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

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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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문 광고로 본 한국영화 100년,
왜 ‘신문 광고’인가?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상영된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義理的 구토仇討>는 우리 영화사의 시작이 된 탄생작이다. 어떤 작품을 최초의 한국영화로 볼 것인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의리적 구토>로 여긴다. 이 영화의 개봉일을 우리나라 ‘영화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어느새 100년이 지나 2019년 올해 100주년을 맞은 우리 영화는 국제영화제에서도 큰 인정을 받으며 세계 속에 자리를 굳게 하고 있다.
얼마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국제영화제에서 우리나라의 한 영화가 그 영화제의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 이는 한국영화사에 더없는 선물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임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을 받은 뛰어난 영화이기도 했지만, 한국영화사에서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영화가 되었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우리는 한국 독자들에게 신문 광고에 실린 한국영화의 모습을 소개하려 한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신문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만든 매체이다. 과거의 어떤 시기에 있었던 일은 그 시기의 신문이 말해 준다. 이는 신문에 실린 영화 광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개봉하는 날짜, 개봉하는 곳, 관람 요금, 제작진과 출연진, 그 밖의 상세한 정보들이 실려 있다. 우리가 신문에 실린 영화 광고를 모아 엮으며 알게 된 사실은 도서나 인터넷으로 전해오던 우리 영화에 관한 정보들에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개봉날짜이다. 발견한 오류들은 《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에 정정하여 실었다. 또 흥미로운 것은 신문 광고에도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제작진의 이름이 잘못 표기된 것과 같은 몇 개의 오타들이었다.
광고는 기본적으로 ‘홍보’를 위해 하는 행위이다. 어떻게 광고하느냐에 따라 홍보 효과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똑같은 영화여도 만들 수 있는 광고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광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광고를 보면 그때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반응하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또, 이 책의 <의리적 구토> 광고부터 <박하사탕> 광고까지 쭉 보다보면 광고의 모습, 즉 광고의 구성이나 형태 등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보인다. 초기 광고에는 한자가 많이 나와 읽기도 힘든 수준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읽을거리가 거의 없어진다든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에 나오는 광고 속 읽기 어려운 문안들은 모두 글로 옮겨 놓았다.
이렇게 신문 속 영화 광고를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 《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은 잘 몰랐던 한국영화에 관심은 가지만 선뜻 다가가기 힘든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고, 한국영화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영화의 색다른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한국영화 100년, 영화광고 100선》 속 영화 광고들에 담긴 그 시절의 시대상·영화상을 한껏 체험해 보기 바란다.
저자

그림씨편집부

목차

머리말

001의리적義理的구토仇討/002총희寵姬의연戀/003장한몽/004아리랑/005야서(들쥐)/
006먼동이틀때/007유랑/008벙어리삼룡/009임자없는나룻배/010청춘의십자로/
011춘향전/012미몽/013사랑에속고돈에울고/014집없는천사/015똘똘이의모험/
016자유만세/017검사와여선생/018마음의고향/019출격명령/020운명의손/
021미망인/022피아골/023양산도/024청춘쌍곡선/025자유부인/026시집가는날/
027잃어버린청춘/028실낙원의별/029돈/030지옥화/031별아내가슴에/032종각/
033인생차압/034비극은없다/035육체의길/036이름없는별들/037로맨스빠빠/
038박서방/039하녀/040성춘향/041마부/042오발탄/043삼등과장/
044사랑방손님과어머니/045상록수/046현해탄은알고있다/047서울의지붕밑/
048다이알112를돌려라/049또순이/050고려장/051돌아오지않는해병/052김약국의딸들
053혈맥/054맨발의청춘/055육체의고백/056마의계단/057검은머리/058춘몽
059갯마을/060비무장지대/061초우/062물레방아/063산불/064귀로/065안개
066천하장사임꺽정/067카인의후예/068미워도다시한번/069장군의수염/070천년호
071독짓는늙은이/072화녀/073화분/074별들의고향/075영자의전성시대/
076삼포가는길/077바보들의행진/078로보트태권V/079고교얄개/080겨울여자
081바람불어좋은날/082최후의증인/083피막/084어둠의자식들/085만다라
086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087꼬방동네사람들/088안개마을/089물레야물레야
090바보선언/091고래사냥/092깊고푸른밤/093장남/094땡볕/095길소뜸
096티켓/097씨받이/098성공시대/099나그네는길에서도쉬지않는다/100칠수와만수/
101아제아제바라아제/102달마가동쪽으로간까닭은?/103우묵배미의사랑/104파업전야
105남부군/106그들도우리처럼/107나의사랑,나의신부/108경마장가는길
109하얀전쟁/110우리들의일그러진영웅/111첫사랑/112서편제/113그섬에가고싶다/
114개같은날의오후/115아름다운청년전태일/116꽃잎/117돼지가우물에빠진날
118축제/119초록물고기/120박하사탕

