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나귀 타고 (박기섭 첫시집 복간본)

키 작은 나귀 타고 (박기섭 첫시집 복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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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기섭 첫시집 복간본 [키 작은 나귀 타고].
저자

박기섭

박기섭시조시인은1954년대구달성마비정에서태어나1980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한추여정閑秋餘情」으로등단하여,1983년부터<오류>동인으로활동하였다.시집으로『키작은나귀타고』『묵언집默言集』『비단헝겊』『하늘에밑줄이나긋고』『엮음수심가愁心歌』『달의문하門下』『각북角北』『서녘의,책』등이있고,박기섭의시조산책『가다만듯아니간듯』등이있다.오늘의시조문학상,중앙시조대상,이호우시조문학상,고산문학상,가람시조문학상등을받았다.

목차

1부꿈꾸는반도

강동降冬의시詩·12
그렇다,독毒은·13
한천寒天·14
관계·15
못·16
꽃밭에서·18
꿈꾸는반도·19
천년의하루·20
주일·21
잔을위한독백·22
우리사랑은·23
순진무구를위하여·24
빛이때리는대밭처럼·25
백자白瓷·26
형이상形而上의시詩·27
환상적·28
일모日暮·29

2부장자莊子의물

장자莊子의물·32
적일寂日1·33
적일寂日2·34
산읍山邑지나며·35
먼길·36
운구韻句·37
우경雨景·38
불혹不惑·39
편지·40
꽃을위한변주·41
봄에·42
대좌對坐·43
빈집·44
옥천沃川이모·45
사람한평생이·46
비슬산그늘·48
뻐꾸기소리·49

3부돌에관한명상

가시나무는·52
왕지王旨·53
다시왕지王旨·54
풍뎅이의죽음·55
돌에관한명상·56
파밭에서·58
온달溫達에게·59
옥중에서·60
의자왕의잠·61
김홍도·62
추상1·63
추상2·64
추상3·65
추상4·66
추상5·67
추상6·68
추상7·69
추상8·70
추상9·71

4부남향마루

본리동구本里洞口1·74
본리동구本里洞口2·75
본리동구本里洞口3·76
본리동구本里洞口4·77
본리동구本里洞口5·78
절후시편節候詩篇·79
봄비·84
남향마루·85
목련한때·86
강물을보며·87
저녁빛·88
분교마을에가서·89
가을갑사甲寺·90
입산생각·91
어느입동·92


5부천내동川內洞가을

천내동川內洞가을·96
장작을태우며·97
수채화·98
장날·99
한추여정閑秋餘情·100
북평北坪바다·102
파장·103
점묘법1·104
점묘법2·105
점묘법3·106
가을에·107
하늘가는길·108
주렴그늘·109
춘향가·110
그자갈빛·112
추정산조秋情散調·113
본리시편本里詩篇·116
풍속도·118
잔치는끝나고·119

■해설|박시교
80년대의외로운주자에게·120

출판사 서평

□작품해설

80년대의외로운주자에게

80년대초?덧니?라는제목의2인시집을통해서박기섭시인을처음으로만났다.물론시집을통해서였고,벌써10년의세월이흘렀다.그런데그첫만남의신선했던충격을오랫동안간직하다가지난봄에서야사화집?기린봉?에쓴?80년대와사설시조?라는글에그때읽었던작품중에서?장작을태우며?를언급할기회가있었다.전적으로필자의게으름이낳은결과였다.그때그글을쓰면서참으로오래간직했던묵은빚을조금은갚았다는생각이들었던것은무엇때문이었을까.그것은첫만남으로부터10년동안일관된자세를보여주었던그의뛰어난작품에대해필자는끝내독자로서안주할수만은없었기때문이다.같은길을가는한사람으로서마냥그의행보를지켜보는것만으로만족하기보다는어떤형태로든얘기할의무같은것을강하게느꼈다.그러나그런생각을정작실제의행동으로옮기는데에필자는인색하고게을렀다.부끄럽다.이러한마음을그는이미간파했던것인지,첫시집의말미에이글을보태게하였다.그래서다시10년전의생각을거듭떠올리게되었고,또그동안그의작품에대해서하고싶었던얘기를할기회가주어졌다.?덧니?중의한편?철들무렵?을옮기는것을시작으로그의작품세계를살펴보기로한다.

병에담긴물을엎질렀을때엎질러진문을이미병속의물이아니다.
이평범한진리때문에우리는우리의삶을엎지르질못한다.

가을날,눈물을참는하늘또한그때문이다.

