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양장본 Hardcover)

임제록 (양장본 Hardcover)

$25.00
Description
『임제록(臨濟錄)』은 선어록(禪語錄)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책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어록의 백미’라고 불렸다. 게다가 그 문장이 직설적이며 명료하기 때문에 선(禪)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나 전문 선 수행자에게 더없는 필독서이다.
이번에 민족사에서 간행한 석지현 역주·해설본 『임제록』 은 중국 임제종과 조동종(묵조선) 계열의 대표적 공안송고평창집인 『벽암록』 (전5권)과 『종용록』(전5권)을 역주·해설한 저자의 내공이 집약되어 있다. 뛰어난 언어감각을 지닌 시인으로 선시(禪詩)와 선어(禪語)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전념해 온 저자는 독자들이 『임제록』의 요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구어체 스타일로 명쾌하게 번역했고, 해설과 주(註)를 덧붙였다.
또한 [『임제록』에서 인용하고 있는 경전과 어록, 언구(言句) 목록]을 정리하여 수록했다. 이것만으로도 선(禪)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석지현(역주.해설)

13세때충남부여고란사로출가.1969년중앙일보신춘문예시(詩)부문에당선되어승려시인으로서명성을떨쳤다.1973년동국대학교불교학과를졸업했다.그후명상에심취하여,인도,네팔,미국,예루살렘,티베트등지를오랫동안방랑했다.
이‘방랑의시절’동안인도의구석구석을여행하고네팔의히말라야,부탄의산길,예루살렘의불타는사막을여행했다.미국에서5년동안살면서전세계의종교지도자들을만났다.필라델피아에서만난이슬람수피의가르침도인상적이었고,다람살라에서만난달라이라마의소탈함과따스한자비심에큰감동을받기도했다.이과정에서수행과글쓰기에필요한자양분을얻을수있었다.불교경전과힌두교,티베트불교,선어록등을망라하여저술활동을하고있는것도이런만행덕분이다.
편·저·역서로는『禪詩』,『禪詩감상사전』(전2권),『벽암록』(전5권),『종용록』(전5권),『법구경』,『바가바드기따』,『우파니샤드』,『반야심경』,『숫타니파타』,『불교를찾아서』,『선으로가는길』,『왕초보불교박사되다』,『제일로아파하는마음에-관음경강의』,『행복한마음휴식』등다수가있다.

목차

●일러두기…………………………………………………004
●머리말……………………………………………………005

1_임제는누구인가…………………………………011
1.시대적배경………………………………………011
2.생애…………………………………………………012
3.사상…………………………………………………014
4.후세에끼친영향…………………………………019
5.『임제록』의문체(文體)……………………………021

2_서문[序]………………………………………………022
3_법문[上堂]……………………………………………028
4_가르침[示衆]…………………………………………063
5_선문답[勘辨]…………………………………………238
6_수행록[行錄]…………………………………………293
7_탑기(塔記)……………………………………………356

●『임제록』에서인용하고있는경전과어록,언구(言句)목록………362

●참고문헌…………………………………………………370

●찾아보기…………………………………………………371

출판사 서평

선어록의백미,선(禪)수행의필독서,임제록!
석지현역주·해설본으로읽자!

1.『임제록』은어떤책인가?

『임제록』은당나라의선승(禪僧)임제의현(臨濟義玄:?~867)의가르침을그가입적후제자인삼성혜연(三聖慧然)이편집한것으로서,현존하는것은임제선사가입적한후254년이지난1120년(북송의선화2년)에원각종연(圓覺宗演)이중각(重刻)한것이다.
『임제록』은중국선의정점에있는조사선의경지를드러낸선어록이다.올바른견해,반야지혜,정안,정법안을갖출것을강조하고있는것이『임제록』의초점이다.그것을『임제록』에서는‘진정견해(眞正見解)’라는말로강조하고있다.즉참으로바른견해를갖추어야한다는것이다.정안을갖추지못한다면선수행이란무의미하기때문이다.따라서선어록의백미인『임제록』을읽지않고는선어록의진수를맛보지못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임제록의원본은다음의체제로구성되어있다.

1.상당(上堂):법당에올라가서하는설법
2.시중(示衆):대중에대한설법
3.감변(勘辨):스승과제자간의선문답상량(禪問答商量)
4.행록(行錄):행장기록
5.탑기(塔記):석탑에기록한비문.

역자는서문에서『임제록』전체를관통하고있는정신은,
첫째,개념과언어로부터의해방[不立文字]이라고파악했다.
『임제록』에서는이모든개념과언어는‘옷[衣]’에불과하다(13-30)고했다.옷은계절이바뀌면수시로갈아입는다.
둘째,주체적인삶[隨處作主立處皆眞]이라고파악했다.
『임제록』에서말하는주체적인삶은무엇인가?“어느상황에처하든주체적이되라[隨處作主].그러면상황은절대로그대를잡아흔들지못할것이다[立處皆眞]”(12-1).개념의집착으로부터해방과주체적인삶은자신의견해가확립되었을때가능하다.
이와같이『임제록』은진정견해(眞正見解)와수처작주(隨處作主),즉정안과주체적인삶,이두가지를갖출것을강조한선어록이다.

