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내 언어들의 희망 또는 그 고통스러운 조건 (오태환 시집)

바다, 내 언어들의 희망 또는 그 고통스러운 조건 (오태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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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태환의 이번 시집은 역사의 허위와 야만, 존재의 공성空性, 인간의 기원과 실종을 동시에 탐색하는 종교적 성찰이자 고해다. 숭고와 희생, 존엄과 순수가 사라진 인류 문명사에 대한 뼈아픈 탄식이다. 그에게 세계는 인과因果가 무화된 초超인과적 미제사건 현장이다. 시간은 연蓮의 연緣으로 벌어지는 생사의 흉흉한 알리바이고 만물에 내재하는 불가항력적 죽음이다. 또한 육체는 세계, 자연, 우주의 응집체로서 만물과 수평적 동일자 관계다. 광기와 고독이 혼융된 몸, 육肉의 구멍들을 통해 우주, 신화, 죽음을 앓는 태고의 몸이다. 따라서 빗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는 자연에 내재한 죽음의 배음背音이고 적요寂寥다. 새들의 비상, 꽃들의 개화는 캄캄한 뇌출혈이고 내분비다. 그렇게 천지가 거대한 원형체 관일 때 인간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색色들은 일체가 시신이고 허공은 보공補空이 된다. 인간과 문명을 무無로 되돌리는 시인의 모래의 상상력, 비극적 서정의 난류는 이러한 죽음의식, 역사비판, 인간해체에서 싹튼다. 와디의 모래 한 알에서 우주의 궁륭까지, 육체의 세포 하나에서 광대한 행성까지, 태초의 빛의 평원에서 미지의 암흑까지 시인에게 시공은 하나의 거대한 원圓이고 아픈 죄의 고리다. 따라서 모든 존재들의 경계, 살들의 경계는 적막에 사로잡힌 검은 해안선이고 지평선이고 애절한 벼랑이다. 그렇게 말은 속죄와 재생을 위한 치유의 유향乳香이 된다. 그러기에 그는 오늘도 스스로를 자책하며 죄를 앓는 밤의 깊은 무덤이 된다. 설산에서 고행중인 싯다르타가 되고, 폐기된 채석장에서 스스로를 십자가 처형하는 노동자 예수가 된다. 이들은 모두 생生과 육肉의 공空을 정각正覺하려는 존재,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역사의 야만성을 폭로하는 존재로서 시인의 심부에 자리한 초超인간이다. 그렇게 오태환은 첨단의 문명화 전장戰場에서 인간에 의해 멸종된 귀신고래를 심장 깊이 품고 미지의 신화, 시원의 시詩를 꿈꾼다. 그의 시는 고원의 사막에 작열하는 빛이고, 태고의 하늘과 21세기 죽음의 땅 사이로 살을 찢고 흘러나오는 분홍빛 시간, 분홍빛 노을이다.
저자

오태환

1984년조선일보ㆍ한국일보신춘문예당선으로데뷔했다.시집『북한산』『수화手話』『별빛들을쓰다』『복사꽃,천지간의우수리』,비평집『미당시의산경표안에서길을찾다』『경계의시읽기』『그곳에가지않았다:시의아포리아와시읽기의반성』이있다.

목차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
―그러니까귀신고래는없다 13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
―AnnoDomini2011년4월29일 15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
―빗소리 22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4
―설산雪山에서고행하는고타마싯다르타GautamaSiddh?rtha 23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5
―새하나가허투루우는날 27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6
―점경들 29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7
―?백명숙,The6thsoloExibition<전展-TRANSIT>,
2014.5.4?2014.5.19,Insa?Art?Center 31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8
―지상의망명객들① 34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9
―소금평원,볼리비아우유니Uyuni 35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0
―삼계탕,이런레시피 36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1
―조용한생 39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2
―새는것들의지평선 41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3
―역사란무엇인가① 42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4
―이런빛깔 44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5
―우주의복도를지나기위한사소한질문① 47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6
―검은색에대하여 49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7
―지상의망명객들② 51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8
―슈뢰딩거Schr?dinger,Erwin씨가기르는고양이에게 53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9
―역사란무엇인가② 57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0
―스커트속의노란잠수함 59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1
―미수未遂 60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2
―그녀의와디Wadi 62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3
―우주의복도를지나기위한사소한질문② 65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4
―역사란무엇인가③ 67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5
―벚나무벚꽃들의문명사 70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6
―내게사랑이있었네① 72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7
―역사란무엇인가④ 75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8
―10분전에,또는몇발짝전에아무일도안일어났던것처럼 79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29
―내게사랑이있었네② 80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0
―메리벨메리벨 81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1
―?우리가불가역적계약,혹은불가역적사건이라믿는
것들에대해① 83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2
―귀신고래가있다 85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3
―우주의복도를지나기위한사소한질문③ 89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4
―내연內緣 92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5
―죄가깊다내가주섬주섬이슬을저지르며 93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6
―500년된잉카의소녀미라를위한아가雅歌 94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7
―뿔 99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8
―이런음악 100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39
―?우리가불가역적계약,혹은불가역적사건이라믿는
것들에대해② 101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40
―그것① 103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41
―내게사랑이있었네③ 104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42
―그우주최초의별 107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43
―그것② 111