이미20대에이런생각의터득을하였던그의시조는그만큼기초가견고하다.대체로오늘의시조가삶의테두리밖에서노래하고,표피의아픔을다둑이는것에서그소임을한것으로착각하고있다.뿐만아니라,전통이란보호막을두껍게내리고한치바깥도외도로몰아붙이려는철저한자세를허물지않았다.그리하여삶의얘기는으레공허하였고,진부하였다.‘평범한진리’속에시조가놓여있어야한다는사실,그가장기초적인사실을깨닫지못했던것이다.?철들무렵?은이러한사실과결부하여,시조단의‘오랜잠’을깨우기위한하나의분명한작업이낳은소산이었다.지금읽어도10년전그때의생각과조금의변함이없다.또하나의작품사설?장작을태우며?도마찬가지이다.

마른장작이타는아궁이에선열대여섯그또래계집애들의무수한작은입술이모여째작째작껌씹는소리를낸다.
태반은그을음이되어혹은연기가되어사라지지만개중에도오래씹히는아픔은남아양심의보드라운재가되기도하고,

더러는불티가튀는사루비아꽃밭이다.

반짝이는재치와신선한비유가돋보이는사설이다.‘시조가젊어져야한다’는,오늘의시조가안고있는가장큰명제를한꺼풀벗겨준80년대의목소리라해도지나친말은아닐줄로안다.오늘의시조가일찍이신인의재기와발랄함을끌어내지못했기때문에‘신인부재의시조단’‘상식과투가독버섯처럼무성한시조단’을만들고만것이다.장작이타는소리를째작째작껌씹는소리로들을수있는마음의귀,오래씹히는아픔은남아서양심의보드라운재가된다는생각,그리고거기서불티가튀는사루비아꽃밭을발견할수있는예리한눈이바로오늘의시조가취해야할자세라는데에주목하지않으면안된다.이미20대에깊은생각의터득과뛰어난감각의조화를시조에담아낼수있었던것이앞에든두편이었다.이러한작업은사설뿐만이아니고평시조에서도유감없이발휘되고있다.

천내동川內洞가을빛이옛날에눈맞춘너의눈빛같다희망같다
삭아내린맹서같다
단추를달면서잠시망설였던어느아침,
선채로문득듣는물소리도그렇지만
연륜의길섶에서따내버린실밥같다
꿰매는단추구멍에얼비치는눈물같다.

?천내동川內洞가을?은연시조이다.그런데여기서형식상의새로움을쉽게발견할수가있다.첫수와둘째수의연결고리가종래의시조에서흔히보던의미연결을의도적으로거부하고있다는사실이다.우선시각적으로나타난연결고리가콤마(,)라는점이돋보이고,또두수를행갈이이외에는아무표시도하지않았다.물론의도적이다.그런데아주자연스럽게처리되었다는데에주의할필요가있다.한수끝맺음의연결고리를풀어버리고두수를한데묶어버렸다.조금도어색하거나거부감이없는하나의형식을의도적으로결구해놓은결과이다.또하나,장과수모두반복법을사용했다는점도이시조의특징이다.특히첫수초장과중장의연결을반복법을이용해의미상으로만가르고,문맥은하나의줄글로풀어버려서화자의메시지를보다더강조하고있는점이눈에띈다.
시조의형식은고정불변이아니다.일찍이사설이평시조의틀을해체하였고,또한평시조의본래모습도근대에와서편의에의해굳어진최소한의약속일뿐이다.그러므로오늘에와서평시조도갇힌형식에서열린형식으로의실험과발전이요구되는것은두말할나위가없다.이러한자각과실험의식이없는시조창작행위는이미한참전에마감했어야만했다.그런데도90년대까지답습만거듭되고있는데에시조의문제점이있다.?천내동川內洞가을?은내용의참신함도물론돋보이는가작이지만,평시조의형식을일부해체하고하나의새로운틀을시도했다는데에주의를모아마땅하다할것이다.아무튼80년대의박기섭은이같은실험정신으로해서주목받는시인으로자신의위치를확보했다고생각한다.이상언급한세편은80년대초의작품이다.그러면여기서그로부터10여년이지난90년대초의작품하나를보기로하자.인용하려는사설시조?순진무구를위하여?는이미필자가?현대문학?9월호월평에서언급했었던것을그대로옮기기로한다.