임제선사는매우준엄한선풍(禪風)으로많은제자를양성했고,후세에큰영향을끼친공안(公案)도많다.그대표적인것이‘수처작주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이다.어디를가든지주체적으로살아간다면현재서있는그곳이곧모두진실한곳이된다는뜻이다.또‘무위진인(無位眞人,아무런속박없는참사람)’도임제선사의법문을대표하는명구이고,‘살불살조(殺佛殺祖,부처를죽이고조사를죽인다)’도유명한명구이다.

2.석지현역주·해설본『임제록』의특징과장점

『임제록』은문어체(文語體,문장체)가아닌구어체(口語體,대화체)로쓰였다.구어체는대화가주류를이루는살아있는인간의언어이고,개념화되지않은언어이기때문에선어록은모두구어체로기술되었다.구어체에는특히옛시대의속어(俗語)가많이나온다.속어란그당시일반서민들이생활속에서사용하던말(대화체)이다.그러나그시대가지나가면그시대에사용하던속어는그대로사장(死藏)되어후대사람들은그의미를전혀알수가없다.그당시에는누구나아는말이었지만지금은사전에조차없는말들이대부분이다.『임제록』에유독옛시대의난해한속어들이많이나오는것은『임제록』이구어체로쓰였기때문이다.
석지현역주·해설본『임제록』은중국임제종과조동종(묵조선)계열의대표적공안송고평창집인『벽암록』(전5권)과『종용록』(전5권)을역주·해설한저자의내공을집약하고있다.뛰어난언어감각을지닌시인으로선시(禪詩)와선어(禪語)를우리말로옮기는작업에전념해온저자의내공으로구어체로이루어진『임제록』을생생하게번역해낸것이다.
이책의장점은본문을‘1-1’에서‘59-2’까지단락으로나누어[번역],[해설],[원문],[주(註)]순으로『임제록』의내용을체계적으로설명한다는점이다.이로써독자들이단락별로『임제록』의요점을파악할수있도록친절히안내한다.한문으로쓰인원문이부담스러운사람은[번역]과[해설]만으로도『임제록』의요점을충분히파악할수있다.원문에대한자세한주(註)는선(禪)을공부하는이들에게많은도움이될것이다.
이책의백미는저자의혜안이돋보이는[해설]이고,구어체스타일의명쾌한[번역]도여느번역본과다른이책만의가장큰장점이다.
임제선사는『임제록』에서『장자(莊子)』등을비롯하여많은경전과선어록에나오는용어들을사용하고있는데,그종수는무려50여종이나된다.임제선사는언어를부정하기위해역설적으로경전과어록의언구들을총동원한셈이다.석지현역주·해설본『임제록』에서는[『임제록』에서인용하고있는경전과어록,언구(言句)목록]을정리하여수록했다.이것만으로도선(禪)을공부하는이들에게많은도움이될것이다.