해설|이찬규시와사건의저편ㆍ116

출판사 서평

시집의제목이전하고있듯이,오태환의화두는일단바다로부터파생된다.그러니까시집에들어있는마흔세편의텍스트모두가단하나의표제인「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으로묶여져있다.왜바다인가?오태환의시에서바다는종종근원적인향수를불러일으키는공간이된다.나중에좀더설명을붙이겠지만,근원적인향수라함은살아서떠나왔지만살아서돌아갈수없는곳에대한그리움에서비롯된다.우주와인간의몸사이를분별없이넘나드는그의주된상상력또한이러한근원적인향수와연관이깊다.시집의첫번째텍스트는바다를떠올리게하는귀신고래가문장의말미마다나타난다.그런데어디에도‘없음’으로매번나타난다.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1
―그러니까귀신고래는없다

귀신고래는없다북양(北洋)의흰유빙(遊氷)사이를떠돌던귀신고래는이제없다구약예레미야서23장6절과졸피뎀10㎎과세작들의우울한저녁식탁에도귀신고래는없다무슨환부같은,페름기(紀)의사력질화석안에도귀신고래는없다참수를금방끝낸IS병사의검은피묻은소맷자락에도그의검은복면이불현듯돌아보는,다마스쿠스근교와디의눈부신정적속에도귀신고래는없다나침반과컴퍼스에도귀신고래는없다사이버펑크시대,봄비같은종아리들이봄비같이붐비는부부스와핑의현장에도귀신고래는없다달빛받는AK소총의푸른그림자에도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에도귀신고래는없다미제사건파일의사건번호목록에도귀신고래는없다하마마지막숨을느리게쏟으며,어느늙은북경원인이무심히,지켜봤을주구점(周口店)의택지재개발공사같은햇살속에도귀신고래는없다그햇살아래비계처럼가설되는금잔화(金盞花)떼속에도귀신고래는없다무기밀매업자의대장내시경에도전직대통령의차명계좌잔고에도귀신고래는없다구제역으로집단폐사한돼지들이개처럼모여짖고있을지모르는,화성과목성사이소행성대의춥고어두운중력방정식안에도귀신고래는없다밤마다정치적망명을도모하는한시인의물방울처럼상(傷)한시집갈피에도귀신고래는없다그대가오래울다가깨어난새벽,도무지기억해내지못하는꿈의그,으슥한그늘에도귀신고래는없다오늘오후두시십칠분속에도귀신고래는없다그러니까귀신고래는없다

시인이참당연한사실들을반복한다고할수있겠다.이를테면“전직대통령의차명계좌잔고에도”귀신고래는없기때문이다.그렇다고귀신고래가‘희망’,‘정의’같은관념적인무엇인가를갈음하는상징물이라고섣불리단정하지는말자.그에게정치적올바름은옵션정도다.오태환이매우싫어하는것중하나가시대적윤리나이데올로기적주장을날것그대로시를통해전달하는방식이기때문이다.누군가의말이백번옳더라도마치성명서처럼되면,그가“됐고~”하며손사래를치다소주를훌쩍들이키는모습이선하다.정치적올바름이나시대적윤리가시의윤리가될수는없다.그런데이상하다.작품과작가는별개라고배웠는데,오태환은시와시인의삶을줄곧혼동케하는이상한능력을가지고있다.그이상한능력이조금은슬퍼보이는,김수영식대로말하면‘서러워보이는’시대인데말이다.
인용시는한편으로다음과같은사실적인정보를건네주며시작된다:“귀신고래는없다북양(北洋)의흰유빙(遊氷)사이를떠돌던귀신고래는이제없다”.환경재앙과멸종을고발하는생태주의적진술인가?검색결과,귀신고래는남획끝에우리나라근해에서는1964년다섯마리를포획한기록을끝으로사라지고만다.하지만시에대한생태주의적추정은거기까지다.다만“귀신고래는없다”라는각각의서술적장치를통해서시안에서의다층적상황들이등가관계를이룬다.이를테면“무기밀매업자의대장내시경”과“밤마다정치적망명을도모하는한시인의물방울처럼상(傷)한시집갈피”와“오늘오후두시십칠분”이같아진다.더나아가부재하는귀신고래는정치적인것,내면적인것그리고일상적인것들의운명적동일성을일깨운다.게다가그의시는운명적동일성을빈번하게우주적시점으로확장시키면서도일상을결코망각하지않는시적긴장감을유지한다.시는그렇게하나의사건이된다.오태환적사건은오래된사유의체계,즉이것은저것이아니며,이것이이상이면저것은이하이고,그것들은비교할수없게다르다는그곤고한분별의체계를부수는일이다.따라서첫번째시편과함께“그것”이라는부제가붙은이시집의마지막시편또한읽어볼필요가있다.