출판사 서평

한국영화의시금석<아리랑>,그리고나운규
1926년단성사에서개봉한<아리랑>은소리가없는무성영화였음에도당시사람들에게깊은감명을준혁명적인영화다.조국을잃은백성의울분과설움을고스란히담아냈고,영화가끝난뒤에는관객들이눈물바다가되어아리랑을따라부르며조선독립만세를외쳤다고한다.
또한<아리랑>이조선의지식인들에게준충격또한대단했는데,카프소속의평론가최승일은<아리랑>이전의조선영화모두를불살라버려도될정도의거상이라극찬했다.<아리랑>은조선영화인들에게기념비이자넘어야할산과같은작품이었다.
이영화는독립운동가였던나운규가직접각본·감독·출연한작품으로,안타깝게도지금은<아리랑>의필름이전해지지않고있지만,<아리랑>이후나운규는일제강점기조선영화를대표하는영화인이되었다.

최초의발성영화<춘향전>
발성영화,즉영화의화면과함께소리가나오는영화가나오기전에는어떻게영화를보았을까?무성영화만나오던때에우리나라에는변사라는매우인기있는직업이있었다.이변사는영화밖에서영화의진행과등장인물의대사등을관객들에게설명해주던사람이다.이처럼발성영화가나오기전에는변사의말과함께영화를관람하곤했다.
최초의한국영화가<의리적義理的구토仇討>라면,최초의한국발성영화는무엇일까?우리나라최초의발성영화는문예영화였다.최초의발성영화가문예영화인데다가,한국대표소설인《춘향전》이었다는점은특별하지않을수없다.그렇게1935년<춘향전>을시작으로우리나라는발성영화에발을들여놓게되었다.최초인만큼제작과정에는큰어려움이많이따랐지만,호기심으로가득찬수많은관객들의발걸음으로흥행에크게성공했다.

<성춘향>vs<춘향전>
1961년,구정을앞두고같은소재를다룬영화두편이거의동시에개봉했다.1월28일에개봉한신상옥감독의<성춘향>과그보다열흘먼저개봉한홍성기감독의<춘향전>이그것이다.이두영화는한국에서처음시도한컬러시네마스코프작품이란점과같은소재를다루고같은시기에개봉했다는점등으로심한경쟁이예상됐다.게다가두감독은각자자신의부인인최은희와김지미를‘춘향’역으로발탁해그대결은더욱치열해졌다.
결과는어땠을까?신상옥의<성춘향>이압도적인승리!개봉74일만에서울관객38만명이라는흥행사상전례없는기록을이뤘고,이기록은1968년<미워도다시한번>이등장하기전까지약7년동안유지되었다.그렇게이두영화는대결은한국영화의흥행역사에서지울수없는일이되었다.