3.임제의현선사에대하여

임제의법명(法名,僧名)은의현(義玄),속성(俗姓)은형(邢)씨,조주(曹州)남화(南華)에서태어났다.젊은날에출가해서폭넓게전통적인불교경전을공부했다.하지만그의출가당시의나이와스승이누구였는지는알수없다.임제의고향인조주남화는지금의산동성연주부(?州府)로서황하하류의남쪽지방이다.이곳은임제와동시대에활약했던선승조주종심(趙州從?)의고향과도가까웠다.그는특히법화(法華),화엄(華嚴),유마(維摩),능가(楞伽),능엄(楞嚴)등의경전과유가(瑜伽),유식(唯識),화엄합론(華嚴合論),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법원의림장(法苑義林章)등의불교학에조예가깊었다.
그의출가와득도(得度:具足戒를받고정식승려가됨)를통례에따라20세무렵으로친다면827년에서835년(원화연간)에해당하는데,이때청량징관(淸凉澄觀:738~838)과규봉종밀(圭峰宗密:780~841)의화엄학(華嚴學)이전성기를이루고있었다.그러나그는이모든학문이단지약처방전이며일종의선전문구에불과하다는것을간파하였다.이후책을덮어버리고구도행각을시작하여황벽(黃檗:?~850)을찾아갔다.하남에서태어난임제가무슨이유로머나먼강남으로황벽을찾아갔는지는알수없다.그당시황벽은홍주자사(洪州刺史)인배휴(裵休:797~870)의후원으로홍주고안현(高安縣)에황벽선원을열고많은수행자들을지도하고있었다.이때가회창년(841~846)에서대중연초(大中年初:847)에해당하는데,당시임제는황벽밑에서오로지수행정진에만몰두하고있었다.그러던어느날목주도명(睦州道明:당시황벽선원의수좌)의권유에따라황벽의방장실문을두드렸다.“불법의핵심이무엇입니까?”를세번묻고세번얻어맞은다음대우에게가서크게깨달았다.이때의극적인순간의기록은수행록[行錄38-1·2·3·4]에자세히실려있다.
임제가깨달은시기는회창의법난이한창단행되고있을때였다.임제는당의중앙정부와대치상태에있던하북진주지방으로올라가교화를펴기시작했다.당시이지역의실권자였던부주(府主)왕상시(王常侍)의적극적인후원이있었는데,이왕상시는『임제록』처음(上堂1-1)에등장하는인물이다.하북의진주임제원에서교화를펼치는장면은모두수행록[行錄39-1에서57-2까지]에자세히기록되어있다.이때임제의교화를도왔던인물가운데중요한사람은반산(盤山)에서온광승(狂僧)보화(普化)였다.반산은진주(鎭州)북부지방으로서도교(道敎)의영장(靈場)이었는데,보화의자유분방한역할에서우리는무위자연적인삶을추구하던신선도자(神仙道者)의이미지를느낄수있다.보화의이러한초인적인행동은기성불교의권위에맞서는자유로운인간상으로서임제가제창한신불교(新佛敎)의전형이라고도볼수있다.
임제의법을이은제자는삼성혜연(三聖慧然)을위시해서21명또는24명이있었다고한다.임제는당(唐)함통(咸通)8년(867년)정월1일에입적했는데수행록[行錄58]에는그때의장면이생생하게기록되어있다.간화선(看話禪)을제창했던대혜종고(大慧宗?)는임제를평하여이렇게말했다.
“만일승이되지않았더라면틀림없이도둑의괴수가되었을것이다.”
(?老謂臨濟若不爲僧必作一渠魁)-『주자어류(朱子語類)』권126

4.『임제록』이후세에끼친영향

『임제록』은선어록이라기보다는차라리인류가남긴가장극렬한반역의서(書)라고해야한다.왜냐하면임제는그의가르침[示衆13-5]에서성불(成佛)도부정하고좌선도부정하고여타의수행일체를거부하고있기때문이다.게다가한걸음더나아가‘불경(佛經)은똥을닦는휴지조각’(13-9)이요,‘부처는똥통’(13-41)이라고외치고있다.역대의선승들가운데이처럼저항적이고처절했던사람은임제앞에도없었고,임제뒤에도없었다.
임제가살았던당말(唐末)은정치적으로나사상적으로나문화적으로매우극심한격동기였다.이격동의한가운데서그것도혁명가들의집결지였던하북지방에서임제가부르짖었던‘반역의외침’은후대의선승들에게실로엄청난충격을주었다.
임제가입적하자임제자신은원치않았지만그의추종자들에의해서임제의가르침은임제종(臨濟宗)이라는선풍(禪風)으로정비되었다.이보다조금앞서는위산영우(?山靈祐:771~853)와앙산혜적(仰山慧寂:807~883)에의해서위앙종(?仰宗)이확립되었다.또한임제의선풍이정비되던것과거의동시대에는동산양개(洞山良价:807~869)와조산본적(曹山本寂:840~901)에의해서조동종(曹洞宗)이확립되었다.
당이멸망하고오대(五代)가되자운문문언(雲門文偃:846~949)에의해서운문종(雲門宗)이,그리고잇달아법안문익(法眼文益:885~958)에의해서법안종(法眼宗)이확립되었다.이렇게확립된다섯개의선풍[五宗家風]은송대(宋代)로들어서면서난숙기를맞이했고중국문화전반에까지침투해들어갔다.
그러나시대가지남에따라이다섯개의선풍은임제종과조동종으로흡수되고통합되었다.맨처음위앙종이소멸했고,두번째로법안종이소멸되었다.그리고마지막으로운문종이임제종에흡수되어버리고말았다.남송(南宋)말(末)에는남은두개의종파에서각각한사람씩거장이나왔다.조동종에서는천동정각(天童正覺:1091~1157)이출현하여묵조선(?照禪:좌선수행을강조하는선수행방식)을대성시켰고,임제종양기파(楊岐派)에서는대혜종고(大慧宗?:1089~1163)가나와서간화선(看話禪:깨달음을강조하는선수행방식)운동을전개했다.
남송이후[元·明·淸]에는임제종과조동종,이두개의흐름만이남아서지금까지이어지고있다.우리나라는특히임제의선풍(임제종)가운데대혜종고가주장한간화선의태풍영향권에서조금도벗어나지못하고있는실정이다.