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당집(하) (신승준 시집)

이연당집(하) (신승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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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승준 시인은 부처를 보았다는 전설이 있는 견불산見佛山 자락 견불리에서 구도의 정신으로 일상의 삶을 사랑하며 시를 쓰고 있다. 신승준 시집 『이연당집·하』의 시편들은 앞서 나온 『이연당집·상』보다 평범하면서도 단순한 시어로 화조지화花鳥之和를 꿈꾸며, 구도와 연연戀戀이 그윽한 산수화를 선보인다. 전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넘어서 오히려 평이하게 쓰인 시편들은 삶이라는 현실을 더욱더 끌어안으면서, 시의 정신이 향하는 건 묵언 수행자처럼 하나의 나무로서 오롯이 살고 싶어하는 구도의 자세라 할 만하다. 그리하여 그는 흐린 세상을 통하여 “보지 않고도 아름다움을 느끼”(「실명」)며, 그의 마음을 “꼭 닮은 견불산 산빛을 마주하고”(「누옥지복陋屋之福」) 싶은 것이다.
한편, 그는 구도의 여정에서 길항하는 세속의 사랑과 마주하며, 대상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 절절한 연서를 보낸다. 이 사랑은 대체적으로 회고적이지만, 그가 집중하고 있는 구도의 정신과 맞물리면서, 사랑은 하나의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사랑의 흔적엔 선홍빛 상처가 선명하
더라도 “그 상처 밑에서는/ 무심히도 새살이 돋는”(「회복기의 기억」) 것처럼, 구도와 사랑은 하나일 터. 그러므로 앞으로 다가올 시의 여정에서 구도와 사랑을 꽃피울, 새롭게 태어날, 그의 시편들이 기다려질 뿐이다.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
저자

신승준

1960년 강원도 주문진에서 태어나 2014년 『대한문학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일본죠오치대학(上智大學), 건국대학교 국제대학원(정치학 석사)을 졸업하고, 1988년 주한일본대사관공보문화원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2021년부터 낙향하여 작은 목장(더좋은목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시집으로 『이연당집ㆍ상』(2016년)이 있다.

목차

1부 이연당부怡然堂賦

순례를 떠나며·12
이순耳順·14
농부, 봄을 깨우다·16
지금 이 시간·17
늙어 간다는 것?·18
누옥지복陋屋之福·19
초하의 이연당에서·20
어느 여름날·21
취우지홍驟雨之虹·22
길을 걷다·24
시월의 만월·25
만추사색晩秋思索·26
이연당부怡然堂賦·27
시작詩作·28
향호 가는 길·29
찬견불리讚見佛里·30
어이연당於怡然堂·32

2부 시후여정時候旅情

초춘지정初春之情·34
꽃비·36
불사춘不似春·37
오늘 유달산·38
영춘迎春·39
영랑 숲길·40
춘심春心·41
화신花信·42
봄꽃 약속·43
작은 초상肖像·44
홍도야 울지 마라·46
가을 해변·47
이 가을에·48
시베리아 횡단열차·49
하조지몽夏朝之夢·50
아 바이칼·52
그리고, 여독·53

3부 와초관세臥草觀世

외과병동·56
역류逆流·58
도시의 야경·59
광화狂花·60
현상現狀·61
유랑민流浪民의 꿈·62
실명失明·64
길·65
그 시절 광화문·66
구도求道·68
여명기黎明期·69
혹서일기酷暑日記·70
노승의 기도Ⅱ·71
고백 시대·72
홍콩을 위하여·74
한 번쯤은 나무로 살아가자·75
새벽-인시寅時·76

4부 유수부사流水浮思

미로·80
연서戀書·81
기다림의 의미·82
향심向心·84
연모Ⅱ·85
장덕리에 복사꽃 피면·86
여름비·88
사모불망思慕不忘·90
회복기의 기억·91
연모Ⅲ·92
팔월 어느 날·93
해변단상海邊斷想·94
그리움은 별이 되고·95
영매靈媒·96
회중언어懷中言語·98
11월을 보내며·100
연군戀君·101

해설 | 권온_성숙, 재발견, 갱신으로서의 ‘시간’·102

출판사 서평

신승준 시집 『이연당집·하』의 특징
신승준의 시편들을 살펴보면, 「이순耳順」에서 시적 화자 ‘나’는 플러스만 가득한 삶이란 없음을, 마이너스를 껴안을 때 비로소 삶이 바로 서고, 세상이 완성된다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그러한 ‘시간’ 또는 ‘나이’가 바로 ‘이순’이다. 「늙어 간다는 것」이 주목하는 테마는 ‘청춘(靑春)’과 대비되는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지만 ‘지혜’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기도 하다. 삶에서 시간 또는 세월의 축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님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시이다. 「기다림의 의미」에서 ‘당신’을 향한 ‘나’의 기다림은 ‘실망’이나 ‘체념’ 또는 ‘후회’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수렴한다. ‘새벽달’을 바라보며 “온밤을 새웠던 기다림”이 “온전히 별이 되어/ 하나둘 이 골목을 채워”간다는 이 시의 진술은 숭고미(崇高美)를 깨운다. 「회복기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간 뒤에 남는 ‘기억’에 집중한다. 시인은 ‘기억의 흔적’에서 ‘선홍빛 상처’를 발견한다. 이 시는 우리가 언제까지나 상처에 매몰되어서 살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무심히도 새살이 돋는” 것, 천연덕스럽게 회복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다
흐르고 흘러 쓸고 간 자리에
희미한 기억만 남는다

그 기억의 흔적에는
선홍빛 상처가 선명하다

살아 있는 날이 줄어들수록
되살아나는 그 기억을
고요가 덮고, 적막이 억누르고,
깊이깊이 묻어두었다 할지라도
그 상처 밑에서는
무심히도 새살이 돋는다
-「회복기의 기억」 전문

‘시간’은 인간의 삶에서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시간은 늘 움직이는 속성을 갖고 있기에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간 뒤에 남는 것은 ‘기억’이다. 시인은 ‘기억의 흔적’에서 ‘선홍빛 상처’를 발견한다. 우리는 생(生)의 궤적에서 비롯되는 기억에서 때때로 깊은 상처를 포착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겠다. 기억이라는 이름의 저장소에 흔적을 남기는 경우 중 하나가 상처이다. 불행이나 우울 또는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상처는 “살아 있는 날이 줄어들수록” 더욱 강렬하게 “되살아”날 수 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줄어들 듯 삶은 탄생의 순간부터 조금씩 죽음을 지향한다. 사람들은 ‘고요’나 ‘적막’이라는 이름으로 간혹 ‘시간’이나 ‘기억’ 또는 ‘상처’를 감추거나 다독인다. 긴요한 것은 우리가 언제까지나 상처에 매몰되어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무심히도 새살이 돋는” 것, 천연덕스럽게 회복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