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사회 (김종규 시집 | 양장본 Hardcover)

액정사회 (김종규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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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종규 시인의 시편들은 내면에서 오래오래 발효한 시적 대상들이 발아하면서 절제된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절제의 미덕은 아슬아슬하게 비시(非詩)와 시(詩)의 경계를 넘나들며, 가혹하리라 만치 자신을 채찍질하며 견디는(「견디는 것」), 그 핍진(逼眞)한 여정의 밀도는 도의 수행과 다름없다. 비를 밀어내 자신의 무게를 덜어낸 구름 같은 존재(「비운다는 것」)와 화두를 삼키며 꿈틀대는 목울대를 타고 장강의 설법을 듣는(「막걸리」), 이런 행위 자체가 시의 길이며, 도의 길인 것이다. 드디어 텅 비우고 다시 맑은 물소리를 채우는데(「좌변기」), 물이 아닌 물소리를 채움으로써 그의 묵언수행은 시쓰기와 함께 계속할 것을 약속한다.

한편, 그의 시적 대상들은 세속에서 늙어가고 쇠잔한 것들에 대한 연민을 떠나서 오히려 그 내면의 힘들을 끌어올리는 데 더욱더 일조하고 있다. 가령 “돌덩이처럼 무겁던 살덩이가/ 무르게 풀어,”(「늙은 호박」)지는 무쇠솥 안의 늙은 호박 같은 것이다. 삶의 불볕과 우레와 무서리를 통과한 맷돌호박은 겨울밤을 온전하고 따뜻하게 갈무리한다. “썩는다는 건,/ 돌아갈 길을 찾는 것이”(「모과에 관한」)라는 진술 역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사이클에서 사라지는 건 또 다른 현현(顯現)인 것이다.
“시원한 물 한 그릇으로/ 살아지던 때가, 있었던”(「액정사회5」) 아름다운 시절과 곡진한 세상을 꿈꾸는 김종규 시인은, 신생(新生)의 주인공을 보내듯이(「봄, 단상(斷想)」) 앞으로 꽃피울 시편들을 어떻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 김영탁(시인·『문학청춘』 주간)
저자

김종규

김종규시인은전북정읍에서태어나경희사이버대학교문예창작과를졸업하고,2009년『유심』으로등단했다.현재시를쓰면서법무사로활동하고있다.

목차

1부

각시메뚜기·12
껍질을읽다·13
늙은호박·14
모과에관한·15
틈·16
여뀌꽃·17
수목한계선·18
큰소리가나올법한데·19
143번시내버스·20
시간·22
회화나무의시간·23
식당밥·24
견디는것·25
비운다는것·26
먼지들·27

2부

말言·30
몸의말·31
붉은통증·32
손에관한·33
웃음에관한·34
기억도늙는것일까?·35
세월·36
주름의재발견·37
땀의발견·38
막걸리·39
연속극·40
비밀의뒷맛·41
부모사랑상조회·42
붉은노트두권·43
전단지한장의무게·44
출근길·45
측면·46

3부

시詩·50
강의실·51
자화상自畵像·52
쪽잠·53
파지破紙·54
정전停電·55
일몰日沒·56
그저녁의울음·58
파리들·59
바퀴벌레들·60

4부

액정사회1·62
액정사회2·63
액정사회3·64
액정사회4·65
액정사회5·66
액정사회6·67
이시대의우화寓話1·68
삶1·69
삶2·70
머그잔,나비·71
바람의뒷면·72
흔한장면·73
몽골에서·74
마네킹·75
입춘방立春榜·76

5부

우기가지나가는·78
봉산약수·79
봄,단상斷想·80
서소문로플라타너스는왜다시잎을내는가?·81
씨앗이눈을뜰때·82
물방울·83
빨래들·84
삼청동1·85
속·86
속도·87
좌변기·88

해설|권온_영원한진실을말하는상태에관하여·90

출판사 서평

김종규의첫시집을읽는일은시인의개념을정립할수있는드문기회일수있다.우리는이자리에서「모과에관한」,「수목한계선」,「몸의말」,「주름의재발견」,「전단지한장의무게」,「쪽잠」,「日沒」,「머그잔,나비」,「바람의뒷면」등아홉편의시를읽으면서시인의시세계를점검할수있을테다.그의시를읽는독자들은스스로의몸과삶을돌아보고사회곳곳의아픔을살필수있는새로운인식의계기를얻을게다.김종규의시가건축하는마법의현장을구체적으로확인해보자.