바다,내언어들의희망또는그고통스러운조건ㆍ43
―그것②

거울을보며머리를헹구는,그대의방심속에도있다그것은황도(黃道)를따라먼지처럼부유하는흰긴수염고래곁에도있고,그것은제타함수의수천광년을횡단하는완보벌레의완보곁에도있다사과를베는그대과도(果刀)의푸르고견고한속도안에도,그것은있다망가진자전거가무심히돌리는페달그러므로그것은

일식(日蝕)을숨죽여바라보는공사장의모래속에도있다하루치의주검이동짓날마른무청처럼가벼워질때,어느전리층아래에선숫돌에갈듯이또우레가칠것이다그찰나에도그것은있다그대의새벽에도그대의다음날새벽에도있다성냥불처럼꺼지는투구꽃들의희미한미행(尾行)그것은어깨에묻은빗물을털어내다가불쑥든잡념속에도있고

그것은아무도모르게허드레물살에젖는,한강둔치의흐린구석에도있다바람이부는데처음보는누군가가한눈을팔고있다폐결핵의으슥한행려의날들달걀프라이처럼맺히는밤하늘의안드로메다은하안에도,간석기(石器)의밝은돌화살촉과더밝은돌모루안에도그것은있다어제그대가친풍금곁에도풍금의고요곁에도

그러니까“그것”이무엇인지알려고하지말자.모호한것은모호한대로방임하면된다.‘방임’이란말이아직도석연치않은독자가있을까?시인이이미말했듯이시의모호성은“내몸속에서장정裝幀된여자들이모조리모호하다는사실만큼숙명적인”것이다.다만어디에도‘있는그것’으로인해실재하는것들은혼종한다.혼종은관습적으로세계를인식하고재현하는것을거스르면서발생한다.“달걀프라이”에서“밤하늘의안드로메다”를,“그대가친풍금곁”에서“풍금의고요”를말할수있을때‘그것’은있다.그것은시공간을넘나들면서러시아인형마트료시카처럼하나를열면또다른하나로나타난다.
이번연작의처음과끝을당겨보자면,“귀신고래는없다”로시작해서“그것이있다”로끝나는판이만들어진다.‘없음’에서‘있음’으로건너가는이경로가삶에대한어떤긍정의신호라고섣불리판단하지는말자.살다보면알게되는것이지만,‘있음’이‘없음’보다더나은적이그리많지않기때문이기도하다.이부분에서우리는이번연작들에서구체와감각혹은추상의세계를넘나들며끊임없이실재하는죽음이라는사건을소환해볼필요가있다.죽음은일반적으로있음에서없음으로가는경로일수있겠으나,오태환에게있어서그것은‘없음’과‘있음’의차이를무화시키는사건이기때문이다.이는그가‘살이’속에서이미죽음을보는까닭이된다.꽃이라는경물을위한그의언어적선택에도그러한까닭이담겨있다.

꽃은피는게아니라새는것이다베개속에얼굴을묻고잠을청하면서,생각했다봄여름가을아래쪽,지평선의깊이로왼쪽지평선의깊이를누르며오른쪽,지평선의깊이로위쪽지평선의깊이를당기며,가망없이
새는꽃들은
눈보라의캄캄한뇌출혈
별빛의흥건한내분비
-「바다ㆍ12-새는것들의지평선」중에서

‘피다‘라는동사는삶으로집중된힘을환유한다.꽃이피고,사람의얼굴에혈색이감돌고,검은연탄에불이새롭게지펴지는것.하지만오태환은‘피다’라는술어가가장무던했던‘꽃’이라는주어에서이미다른것을본다:“꽃은피는게아니라새는것이다.”새는것은나타남과사라짐이함께일어나는것.그러니까오태환에게있어서꽃이황홀恍惚한경우는그것이삶과죽음의동시적현상을체현하면서그구별까지도무화시킬때이다.그래서“새는꽃들은”“별빛의흥건한내분비”이기도하지만“눈보라의캄캄한뇌출혈”이되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