은銀의쟁반에잘씻은과물들을담아들고가던‘순진무구’가돌을맞는다.느닷없이어디선가날아온돌에머리를다친다아프게피흘리는‘순진무구’를몽매의구둣발이와걷어차고무지막지의가죽장갑이달려들어마구몽둥이를들이댄다
-<개패듯이>

기진한‘순진무구’가나동그라진다비명도없이나동그라지며은의쟁반을버린다포도에넘치는‘순진무구’의피를무수한흙발이와짓밟고짓밟으며흩어진과물들을와싹와싹씹어삼킨다이윽고부러진‘순진무구’의꼭뒤를쇠갈고리로나꿔채고황급히사라지는
-<정체불명의손>

그때다,수발의총성이창을흔들고지나간것은!

초장‘개패듯이’,중장‘정체불명의손’으로화자가의도한긴장의장치를숨겨두고종장에서수발의총성으로풀어버리는고도의수법을쓴보기드문사설시조이다.‘순진무구’로강조된숨은뜻이무엇인가에따라그긴장도는사뭇달라질수가있다.따라서순진무구를개패듯이하는정체불명의손이수발의총성과어떤관계로놓이느냐에내용의비밀스러움을감추고,끝까지긴장의줄을조이고있는작품이다.그러므로이시조에서는굳이비밀스러움의정체를드러내야할이유는없다.그러한억지행위를함으로써도리어시적긴장은다풀어지고말것이기때문이다.다만초?중장의비밀장치를마련한화자의은밀한미소가과연독자에게어느만큼전달될것인가하는의문을제기할필요가있다.쉽게드러내어서는안된다는화자의지극히계산된긴장미가시적인감동과는별개가아니란점에유의해야할것이다.그의세련되고발랄한은유의빛남을위해서도.그러나그의시조가사적인문제를벗어났을때보다트인목소리로울려온다는것을여러작품에서확인할수있었다.그리고그러한작품들은보다사변적이며활달한상의전개와함께자연스러운반복법의한전형을도출해내고있었다.이러한현상은평?사설어느한쪽에만치우치지않고모두한결같다는데에그의장기를대할수있었다.형식면에서앞의?천내동川內洞가을?과유사한4수1편으로짜여진평시조?꿈꾸는반도?가그좋은예였다.

그냥산이어선안돼,그냥그런산이어선
스스로골짜기를팬,그런속살의아픔을아는,
그온갖푸나무자라고새떼깃드는그런산.

마을과마을을감싸고남북천리를달리는,
엔간한철조망이나까짓지뢰밭쯤은가볍게발등으로차버리고휘달리는그런산.

그냥물이어선안돼,그냥그런물이어선
스스로등판을찢는,그런피의고통을아는,
수천척직립直立의벼랑을뛰어내리는그런물.

무수한골짝과골짝그무지와황량을돌아
적의의날선칼을혀끝으로다스리며
마침내스스럼없이만나몸을섞는그런물.

통일의지를노래한이시조는산과물을빌려하나가되어야할민족의염원을토로하였다.즉,‘그런산’‘그런물’을빌려국토와민족문제를직설적으로노래했다.직관의활달함속에서반복법이(그의많은작품이반복법의효과를거두는것을확인했다)아주적절하게구사되고있어서트인시조의한전형을대하는듯한인상이강렬한작품이었다.시조가너무사적인진술에머물었던데에서,삶의테두리를벗어난공허함을낳았다면박기섭의대사회적인시조가거둔성과에주의할필요가있다.사실이러한직관과직설을통해서작품으로성공하기란참으로어렵다.자칫관념적인유희에머물고마는예를우리는무수히목격했고,특히시조에서는맹목적인주의주장에불과했던것을식상할정도로보아왔다.그만큼역량을필요로하는작법이다.그런데도평시조로이만큼엮어낼수있었던것은전적으로그의시적역량을보여준하나의예이다.
80년대의시조단에그가일궈낸작업의일단이값지다는것을필자는확신한다.그리고시조의내일을밝게빛낼것이라고도믿는다.이제그가지고하고험난한90년대의시조의빙벽을오르기위해힘주어박는견고한‘못’질에뜨거운박수를보내며,그의육성?못?을여기옮기는것으로이글을끝맺으려한다.

숱한담금질끝에
직립直立의
힘을고눠
마침내일어서는
견고한
자존의뼈
스스로극한의빙벽을
이를물고버틴다.

못을친다,
저생목生木의
건강한육질을밀어
그환한
정수리에
굵은,대못을친다
한시대처연한꿈이
앙칼지게박힌다.

닫힌저엄동의
난만한
못통속에는
끝내
상하지않고
온전한야성들이
첨예한긴장의한끝을
서느렇게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