한국영화리얼리즘의거장,유현목의<오발탄>
이범선의동명소설을원작으로하여1961년개봉한영화이며,한국영화의중흥기를불러온의미있는작품으로꼽힌다.이영화는부패한자유당정권말기의사회상을그리고있다.자유당말기에촬영을시작했으며,1960년4·19혁명을거쳐1961년4월13일1차개봉을한다.그러나5·16군사쿠데타가일어나면서영화의상영은금지되고만다.노파의대사가운데‘가자!’라고하는장면이북한을지향하고사회를저항하는것으로지적되었기때문이다.후에유현목은그장면이‘사람이사람답게살수있는이상향’을담고있다고말했다.그후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출품하면서상영정지가풀렸고1963년을지극장에서재상영되었다.

한국영화흥행역사의전설,<미워도다시한번>과그후편들
<미워도다시한번>은유부남과처녀의사랑,그리고그사이에서태어난아이를중심으로전개되는한국적인멜로드라마의전형으로,국도극장에서개봉되어그곳에서만약37만명의관객을동원하며1961년<성춘향>이후역대최대관객을기록한다.
이러한흥행성적이힘입어감독정소영은이듬해<미워도다시한번속편>(관객약25만명),1970년<미워도다시한번제3편>(관객약19만명),1971년<미워도다시한번대완결편>(관객약14만명),그리고<미워도다시한번2000>을최종적으로제작하였다.

한국영화의침체기1970~1990년대에서고군분투한영화들
텔레비전의등장,파도밀려오듯들어오는외국영화들등으로한국영화는침체기를맞는다.신선한외국영화를두고기존의한국영화는설자리를잃고있었다.이를극복하려꾸역꾸역많은영화를찍어내봤지만역부족이었다.유신정권의검열도문제가됐다.
1970년대에유행했던건청년영화와액션영화다.하길종감독으로대표되는청년영화는당시억압적사회분위기속에서고뇌하는청년들의가슴을울렸으며,1975년개봉한하길종감독의<바보들의행진>이대표적이다.당국의검열로약30분정도되는분량이잘려상영되었지만그럼에도많은관객을동원하여흥행에성공했다.1977년에는여성이주인공으로한청년영화<겨울여자>가개봉하여역대관객기록을갱신했다.
하지만이런것보다도대중적으로가장인기를끈여배우를내세운영화였다.점점여배우의에로티시즘을내세워관객을유인했고한국영화의침체는날로깊어만갔다.그렇다고모든영화인들이이런트렌드를따르진않았으니,그중돋보인건감독임권택이다.한국적소재와한국의역사로영화를만드는데집중한그는<만다라>로대대적호평을받고,<씨받이>로아시아태평양영화제감독상을받는쾌거를이뤘다.1993년에개봉한<서편제>는단관개봉만으로100만명이넘는초유의관객수를기록했는데,이로인해한국영화에대한관심이다시고조되기도했다.

다시시작될한국영화100년史

기록하고보존하지않는역사는사라지는법이다.우리의수많은영화들,특히광복이전영화의필름은산실되거나상태가좋지않고,필름이해외에서발견된경우도많았다.그러니영화는물론이고영화와관련된자료도턱없이부족한것이현실이다.
반면기록과보존이어렵기는커녕불법복제하여배포하는것을막느라바쁜요즘,영화소식을전해주는매체는단연인터넷이주가된다.하지만한국영화사초기,그러니까인터넷이등장하기전에는신문이거의모든소식을전하는매체였다.그리고그신문에는오늘날100주년을이룩한우리영화의발자취도담겨있다.
이책은영화를,특히한국영화를사랑하는독자들에게그시절을영화를선물하는책이다.한영화가지금이아니라그때어떻게존재했는지,그때의관객들에게어떻게다가가고싶었는지,무엇을보여주고싶어했는지등을고스란히보여준다.
《한국영화100년,영화광고100선》을통해한국영화에더흥미를가지고한국영화에관한자료보존의절실함을다시한번생각해본다면,세계인들이모두지켜보는가운데주먹을높이치켜들던자랑스러운우리나라감독의모습을다시한번볼날이가까워오지않을까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