/ 그만치 그 거리”만큼 길었을 것이다. “곽지리 과물”에서 “멱”을 감으며 “담벼락” 구멍으로 “여탕을 훔쳐보던” “조무래기들”의 장난을 “멱살” 잡던 “낮달”에도 잠시 먼 그리움이 실린다. “울산”이나 “방어진”으로 “원정 물질”을 떠난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순비기꽃 숨비소리”로 남은 고향에 대한 마르지 않은 사랑을 노래하게 한다.
어머니가 되지 않으면 어머니를 알 수 없는 삶의 유전.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제주 해녀로서의 운명과 생애는 저승의 물밑과 이승의 물 위를 오르내리는 숨비소리로 후대에 유전되는 삶의 고리를 엮어나간다.

별짓을 다 해봤자
시 한 줄 없는 가을
우연한 발길 따라 서영아리 오름에 앉아
물에 뜬 뭉게구름만 다독이고 왔었다

깊이 한번 빠져봐야,
그게 진정 사랑인 거
소금쟁이 딛고 간 길에 서푼어치 사랑만
한 번도 젖지 못하고 물수제비로 떠돈다

단풍나무 따라가다,
왔던 길도 놓쳤다
아예 분화구에 터 잡은 세모고랭이처럼
물 건너 딸아이에게 안부나 묻는 저녁
-「다시, 가을」 전문

사랑의 깊이를 떠올리는 가을날의 단상이다. 화자는 “서영아리 오름에 앉아/ 물에 뜬 뭉게구름만 다독이”다가, “소금쟁이 딛고 간 길”에 “서푼어치 사랑만/ 한 번도 젖지 못하고 물수제비”로 떠도는 사랑의 부박함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또한, 깊고 붉은 “단풍나무 따라가다,/ 왔던 길도 놓”치고는 별수 없이 “분화구에 터 잡은 세모고랭이처럼/ 물 건너 딸아이에게 안부나 묻는 저녁”을 맞는 정경을 그려나간다. “깊이 한번 빠져봐야,/ 그게 진정 사랑”인 걸 알지만, 어떤 사랑도 골육의 사랑보다 깊어질 리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뭉게구름이나 소금쟁이의 사랑이 서푼어치 사랑이라면, 분화구에 터 잡은 세모고랭이의 사랑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서는 사랑일 것이다. “물 건너 딸아이”를 내세우며 혈육에 대한 화자의 사랑도 “다시, 가을”을 채비하는 것이다.

다랑쉬오름보다 낮고
아끈다랑쉬보다는 높은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 뱃길도 쉬어가는
펼쳐 든 세계지도에 바람의 길 있었네

고난 끝에 다다른 바다의 오아시스
6박 8일 일정으로 내 발길도 예까지 와
한동안 바람꽃같이 흔들리고 흔들리네

한 겹의 파도 자락 숙명처럼 온 것일까
그 봄날 황사평으로 손 놓고 가버린 아이
내 안의 희망봉 찾아
다시 여기 떠나야겠네
-「희망봉」 전문

시인은 비로소 ‘희망’이란 단어를 쓴다. 그 희망은 낯선 곳으로 나아가는 희망이 아니라 떠난 곳으로 돌아오는 희망이다. 낯선 곳에서의 오랜 방황은 돌아오기 위한 자신과의 긴 싸움과도 같았을 것이다. 절망의 끝까지 따라간 곳에서 희망을 얻어 돌아온다는 것만큼 간절한 수확이 있을까. “바람의 길”은 빛의 길이 되고, “바람꽃같이” 흔들리던 화자는 깨닫게 된다. 파도를 따라 “숙명처럼 온” 길이 아이가 떠나간 “황사평”으로 돌아가는 숙명적인 발길을 재촉한다. “내 안의 희망봉”은 “손 놓고 가버린 아이”가 기다리는 황사평이다. “바다의 오아시스”가 내 안의 “오아시스”인 그곳 황사평의 아이에게로, ‘희망’에게로 날 데려가는 것이다. 오랜 세월 시인의 시는 슬픔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았으나 이제 더 이상 슬픔은 끼니가 아닐 것이다.

첫 발자국 떼는 것은
한 우주를 여는 것

넘어지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하지

아가야
세상의 중심은
흔들리며 가는 거야
-「첫발」 전문

“세상의 중심”으로 가는 길은 흔들리는 길이다. 그것이 삶의 길이다. “넘어지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하”고 일어서지 못하면 걸을 수 없다. “첫 발자국”을 떼는 일은 세상의 벼랑으로 한 걸음 내딛는 일이며, “한 우주를 여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아가”는 어른을 가르친다. 아가가 첫걸음으로 여는 세상을 어른은 열 수 없다. 젖 먹은 힘을 다해 첫 생명이 온몸으로 세상의 중심을 향해 걷고자 할 때 세상은 넘어질 수도 기울어질 수도 없다. 언제나 시작일 뿐 마지막을 모르는 그 작은 발자국을 세상의 모든 희망들이 뒤따른다.

그리움과 외로움에 기대어 쓴 시들, 그 시편들이 세상의 흐르는 시간들에 대한 허무와 적막을 품고 달랜다. 소멸과 부재를 표상하는 상징과 이미지들은 시인의 사유와 감성을 오래도록 단련시켜 왔다. 살아 있는 날까지 삶은 끝나지 않고, 무한한 날들이 온다 해도 지난날을 다시 쓸 수는 없다. 그림자와 실체, 부재와 실재는 이항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며, 행복과 불행도 길이 따로 나뉘지 않는다. 바람의 길을 따라, 오름을 지나고 사막과 바다를 건너 황사평으로 돌아온 내면의 노정은, 빛과 그림자에 대한 고뇌와 성찰을 자문하는 구원의 노정이었으리라. 「단애에 걸다」에서 「첫발」까지, 단애에 걸려 길을 잃게 된 시는 길 없는 지난한 시간을 고통스럽게 통과한 끝에 마침내 단애를 건너는 첫발을 내디디면서, 놓치려던 자아를 구하고 방기된 삶을 회복하는 주제를 도출하고 성취한다. ‘너’를 놓치면서 ‘나’를 버리고 ‘너’를 붙잡으면서 ‘나’를 되찾는 길 찾기는 상한 영혼의 치유를 위한 마음 찾기가 아닐 것인가.
어떤 시들은 문을 닫고 읽어야 한다. 읽고 나면 온 적이 없는 걸음으로 문을 나서야 한다. 『단애에 걸다』, 시인 장영춘의 시집 읽기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