노란모과가식탁위에서썩어간다
잘익은것일수록귀퉁이에
검버섯,먼저생겼다

사막의능선을넘듯,몸속향을내뱉으며
쪼그라든

모과,
매끄럽고두터운껍질을
놓아버린다

썩는다는건,
돌아갈길을찾는것이다
-「모과에관한」전문

김종규가바라보는대상은‘모과(木瓜)’이다.시인은노랗게익은과일이“식탁위에서썩어”가는모습에주목한다.그는1연2행과3행에서유의미한현상을포착한다.“잘익은것일수록귀퉁이에/검버섯,먼저생겼다”라는진술은독자에게성찰의계기를제공한다.‘잘익은것’과‘검버섯’은서로어울리지않는조합으로여겨질수있는데,바로이러한아이러니한상황에서남다른인식또는자각이탄생한다.‘플러스’가‘마이너스’를잉태한다는김종규의발상은‘변증법’과연결될수도있다.
시인은2연과3연에서‘모과’의현실을결과와원인의관점에서서술한다.노랗게익은과일로서의‘모과’는“매끄럽고두터운껍질”이라는현실을보여주는데,김종규는이러한현실의원인을날카로운상상력으로추적한다.그에따르면‘모과’는‘아라비아의로렌스’가“사막의능선을넘듯”,“몸속향을내뱉으며/쪼그라”들었다.뜨거운여름을견딘후맛보는풍성한가을향기가모과의현실일수있다.이시의진면목을보려면4연에주목해야겠다.시인은“썩는다는”것을“돌아갈길을찾는것”으로규정한다.우리는일반적으로썩는다는것을‘소멸’이나‘종말’또는‘죽음’등으로이해하지만김종규의생각은다르다.그는썩는다는것을‘근원’으로의회귀로이해한다.이제다시시작인것이다.

김종규의시편들중「모과에관한」은독자에게성찰의계기를제공한다.썩는다는것을‘근원’으로의회귀로이해하는시인의태도를기억해야겠다.「수목한계선」은두겹의읽기를가능하게하는복합적인층위의작품이었다.「몸의말」에서김종규는‘몸’의‘전조’를소홀히여겨서는안된다는메시지를제안하였다.「주름의재발견」을읽으면시간의축적이삶의성숙임을확인할수있다.
「전단지한장의무게」는‘전단지한장의무게’를알려준다.생존의가능성을높이는일이라는점에서그것은결코가볍지않았다.「쪽잠」은작고미세한소리에예민하게반응하는인간의육체를보여주고이를‘시인’과연결하는인상적인시였다.「日沒」은놀라운핍진성을담고있는새로운스타일의시였다.「머그잔,나비」에서독자들은‘머그잔’과‘나비’를연결하는,무생물(無生物)을생물(生物)로전환하는시의마법을목도하였다.「바람의뒷면」에서김종규가형상화하는바람은공기의움직임이자마음의움직임이다.복합성의원리를구사하는역동적인작품인것이다.
장콕토(JeanCocteau)에의하면“시인은언제나진실을말하는거짓말쟁이이다.(Thepoetisaliarwhoalwaysspeaksthetruth.)”장콕토의언급은시인의속성을극적으로보여준다.시인은기존에없던언어로새로운세계를창조한다.익숙한것과의단절을활용한다는점에서시인을거짓말쟁이로규정할수도있을테다.그러나시인은단순한거짓말쟁이가아니다.시인은진실을이야기하는거짓말쟁이이기때문이다.이러한아이러니한상황을견지하는이가진정한시인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